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속 전염병 - 왕실의 운명과 백성의 인생을 뒤흔든 치명적인 흔적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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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한에서부터 시작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이 2년하고도 반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대륙의 끝에 붙어있는 한반도 역시 세계적인 감염병의 유행을 피해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한반도에서는 어떤 종류의 전염병들이 유행을 해서 얼마나 피해를 입혔으며, 조정에서는 전염병의 유행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했는지 궁금하던 차에 만난 <우리 역사 속 전염병>입니다.


의학은 특히 현대에 들어와서 급속하게 발전해왔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은 과거의 질병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일이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병명은 물론이고 증상에 대한 기술이 현대의학의 정의와 차이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사 속 전염병>에서도 이런 한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의 기획으로 출발한 이 책은 악병, 온역, 홍역, 천연두, 콜레라 등 시기별 전염병의 유행상황과 함께 이에 대한 조정의 대응, 허준, 유상과 같은 의원과 의녀 등 의료진의 활약 및 <동의보감><마과회통> 등 의학서 간행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6)”라고 하였습니다.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면 기획의도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남아있는 자료들 가운데 전염병의 유행에 관한 자료들을 충분히 섭렵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왕조의 경우는 그나마 실록을 비롯하여 사대부들이 남긴 문헌들이 전해지고 있지만 고려왕조에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왕조의 경우는 남아있는 자료라 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진단법이나 치료법이 전염병은 힘없는 백성은 물론 왕후장상도 피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 속 전염병>에서는 주로 왕실의 전염병 발생과 치료상황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다루었습니다.


전염병 등의 심각한 상황이라면 팔도에 장계를 내려 현황을 보고토록 하였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1750529일자 <영조실록>을 보면 여러도에서 역질로 사망한 자가 총 19,849명이었다는 기록을 인용하였습니다(233). 전국 규모의 역질 발생현황자료로는 유일하게 인용된 것이고, 권역별 발생현황에 대하여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염병의 발생현황도 단편적으로 기록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단편적으로 인용한 것인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전염병이 발생하였을 때의 대응체계에 대한 언급도 분명치가 않습니다. 왕족의 전염병 감염에 대하여는 내의원의 의원을 비롯하여 의녀가 나서서 치료에 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백성들의 전염병 확산데 대한 대응체계에 대한 언급이 분명치가 않습니다. 1730(영조6) 1월에 한양에 홍역이 크게 유행하여 5부의 사망자가 만 명 이상 발생하였을 때 영조는 근시를 보내 여제를 거행하도록 명하였다고만 전합니다.


2부 전염병에 맞섰던 의료기관에서는 내의원, 혜민서, 활인서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는데, 전염병 치료를 전담했던 기관은 활인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성에서는 108-9가 살아난데 반하여 지방에서는 그렇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각도마다 돌림병을 규휼하는 법이 <원육전><속육전>에 규정되어 있었지만 관리들이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였던 것이라고 분석하였습니다. 저자는 시대별 전염병의 발생현황과 전염병이 발생하였을 때 어느 부서가 어떻게 활동을 하는지에 대하여 자료를 찾아서 제대로 설명을 했어야 할 것입니다. 의원과 의녀제도에 대한 설명만 장황하고, 의원에 명하여 의서를 정리하도록 했다는 왕명이 전염병 관리에 얼마나 기여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전염병에 대한 인식이 어땠는지, 왕조별 전염별 발생현황이나 대응체계, 그리고 그 효과 등을 자료를 바탕으로 설명이 되었어야 이 책의 기획의도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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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오늘의 젊은 문학 5
문지혁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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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라면 강을 쉽게 건너기 위하여 설치하는 구조물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얕은 개울물에 돌덩이를 놓아서 징검다리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하여 깊은 물에도 다리를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도로 위에도 다리를 놓아 건널목까지 돌아가지 않아도 길을 건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다리는 일종의 장해물을 뛰어넘기 위한 구조물인 셈입니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를 골라든 것은 어쩌면 그런 이야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문지혁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모두 8개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다이버’, ‘서재’,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등 처음부터 이어지는 세 작품은 통합세기라고 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다이버는 시제도 미래일 뿐 아니라 무대 역시 지구가 아닌 인공행성입니다. 두 번째 작품 서재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역시 통합세기라고 하는 미래의 어느 시점의 이야기입니다. 통일된 지구는 누리망을 통하여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개인은 정보를 습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책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종이책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지식과 정보의 편향, 불균형, 독점을 옹호한 것으로 간주하고 엄벌에 처하는규정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리망에 올려진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한 정보를 익히는 교육과정을 통하여 정부가 정한 직장에서 일을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각자의 개성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없는 세상입니다.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처벌을 받고 그 가족 역시 삶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는 전체주의 체계인 것입니다. 전체주의 체제를 다룬 이야기에서는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세력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가기 마련인 듯합니다.


