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선생이 남도 답사 일번지라고 했던 강진과 해남,
마라톤 대회 마치고 해남 대흥사에 들렀다.
남쪽 동네로 이사 온 후 영 마음을 못 붙이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내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새 소리, 바람 소리는 고즈넉한 숲길을 더 호젓하게 만들었다.
땅끝 마을이 맞구나 싶게 어딜 가도 사람이 많지 않아 오랜만에 슬그머니 남편 팔짱을 껴보았다.
10여 년 전만 해도 '유선여관'이었다는데 '유선관'으로 간판이 바뀌었다.
여관 장사가 안 되니 음식점으로 바뀐 모양이다.
이미 점심은 먹었기에 들어가 구경만 하고 나왔다.
유홍준 선생이 예뻐라 했던 누렁이는 손님 접대하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유선여관 안마당에 있는 장독대.
그 갯수로 보아 찾는 손님이 꽤 많은 모양이다.
이 속에 다 무엇이 들어 있을까?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지하여장군.
허물어진 장승 모습에 귀신들이 친구하자고 몰려올 것만 같다.
돌탑에 우리 아이들 소원도 하나 올려놓아 보아야지.
혹이 솟아난 나무. 뭔가 환경이 마음에 안 들면 이런 병에 걸린다고 한다.
식물 전문가 남편의 한마디.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이 생각난다.
우리 아들은 항상 바쁘다.
안 보여 둘러보니 연못에서 무얼 찾고 있는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경내에 있는 연못 무염지.
우리나라에 차문화를 일으켰던 초의 선사 동상.
찻그릇이 우동 그릇만 하다.
제주도에 유배 가 있던 동갑내기 추사 김정희와 평생을 교유하며 지냈던 초의.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친 서산대사의 공을 기리기 위해 정조가 표충사라는 사당을 세우고
직접 현판 글씨까지 써주었다고 한다.
표충사 현판 글씨 옆에 어서각이라는 현판이 있다.
사찰 내 박물관에는 선조 임금이 하사한 서산대사의 금란가사와 발우, 금병풍이 보관되어 있다.
구부러지면 구부러진 대로 기둥을 삼더니 문지방까지 둥글둥글하다.
저렇게 밟았다가 부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그래!
원교 이광사의 작품.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귀향 가는 길에 들러 심사가 뒤틀려 떼어내라고 했다가
귀향살이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그때는 잘못 보았으니 다시 달아놓으라고 해서
오늘날까지 걸려 있게 되었다는 사연이 있다.
대흥사에는 이광사, 김정희 , 정조 임금 등 당대 내노라 하는 글씨가 이런 현판 속에 남아 있다.
너무 높지도 험하지도 않은 두륜산이 포근하게 감싸안은 자리에 대흥사가 있었다.
일주문을 들어선 순간 펼쳐지던 다른 세상.
그곳에 서면 정말 사람 세상 일은 까맣게 잊게 된다.
일주문을 나서면 그 순간 다시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