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리학에서는 겉으로 비슷한 증상도, 어떤 증상은 긴장이나 분비물의 과도함에서 연유하며 또 어떤 증상은 그 결핍에서 연유하듯이, 지나치게 예민한 감수성에서도 감수성의 결핍과 마찬가지로 악덕이 생겨날수 있다. 아마도 도덕적인 문제가 정말로 우려할 만한 비중으로 제기되는 것은 실제로 타락한 삶을 사는 동안인지 모른다.
- P233

사랑이라는 감미로운 독약은 해를 거듭하면서 심장의 저항력을 감소시켜 우리는 더 이상 이전처럼 견디어 내지 못한다. - P269

우리가 사랑할 때 마음이 평온할 수없는 이유는 우리 손안에 놓인 것이 항상 그 이상의 것을 욕망하기 위한 새로운 출발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 P272

사랑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예외 상태에 빠져 있으므로 표면적으로는 아주 단순한 사건, 언제라도 생길 수 있는 사건에도상당한 중요성을 부여하곤 하는데, 사실 사건 자체에는 그만한 중요성이 없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뭔가 우리 마음속의 불안정한 현존이다. 

우리는 이런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미 사랑은 우리 마음을 떠나고 없다. 사실 사랑에는 지속적인 고통이 따르는 법이라 기쁨이 이 고통을 완화하고 잠재적인 것으로 만들며 유예하기도 하지만, 매 순간 언제라도 우리가 바랐던 것을 얻지 못하면 이 기쁨은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되어야만 했던 끔찍한 고통으로 바뀐다.
- P273

"제 남편은 지혜로운 사람이에요. 모든 점에서 절제할 줄 안답니다. 그렇지만 열정이 하나 있죠." 악의와 즐거움과 호기심이 가득한 눈을 반짝이며 "뭔데요, 부인?" 하고 봉탕 부인이 물었다. 코타르 부인은 소박하게 대답했다. "독서죠." "아!
남편이란 자에게는 아주 고요한 열정이죠." 하고 봉당 부인이 악마 같은 웃음을 참으며 외쳤다. "의사 선생님이 책을 읽을 때면, 정말이지!"  - P314

잔인한 추억은 이처럼 다시 만들어 낸 이미지와 동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에 속하며 우리의 괴물과도 같은 과거를 아는 드문 증인 중 하나다.  - P349

인간은 불행해지면 도덕적인 존재가 된다. 현재 나에대한 질베르트의 반감이 그날 내 행동 때문에 삶이 내린 형벌로 여겨졌다.  - P353

그 어떤 것도 영속성과 지속성을 보장받지 못한다. 우리 고통조차도, 게다가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마치 우리가 몇몇 병자에 대해 말하듯이, 스스로가 자신의 의사이다. 위로는 고통을 초래한 자로부터만 올 수 있으며, 이 고통 또한 그의 발산물이므로 치료약 역시 바로 그 고통 속에서 발견된다. 어느 순간이 오면 고통 스스로가 치료약을 발견해 내기도 한다.  - P354

프레라파엘파의 그림에 나오는 직선 관목처럼 높다랗고 잎이 없는 벌거벗은 줄기 꼭대기에는, 마치 수태고지를 하는 천사들처럼 하얗고 잘디잔 꽃잎들이 한데 모인 둥근 덩어리가 레몬향기로 둘러싸였다.  - P361

그리고 시적 감각에 대한 기억의 상대적 수명은 평균 수명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고통으로 인한 기억보다 훨씬 더 생명이 길었으므로, 오래전 질베르트로 인한 슬픔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5월이 되어낮 12시 15분에서 1시 사이 시각을 어느 해시계 눈금판에서읽으려고 할 때면, 마치 등나무 넝쿨의 그늘과도 같은 스완 부인의 파라솔 아래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을 회상하는 기쁨은 그 슬픔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다.
-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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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19 16: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절반 넘게 읽으셨네요 👍 다시 한번 잃시찾 읽기에 불붙는거 같아요 😊

미미 2021-07-19 16:32   좋아요 2 | URL
ㅋㅋㅋ요 며칠 집에 일이 있어서 안그래도 느린데 싱숭생숭해 빨리 못 읽었어요. 일은 해결되었으니 집나간 멘탈이 돌아오면 좋겠어요.완독을 향해 궈궈씽해요!ㅋㅋ

2021-07-19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9 1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07-20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저 대단하시다는 말 밖에는...

