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분이 내게 자신이 어느 유명 시인에게서 들은 시 강의 수업에 대해 말했다. 그 시인의 언어 구사력이나 시 이론을 전하는 역량이 너무 함량(含量) 미달이어서 실망스러웠다는 말이다.

 

나는 그 시인이 누구인지 궁금해 그 분이 누구인지 저에게만 살짝 말씀해주세요.“란 말을 했다. 이 말이 본의 아니게 주위 사람들을 파안대소(破顔大笑)하게 했다. 시인이나 시를 보면 어쩔 수 없이 문화 해설가나 문화 해설이 떠오른다. 긍정적인 부분이 아닌 부정적인 생각이다.

 

우선 말할 것은 시인이 너무 많듯 문화 해설가도 너무 많다는 점이다. 한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시인의 수가 2만명을 넘어섰다. 등단(登壇) 장사가 한 요인이다.(2017930일 문학 뉴스 기사 등단 장사, 시 죽인다자정목소리 참고) 등단 장사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뽑은 시인들에게 문예지를 팔아 이익을 남기는 출판사의 행위를 가리킨다. 그런 출판사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시인들로부터 얻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월간 문학저널 편집장이자 수필가인 이승훈은 유명 원로시인으로부터 신인 시인을 몇 명이나 뽑느냐는 질문을 받고 월간이라 매월 평균 2명 정도는 될 것이라며 얼버무렸다는 말을 한다. 이에 그 시인이 그러면 1년 동안 20명이 넘는 시인을 등단시키네요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그는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고백했다. 난립하는 문예지를 감안해 보라.

 

한 시인은 오랜 고통의 창작 기간을 거쳐 시인이 되었으나 함량 미달의 시인들이 생산되는 것을 보고 자괴감에 어디 가서 시인이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된 지 오래라는 말을 했다.

 

어떻든 문화 해설계의 경우 시 세계에서처럼 등단 장사 같은 것은 하지 않지만 공장 틀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짧은 기간의 교육을 통해 해설가를 쉼 없이 만들어낸다. 나의 한 동기는 퀄리티 낮은 문화 해설가들과 엘리트들이 같은 부류의 해설가로 취급받을 우려가 큰 작금(昨今)의 문화 해설가 대량 생산 시스템을 비판했다.

 

동감하고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나 역시 그런 성토(聲討)에 열을 내던 때가 있었다. 아니 지금도 그렇다고 해야 옳다. 다만 나는 그 동기와 같은 엘리트가 아니어서 적어도 외적인 비판을 내려놓기로 했다.

 

나의 그런 전환(轉換)은 성경 구절에서 연원했다. 그것은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욥기 121)란 구절이다. 나는 내가 문화 해설가가 된 것도 작금의 대량 생산 시스템의 덕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문화 해설가가 된 것이 문화 해설가 대량 생산 시스템 때문이듯 문화 해설가가 너무 흔해 그 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것 역시 대량 생산 시스템 때문이라는 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앞에서 시인이나 시를 보면 어쩔 수 없이 문화 해설가나 문화 해설이 떠오른다는 말을 했지만 그런 것이 또 하나 있다. 심리학 그 가운데서 에리히 프롬의 심리학이다.

 

에리히 프롬은 심리학계의 마이너급에 해당한다. 가치에 비해 크게 지지받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프롬은 정치(精緻)하게 사회를 분석한 마르크스의 인간의 내적 변화 필요성 경시, 무의식에 주목함으로써 인간본성에 대한 탐색이라는 신기원을 연 프로이트의 사회구조 등한시라는 문제를 변증법적으로 극복한 균형감 있는 심리학자이다.

 

주제에서 벗어났지만 나는 에리히 프롬과 멜라니 클라인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분석가 홍준기 교수에 의하면 멜라니 클라인은 월프레드 비온, 도널드 위니컷 등과 함께 병리 현상을 일으키는 환경 문제와 사회 문제를 동시에 주목하면서 프로이트 정신 분석 이론과 임상을 수정, 확대, 재구성한 사람이다.(’헬조선에는 정신분석‘ 196 페이지)

 

사설(辭說)이 길어졌기에 본론으로 돌아가 말하자면 문화 해설계의 경향을 보며 에리히 프롬을 생각하는 것은 문화 해설이 그 주요 대상자인 임금의 좋은 점만을 말해야 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해설도 조선 역사(지금 문화 해설의 대부분은 조선 역사 해설로 구성되어 있다.)와 그 구성 인물들의 좋은 점, 나쁜 점을 두루 말하고 찬사를 바치는 만큼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판을 백안시하는 것은, 소프트하고 달콤한 이야기만을 선호하고 사회 구조적 측면과 인간 내면을 함께 고려한 에리히 프롬의 지난(至難)한 노력을 도외시하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 최근 나온 책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이 이영훈의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이다.

 

나는 이 책이 내 관점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이 자유주의적 보수 색깔이 강한 곳에서 출판되었기에 나를 어수선하게 만든다. 이영훈이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한 사람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그의 수용할 만한 주장까지도 인신 공격적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보인다.

