‘최초의 유토피아 조선‘ 강의 두 번째 일정이 지났다. 첫 일정과 달리 오늘은 나도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첫 시간에 오늘과 같은 점심 모임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강사와 두 분의 직원, 네 명의 수강자가 함께 가진 모임이었다. 한 여자 수강자께서 점심 값을 모두 내셔서 ‘아, 벌써‘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 분은 성균관대 앞의 사회과학 서점 ‘풀무질‘ 소식을 전했다.

나도 경희대 앞의 지평 이야기를 했다.(25년 전 자주 들렸던 곳인데 폐점했지만 나는 아직도 02 963 2328이라는 전화번호가 기억난다.) 우리는 다음 모임과 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인사동의 화랑이나 미술관 가는 일정을 앞당길 수 있다는 말도 있었다.)

직원 가운데 한 여자 분은 나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시는 듯 하다. 내가 자신의 재단에서 활동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네, 좋지요.. 그런데 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정도의 말로 답을 대신했다.

나는 과연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까? 강사분께 프로그램이 좋아 확장하면 책으로 내기에 적당할 것 같다고 하자 자기는 게을러 책 같은 것 못 쓴다는 말을 했다. 내가 김** 시인의 글은 도저히 흉내낼 수조차 없다는 말을 하자 혜화 사시는 한 여자 분이 책 이름을 물었다.

대답했더니 바로 검색을 하셨다. 그냥 물은 것이 아니라 사서 읽으려는 마음이 있는 듯 했다. 이 분은 공자가 55세부터 공식 기록이 있다는 오늘 강의 내용을 반추하며 자신에게 희망이 되는 사실이라 말했다.

그런 점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인연이 계속 이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 좋아하는 분들과의 만남이니 인연이 이어진다면 좋겠다. 여섯 차례의 강의가 남았는데 모두 끝나고 나면 어떤 변화가 이루어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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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홀릭 - 되새길수록 좋은 서울의 한옥마을 이야기
로버트 파우저 지음 / 살림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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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한국과 인연을 맺은 로버트 파우저(1961 - )서촌 홀릭은 되새길수록 좋은 서울의 한옥 마을 이야기라는 부제를 가진 책이다. 저자는 서촌에는 인(), (), () 사이에서 나오는 여유가 있고 현대인의 일상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독특한 정취가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역사 보존을 선과 악으로 극명하게 구분짓는 이분법적 사고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역사 보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28 페이지) 저자는 성북동 이태준 고가(古家), 북촌 등을 둘러본 뒤 한국에 개발(이라는) 악이 작동하고 있다는 확신을 했다.(31 페이지)

 

저자가 말했듯 서울은 빨리 변하는 도시이다.(45 페이지) 그리고 자기 흔적 찾기가 힘든 도시이다.(46 페이지) 그리고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인스턴트 도시이다.(51 페이지) 저자가 서촌(西村)을 발견한 것은 2008년 늦가을이다.(53 페이지)

 

저자가 2008년 가을에 서울에 와 서울 속에서 자신만의 작은 교토를 찾기 위해 첫 번째로 탐험한 곳이 북촌이다.(59 페이지) 교토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을 점령한 미군의 일원이었던 저자의 아버지로 인해 살게 된 도시이다.(55 페이지) 그곳에서 저자는 문화의 깊이에 매료되었다고 말한다.(55 페이지)

 

저자는 한옥 보존 반대, 주민은 재개발 원한다 등의 현수막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60 페이지) 저자는 북촌보다 서촌이 그간 꿈꾸었던 작은 교토에 가까워 보여 서촌에 매력에 빠져들었다.(61 페이지)

 

저자는 혜화동 추억도 밝힌다. 1980년대 말은 대학로 시대였다. 소극장 중심으로 문화 활동이 활발했던 시대이다. 당시 저자는 재능교육문화센터 자리 뒤에 자리한 마음에 드는 한옥을 찾았다.(72 페이지) 저자는 혜화동에서 한옥 살이를 해본 경험 덕분에 한옥이 한국 고유의 신비로움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감정은 매우 반가우면서도 부담이 될 때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76 페이지)

 