미미 2021-07-20 00:26   좋아요 1 | URL
진정 대단하신 레삭매냐님이 어찌 저에게 고런 말씀을요ㅎㅎ끝이 보입니다ㅋㅋㅋㅋ

scott 2021-07-20 00:26   좋아요 1 | URL
민음사 이번에 프로젝트 한꺼번에 벌려놔서 창립 몇주년 기념으로 ㅎㅎ

완간 일정 밀려 나고 있다는데

저도 고저 대단하시다는 말에 한표!👆👆👆👆

미미 2021-07-20 00:29   좋아요 1 | URL
그런거군요! 어찌됐든 두근두근이네요ㅋㅋㅋㅋ👉👈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현상의 순전히 주관적인 성격을이해하며, 또 세상에서 이름이 동일한 자와 구별되는 추가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는 창조 유형과, 이 추가적인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 대부분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것임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마도 극소수인 듯하다.  - P81

인과관계란 가능한 거의모든 결과를 만들어 내며, 따라서 우리가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도 만들어 낸다. 이 작업은 우리 욕망이나 —— 빨리 진행하려고 하면 도리어 방해가 되는 - 삶 자체로 인해 더욱느리게 진행되어 우리 욕망이나 삶이 멈추었을 때 비로소 실현된다.  - P86

우리 누구나 자신의 말이나 동작이 어느 정도까지 타인에게 보이는지를 정확히 계산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중요성을 지나치게 과장할까 봐 두려워서, 또 타인에 의해 형성된 추억이 그들이 사는 동안 차지하게 될 부분을 지나치게 큰 비율로 확대하면서, 우리는 우리 말이나 태도의 부차적인 부분들이 거의 상대방의 의식 속으로 뚫고 들어가지 못할 거라고 상상하는데, 하물며 우리가 함께 대화를나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으리라고는 더더욱 상상하지 못한다. 

죄를 지은 범인이 자신이 했던 말을 나중에 정정할 때, 그 정정한 말을 다른 어떤 증언과도 대조할 수 없다고여긴다면 바로 이런 가정에 근거한다.  - P96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의 저 탐색하고 불안해하며 요구가 많은 태도, 다음 날 만남에 대한 희망을 줄지혹은 빼앗아 갈지 모르는 말에 대한 기다림, 그 말이 말해질때까지 동시에 또는 번갈아 나타나는 기쁨과 절망의 상상, 이모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우리 주의를 지나치게 동요하게 만들어 그 사람에 대한 어떤 선명한 이미지도 포착할 수없게 한다. 어쩌면 또한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이 모든 감각 활동들이 우리 시선만으로 감각 너머에 존재하는 걸 알려고 애쓰면서 수많은 형태나 온갖 맛, 그 살아 있는 사람의 움직임에는 너무도 무관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랑하지 않을 때라야 우리는 그 사람의 움직임을 고정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움직인다. 따라서 우리에겐 언제나 실패한 사진만이 있다.  - P117

그 관용적인 의미와 달리 신경증자란 자기 말을 가장 조금듣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마음속에서 아주 많은 소리를 듣지만 그런 소리를 두려워하는 게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나중에는 더 이상 어떤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그들의 신경계는 그저 눈이 내릴 듯한 날씨나 또는 다른 아파트로이사 가는 경우에도 마치 큰 병이라도 난 듯 자주 "살려 주세요!"라고 외치기 때문에, 나중에는 이런 경고에 더 이상 신경쓰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밴다. 마치 죽어 가면서도 격렬한 전투 중이라 위험 신호를 깨닫지 못하고 며칠 더 건강한 사람처럼 생활할 수 있다고 느끼는 병사같이 말이다.  - P126

행복, 질베르트를 통한 행복이야말로 내가 줄곧 생각해 왔던, 내 마음을 완전히 차지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회화에 대해 ‘코사 멘탈레(cosa mentale)‘ 라고 했던 것 아닌가.

