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과학 1단원 무게재기저울의 원리에 대해서 나옵니다. 평소 공부 전혀 안 하는 우리 아들 중간고사 대비 문제집 좀 풀다가 가정용 저울 때문에 한바탕 시끌시끌했어요.  

주방에서 흔히 쓰는 가정용 저울은 용수철의 원리를 이용한 저울. 여기까지는 고개 끄덕끄덕! 그런데 물건을 올려놓았을 때 저울 속에 있는 용수철은 늘어날까요? 줄어들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저울 위에 물건을 올려놓으면 접시가 내려가니까 당연히 용수철이 줄어들 것 같은데 책에는 용수철이 늘어나는 원리라고 되어 있더라구요. 우리 아들도 상식적으로 생각하니 이 원리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던 것!  

집에 저울이 있다면 당장 분해해서 속을 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늦은 밤 저울을 사러 갈 수도 없고 아들과 계속 실랑이만 했답니다. 그냥 외우라는 엄마와 책이 잘못되었다는 아들과의 싸움은 밤을 지나 아침까지 계속되었구요. 

나도 답답 아들도 답답... 그리하여 오늘 저울 사다 줄테니 속을 들여다보자고 약속을 했어요. 좀전에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 드디어 저울을 해체하고 실험에 돌입~  


바로 요 녀석이 4학년 과학책에 나오는 가정용 저울입니다.


이렇게 전화기를 올려놓았더니 100g이 나가네요. 그렇다면 속에 들어 있는 용수철은 늘어난 걸까요? 줄어든 걸까요? 


예쁜 분홍색 케이스를 뜯어내고 보니 속은 이렇게 삭~막합니다. 용수철을 자세히 보니 촘촘하네요. 


이번엔 접시가 눌러주는 부분을 아들이 손으로 꾹 눌렀을 때의 모습인데 용수철이 약간 늘어났어요. 2kg짜리 저울이다 보니 용수철이 더이상 늘어나지는 않더라구요.

위에서 눌렀을 때 줄어들려면 용수철이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저울 위에 물건을 올려놓으면 그 무게에 의해 용수철 맨 아래에 있는 고리가 당겨지면서 용수철이 늘어나게 되어 있었던 것.  

이렇게 생긴 저울 속을 들여다본 적이 없으니 엄마나 아들이나 상식적으로만 생각할 수밖에요. 고집탱이 아들 덕분에 하나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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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010-05-19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어이 해내셨군요. 대단하세요. 아침에 퇴근해서 들어오는 남편에게 저울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이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을 해주더라구요. 위의 사진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네요.
아무튼 지우도 대단하고 소나무님도 대단하세요. 본받아야쥐~~

소나무집 2010-05-20 10:13   좋아요 0 | URL
아들의 우기기와 고집에 제가 죽어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랍니다.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저울 속을 한번만 보여줬어도 속이 시원했을 텐데...
울 남편한테 물어보니 단 1초도 생각 안 하고는 줄어들지~ 했어요.

순오기 2010-05-19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거야말로 산교육이군요.
원리도 모르면서 무조건 외우게 하는 교육은 한계가 있지요.
덕분에 저도 배웠어요~ 지우야, 고마워!!

소나무집 2010-05-20 09:24   좋아요 0 | URL
울 아들은 직접 눈으로 확인 안 한 건 인정을 안 해요. 아직 안 보고도 상상 할 수 있는 단계는 멀었나 봐요. 하지만 이번엔 아들 덕분에 하나 확실히 알긴 했어요.^^

세실 2010-05-20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우 대단합니다. 원리를 터득하려고 하는군요. 멋진걸요.


소나무집 2010-05-24 09:21   좋아요 0 | URL
멋지다기보다 고집이 너무 세서 제가 넘 힘들어요. ㅜㅜ

치유 2010-05-26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결국은 이렇게 했군요..ㅋㅋ
그 아들에 그 엄마에요..
짝짝짝~~~~~~!
이렇게 한번 보고 나면 속이 다 후련한 것을~~!
나도 아들 따라가기 벅차지만 자기도 만만찮을것 같애요..ㅋㅋ

소나무집 2010-05-27 09:08   좋아요 0 | URL
그랬지요. 한 번 뜯고 나니 저울이 살짝 맛이 가서 정확성이 떨어지더구만요.
나도 배꽃 님도 벅찬 아들 잘 키워보자구요.^^

강지영 2014-04-2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학습지에도 나와있지 않은 것을 블로그를 통해 산교육을 보고 갑니다.
꼭 집고 넘어가야하는 것이라
이렇게 보고가니 아이들도 아~~~! 도움 많이 받고 갑니다.