서재에서 10만여권의 책을 소유하고 있다가 끌려간 아버지가 남겨준 책에는 아무런 내용도 적혀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빈 책은 아버지이기도 하고, 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빈 책을 채워가다 보면 내가 책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책에 부디 우리가 서로에게 서로의 다음 페이지가 되기를(93,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이라고 적었는지도 모릅니다. 생각해보니 책을 써서 누군가 읽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어졌습니다.


앞 부분의 세 작품이 미래 시점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나머지 다섯 작품은 과거 시점의 이야기들입니다. 시점은 다르지만, 여덟 작품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상실입니다. 작가는 재난이라는 공통점을 짚었습니다만 재난을 통하여 사랑하는 사람 혹은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대응방식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실에 굴복하여 스스로를 내던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기억해두고 싶은 대목이 있기 마련입니다. ‘폭수의 경우는 주인공이 미시간대학에 근무하는 교수를 찾아가는 대목이 나옵니다. “차에서 내리자 줄지어 늘어선 나무 사이로 탁 트인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남한의 절반보다 크다는 미시간 호수였다.() 누군가 호수라고 말해주지 않는다면 바다라고 착각할 법한 푸른 물빛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나뭇잎이 타는 것 같은 가을 특유의 냄새가 났다.() 나는 나무 아래 서서 한동안 호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규칙적인 듯하면서도 불규칙한 물결의 반짝임은 세상의 시끄러운 소문이나 나의 불확실한 미래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반복됐다. 영원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도 영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그 광경은 묘하게 감동적인 데가 있어서, 나는 인터뷰고 뭐고 그냥 여기 어디 벤치에 앉아 해가 다 저물 때까지 호수를 지켜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106)”


아일랜드라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드리아 해의 북쪽 끝, 이스트라반도 부근에 있다는 붕어빵을 닮은 섬 가즈(Gaz)도 흥미로웠습니다. 정말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뉴욕의 맨하탄에 있다는 조지 워싱턴 브릿지를 걸어서 건넌다는 이야기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에서는 걸어서 다리를 건너 본 적이 있어?’라고 물어봅니다만, 생각해보니 저도 한강에 걸려있는 다리 몇 개를 걸어서 건너 본 적이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한강 양쪽으로 조성되어 있는 강변도로를 따라 100km를 걸을 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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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 폐허의 철학자 에밀 시오랑의 절망의 팡세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 챕터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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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여러 책에서 소개된 바 있어 에밀 시오랑의 책을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폐허의 철학자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그는 절망을 겪고 있는 사람을 어설피 위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절망을 절망 자체로 응시함으로써 절망을 넘어서려 하였다는 것입니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의 첫 번째 글 서정적인 너무나 서정적인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죽음에 대한 끈질기고 두려운 생각을 의식 속에 두면 인간은 파멸한다.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자신 속의 무언가를 구해내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 속의 무언가를 잃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는데, “견딜 수 없는 상태와 인간을 괴롭히는 그 같은 집요한 생각들을 고백하는 것은 구원이 될 수 있다.(8)”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살고 있는 것은 끝없는 긴장을 객관화하면서 진정시켜주는 글쓰기 덕분이다. 창작은 죽음의 마수에서 우리를 일시적으로 구원한다.(14)”라는 글쓰기와 관련된 대목도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우울, 고독, 슬픔, 죽음 등 온갖 부정적인 요소들을 천착하고 그 가운데서 긍정적인 의미를 찾아내려 노력한 것 같습니다.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요인들을 겪을 때는 세상이 답이 없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니더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생각으로 고통을 견디다보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 잠 못 이루는 동물은 불면으로 고통 받는 분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전체 동물 세계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도 잠을 자기 원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152)’라는 명제를 생각해보면 모든 동물은 신체의 요구에 따라 잠이 들 시간이 되면 잠을 자는데, 인간만이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잠들지 않는 유일한 동물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수면은 망각이라는 주장은 오히려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삶의 비극, 그 뒤엉킴과 집요한 생각들은 잠자는 동안에 잊히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수면은 기억을 완성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깨어있을 때 경험한 것들은 잠을 자는 동안 기억으로 정리된다고 알려져 니다.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도 놀랍기만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오랑은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고 알고 있었던 한 인간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의심을 품게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실로 망설였던 적이 단 한 번 있었는데, 산 위에서가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였다. 나는 예수가 바로 그 때 이름 없는 인간의 운명을 부러워했을 것이며, 할 수만 있었다면 이 땅에서 가장 외진 구석에 숨어서 아무도 자신에게 희망을 걸지도 속죄를 요구하지도 않기를 바랐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했습니다. 과연 기독교 쪽에서 보면 황당할 수 있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시오랑은 스스로에 대해서도 인색하였던 것 같습니다.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에서는 내가 나 자신을 괴롭히든 고통스러워하든 혹은 뭔가를 생각하든 무슨 상관인가라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굳게 믿지만, 또한 동시에 나의 존재만이 유일한 현실이라고 느낀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의 내가 있게 하기 위하여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나는 내 삶을 죽은 사람들의 묘지 위에 세우고 싶지 않다라고 하였습니다.