우리 생각은 글자로 덮인 종이 한 장을 단번에 소화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편지를 다 읽고 나서 나는 이내 편지를 생각했고편지는 내 몽상의 대상이 되었고 또한 ‘코사 멘탈레‘가 되었으며, 그래서 오 분마다 다시 읽고 어느새 키스를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편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나는 내 행복을 깨달았다. - P135

스완은 내가 흥미 있을만하다고 생각되는 미술품과 책 들을 보여 주었는데, 나는그 작품들이 루브르 박물관이나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것보다 무한히 아름답다는 걸 미리 확신했지만, 그 작품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는 없었다. 그런 순간에 스완의 집사가 내 시계나 넥타이핀, 장화를 달라고 하거나, 자기를 내 유산 상속인으로 인정하는 증명서에 서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해도 난기쁘게 수락했을 것이다. 속어로 가장 멋지게 표현해 본다면, 나는 "내가 뭘 하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 P150

‘테라 인코그니타‘


‘낯선 지대‘를 뜻하는 라틴어 - P165

주석* 나폴레옹 시대 이전에는 프랑스 귀족 간에 서열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전통적으로는 오래된 가문이나 영지 소유 여부가 작위의 호칭보다 더 중요했다. 따라서 파리 백작인 오를레앙 공이 백작이라는 칭호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아들인 공작보다 더 높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귀족 작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오데트는 일반 기준인 대공, 공작, 백작, 후작의 순위에 따라 서열을 매기는실수를 범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 대공 또는 왕자라고 옮긴 prince는 본래는왕가의 직계 자손만을 의미하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 P167

주석* 프랑스어로 ‘기억(mémoire)‘은 흔히 사물을 환기하는 능력을 가리키며, 추억(souvenir)‘은 이런 능력의 실행으로 나타나는 결과를 가리킨다. 이 두 단어는종종 혼동되어 사용되기도 하며, souvenir가 사물을 회상하는 행위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경우 기억은 보다 중요하거나 광의의 모호한 대상과 관계되며,
추억은 비교적 협의의 구체적인 대상과 관계된다고 설명된다.(『동의어 사전』, 라루스, 1977, 374쪽 참조.) - P184

이를테면 거리감이나 안개 탓에 어렴풋한 부분밖에 들어오지 않는 역사 기념물처럼 내게는 소나타 전체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바로 여기서 시간 속에서 구현되는 다른 작품도 다 마찬가지지만, 이런 작품의 인식과 관계된 우수가 연유한다. 소나타 안에 가장 깊숙이 감추어졌던 부분이 내게 드러나면서 내가 처음 알아보고 좋아했던 것이 습관에 의해 내 감성 영역 밖으로 끌려가면서 나로부터 빠져나가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나타가 가져다주는 모든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지만, 난 한 번도 소나타를 완전히 소유할 수 없었다. 소나타에는 우리 삶과 닮은 데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삶보다 덜 환멸스러운 이 위대한 걸작은 처음부터 작품이 가진 최상의 것을 주지는 않는다. - P186

예언이 실현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예언자의 초라한지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삶에 가능성을 불러들이거나 배제하는 일은 반드시 천재의 능력에만 속하지않기 때문이다. 천재이면서도 철도나 비행기의 미래를 믿거나 믿지 않을 수 있으며, 위대한 심리학자이면서도 자기 정부나 친구의 위선을 - 가장 평범한 사람도 그들의 배신을 예측할 수 있는데 - 깨닫지 못할 수 있다.
- P189

목소리는 가면 아래서 나오는 것이어서 우리가문체를 통해 발견한 얼굴이라 할지라도 처음 순간에는 알아보지 못하는 법이다.  - P219

천재든 그저 재능이 뛰어난 자든 그들을 탄생시키는 것은 남들보다 탁월한 지적 요소나 사회적 세련미가 아니라, 그런 요소를 변형하고 전환하는 능력이다. 전구로 액체를 데우려면 가능한 가장 전력이 센 전구를 사용하려고 할 게 아니라, 그 전구가 빛을 그만 내고 대신 열을 내도록 유도해야 한다. 

하늘을날아다니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 필요한 게 아니라그 엔진이 지면을 달리던 걸 멈추고 따라가던 방향을 수직 방향으로 돌려 수평적 속력을 모두 상승력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가장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이들은 가장세련된 환경에서 살고 가장 재치 있는 화술과 가장 폭넓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갑자기 그들 자신만을 위해 살기를멈추고 자신의 개성을 거울처럼 투명하게 만들어, 비록 현재의 삶이 사회적으로 또 어떤 점에서는 지적인 면에서조차 초라하다 할지라도 그 삶을 거울에 반영하는 자이다. 