*** 2014-04-22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완전 신기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덕분에 도움이됬습니다.

장우현 2015-07-02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맙습니다.. 저희 딸아이랑 저 속이 다 시원하네요.. ^^
 

한 달에 한두 번 소설 토지학교 수업이 있는 날마다 다른 일이 꼭 겹치곤 한다. 5월 8일 어버이날에도 수업이 있어서 친정에 가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야만 했다. 5강을 맡으신 분은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30년 동안 계셨던 김형국 교수님이었다.  


박경리 선생의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가지런히 놓인 돌이 예쁘다. 이 돌은 선생이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나가셔서 직접 주워다 깔았다고 한다. 돌을 밟을 때마다 그 분의 손길이 느껴져서는 뭉클해진다. 요즘 선생의 집 마당도 서서히 신록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연휴 때문인지 차가 많이 막혀서 교수님이 30분이나 늦게 오셨다. 5강의 제목은 박경리 주변에서 오고 간 말, 말, 말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미리 준비된 강의록을 살펴보니 남편도 들으면 좋을 것 같아 직원들에게 허락을 받은 후 불러서 함께 강의를 들었다.  


교수님에 대한 첫 인상은 단정함과 깐깐함 그 자체였다. 도시 계획을 하는 분이 박경리 선생과 어떤 인연으로 만났을지부터가 궁금했다.  

교수님은 <토지>가 드라마로 나오고 있을 때 처음 소설을 읽으셨다고 한다. 당시 나온 3부를 세 번이나 읽은 후 군부 세력에 의해 폐간된 <뿌리깊은나무> 최종호(1980년 6,7월 합병호)에 <토지> 속 주요 인물들의 행적 연대기를 현대도시이론으로 추적한 <소설 토지의 주인공들과 오늘의 도시 생활>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원주에 와서 처음 박경리 선생을 뵈었는데, 선생은 당신이 기록해둔 주인공의 연보와 꼭 일치하는 걸 확인하시더니 문학평론가 중에도 <토지>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평을 쓰는 이가 있다는 말로 교수님을 칭찬하셨다고 한다. 첫 만남에서 박경리 선생과 김형국 교수님은 어머니와 아들 같은 인연을 맺었고, 토지 개발로 단구동 집이 헐리게 되었을 때 교수님의 활약 덕분에 선생의 집이 지켜질 수 있었다.  


합죽선에 박경리 선생이 친필로 적어준 시가 있다며 보여주셨다. <토지> 4부를 쓰던 무렵 선생의 심경이 드러난 시 같다고. 빈 들판에/ 비들기/ 한 마리/ 가을비에 젖는다.

<토지> 5부가 완간되었을 무렵 단구동 토지개발사업이 한창이었고, 선생의 집도 수용 위기에 처해 있었다. 선생의 집이 사라지면 안 된다는 문인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토지개발공사에서는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즈음 단구동을 찾았다가 불도저 소리가 낭자한 꼴을 직접 목격한 교수님은 서울로 돌아와 토지개발공사 관계자를 만났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토개공 부사장이 문학을 좋아하는 분이었고, 단구동 집이 지금처럼 보존될 수 있었던 것. 문학의 가치를, 그리고 선생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가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고마운 일인가 모르겠다.

시끄러웠던 단구동 집 수용 과정 때문에 감정이 많이 상해 있던 박경리 선생은 토개공 부사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냉담했는데, 넉살 좋은 토개공 부사장의 한마디에 바로 마음이 풀리셨다고 한다. "선생과 토개공은 동업자입니다. 선생은 소설 <토지>를 팔아 살아가고, 우리 토개공은 대지 조성 사업으로 꾸려갑니다." 단구동 집을 둘러싸고 내내 말로 상처를 받던 선생의 마음을 녹인 것도 바로 마음을 알아주는 말이었던 것이다. 토개공은 그후 선생이 매지리 토지문화관을 조성할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다음은 선생이 써놓은 토지문화관 조성 연혁이다. 