옮긴이는 죽음, 허무, 절망, 고독. 시오랑의 단상에서 늘 마주치는 이 단어들의 의미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 희망, 미래와 같은 기분 좋은 환상 대신에, 고통, 번민, 우수와 같은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차가운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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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국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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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눈물>로 서경식교수님을 만난 지도 벌써 11년이 되었습니다. <나의 영국 인문 기행>은 두 번째 만나는 서교수님의 책입니다. 왕성한 저술활동을 해온 서교수님의 책들을 읽을 기회가 그동안 왜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2014년 이탈리아 여행에 이어 2015년에는 영국을 여행했다고 합니다. 2018년에 먼저 나온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에 이은 저술이라고 합니다. 저 역시 여행사 상품을 통하여 이탈리아와 영국을 주마간산 식으로 다녀온 이야기를 적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서교수님은 케임브리지, 올드버러, 런던 등을 여러 차례 다녀온 경험을 녹여내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문 기행이라고 했지만, 내용을 보면 음악과 미술을 주로 다룬 예술기행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의 특징은 짝수 쪽에 기행문을 적었고, 같이 열리는 홀수 쪽에는 글에 대응하는 사진을 실었다는 점입니다. 마침한 사진이 없을 때는 쪽을 비워두는 여유(?)를 보였군요.


젊어서는 회의나 학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해외여행을 다니다보니 회의 시작 전날 현지에 도착하고, 회의가 끝나는 날 귀국하는 빠듯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습니다. 물론 비용을 제가 부담한 것이 아니라서 해외출장에 관한 관련 규정을 지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비용을 제가 부담하면서 여행을 하게 되니 마음이 편하기만 합니다.


서교수님 역시 여러 도시에서 강의와 강연을 하면서 인터뷰도 하는 등 공식적인 활동에 개인 일정을 끼워 맞춰 관심분야를 구경하는 여행을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1장 케임브리지 I“2015226, 나와 F는 런던 히스로 공항에 도착했다.”로 시작합니다. F에 대한 설명이 없어 궁금했습니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중학교 음악교사로 오래 근무했다는 F는 여행에서 서교수님의 곁을 늘 지키는 듯합니다. 2021년에 국내 신문에 실린 글에서 아내(F라고 하겠다)의 허락을 받고, 그녀에 관한 얘기로 시작한다라고 시작하는 대목을 찾아 읽고서야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여행 중에 F가 서교수의 혈압과 혈당수치를 신경쓴다고 언급한 대목을 보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추정할 수도 있었겠다 싶습니다. 본인은 대충 신경쓰지 않다보니 가끔은 다투기도 한다고 합니다. 살아가면서 세 여인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어려서는 어머니의 말씀을, 결혼해서는 아내의 말을 그리고 운전할 때는 길을 안내하는 여성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교수님이 관심을 가지고 구경한 장소는 일반인들과는 다른 점이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크롬웰이나 버지이나 울프와 같은 비교적 알려진 역사적 인물들과 관련된 장소도 있지만 현대 미술이나 음악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친숙하지 않은 분들에 관한 이야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크롬웰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보려는 시도 역시 익숙하지 않아 보입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이전인 1940년 일본정부로부터 의뢰받은 황기 2600년 봉축곡을 작곡하였다는 벤저민 브리튼의 사정을 읽으면서 친일 혹은 친나치 행적을 보였다는 주장이 대두되는 안익태 선생의 처지가 생각났습니다.