한옥은 마당이 있기에 자연스럽게 자연이 집 안으로 끌려들어오는 셈이다.(86 페이지..이 문장은 형용사로서의 자연과 명사로서의 자연이 함께 등장하는 드문 예이다.) 한옥은 자연과 소통하는 집이기에 불편하다. 저자에게 한옥은 집이기보다 각박한 일상에서 비발디의 사계(저자가 초등학교 시절 가장 좋아하던 음악)처럼 화조풍월(花鳥風月)을 즐거워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스승이다.(87 페이지)

 

저자는 한국의 유교 문화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한국이 근대 사회를 열면서 옛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전반적인 성향은, 자신들의 전통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유교 사상을 낡은 것이라 강조하며 한국의 수많은 문화적 재산을 파괴한 일본적 정서에 대한 반대급부 때문이라는 것이다.(107 페이지)

 

한국이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 전쟁을 끝낸 뒤 남한의 군사 독재 정권은 국민적 단합을 위해 유교 사상을 강조했고 북한은 조선시대를 봉건시대로 규정했다. 그 뒤로 두 국가는 조선시대를 다르게 서사하고 있다.(108 페이지)

 

저자는 선불교로부터 오리엔탈리즘적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파트를 투기 대상으로 삼는 우리 모습을 보며 우리 정서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샤머니즘이 아파트를 통해 새롭게 표출되는 것은 아닐까, 짐작한다.(116 페이지) 무당이 특별한 능력으로 한 사람의 고민을 구명할 수 있듯 아파트가 자신의 경제적 문제를 구명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는 것이다.(118 페이지)

 

저자는 곧 없어질(재개발 될) 한옥 지구를 사진 찍는 것을 폐허 포르노에 해당한다고 말하며 폭력 행위라 할 그런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120 페이지) 고통의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의식을 높이지도 않고 동정할 수 있는 능력도 키우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한 번 보면 계속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120 페이지)

 

저자는 한옥에 워낙 관심이 많아 집 뼈대부터 섬세한 창살까지 한옥의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싶어 하던 차에 전주 한옥 마을에 호기심이 생겼다고 말한다.(152, 153 페이지) 저자에게 전주는 한국의 교토다.(155 페이지)

 

저자는 서촌에 살면서 동네의 모든 역사를 멸시할 재개발을 반대했고 곳곳에서 일어나는 난개발도 반대했다. 동네를 보존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했다.(180 페이지) 저자는 보존(保存)과 보전(保全)의 차이를 논한다. 환경과 자연 경관을 이야기할 때는 보전이란 말을 쓴다. 특정 유물이나 건축물에 대해서는 보존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181 페이지)

 

저자는 역사적 가치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옛것은 다 철거하고 어디서나 찾아볼 법한 특색 없는 건물을 그렇게 쉽게 짓는 우리의 심리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심리라 말한다.(186 페이지)

 

저자는 한국의 곳곳을 많이 다녔다.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리라. 저자는 골목의 정취가 좋다고 말한다.(202 페이지) 저자는 교토를 보존해야 한다는 자신의 강한 생각이 낭만적 시선 어떻게 보면 오리엔탈리즘적 이해로 인한 생각인 것 같았다고 말한다.(204 페이지) 그리고 오래된 것을 지키는 것은 선이고 없애는 것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시간이 갈수록 교토의 오래된 경관에 대한 생각이 조금 더 다양해졌다고 말한다.(204, 207 페이지)

 

저자는 집을 산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고 원형이 잘 보존된 것보다 좋은 위치, 주변 건물들이 높이 올라갈 수 없다는 환경적 요건이 자신을 사로잡았다고 말한다.(215 페이지) 저자는 한국에 살며 답답한 것 중 하나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분위기라 말한다.(223 페이지)

 

저자는 어락당의 주인이었다. 체부동의 도시형 한옥이다. 저자는 언젠가 다시 한옥을 짓는 과정이 자신에게 필요하면, 그때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어락당을 지었을 때처럼 즐겁게 할 것이라 말한다.(225, 226 페이지)

 

2015년 이후 서촌은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큰 몸살을 앓고 있다.(230 페이지) 서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좀 더 명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젠트리피케이션보다 상업화에 가깝다. 저자는 무분별한 개발은 반대하되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데에 중심을 두기로 했다고 말한다.(233 페이지)

 

저자가 인용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말씀이 감동의 파문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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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지즈코 지음, 나일등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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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女性嫌惡)를 비판하는 글을 써야 하기에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를 읽었고 마사 너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3년만에 다시 읽고 있다. ‘혐오와 수치심은 알라딘 신간평가단 과제여서 리뷰를 썼지만 미흡하다는 생각 때문에 1개월여만에 리뷰를 다시 쓰다가 중단한 상태이다.