천구백구십육년 한국토지공사(사장 이호계 김윤기)의 뜻깊은 출자금 사십억원과 작가(박경리)의 희사금 칠억오천만원, 김형국 교수의 노력을 기간으로 삼아 토지문화재단을 구성하고 토지문화관 건립을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건물 부지는 토지공사 현장소장(김재성)이 선정하였으며, 설계는 동우건설(임금배)이, 시공은 현대건설(김충식)이 맡아 천구백구십팔년 십일월 준공을 보게 되었다.

얼핏 도시계획이 문학과 거리가 먼 분야처럼 보이지만 문학적 감수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도시의 질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문학에서 위로를 받듯 문학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탄생한 도시라면 그곳에서 사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당시 관련자 중에 문학을 좋아하는 이가 없었다면, 그리고 김형국 교수가 없었다면 내가 박경리 선생의 단구동 집에 앉아 강의를 듣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개발도 도시를 만드는 것도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4대강처럼 사람의 마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에는 행복도 위로도 없을 것 같다.  (2010년 5월 8일 강의)


강의가 끝난 후 조별 활동으로 원주시의 도시 계획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조에서는 박경리문학공원을 사색이 가능한 공간으로 넓고 여유 있게 설계했다.  

도랑물이 흐르는 넓은 공원에 도서관과 창작이 가능한 공간도 하나씩 만들어놓아서 누구든지 산책길에 들러 책도 보고 글도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해 보았다. 그리고 시민들이 직접 가꾸는 텃밭을 만들었는데 박경리 선생처럼 농사를 지으며 생명을 느끼고 작은 것의 소중함을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 있다. 우리 조장님이 결석을 해서 얼떨결에 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 김형국 교수님은 미술에도 조예가 깊은 분이었다. 수업중에 장욱진 화백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길래 집에 와서 찾아보니 나무숲에서 나온 어린이 미술관 시리즈 <날고 싶은 화가 장욱진>을 쓰신 분이었다. 그 외에도 장욱진 화백에 관한 책이 여러 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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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0-05-18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번 강의 잘 읽으면서 감사 말씀은 제대로 전하지 못했네요.
소나무집님. 이번에도 잘 읽었습니다 ^^

소나무집 2010-05-19 08:50   좋아요 0 | URL
아는 만큼 사랑한다더니 이제야 토지랑 박경리 선생에 대해 진짜 애정이 솟네요.

꿈꾸는섬 2010-05-18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지 5강도 잘 읽었습니다.^^
오늘은 비가 촉촉히 내려 참 좋아요.^^

소나무집 2010-05-19 08:55   좋아요 0 | URL
6강은 1박 2일 수학 여행이랍니다. 새벽 5시 출발이래요.
5월 29, 30일에 가는데 모든 일 제쳐놓고 간다고 했어요.
통영이랑 하동 다 다녀올 것 같아요. 기대 만발~

꿈꾸는섬 2010-05-28 20:11   좋아요 0 | URL
와, 내일 가시는군요. 전 통영은 다녀왔는데 하동은 아직 못 가봤어요.
잘 다녀오세요.^^ 통영도 아이들 크면 다시 가보고 싶어요. 소나무집님 페이퍼 또 기대되요.^^

순오기 2010-05-19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는 '뿌리깊은 나무' 1980년 2,3,4월호 갖고 있어요. 5월호 이후는 왜 안 샀는지 생각나지 않아요.ㅜㅜ 그리고 나온 '마당'은 81년 창간호부터 10.11. 12월호까지 갖고 있는데, 여기에 토지 4부가 실렸지요. 젊은 날의 박경리 선생도 나오고요. 생각해보면 나도 토지와 인연이 깊어요.^^

소나무집 2010-05-20 09:25   좋아요 0 | URL
저는 이런 잡지들 이사할 때마다 정리하면서 버렸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까워요. 그냥 놓아두었으면 모두 좋은 자료가 되는 건데 말이죠.... 언제 원주 한 번 오세요.