천재란 사물을 반영하는 능력에서 나오지 반영된 광경의 내적인 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젊은 베르고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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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19 0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장 보니까 책 내용이 떠오르는거 같아요 😄 제 읽시찾 책은 연필로 완전 밑줄 투성이에요 ㅋ

미미 2021-07-19 09:12   좋아요 2 | URL
저는 북마크 스티커 투성이예요ㅋㅋㅋ😊
 

그리하여 그는 내게 현인 멘토의 위엄 있는 친절함과 젊은아나카르시스의 열렬한 호기심을 동시에 증명해 보였다.
- P51

* 멘토는 오디세우스의 친구이자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의 가정교사로서, 아테나 여신이 이 현인으로 가장해서 아버지 오디세우스를 찾아 나선 텔레마코스를 도왔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많은 작품을 낳았으며, 그중에서도 프루스트는 17세기 작가 폐들롱 (Fénelon, 1651~1715)이 쓴 『텔레마크의 모험』과특히 ‘멘토‘를 아나카르시스(아나카르시스의 그리스 여행』)와 연결한 18세기바르텔레미(Barthélemy, 1792~1835) 사제의 『텔레마크를 참조한 것처럼 보인다. 아나카르시스(Anacharsis)는 고대 그리스를 관통하면서 다양한 인식과 지혜에 입문한 인물로 순수함과 자연으로의 회귀를 상징한다.
- P51

그는 문학에 대해, 마치 로마나 드레스덴의 고급 사교장에서 만나 아주 좋은 추억을 간직했지만 지금은 삶의 여러 다양한 의무 때문에 거의 만나지 못하는 어느 존경할 만한 매혹적인 여인에대해 말하듯이 아주 공손하게 말했다.  - P52

같은 시대에 속한 것들은 모두가 닮는 법이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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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7-16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미미님 드디어 ✌️ ̆̈권 남았네요 ᵔᴥᵔ

미미 2021-07-16 22:36   좋아요 2 | URL
헤헤~♡ 다시 빠져들어가 보려구요!! 🤭

새파랑 2021-07-17 15: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신기 ~ 저 이 글 보기 전에 8권 시작 했는데 😄
 

「안녕히 계세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친구!」이반 알렉세예비치는 말했다. 당신의 호의와 친절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 베푼 친절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당신도, 당신 따님도 좋은 사람들이에요. 여러분들 모두가 선량하고 쾌활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에요……. 너무훌륭한 분들이라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 모를 정도입니다!」넘치는 감정과 방금 마신 과실주의 영향 때문에 아그뇨프는 신학생이 말하는 투로 가락을 실어 말하고 있었다.
감동에 복받친 그는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도 모자라서 눈을 찡긋거리며 어깨마저 움찔거렸다. 쿠즈네초프역시 술기운에 감정이 넘쳐서 젊은이에게 몸을 기울이고입을 맞추었다.

(이런 상황에 부끄러움은 취하지 않은 사람들 몫이지ㅋㅋㅋㅋㅋ) - P90

지평선 위에 두루미들이 가물거리고, 산들바람이 이들의 애원하는 듯한 혹은 기뻐하는 듯한 울음을 실어오기도했지만 몇 분 뒤에는 아무리 애써 푸른 저편을 응시해도점 하나 보이지 않고,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바로 이처럼 사람들의 얼굴이나 말도 삶 속에서 명멸하다가는 과기 속으로 가라앉아 버리는 것이다.  - P91

팔월의 달밤에 깔린 안개를 바라보면서 아그뇨프는 자연 그대로가 아닌 꾸며진 무대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느낌은 아마도 생전 처음인 듯했다.

(이런 느낌 나도 어렴풋이 느낀 기억이 있다.
찰나를 놓치는 일반인들과 그것을 포착하는 작가들. 그 차이가 위대한 문학을 드러내겠지!) - P93

아그뇨프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쿠즈네초프의 딸인 베라였다. 이 스물한 살 난 처녀는 늘 수심에 잠겨 있었으며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다녔지만 재치 있는 여성이었다. 공상을 즐기고 하루 종일 누워서 손에 잡히는 책은 무엇이든느긋하게 읽으며 따분해하고 우울해하는 아가씨, 이런 아가씨들은 대체로 아무렇게나 차려입는 법이다. 자연으로부터 미적인 취미와 본능을 부여받은 이 아가씨들에게 부주의한 옷차림은 오히려 특별한 매력을 가져다준다. 