 

3년만에 다시 읽는 너스바움의 책에서는 월트 휘트먼에 대한 기술(記述)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이는 올해 읽은 두 권의 책(박홍규 지음 헤세, 반항을 노래하다’, 장석주 지음 은유의 힘’)에서 휘트먼에 대한 글을 만났기 때문이리라.

 

박홍규의 책에서 시집 풀잎의 시인인 휘트먼은,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헤세에게 큰 영향을 미친 구스타프 그레저와의 관계하에서 거론되었고 장석주의 책에서는 은유와의 관계하에서 거론되었다.

 

구스타프 그레저는 자신의 성()인 그레저(Graser)는 그라스(grass)의 복수를 의미한다며 풀 잎 한 닢을 명함으로 삼았다.(‘헤세, 반항을 노래하다’ 144 페이지) 휘트먼은 한 아이가 풀잎을 따와서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내 기분의 깃발, 희망찬 초록 뭉치들로 직조(織造)된 깃발이라고 말했다.(‘은유의 힘’ 25 페이지)

 

논점이 달라서이지만 이 책들에서 거론된 사실만으로 휘트먼의 온전함을 아는 데는 부족하다. 휘트먼은 몸의 흥분을 노래한다란 시에서 남자의 몸도 여자의 몸도 신성하다네./ 어느 누구의 것이든 몸은 신성하다네. 노동자 집단의 몸이라고/ 비천할까?”란 말을 했다.(‘혐오와 수치심’ 218 페이지)

 

너스바움에 의하면 전 생애에 걸쳐 휘트먼의 응답은 섹슈얼리티의 수용적이고 여성적인 측면을 기쁘고 아름다운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같은 책 220 페이지) 너스바움은 휘트먼의 미국은 하나의 허구로 실제 사회는 그에 의해 표현된 방식으로 혐오를 이겨내지 못했다고 말한다.(같은 책 224 페이지)

 

너스바움은 휘트먼이 그린 사회를 이상적인 규범이라고 성급하게 결론내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너스바움이 말한 바는 여성 혐오가 없는 사회를 이상적인 규범으로 성급하게 결론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혐오가 없는 사회를 이상적인 규범으로 성급하게 결론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든 이유는 세 가지이다. 우리에게 혐오는 실제적 위험을 피할 수 있게 해준 진화적인 유리함이 있었다는 것이고, 다양한 시기의 다양한 문화에서 또는 최소한 같은 문화 속의 여러 사람에게 혐오스러운 것과 매력적인 것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바 혐오스럽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섹슈얼리티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휘트먼의 요구대로 하려면 결국 우리는 인생의 덧없음과 퇴화를 두려워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껴안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같은 책 225, 226 페이지)

 

꽤 설득력 있지만 동의하기가 꺼려진다.(세번째 이유에 대해서는 불교 수행을 참고한다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우에노 치즈코는 성적으로 남성인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여자라는 시시하고 불결하며 이해 불가능한 생물에게 욕망의 충족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남자들의 분노와 원한이 여성 혐오의 내용일 수 있다고 말한다.(‘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16 페이지)

 

치즈코는 여성 혐오라는 개념을 얻게 되면 왜 여자를 좋아하는 호색남이 실은 여성을 멸시하는지, 또는 왜 남자가 자신보다 뒤떨어지는 여자를 욕망하는지 잘 알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남성에게 이성애 질서는 남성이 성적 주체임을 증명하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289 페이지)

 

정녕 시시한 존재에게 의존한다고 생각한면 분노나 혐오보다 실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겸허함이 필요한 것이 아닐지? 남자가 여성 의존도가 클수록 현실 부정에서 기인하는 여성 혐오는 클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니체가 말한 고상한 위선이 아닐지?

