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순간이면 콜랴는 인상을 팍 쓴 채 창문을 바라보거나 자기 장화에 구멍이 난 건 아닌지 살펴보거나, 한 달쯤 전 갑자기 어디선가 얻어 집으로 들인 뒤 무엇 때문인지 친구들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고 방 안에서 몰래 키우고 있는상당히 커다란 옴투성이의 털북숭이 개 페레즈본을 맹렬하게부르곤 했다. 그런데 그는 이 개에게 무척이나 난폭하게 굴며 온갖 재주와 묘기를 다 가르쳤는데, 결국 이 불쌍한 개는 그가 학교에 가서 집에 없을 때는 끙끙대며 울다가, 그가 돌아오면 좋다고 멍멍 짖어 대고 반쯤 미친 듯 펄펄 뛰면서 주인을 섬기는가 하면 땅바닥에 나뒹굴어져 죽은 척을 하는가 하면, 한마디로 자기가 배운 재주를 죄다 보여 주었으니, 이건 주인이 무슨 요구를 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저 혼자 기뻐 죽겠고 너무 고마운 나머지 진심으로 그랬던 것이다.
- P21

페레즈본은 아주 신이 나서는 연신 좌우로 고개를 기울여 어디 무슨 냄새라도 맡는지 킁킁대며 뛰어다녔다. 다른 개들과 마주칠 때면 자기들 나름의 규칙에 따라 예사롭지 않을 정도로 기꺼이 서로 몸 냄새를 맡았다.
- P37

"그런데 너 눈여겨본 적 있냐, 스무로프, 한겨울에는 영하 15도,심지어 18도가 되어도 예를 들면 지금처럼 이렇게 춥게 느껴지지 않아. 하지만 지금과 같은 겨울 초에는 갑자기 영하 12도의혹한이 닥치는 거니까 춥게 느껴지는 거야, 눈이 거의 없는데도 말이야. 이건 다시 말해 사람들이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그렇다는 거야. 인간 만사는 모두 습관이야, 국가적 일이나 정치적 일에서도 모든 것이 습관이지. 어디나 습관이 주된 동력이란 거야"
- P38

"이봐, 스무로프, 첫마디에 못 알아듣고 자꾸 되묻는 걸 나는 좋아하지 않아. 어떤 것은 아예 설명을 할 수도 없단 말이다.
- P39

콜랴는 근엄한 얼굴을 하고 담장에 몸을 살짝 기댄 채 알료샤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렇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료샤를 만나고 싶었다. 그에 대한 얘기는 아이들한테서 지겹도록 많이들어 왔지만, 지금까지 아이들이 자기 앞에서 그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고 심지어 ‘비판‘까지 할 때면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겉으로는 늘 경멸스럽고 무심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무척, 무척이나 사귀고 싶었다. 그가 들은 알료샤에 대한 얘기 속에 모두 뭔가 공감이 가고 사람을 끄는 것이 있었던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 순간은 중대했다. 첫째, 독립심을 보여 주기 위해 제 얼굴에 먹칠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안그러면 내가 열세 살짜리 꼬마라고 생각하면서 나를 저 녀석들과 똑같은 코흘리개로 간주할 거야.  - P47

알료샤는 우리가 그의 이야기를 중단한 시점 이후 몹시 달라져 있었다. 승복을 벗어 던지고 지금은 멋지게 재단된 프록코트를 입고 부드럽고 둥근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짧게 깎은 상태였다. 이 모든것이 그를 몹시 돋보이게 만들어서, 완전히 미남이 되어 있었다.
그의 귀염성 있는 얼굴은 항상 명랑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이 명랑함은 어쩐지 조용하고 평온한 것이었다.  - P49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것이 당신의 신념인가요?" 콜라가그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그 발상은 상당히 흥미진진하네요. 나는 지금 집에 도착하면 이 문제를 놓고 머리를좀 굴려 보겠습니다. 고백하건대, 나는 정말로 당신한테 뭔가를 배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어요. 내가 온 것은 당신에게서가르침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카라마조프 씨." 콜랴가 감명을받은 듯 격정적인 목소리로 말을 끝맺었다.
"그럼, 나는 당신에게 가르침을 받도록 하죠." 알료샤가 그의 손을 쥐면서 미소를 지었다.
콜랴는 알료샤에게 굉장히 만족했다. 그를 감동시킨 것은알료샤가 자기를 극히 동등하게, 그러니까 자기를 ‘완전한 어른으로 대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는 점이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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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는 남는 장사다. 밑천 없이 시작할 수 있고, 세금도 안 낸다. 사기를 쳐도 잘 잡히지 않고, 설사 잡혀도 대부분 쉽게 풀려난다.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긴다. 그러다 보니 한 해에 24만 건의 사기 사건이 발생한다.
2분마다 1건씩 사기가 벌어지는 셈이다. 사기로 인한 피해액도 매년 3조원이 넘는다.
- P18