순오기 2010-05-28 19:44   좋아요 0 | URL
언제 갈지 모르지만, 소나무집님의 토지 안내는 최고겠지요!^^
 

딸아이가 어버이날 하루 종일 잘 놀다가 잠자리에 누워서 말했다. 사실은 학교에서 편지 썼다고. 아마 이런 편지 주는 게 좀 쑥스러웠나 보다. 딸아이가 준 편지를 이불 속에 누워서 읽으며 눈물이 왈칵 솟았더랬다. 그래서 "고마워!"  한마디만 하고는 자는 척했는데...

나도 딸아이가 있어 고맙고 행복하다.    

"저를 위해서 고생해주신 엄마께 이 훈장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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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0-05-13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뻐요♡

소나무집 2010-05-14 10:40   좋아요 0 | URL
네, 요렇게 예쁠 때도 있지만 안 예쁠 때도 많아요.^^

양철나무꾼 2010-05-13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소나무집님.

딸 아이에게 저런 편지를 받을 수 있는 엄마,아빠는 정말 행복하겠어요~
무한감동 받고 갑니다.

소나무집 2010-05-14 10:41   좋아요 0 | URL
네, 반가워요.

엘리자베스 2010-05-13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엄마라니...완전 감동받았어요.
선우는 정말 얼굴도 마음도 모두 예쁘네요.
아들편지는 없는 건가요?

소나무집 2010-05-14 10:43   좋아요 0 | URL
울 아들은 아빠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래요.^^
울 아들도 학교에서 편지는 썼는데 안 가져와서 어버이날 지나고도 한참 있다가 엄마가 추궁을 하니까 그때서야 갖다 주는 거 있죠. 별 내용도 없는 편지..ㅜㅜ

순오기 2010-05-13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딸 키우는 맛이 있지요~ 왈칵, 하셨쎄요.^^
큰딸은 고3때 기숙사에 있을 때 감동의 편지도 보내드만
올해는 세 넘들 모두 편지 한 통도 없네요.ㅜㅜ
이젠 머리 컸다고 감동의 편지든 형식적 편지는 안쓰기로 했나 봅니다.ㅋㅋ

소나무집 2010-05-14 10:45   좋아요 0 | URL
주중엔 남편이랑 떨어져 사니까 요즘 제가 딸한테 기대고 사는 것 같아요.ㅎㅎ
삼남매가 왜 순오기님을 섭섭하게 했을까나....
우리 딸도 좀 크면 무심해질 듯..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쓰라고 해서 썼대요.

세실 2010-05-15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눈물나요. 어쩜...이렇게 엄마, 아빠 마음을 잘 이해할까요. 참 예쁜 따님이예요.
특히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첫 구절....멋져요. 작가의 역량도 보입니다.

소나무집 2010-05-15 19:00   좋아요 0 | URL
네, 예쁜 딸이에요. 저도 고슴도치 엄마.ㅋㅋ

같은하늘 2010-05-15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엄마, 아빠를 이렇게 감동시키나요? 행복하셨겠어요.
2학년 울 아들도 선생님께서 쓰라하니 써오긴 했던데...^^

소나무집 2010-05-15 19:02   좋아요 0 | URL
네, 행복했어요. 아들은 이런 거 기대 안 해요.
어디 다치지만 말고 잘 지내만 다오~ 예요.^^

꿈꾸는섬 2010-05-16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쓴 편지 정말 감동이에요.^^

소나무집 2010-05-17 09:02   좋아요 0 | URL
저도 가끔씩이라도 이렇게 엄마 아빠를 생각해주는 딸내미의 마음이 예뻐요.^^
 

금요일부터 제주에서 시부모님이 올라와 계셔서 4강을 들으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강의를 맡으신 분이 문학평론가 정현기 교수님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침을 먹으면서 시어머니께 양해를 구했고, 부랴부랴 토지학교로  달려갔다. 정현기 교수님의 유명세를 알고 있었기에 가까이에서 뵙고 강의를 꼭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댁이 있는 광주에서 새벽 차를 타고 와서 사우나에 잠깐 들렀다며 몹시 피곤하다고 하셨지만 강의를 하는 두 시간 동안 피곤한 기색은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이셨다. 교수님은 전두환 시절 작가의 사위인 김지하 시인을 두 달간 숨겨준 죄로 해직당했다가 1988년에 복직하셨는데 그 일로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후 교수님은 박경리 선생을 어머니처럼 스승처럼 모셨다고.    


복직 후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계시면서 <토지>에 대한 연구는 물론 <토지>를 연구하는 후학들도 많이 배출하셨다.