 

우에노 치즈코의 책은 복잡 다기(多岐)한 폭력과 도착(倒着)적인 현실을 잘 그려낸 책이다. 하지만 아니 그렇기에 읽는 데 꽤 불편하다.(우에노 치즈코는 사회학자라는 직업이 업보라 생각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기분 좋은 것, 아름다운 것, 마음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쾌한 것, 화가 나는 것, 용서하기 힘든 것을 대상으로 골라 그 수수께끼를 밝혀내고자 골몰하기 때문이다.)

 

우에노 치즈코에 의하면 여성 혐오는 남성에게는 여성 멸시, 여성에게는 자기 멸시이다.(13 페이지) 저자는 여성이 성녀로 추앙되든 매춘부로 업신여겨지든 모두 한 동전의 양면이라 말한다.(27 페이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논할 수 있는 것이 생식용 여성(아내)와 쾌락용 여성(매춘부)의 이분법적 시각이다. 전자는 생식의 영역으로 소외되고 후자는 생식으로부터 소외된다.(53 페이지) 물론 이때 말하는 쾌락이란 오로지 남성의 쾌락만을 의미한다. 저자는 남성에 의해 성녀와 창녀로 나뉘는 여성의 현실을 분할 통치라 말한다. 성녀와 창녀는 여성 억압의 두 가지 형태일 뿐이며 양쪽 모두 허울 좋은 타자화에 지나지 않는다.(57 페이지)

 

저자는 남성이라는 성적 주체에 대한 동일화는 여성을 성적 객체화하는 것에 의해 성립하며 그 경계에는 수많은 혼란이 존재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며 이렇게 생각하면 여러 수수께끼가 한꺼번에 풀리게 된다고 말한다.(39 페이지)

 

저자는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는 라캉의 갈파(喝破)를 언급한다.(43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남자는 다른 남자의 성적 욕망을 모방함으로써 남성이라는 성적 주체가 된다. 이로 인해 남성됨의 방식에는 다양성이 없다. 음담패설이 정형화되고 나는 ...’식의 일인칭 말하기가 성립하지 않는다.(43, 44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남자가 남성으로서의 성적 주체화를 달성하기 위해, 여성 멸시를 아이덴티티의 핵심 깊은 곳에 위치시키고 있는 것이 여성 혐오이다.(51 페이지) 중요한 것은 호모 포비아이다. 남성은 자신이 여자 같은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끊임 없이 증명해야 한다.(51 페이지)

 

이브 세지윅에 의하면 여성 혐오와 동성애 혐오는 남성 간 연대를 성립시키는, 분리하기 어려운 한 쌍의 계기이다. 자신이 남성임을 다른 남성에게 인정받으려면 자신이 여자가 아님을 증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102 페이지)

 

남성과 여성의 균형은 끝까지 남성 우위를 지킴으로써, 다시 말해 여자가 남자를 떠받드는 것에 의해 간신히 유지되는 연약한 것이다.(79 페이지) 여성 혐오를 기반으로 조직된 사회를 가부장제 사회라 한다.(111 페이지) 여성 혐오는 남자가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여자가 여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저주하는 것이다.(112 페이지) 페미니스트는 스스로의 여성 혐오를 자각하고 그것과 싸우는 사람이다.(297 페이지)

 

여자의 질투는 남자를 빼앗은 다른 여자에게로 향하지만 남자의 질투는 자신을 배신한 여자에게로 향한다. 그것은 소유권의 침해, 한 명의 여자가 자신에게 소속됨으로써 유지되던 자신의 자아가 붕괴될지 모른다는 위험을 뜻하기 때문이다.(125 페이지)

 

남자는 바보 취급 가능한 여자를 결코 놓아주지 않는다. 그런 여자를 한 명 확보해 놓는 것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립시키기 위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177 페이지)

 

어떤 의미에서 여성이라는 사실을 혐오하는 감정은 모든 근대 산업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의 보편적 감정이라 할 수 있다.(154 페이지)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는 그리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전편이 밀도 높은 데다가 정신분석적 개념에 근거해 서술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9어머니와 딸의 여성 혐오가 그렇다. 참으로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라캉 학파의 계승자인 사이토의 모녀관계론은 프로이트 이론에 익숙한 이라면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다. 그러나 어머니와 딸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남성에게 해부당하는 것은 어쩐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든다.”.(169 페이지)