사기꾼은 어지간해서 죗값을 받지 않는다. 사기꾼이 구속될 확률은 재벌들이 실형을 사는 것만큼 희박하다. 설사 구속되더라도 피해자와 외상합의(합의금의 일부만 주고 나머지는 나중에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를 하거나 할인합의를 하면 구속적부심 (피의자의 구속수사가 합당한지를 법원이 판단하는 절차, 구속된 피의자는 검사가 기소 제기를 하기 전까지 누구나 청구할 수 있다)이나 보석으로쉽게 풀려난다. 재판 중에도 피해자 일부에게 합의금을 주는 조건으로 위증을 교사하곤 한다. 그래서 무죄로 빠져나오기도 쉽다. 수사나 재판을받을 때 중병이 드는 것은 재벌이나 정치인에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원래그 초식은 사기꾼들이 만든 비급이었다. 자신이 병들지 않으면 가족중에 누구 하나라도 죽을병에 걸린다. 이 병이 신기한 것은 영어의 몸에서풀려나면 저절로 낫는다는 점이다. 내림굿을 하면 씻은 듯이 낫는 신병과같은 것이다.
- P19

실형이 선고되더라도 낙담하기에는 이르다.1심에서 법정구속이 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구속될 경우 사기꾼의 방어권이 심하게손상될 수 있다는 해괴한 믿음 때문이다. 오랜 실무 경험을 가진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일부 합의라도 하면 항소심에서는 집행유예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실형이 나오더라도 어지간해서는 검사 구형량과 동일한 형이 선고되는, 소위 ‘역기 드는 일이 없다. 교도소를 가더라도 가석방을 노릴 수 있고, 형집행정지도 종종 받는다.
이런 천혜의 환경 조성으로 우리나라 사기범의 재범률은 77%에 이른다. 처벌을 받은 사기꾼 10명 중 8명은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는 뜻이다.
사기범의 55%는 5개 이상의 전과를 가지고 있다. 이건 확실히 비정상이다. 이렇게 사기범의 재범률이 높은 것은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다. 위험과 수익을 비교해 볼때 위험은 무시할 만하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기는 줄어들지 않고, 사기꾼의 재범은 늘어나는 것이다.
- P20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사기군에게 응당한 처벌이 가해진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지닌 배신자 인지 능력은 법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바로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불신이다. 사법 제도가 극적으로 개선되지는 않을 테니 그 불신이 이른 시일에 해소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당분간 이 배신자 인지 능력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매정한 말이지만, 각자가 알아서 사기를 피해야 한다.
옛말에 ‘도둑놈은 한 죄, 잃은 놈은 열 죄‘라고 하지 않았던가. 무책임하다고 욕하지는 마시라. 그리 무리한 요구는 아니다. 왜냐하면 사기의 공식은 비교적 단순하고 허접하기 때문이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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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불멸이란 산 자들의 멍청한 발명품이다. 경마의 효용이 뭔지 아는가? 경마는 글줄이 흘러나오게 만든다. 번개 치듯 불시에 찾아드는 행운, 마지막 파랑새 노래. 내가 무슨말을 하든 멋있게 들리는 건 내가 도박하듯 글을 쓰기 때문이다. 신중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연구하고, 가르치고, 그리곤 망친다.
 관습이 그들에게서 열정의 불꽃을 앗아간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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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었다. 관리실에 앉아 무너진 박물관을 바라보았다. 이전에는 그랬다. 보기 싫은 것도 끝까지 보는 편이 낫다고, 의미 없는 풍경으로 시선을 돌리기보다는 말이다. 그러면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게 된다 한들.
눈을 감았다. 지금은 싫어하는 것들을 피해 시선을 돌리고 돌리다 눈둘 곳 없는 세상을 살고 있었다.
- P254