 

하지만 이영훈이 주장한 부분 가운데 식민지근대화론이나 사대적 발상 등과 전혀 관계 없는 김용만 우리역사문화 연구소 소장의 조선이 가지 않은 길과 같은 차원으로 수렴하는 이야기가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김용만 소장은 세종은 우리 역사상 최고의 현군(賢君)으로 꼽히지만 노비 급증 및 금은 광산 개발 억제는 실책으로 꼽힌다는 말을 했다. 이영훈에 의하면 조선은 태종 때만 하더라도 약소국이었던 관계로 중국에 사대 정책을 취한 가운데 군사적 충돌까지 감내하는 의지가 보였지만 세종 때에 이르러 그런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세종은 스스로 제후(諸侯)로서 자신을 내면화했다. 조선은 사실 중국의 제후국을 자처(自處)했다. 이영훈은 세종을 21세기 민주공화주의 시대의 롤 모델로 삼으려는 일부 시각에 반대한다.

 

누가 주장을 했느냐는 중요하다. 하지만 결론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아닌 한 누군가의 주장에서 취할 것을 찾아내 나의 문제의식 틀 안에서 활용하는 것도 그 만큼 중요하다. 앞서 세종의 실책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장자 상속을 고집한 것도 세종의 실책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세종의 아들 문종(文宗)이 대부분의 시절을 보낸 자선당(資善堂)을 해설하며 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단편적인 즉 이리 저리 통하는 중심 주제와 별 연관성이 없는 문종 비()의 동성애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고, 다른 곳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문화 해설사가 될 수 있다의 저자 최동군 님은 경복궁의 핵심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근정전이라고 하면 기본 정도의 내공이고 경회루라 하면 중등 정도의 내공이고 흠경각이라 하면 고등한 내공이라 말한 바 있다. 흠경각은 천문학(天文學)과 관련되었고 천문학은 왕의 학문이다.

 

최동군 저자는 흠경각(欽敬閣)이란 말이 하늘을 공경하여 백성에게 때를 일러준다는 뜻의 흠약호천(欽若昊天) 경수인시(敬授人時)서경(書經)’의 한 구절에서 유래한 바 이는 그 사이에 천체(일월성신)의 움직임을 계산, 관찰했다는 내용을 추가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핵심은 놔두고 필요한 부분만 인용한 결과이다.

 

건축학 박사 박정해 교수는 혈처(穴處)를 이야기하며 경복궁의 핵심을 교태전(交泰殿)이라 말한다. 박정해 교수에 의하면 임신과 출산이 이루어진 장소인 왕비전인 교태전은 새로운 왕의 출현을 기대한 핵심 건축물로 교태전을 경복궁의 핵심으로 삼은 것은 현실 정치에 비중을 둘 것인지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의 탄생에 비중을 둘 것인지의 문제에서 후자를 택한 결과이다.

 

난삽한 풍수 용어를 가지 치고 비근하게 말하자면 근정전과 사정전, 강녕전은 평지에 입지(立地)했기에 기()가 응축된 (풍수의 핵심지인) 혈처에 해당할 수 없고 교태전은 아미산(峨眉山: 교태전 후원의 가산假山)으로 인해 혈처가 된 것이다.(‘한국 유교건축에 담긴 풍수 이야기’ 14 - 17 페이지)

 

해설은 이렇게 한, 두 주제를 설정해 스토리텔링 식으로 연결해서 해야 의미가 있다. 전각들을 고립적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누구에게가 아닌 나 스스로 하는 말이다.

 

혜자(惠子)가 장자(莊子)에게 자네의 이론은 현실적으로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자 장자는 소용이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만이 소용이 있는 것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장자는 가령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은 끝없이 넓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발을 디딜 수 있는 넓이 뿐인데 그렇다고 해서 발바닥 밑면만을 남겨두고 주위 땅을 밑바닥까지 파버리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는가, 그래도 발바닥 밑면만이 소용있겠는가? 라고 물었다.

 

그러자 혜자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장자는 소용 없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소용이 되지 않는가, 란 말을 했다.(‘장자외물편’) 장자 이야기를 한 것은 비판에 인색한 현 해설의 일반적 경향은 지양(止揚)되어야 하며 역사만에 초점을 두는 해설이 아닌 삶을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해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후자는 역사 공부 및 해설은 지금 이곳의 삶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따라 도출된 바이다.

 

해설 콘텐츠들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지는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부단히 노력해 새롭게 이야기들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유의미한 것들을 선별해 지금의 틀 안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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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atom 이야기...

 

1. 철학.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말은 파르메니데스의 말이다. 이는 동어반복이 아니라 있음 즉 유()는 가능하고 무()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이정우 지음 세계철학사 1’ 128 페이지) 파르메니데스의 사유는 원자 즉 atom이란 단어의 배경을 생각하게 한다.

 

atom은 쪼갤 수 없다는 의미인데 만일 쪼갤 수 있다면 결국 무가 남을 것이고(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이는 무에서 무엇인가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아포리아이다. 그래서 이 아포리아를 피하기 위해 atom이란 개념이 설정된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는 변화를 부정한다. 파르메니데스에 의하면 이 세계는 진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허상이다.(장우석 지음 수학 철학에 미치다.’ 참고)

 

2. 물리학..