 

저자는 말한다. 페미니즘이 부정하는 것은 남성성이지 개개의 남성 존재가 아니라고.(302 페이지) 그리고 이브 세지윅에 의거해 여성 혐오와 동성애 혐오는 남성 간 연대를 성립시키는, 분리하기 어려운 한 쌍의 계기라는 말을 한다. 자신이 남성임을 다른 남성에게 인정받으려면 자신이 여자가 아님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는 라캉의 갈파(喝破)를 언급한다. 치즈코에 의하면 남성됨을 인정해주는 것은 이성인 여성이 아니라 동성인 남성이다. 남성의 성적 주체화에 필요한 것은 자신을 남성으로 인정해주는 남성 집단이다.

 

물론 나는 이런 남성 집단의 인정에 별 관심이 없다. 오래 전부터 그래왔다. 이 부분에서 나는 김영민 교수(철학)의 말을 떠올린다. 그는 사람은 자식이라는 생산성을 통해 불멸성을 선사받는다는 플라톤의 향연의 논의를 겨냥해 자신에게는 자식이라는 생산성을 통해 불멸하려는 욕심이 없다는 말을 했다.(‘보행’ 319, 322 페이지)

 

어떻든 정녕 시시한 존재에게 의존한다고 생각한다면 분노나 혐오보다 실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겸허함이 필요한 것이 아닐지? 남자가 여성 의존도가 클수록 현실 부정에서 기인하는 여성 혐오는 클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니체가 말한 고상한 위선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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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다카시의 교육력 -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19
사이토 다카시 지음, 남지연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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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 다작의 저술가 사이토 다카시의 교육력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부제로 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배움에의 동경(憧憬)과 꾸준한 열정이다. 이 미덕들은 다른 사람들 가령 후학, 제자 등등의 배우려는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동경의 벡터는 언어를 초월하여 몸에서 몸으로 전해진다.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계속적인 배움에 있다. 저자가 경계하는 것은 가르치는 행위에만 골몰하여 교사 자신이 배움을 잊는 것이다.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말이 있다. 서로 함께 실력을 갈고닦는 적당한 긴장 관계가 배우는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상대에게 배움이 즐겁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교사의 사명이다. 교사는 가르치는 전문가인 동시에 배우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수준 높은 공부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학생들에게 갖게 하는 것이 교욱자의 임무이다.

 

교사의 실력이 검증받는 승부처는 발문력(發問力: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물음을 던져 스스로 생각하고 깨달음을 얻게 하는 힘)에 있다.(33 페이지) 중요한 것은 물음은 모호해서도 평범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질문은 아는지 모르는지 묻는 것이다. 어떤 사항에 대해 다양한 형태로 생각하며 접근하려 하는 것이 발문이다.(106 페이지) 저자는 1년의 수업을 했음에도 상대가 늘지 않았다면 교육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반대로 직접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학생이 책을 읽도록 능숙하게 유도하여 1년 후 학생이 지식을 갖추고 생각하는 힘을 얻었다면 이는 교육이 이루어진 것이 된다고 말한다.(42 페이지) 저자는 잘 가르치기 이전에 잘 배우는 것이 기반(基盤)이 되며 가르침에 있어서 기본은 배움을 통해 기쁨을 얻은 경험이 있는 것이라 말한다.(43 페이지)

 

저자는 교육자에게 학생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일종의 축제로 받아들이는 정도의 터프함이 있으면 좋다고 말한다. 저자는 니체의 구절(‘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을 인용한다. “보라, 나는 지금 너무 많은 꿀을 모아버린 꿀벌처럼 지혜의 과잉에 싫증이 났다. 나는 나에게 손을 뻗어줄 많은 이들이 필요하다. 나는 내가 소유한 것을 전하고 함께 나누리라.”