강의 내내 MBC에서 촬영을 하고 있어서 교수님의 유명세를 더 느낄 수 있었다.  

정현기 교수님은 <토지, 약육강식의 소설 세계사 읽기>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셨는데, 현 정부와 미국 추종자들에 대한 비판에 얼마나 속이 후련했는지 모른다. 그런 강의는 하루 종일 들어도 신이 날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요즘의 한나라당은 일진회보다 더 하다고 해서 수강생들 모두 통감을 하며 웃었다. 교수님은 당시 시대 설명을 하면서 안중근과 윤동주, 염상섭 등의 이야기를 길게 하셨고, 이인직 같은 이는 문학적 첩자라고 일갈하셨다. 일본 정치 학교를 졸업한 이인직을 신소설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코미디란다.

<토지>가 시작된 1897년 무렵은 세계적으로 힘센 나라가 힘이 약한 나라를 주워삼키려는 야욕으로 가득한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대였다. <토지>가 시작되기 백여 년 전부터 서양은 산업혁명에 의해 사람의 삶이 바뀌고 있었는데 기계 덕에 소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생산된 물건들을 팔 시장이 필요해지자 제국주의라는 괴물이 탄생하게 된 것. 일부 재산가들이 만들어낸 지구 전제를 싹쓸이하려는 생산 체제는 지구를 몸살을 앓게 만들었고, <토지> 탄생의 배경 또한 거기에 있다고 교수님은 해석을 하셨다. 

한마디로 <토지>는 문명이라는 이름의 재앙이 한국에 달려든 모습을 보여주려고 시작된 소설이라는 것이다. <토지>는 힘이 약한 조선이 일본에게 먹혀 들어가는 과정을 민중들의 삶을 통해 세세히 보여주고 있으며, 제국주의란 남을 이용해서 나만 잘 살아보겠다는 더러운 심보인데, 소설 <토지> 속에는 그 시대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5대째 부를 이어오던 평사리 최부자집이 왜놈의 상징인 조준구에게 망하지만 용정에서 곡물 장사로 돈을 번 최서희가 다시 평사리로 돌아오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속엔 제국주의로 인해 망한 최부자집이 있고, 다시 자본주의 방식으로 성공해서 집안을 일으키는 최서희가 있다. 교수님은 제국주의, 자본주의, 세계화, 글로벌리제이션은 식민주의의 다른 말이라며 언어의 포장에 속지 말라는 당부도 하셨다. 

<토지> 속에서 선생이 보여주고 있는 여러 삶의 모습은 그들의 삶을 통해 얽어매고 옥죄며 이래라 저래라 하는 더러운 제국주의 계급 의식을 한데 묶어 그것들이 모두 없애버려야 할 것이라는 속뜻을 담고 있다. 사실 내가 몇 년 전 <토지>를 읽을 때는 스토리만 따라가며 읽기에도 바빠 이런 속뜻까지 헤아릴 생각조차 못했다. <토지>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또 불끈 솟는다. 


강의를 마치고 교수님과 함께. 강의를 듣는 내내 느낀 것은 정현기 교수님은 박경리 선생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분이라는 것이었다. 정릉 집을 팔아 원주로 오실 때 집 사고 남은 돈 500만원을 주시며 빚을 갚으라 한 이야기, 박경리 선생의 단구동 집을 드나들며 서쪽으로 창이 난 부엌 밥상에 앉아 곰국을 먹던 이야기 등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셨다.  (5월 1일 강의)


4강의 조별 활동은 원주, 박경리, 토지,박경리 문학공원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넣어 마음대로 글쓰기였다. 우리 조에서는 시를 써서 일등을 먹었다.  



소설 <토지>를 읽고 박경리 선생을 흠모했네!/남 몰래 그리워하다 박경리문학공원에 오게 되었네!/소설 <토지>를 내 마음에 담고 나니 원주를 떠날 수가 없네!

 *** 정현기 교수님의 토지론을 엿볼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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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5-09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좋은 강의 들으셨네요. 부럽다....저도 토지 다시 읽고 싶어요.
근데 소나무집은 누구실까???