 

일본의 물리학자 미치오 가쿠는 물리학자들은 원자로 만들어졌기에 물리학자의 활동은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원자의 움직임이란 말을 했다. 문제는 인간이 원자로 이루어졌지만 원자의 거대 집합체인 인간은 원자와 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닐지, 하는 점이다.

 

3. 정치..

 

더는 쪼갤 수 없다는 의미의 원자(물론 저 단어가 생겼을 당시와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나뉘고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나뉘고..)는 정치적 의미도 갖는데 이는 가장 비정치적인 것에서 정치적 의미가 담긴 개인이라는 개념이 도출된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것은 사회적으로는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는 것 즉 개인이다. 즉 자유로운(지배 세력에 대해 자유를 요구하는) 개인이란 개념이 탄생한 것이다.('김월회, 안재원 지음 '고전의 힘, 그 역사를 말하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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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이성계의 (개명한) 이름은 단(旦). 주(周)나라 무왕의 동생으로서 아들이 노나라 제후가 됨으로써 노나라 시조로 받들어진 주공(周公)의 이름도 단(旦).

태조(太祖) 또는 시조(始祖)이니 시작을 뜻하는 아침 단(旦)을 이름으로 쓴 것으로 보임.

이 경우 피휘(避諱)와 무관한 것인가? 주공은 원래 즉 노나라의 시조로 받들어지기 전부터 이름이 단이었는가?(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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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몸이면서 집인 콩꼬투리
덜 여문 날들을 다독이느라 푸른 물이 들었을 손
그 손이 인기척도 없이 방문을 닫는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나는 닫힌다, 한 철

엄경희 교수의 ‘은유‘를 읽다가 그가 어찌나 매혹적으로 시를 탐하게 하는지 감탄. 가방에 함께 넣어둔 이은규 시인의 ‘다정한 호칭‘에 수록된 ‘애콩‘이란 시를 읽는다.

닫히고 싶은 마음을 일깨우는 시. ˝이렇게 한 계절/ 더 피 흘려도 좋다˝는 한강 시인의 ‘새벽에 들은 노래‘보다 희망적이고 밝은 시..아침 전철이 감동으로 넘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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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수요 락() 읽기’(매월 마지막 수요일 1830– 20. 함석헌 기념관)에서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었다. 주위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에 걸쳐 묵묵히 나무를 심어 황무지를 옥토로 일구어낸 주인공을 보며 나는 조에 부스케를 떠올렸다는 말을 했다.

 

조에 부스케(Joë Bousquet: 1897 - 1950)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18년 한 전투에서 척추에 총탄 관통상을 입고 불구가 된 채 남은 생을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에서 보낸 프랑스의 시인이다.

 

부스케는 실추된 빛이지만 다행히도 잘 잊어버리는 빛인 사물들의 비밀을 알기 위해 나는 상처받았다.”는 말을 했다.(‘달몰이참고) 내가 부스케의 에세이집인 달몰이를 읽은 것은 7년 전인 2011년으로 당시 나는 인용한 그의 글이 목적론적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리뷰를 썼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지금은 생각이 변했다.

 

최근 김월회, 안재원의 고전의 힘, 그 역사를 읽다를 읽었다. 이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공자를 성인으로 치켜세우다 보니 그가 제자를 교육할 때 즐겨 활용한 ()’, ‘()’, ‘()’도 중시되었고 그가 죽간을 이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닳아 끊어질 정도로 봤다던 ()’과 손수 편찬한 춘추(春秋)’도 더불어 추숭되었다는 것이다.

 

'()' '주역(周易)'의 내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어서 흥미롭거니와 이후 유가(儒家)들은 경()에 지고지순의 가치가 담긴 책이라는 의미의 전()자를 결합시켰고 한무제 때 공자의 학설을 제국 유일의 최고 이념으로 정립하는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경은 귀하고 신성한 책으로 거듭났다.

 

()이 처음부터 섬김의 대상이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바 주역(周易) 역시 불변의 경전으로 신성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어떻든 경전 신성화 작업으로 인해 내 삶은 육경(六經)의 주석.”이라는 언설이 생겨나기까지 했다.

 

경전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전을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저자들이 말한 대로 나는 경전이 옳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중세 유럽의 기독교적 사유와 많이 비슷하다.

 

그렇다면 실추된 빛이지만 다행히도 잘 잊어버리는 빛인 사물들의 비밀을 알기 위해 나는 상처받았다.”는 부스케의 말은 어떤가? 유가와 중세 유럽의 기독교의 경우 도그마와 이데올로기로 기능했기에 부정적이었다면 조에 부스케의 경우는 새로운 사유를 자극하기에 긍정적이다.

 

기승전공자로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이런 가운데 예()에서 노닐고 논어(論語)에서 노닌다는 공자의 말은 얼마나 혁명적인가?란 생각을 하게 된다. 관건은 어떻게 고전들과 더불어 잘 놀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호모 루덴스(homo ludens)적 삶을 사는 한 방편을 체화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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