 

이 인용 후 저자는 교사는 꿀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48 페이지) 개개의 지식을 연결된 육지로 만드는 설명 방식이 교사에게 요구된다. 교사란 해당 지식을 기억할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문맥력이다.(49 페이지)

 

공부의 기본은 남의 말을 듣는 것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57 페이지) 공부하면 할수록 융통성 없이 고집만 부리게 된다면 그것은 공부 방식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혀서야 배우는 보람이 없어지고 만다.(59 페이지)

 

공부란 정보의 고속 처리 능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문맥(文脈)을 파악하는 힘을 가리킨다. 저자는 학문을 엄청나게 잘하지 못한다고 교단에 설 수 없는 것은 아니라 말한다. 배움의 즐거움, 소중함을 전하는 종합력이 중요한 직업이 교사직이다.(71 페이지)

 

공부나 동아리 활동을 통해 숙달(熟達)의 보편적 원칙을 상대에게 전한다는 의식을 항상 가진 사람이 교육력 있는 사람이다.(73 페이지) 아주 빠른 속도로 다른 것을 흡수하면 그것들을 조합해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갈 수 있다.(74 페이지)

 

저자를 통해 우리는 모방력이야말로 창의성의 근간임을 알 수 있다. 모방은 언뜻 무의식적인 행동 같지만 실제로는 포인트를 인식(의식화)하여 문자로 나타낼 때 비로소 정착한다.(78 페이지) 모방이란 고도의 인식력으로 뒷받침되는 것이지 어쩌다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80 페이지)

 

천재는 처음부터 뛰어났던 것이 아니라 숙달의 달인이라 할 수 있다.(82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과학적 정신이란 조건을 한정하는 능력이다.(88 페이지) 한 번에 여러 가지를 바꾸면 실패하든 성공하든 그 요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실험이 가진 본질적 의미는 조건을 제한하는 절차구성법이다.(89 페이지)

 

부지런히 연구하는 교사는 일반적인 통설은 이렇지만 이런 시각의 설도 있는데 상당히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학생들이 다각적 견해를 가질 수 있다.(94 페이지) 연구란 스스로 테마를 발견하여 논문을 쓰는 것이다.(95 페이지) 지금까지 연구 대상이 된 적 없는 것을 대상으로 삼으면 훌륭한 연구가 된다.(96 페이지)

 

연구자적 태도를 잃지 않는 사람은 50, 60세가 되어도 존경받는다.(98, 99 페이지) 저자는 아무리 연구해도 읽어줄 사람이 없는 것은 쓸쓸한 일이라 전제한 뒤 자신도 논문을 써도 아무 반응이 없는 시기가 10년이나 이어져 비관하다가 대학생이라는 들어줄 사람을 얻고 나서 젊어진 듯 활기를 되찾았다고 말한다.(100 페이지)

 

천재란 남이 시키지 않아도 계속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연습하는 사람이다.(102 페이지) 진짜가 갖는 대단함을 알게 하는 것 자체가 교사의 역할이다.(111 페이지) 저자는 교과서를 해체하여 학생에게 전할 만큼의 힘이 없으면 교사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125 페이지)

 

시험은 학생의 역량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교육력을 평가하는 방편이 된다.(131 페이지) 잘 하게 만드는 힘은 선생님의 실력이다.(133 페이지) 대화력은 교사의 기본이다.(134 페이지)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자신의 선생님이 될 수 있다.

 

지금 정체(停滯)되어 있는 자신을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무엇과 만나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깨닫는다.(158 페이지) 석가모니 붓다는 자신을 불생불멸의 열매를 얻기 위해 신앙이라는 씨앗과 이해라는 쟁기, 부드러움이라는 채찍으로 밭을 가꾸는 농부로 표현했다. 사이토 다카시는 교사를 지하수맥을 발견해 그것을 퍼 올리고 물과 비료를 계속 공급하는 양수 펌프에 비유한다.(170 페이지)

 

내가 순간을 향하여.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말을 한다면, 너는 나를 꽁꽁 묶어도 좋다! 그럼 나는 기꺼이 멸망하리라! 그때엔 조종(弔鐘)이 울려도 좋을 것이며, 너는 나에 대한 종노릇에서 해방되리라.

 

시계는 멈추고, 바늘이 떨어질 것이며, 나의 시간은 그것으로 끝나게 되리라!.. 내가 한순간을 고집하게 된다면, 나는 즉시 종이 될 것이며, 그것이 너의 종이건, 누구의 종이건 상관하지 않겠노라.”(이인웅 옮김 문학동네판 괴테 파우스트’ 1108, 109 페이지)

 

인간 지혜의 마지막 결론이란 이러하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위험에 에워싸여 있으면서도 여기에서는, 아이고 어른이고 노인이고 값진 세월을 보내게 되리라.