나를 인계받은 늙은 경찰을 따라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앞서 걷는경찰의 등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그것을 보며 어쩌면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딱딱한 놈들은 쓸데없는 질문을 던지고, 불필요한 것들을 걸고넘어지기 일쑤니까. 그게 걱정이 됐다. 녀석을 따라 서 안을 가로지를 때였다.
근처에 앉아 있던 젊은 경찰 하나가 옆에 있는 녀석에게 귀엣말을 했다. 귀엣말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컸다. 그 말을들은 옆자리 녀석이 흠칫 놀랐다 앞에서 걷던 늙은 경찰도 그 소리를 들은 듯 나를 힐끗 돌아보았다. - P345

그를 담당하고 있던 경찰이 말했다. "네가 찾는 범인이 도넛 가게에서 해고를 당하고, 정신병원 이력이 있는 여자아이일 거라고 생각지는 않아?‘ 하고 말이다. 그는 ‘술 깨면 계집아이에게도 질 인간이 번번이......‘ 하고 덧붙였다. 앞니의 눈에 조용한 불이 지나갔다. 경찰은 무표정한 얼굴로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 P347

누군가를 죽이고 은폐하고 도망치는 짓을 반복하다 보면 배우지 않을 수 없다. 가면을 쓰지 않으면 어디에서도 섞여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섞여 있는 와중에도 섞일 수가 없다는 사실을. - P347

"이 차는 어디서 난 거야?"
"훔쳤어."
"어떻게?"
"훔치고자 하면 훔칠 수 있어."
- P369

사람들은 자연과 시간을 향해서는 어째서 살인마라 칭하지 않을까. 그들의 살인이 너무 당연하기 때문일까. 지나치게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일까. - P409

작가의 말 ㅡ 말이 과하게 많아질 때 자신이어떤 상태인지, 재고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내 경우는 그렇다.
-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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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피엔스 - 문명의 대전환, 대한민국 대표 석학 6인이 신인류의 미래를 말한다 코로나 사피엔스
최재천 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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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이상으로 공부가 많이 되었습니다.
유쾌한 인지심리학자인 김경일 교수의 코로나 이후 전망인 인류의 ‘지혜로운 만족감‘의 추구가 가장 와닿았습니다. 결국 코로나는 무한경쟁과 무한소비로 인해 지구가 인류에게 경고를 하는 거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희망적으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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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0-08-23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헨리 키신저가 말했죠. “코로나가 세계질서 영구히 바꿀 수 있다”고요. 흥미로운 책이군요.

미미 2020-08-23 2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점점 그말대로 되는듯해요^^

NamGiKim 2020-08-23 20:58   좋아요 0 | URL
다만 헨리 키신저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와 국제질서에 부합한 인물이라 그 말과 더불어 미국위주의 질서에 맞는 얘기를 더불어 했어요. 그래서 어느정도는 한귀로 듣고 걸러야 하기도.

미미 2020-08-23 2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 최근에 ‘바이스‘란 영화를 봤는데 키신저는 백악관에 있을때도 명성만큼 자기할일을 다한것 같지 않더라구요.

NamGiKim 2020-08-23 21:06   좋아요 0 | URL
오 그 영화 저도 봤습니다. 감명깊게 본 영화중 하나입니다. 닉슨, 레이건, 부시, 딕체니, 럼즈펠트 등등 미국의 제국주의자들 민낯이 아주 잘 드러나는 영화였죠.

미미 2020-08-23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보셨군요! 다큐처럼 실날하게 쏘는 영화라 저도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