소나무집 2010-05-10 09:03   좋아요 0 | URL
작품을 알고 읽는 것과 모르고 읽는 것에는 많이 차이가 있음을 새삼 느끼고 있어요. 교수님 뒤에~

세실 2010-05-20 21:21   좋아요 0 | URL
아 맨 아래 발표하시는 분? 참 단아하세요.

같은하늘 2010-05-11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정말 부러워요. 전 소나무집님 바로 보이는데요~~ㅎㅎ

소나무집 2010-05-12 14:46   좋아요 0 | URL
저도 정말 좋은 강의 듣고 있어서 행복해요. 바로 알아보셨군요.^^

꿈꾸는섬 2010-05-12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새 4강이네요.ㅎㅎ

소나무집 2010-05-13 09:15   좋아요 0 | URL
지난 주 토욜에 5강 수업도 했어요.
이번 주 안에 5강도 올리야 할텐데...

순오기 2010-05-13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원주로 간 건 정말 복이에요~ 부러워라!!
정현기 교수님 강의는 어제 MBC에 나올까요?

소나무집 2010-05-13 09:36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유일하게 마음을 줄 수 있는 곳이랍니다. mbc에서 어떤 프로그램에 내보려고 찍어갔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이들 학교에서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던 날 진행되었던 수업이다. 두 아이 교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한 시간쯤 머무르다 달려갔더니 이미 박경리 선생의 초중년기 이야기가 끝나고 벌써 원주에서 <토지 4, 5부>를 쓰던 때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더 궁금했던 건 그 시절 이야기였는데... 3강은 포항공대 이승윤 교수의 박경리 선생의 생애.   



박경리 선생은 일제 중반기인 1926년 경남 통영에서 어머니가 몸이 하얀 용이 나타난 태몽을 꾸고 태어나 모두 아들을 기대했다고 한다. 본명은 금이(今伊). 통영초등학교 시절 박경리 선생은 책보기를 즐겨 책상 밑에 소설책을 숨겨놓고 읽는 불량 소녀(?)였다.  

열네살에 네 살 연상의 아내와 결혼했던 선생의 아버지는 박경리를 낳은 후 바로 딴살림을 났고, 늘 수업료를 걱정해야 했지만 어린 박경리는 당당하고 궁색한 티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수업료를 달라고 찾아간 딸에게 여자가 공부하면 뭣하냐며 뺨을 때린 아버지와의 관계는 끝내 화해를 하지 못했다. 그 덕에 소설의 모든 주인공은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꿋꿋한 여성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와 함께 진주로 옮겨 온 박경리는 진주여고에 입학(17회 졸업생)한 후 일본인 선생들에게 황민화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게 된다. 이 시기에 일본 소설과 시, 일본어로 된 서양 소설을 책방에서 쫓겨날 때까지 읽으며 문학 작품을 통해 의식을 형성해갔다. 하지만 공부에는 신통치 않아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여고를 졸업한 다음 해에 결혼을 했고(1946년) 같은 해에 딸 김영주를 낳았다.  

1948년에 전매국에 근무하던 남편을 따라 인천 금곡동으로 이사를 하고, 아들 김철수를 낳았다. 박경리 선생은 인천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며 행복한 시절을 보내셨는데 저울로 달아 헐값으로 사들인 온갖 종류의 책을 읽으며 차츰 역사 의식을 깨치게 되었다고 한다. 1949년에는 흑석동으로 이주했고, 1950년 서울수도 사범대학 가정과를 졸업, 황해도 연안여중 교사가 되었지만 전쟁으로 6개월만에  교사 생활을 접는다. 이때부터 박경리 선생의 여자로서의 불행도 시작된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고... 

부역 혐의로 수감되었던 남편이 죽자 박경리 선생은 통영으로 돌아와 수예점을 하다가 다시 서울로 가서 1년간 신문사에서 근무를 했으나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었고, 한국상업은행에 근무하던 중 은행 사보에 <바다와 하늘>이라는 시를 발표하셨다. 시를 쓰던 박경리 선생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김동리 선생을 만나면서부터였다. 김동리 선생 집에 고향 친구가 세들어 살고 있어 자주 드나들다 김동리 선생에게 글솜씨를 인정받았고, 본인도 모르는 사이 김동리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계산>이 실리게 된 것. 이때부터 선생은 박금이라는 본명 대신 김동리 선생이 지어주신 박경리라는 필명을 쓰셨다.  

