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접한 주장들 가운데 가장 쇼킹한 것은 마르크스가 관념론자라는 말이다.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의 ‘카를 마르크스 - 위대함과 환상 사이(Karl Marx: Greatness and Illusion; 2018년 5월 5일 출간)’ 주요 주장 중 하나이다.
번역자인 홍기빈 글로벌 정치경제 연구소장에 의하면 유물론 대 관념론이라는 대립구도는 마르크스 시절엔 없었던 것으로 엥겔스가 다윈 이후 생겨난 대립구도에 마르크스를 맞춰 넣은 것이다.
홍기빈 소장은 마르크스의 노동에 대한 개념과 노동자에 대한 애정과 신뢰는 노동자에 대한 경험적 관찰에서 나온 게 아닌바 오히려 칸트, 헤겔처럼 인간의 가능성과 능동성을 긍정하고 강조하는 독일 관념론의 전통 위에서 내린 철학적 결론으로 이해해야 하며 그래야 마르크스가 노동과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이런 사실을 접한 결과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하나가 칸트 이야기이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이 태어난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난 적이 없었지만 낯선 나라들에 대한 묘사와 해설을 했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이 여행을 할 시간을 내지 못한 것은 여행할 시간에 더 많은 나라를 책으로 알기 위해서라는 말이다. 경험적 관찰에서 나온 게 아니라 칸트와 헤겔처럼 인간의 가능성과 능동성을 긍정하고 강조하는 독일 관념론의 전통 위에서 나온 마르크스의 사상이 생각하게 하는 것은 이렇듯 다름 아닌 칸트의 말이다.
관념적 고찰과 경험적 고찰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낫다고 일의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얼마나 일관성이 있는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만 나는 인류해방을 위해 노력한 마르크스의 위대함은 끊임없는 노선 변경에서 나왔다는 홍 소장의 견해를 보며 균형점을 보았다는 생각을 한다. 유연함, 지속적 성찰과 숙고.. 등등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