서교수님이 스물한 살이 되던 무렵 일본에서는 학생운동의 시대가 저물고 있었다고 하는데, 서울에서는 두 형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있는 등 개인적으로는 어렵던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스무 살이었다.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이라는 따위의 말을 한다면 누구든 가만두지 않으리라.(242)”라는 폴 니장의 소설 <아덴 아라비아>의 한 대목을 좌우명으로 새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저의 스무 살은 예과 2학년에 다니던 때였습니다. 의과 공부에 매진하면서도 무의촌진료 등에 관심을 두던 시절입니다. 저의 스무 살은 그런대로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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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동서문화사 월드북 76
허먼 멜빌 지음, 이가형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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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의 <모비 딕>은 아내가 골라 읽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읽은 기억으로는 꽤나 얇은 책이었는데 막상 도서관에서 빌려온 동서문화사가 월드북 기획으로 내놓은 <모비 딕>은 작품해설을 포함하여 735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이었습니다.


읽어가다 보니 어렸을 적에 읽은 <모비 딕>은 청소년을 위한 기획으로 화자인 이스마엘이 포경선에 탑승하는 과정에서 시작해서 출항 후에 모비딕을 뒤쫓아 가는 과정, 그리고 마지막 3일에 걸친 대결을 중심으로 하는 줄거리를 요약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원전은 그야말로 고래와 포경업에 관한 모든 사실을 정리한 백과사전이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고기를 먹기 위해서 고래를 잡았다고 들었습니다만, 서양에서는 기름을 뽑아 등유와 화장품 원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고래를 잡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고래를 잡았는지 씨가 마를 지경에 이르자 세계적으로 포경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흔히 <모비 딕>은 거대한 흰 고래를 잡으러 나섰던 에이허브 선장이 한쪽 다리를 잃고서 복수에 나선 여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코드 곶 남쪽에 있는 낸터킷 항을 떠난 피쿼드호는 대서양을 가로질러 아로레스 제도에서 남하하여 아르헨티나의 라플라트 강 어구에 있는 프레트 어장을 거쳐 다시 대서양을 가로질러 아프리카 연안의 세인트 헬레나 섬 남쪽의 캐롤 어장을 거쳐, 희망봉을 지나 인도양을 남쪽으로 동진하여 수마트라, 보르네오, 필리핀을 지나 일본 남쪽의 어장을 거쳐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에서 모비 딕과 조우하게 됩니다. 이 항로는 계절 별로 모비 딕이 출몰하는 어장이었습니다.


에이허브 선장은 배를 운항하는 도중에 포경선을 만날 때마다 모비 딕을 보았느냐고 집요하게 물어봅니다. 모비 딕의 행적을 파악하게 되었을 때는 바다사람들이라면 의례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않고 모비 딕의 추격에 나섭니다. 모비 딕의 출현을 처음 알려준 레이첼 호의 선장이 실종된 아들들이 탄 보트의 수색요청을 거절하고 모비 딕의 추적에 나선 것입니다. 그로부터 에이허브의 피쿼드호는 사흘 낮 밤을 통하여 모비딕을 추격하고 대결을 펼칩니다. 에이허브와 용감한 선원들은 모비 딕에게 몇 차례 작살을 던져 꽂았습니다. 하지만 리바이어던이라 할 만큼 지략을 가진 모비 딕은 작살에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피쿼드 호와 충돌하여 침몰시키고 말았습니다. 피쿼드 호에 승선한 모든 선원들이 몰살했더라면 이들의 엄청난 대결과정도 묻혀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만, 화자인 이스마엘이 아들을 찾아 헤매던 레이철에 의하여 구조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에이허브 선장과 피쿼드 호의 용감한 선원들이 모비 딕과 맞서는 과정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속에서 읽어가게 합니다. 그리고 피쿼드 호가 일본 어장을 지날 무렵 만난 태풍을 거슬러 가는 과정 역시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습니다. 휘몰아치는 광풍과 거대한 파도 속에서, 그야말로 일엽편주에 불과한 피쿼드 호를 조종하여 태풍 속을 뚫고 나가는 모습은 엄청난 자연의 힘에 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마엘이 낸터킷에서 조우하여 우정을 쌓게 되는 작살잡이 퀴퀘그가 모시는 검둥이 신의 이름이 요조라는 읽고는 놀랐습니다. 언젠가 방송에서 만났던 홍대 여신의 이름이 요조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그녀의 예명은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의 주인공 오바 요조(大庭葉蔵)에서 따왔다고 들었기 때문에 퀴퀘그의 검둥이 신과는 무관할 것 같습니다. 요조씨는 이 사실을 알까 모르겠습니다.


페루의 리마에 대한 기록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리마를 세상에서 가장 이상하고 슬픈 도시로 만든 것은 () 리마가 흰 옷을 입고 있으며, 그 흰 색조에 한층 더 귀기가 서려 있기 때문이다.(261)”


오늘날의 포경 장면과는 많이 달랐을 19세기 무렵의 포경장면을 상세하게 기록한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가치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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