60년대 박경리 선생은 <표류도><성녀와 마녀><김약국의 딸들><파시><시장과 전장>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셨다. 그리고 1969년 9월부터 이 모든 작품을 종합했다고 할 수 있는 <토지>를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 선생은 <토지>를 쓰실 당시 철저하게 외부와 담을 쌓고 집필에만 몰두하면서 작품이 완성된 후에 공개할 생각이었으나 생활고에 시달리다 결국 연재를 선택하셨다고 한다. 1971년 죽음을 예감하며 유방암 수술까지 받았지만 퇴원한 지 보름 만에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다시 원고를 쓰기 시작해서 <토지> 1부를 마치셨다고. 

그후 <토지>는 3부가 완성되는 동안 <현대문학>을 거쳐 <주부생활><독서생활><한국문학> 등 여러 잡지를 옮겨 다니며 연재. 그리고 1980년 <토지>1, 2, 3부가 KBS 드라마로 만들어져 대중들과 더 친근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선생은 서울 정릉집을 떠나 딸이 있는 원주로 오셨다. 원주로 오신 선생은 참말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셨다는 걸 선생이 쓰신 시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누구 하나 대작 <토지>를 쓴 작가로 알아주지 않았고, 약간 유식한 시골 노인네 취급이나 했으니 자존심 강한 선생이 얼마나 상처가 되셨을까 싶다. 당시 적막한 집에서 선생을 지탱하게 한 건 오로지 책상 하나와 원고지와 펜이었다고.   

중간에 절필도 선언하시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일제 시대 말기를 살았던 선생은 4부부터는 사명이라는 동아줄에 묶여 초조와 불안에 시달리면서 글을 쓰셨고, 드디어 1994년 8월 15일 집필 26년 만에 <토지>를 탈고하셨다. 그후 <토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영어판, 독일어판, 일본어판도 출간되어 펄벅의 <대지>보다 한수 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선생은 <토지> 집필을 마친 후 단구동 택지 개발로 매지리로 삶의 터전을 옮기셨고, 원주 연세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소설창작론>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2008년 5월 5일 애연가셨던 선생은 지병인 폐암으로 세상을 마감하셨다. (이승윤 교수님이 준비하신 자료집을 중심으로 정리)

수업이 끝나면 항상 학생들의 모둠 활동이 진행되는데 3강의 주제는 "내가 원주 시장이 된다면 박경리와 <토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4월 17일 강의) 



진짜 원주 시장이 된 것처럼 열심히 박경리 문학공원과 <토지>를 알리고자 열띤 토론을 한 후 조별로 나가서 발표하는 모습.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았는데 가장 마음에 든 건 <토지>를 원주시에 거주하는 각 가정에 한 질씩 나누어준다는 것.  

우리 조에서 내놓은 의견 중 교수님의 칭찬을 받은 내용은 학교로 찾아가는 토지학교를 운영하자였다. 학교로 찾아가서 아이들에게 토지와 박경리 선생을 알리는 수업을 하자는 것.  


수업이 끝난 후 집에 가다가 주차장에서 만난 고창영 토지학교 교장샘과 이승윤 교수님.

* 박경리 선생의 삶과 문학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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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10-05-07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4강이 진행되었는데 그때 그때 강의록을 올리지 못하는 게으름~
차분하게 앉아 책 한 권 읽을 수 없는 나날이다.

꿈꾸는섬 2010-05-07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잘 읽었어요.^^ 다음 강의도 기대할게요.^^

소나무집 2010-05-10 09:01   좋아요 0 | URL
4강 올렸구요, 지난 주 토요일에 한 5강도 곧 올릴게요.

순오기 2010-05-13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님 덕분에 거실에서 토지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올린 책 중엔 시집 두 권만 봤네요.

소나무집 2010-05-13 09:09   좋아요 0 | URL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사서 보았는데 그때는 무슨 생각으로 읽었는지 기억도 안 나더라구요. 요즘 다시 보고 있는데 요즘 문학하는 사람들이 다시 읽고 곱씹어봐야 할 대목도 많구요. 박경리 선생의 육성을 듣는 착각이 들어요. 제가 원주에 쭉 살았더라면 매지리 연세대에 가서 도강이라도 하고 싶었을 텐데 아쉬워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