 

나는 이러한 인간의 무리를 바라보며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더불어 살고 싶다. 그러면 순간에다 대고 나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이인웅 옮김 문학동네판 괴테 파우스트’ 2432 페이지)

 

사이토 다카시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계약,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위반을 이야기하며 결국 파우스트가 시간아 멈추어라, 너는 정말로 아름답구나란 말을 한 계기가 된 것은 미래를 건설하는 사람들의 행위라 설명한다.(178, 179 페이지)

 

다카시가 말하는 미래를 건설하는 행위란 당연히 배우고 가르치는 행위이다. 저자는 교사에게 문화유산을 계승한다는 의식이 없으면 그 수업은 의도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한다.(188 페이지) 저자는 문화의 수준은 제작자의 질에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고 말한다.(189 페이지)

 

교사는 문화의 수용자와 제작자를 동시에 길러내는 역할을 짊어진 존재이자 다음 시대를 만들어가는 존재이다.(197 페이지) 동경하는 마음을 심미안과 함께 길러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다.(201 페이지)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둘이서 대화할 때 못하는 사람은 셋을 상대할 때도 하지 못하고, 셋을 상대 못하는 사람은 열을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며, 열을 상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십 명은 도저히 무리라는 것이다.(215 페이지)

 

교사란 지성, 감정, 의지에 리스폰스(응답)할 수 있는 몸까지 가져야 하는 균형 잡힌 인간이 해야 하는 일이다.(216 페이지) 공부에서는 객관성과 다각성 시점이 매우 중시된다.(223 페이지) 자신의 호불호에 상관 없이 틀린 것은 틀린 것, 그것을 항상 직시할 필요가 있다.(224 페이지)

 

교육에는 스타일이 요구된다.(264 페이지) 스타일과 더불어 언급해야 할 것으로 호흡이 있다. 교사는 활기차고 차분하게 호흡해야 한다. 숨을 길게 내쉬어야 한다. 호흡을 컨트롤함으로써 거리감을 컨트롤할 수 있다.

 

시간 감각도 컨트롤할 수 있다. 말의 간격을 조절할 때도 호흡은 중요하다.(269 페이지) 호흡이 너무 거칠고 불규칙하게 끊기면 계산을 하든 무엇을 하든 의식도 끊어져버린다.(271 페이지)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인간관계도 좁아진다.(272 페이지) 교육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배우는 자세를 만들어주는 것이다.(273 페이지)

 

저자는 학문 그 자체의 재미, 전혀 몰랐던 세계를 알아가는 즐거움에 이끌리는 공부를 권한다.(274 페이지) 저자는 신체를 기반으로 하는 교육을 강조한다.(276 페이지) 저자의 책은 공부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한다. 지정의체(智情意體)를 두루 갖추어야 하는 것이 공부이고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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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오고 햇빛이 또 가고˝.. 장석남 시인의 ‘감꽃‘의 한 구절이다. ˝여성으로의 도주, 여성으로부터의 도주˝.. 일본의 문학 이론가 미즈타 노리코가 일본 근대 남성 문학으로부터 읽어낸 키워드이다.

나는 이를 ˝책이 내게로 오고 책이 내게서 멀어지고˝라는 말과 ˝(하나의) 책으로의 도주, 그 책으로부터의 도주˝란 말로 바꾸어 나를 설명하고 싶다. 탐나는 책들이 매일 같이 쏟아지는 현실에서 내게 온 책을 통독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대부분의 책은 옆에 두고 때때로 펴보는 것이 되지 못하고 멀어지는 존재가 된다.

이런 현실은 하나의 책으로 도주했다가 다 읽었든 어렵거나 유익하지 않아 중도에 그만 두었든 다른 책으로 도주하게 되는 내 실상의 다른 말이라 해도 무방하다. 오늘은 아침부터 서둘러 함석헌 기념관을 들르고 동작 50플러스 센터를 들른 뒤 14시 30분 무렵 책방 순례를 시작했다.

교보에 들러 신간들을 체크한 뒤 영풍문고와 종로서적을 찍고 종로 알라딘에서 ‘글쓰기 비결 꼬리물기에 있다‘(박찬영 지음)와 ‘빅뱅에서 인류의 미래까지 빅 히스토리‘(이언 크로프턴& 재러미 블랙 지음)를 산 것이 16시 1분.

대학로 알라다에서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우에노 치즈코 지음)를 구입한 것이 16시 59분.
사이토 다카시의 ‘교육력‘이 합정 알라딘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갔으나 실종 도서로 분류되어 발길을 돌린 것이 17시 51분.

신림 알라딘으로 가 구입한 것이 16시 28분. 부천 알라딘에 오래 전부터 사려 했지만 비싸 손놓고 있던 홍준기 교수의 ‘라캉, 클라인, 자아심리학‘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탄 전철이 신창행이기에 구로에서 인천 가는 것으로 바꿔 타야 했는데 한 정거장 지나 부랴 부랴 구로로 돌아가 인천행을 타고 제대로 도착해 산 시각이 19시 49분.

배고파 e 마트에서 빵과 프로바이오틱으로 요기한 후 20시 10분 소요산 행 전철을 타는데 성공. 아니 책을 뭐 이다지도 요란하게 좋아하는지.. 복잡한 전철 안에서도 책을 읽으며 가며 참 질긴 인연이라 생각.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닌데 좋은 책을 만나면 내가 아니면 누가 읽겠는가, 란 생각으로 구입하는 나를 본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만큼은 호사다마를 우려할 정도로 또는 무슨 복선이라도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컨디션이 너무 좋아 자축하는 마음으로 책을 샀다.

물론 그래 보아야 총액은 50000원을 조금 넘는다. 문제는 총액이 아니라 시간을 쏟아부으며 이리 저리 헤매 다니며 너무 산만하고 비효율적으로 책을 구입하는 것이다. 김광섭 시인의 시 ‘저녁에‘ 가운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란 구절이 있다.

내게 스승 같고 친구 같았던 책들과 나는 많은 세월이 흘러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
나는 오늘 이렇게 산만하고 이기적으로 책을 찾아 다니는 아들을 너그럽게 봐주시는 어머니께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맺고 있는 모든 소중한 인연의 주인공들에게 감사한다. 특히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책이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된 분들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분들이다.
21시 7분인 지금 전철은 청량리 도착을 앞두고 있다.

피로하지만 보람스러운 하루였다고 말하고 싶다. 아직 집에 가려면 한 시간은 더 필요하고 가서도 책을 읽느라 자정을 넘겨야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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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18-04-03 14: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로점,대학로점,합정점,신림점,부천점까지 다섯 군데 도셨군요. 합정점에선 허탕치셨고.
저도 올해 1월25일에 동탄점,수원점,강남점,종로점 네 군데 돈 적 있죠. 저도 그날 먼거리 힘들게 찾아간 동탄점에서 찾던 책 없어 허탕친 기억이 나네요.
지난해 10월인가 11월에도 분당서현점,분당야탑점,건대점,부천점 네 군데 돈 적 있죠.
그 때 서현인지 야탑에서 산 책이 고 최인호의 <가족> 연작 가운데 하나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였는데 그게 김광섭 시에서 나온 건지 오늘에야 알았네요.
날씨는 따스해졌는데 미세먼지가 심하군요. 건강 조심하시기를.

벤투의스케치북 2018-04-04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책을 그렇게까지 열심히, 적극적으로 찾아 다니며 사지는 않았는데요 어느 순간 양질의 중고 서적이 알라딘에 참 많다는 사실을 안 후 순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동병상련(?)의 느낌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雨香 2018-04-25 1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세요. ^^
저는 환승할인 재미에 강남점 (지하철) 신천점 (버스) 잠실롯데월드타워점 (지하철) 건대점 (버스) 집으로 간적이 있고, 합정점 (지하철) 연신내점 (버스) 종로점 (지하철) 집, 분당야탑 (지하철) 분당서현 ( 버스) 건대 (지하철) 집 요렇게 세군데 코스로 돌아봤고요. 얼마전에는 일산점과 화정점을 엮어 보려고 했었는데, 원하는 책 구성이 안되어서 다음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8-04-25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책을 좋아하다 보니 그렇듯 무질서하고 무분별하게 보일 수 있는 행보도 취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