(베라! 이름도 예쁘닷) - P93

 이 치마의주름과 숄에서는 한없는 느긋함과 가정의 평화, 그리고 안온함이 배어나왔다. 아그뇨프가 베라의 단추 하나하나, 주름 하나하나에서 따뜻하고 편안하고 단순한 무언가를 읽을수 있었던 까닭은 아마도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것은 진실되지 않거나 아름다움에 둔감한 차가운 여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선량하고 시적인 그 무엇이었다.
- P94

베로치카의 드러난 머리와 숄을 바라보는 사이 아그뇨프의 기억 속에서는 지난봄과 여름의 나날들이 하나씩 하나씩 되살아났다.
그것은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자신의 잿빛 방으로부터 멀리떨어져 착한 사람들의 친절과 자연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즐기며 보낸 시간이었다. 행복에 겨운 그는 아침놀이 저녁놀로 바뀌는 것도 몰랐으며, 처음에는 종달새가, 그 다음은 메추리, 뒤이어 뜸부기가 여름의 끝을 예고하듯 차례차례 울음을 멈춘 것도 모르고 지낸 것이다……. 시간 가는줄도 모를 만큼 행복하고 편안한 생활이었다.……. 부자도

(베로치카를 베라라고도 부르는구나!) - P97

구름아래로는 종달새가 은방울 같은 울음소리를 허공 속으로뿌리며 바삐 날아다녔고, 푸르러 가는 전답 위로는 갈까마귀가 고고하게 날개를 흔들며 선회하고 있었다.
- P98

침을 튀기고 주먹으로 책상을 쾅쾅 두드리며 끝없이 계속되던 전형적인 러시아식 논쟁들이 기억났다. 서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남의 말에 끼어들고 스스로 앞에 했던 말과 모순되는 주장을 일삼으며 닥치는 대로 주제를 바꿔가면서 두세 시간씩 계속되는 그런 논쟁 끝에 사람들은 웃으며 말하곤 한다. - P99

이별과 과실주에서 비롯된 우수, 온정과 감상적인 기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날카롭고 거북한 소심증이 그 자리를 채웠다.  - P103

울고 웃으며 그리고 속눈썹에 영근 눈물 방울을 반짝이며 그녀는 말했다. 처음 알게 된 날부터 그의 독창성과 지성과 선량하고 영리한 눈빛, 그의 일과 인생의 목적에 감탄했으며, 그를 열렬하게, 미칠 듯이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고, 여름날정원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현관에 놓인 그의 망토를 보거나 멀리서 들리는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그녀의 심장은 행복한 기대로 서늘해졌다고, 그가 던지는 싱거운 농담들조차도 그녀를 깔깔 웃게 만들었으며, 그의 공책에 적힌 숫자 하나하나에서 지적이고 위대한 무언가가 느껴졌고, 그의 옹이 투성이 지팡이까지도 그녀에게는 근사한나무로 만든 물건처럼 보였다고.
- P104

이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느낌은 묘한 것이었다. 마샤가나의 마음속에서 불러일으킨 것은 욕망도, 열광도, 쾌감도아니었으며 어떤 달콤하면서도 괴로운 슬픔이었다. 그것은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마치 꿈처럼 모호한 슬픔이었다.

(영화 ‘달콤한 인생‘이 떠오른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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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7-17 21: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체호프 단편집 표지의 그림을 보니까, 전에 이 그림을 두고 설명한 내용 읽었던 것이 생각나네요.
아는 만큼 더 많이 보인다고 하는 말도 생각나고요.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 설명을 읽어서인지, 한 번 더 시선이 가는 것 같아서요.
주말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좋은 밤 되세요.^^

페크pek0501 2021-07-18 13: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광팬이에요. 이렇게 흥미로운 소설집을 만나기가 쉽지 않더군요.
반복해 듣고 싶어서 오디오북을 찾아 봤는데 제작되지 않았나 봐요.

미미 2021-07-18 13:59   좋아요 0 | URL
아 오디오북이 있으면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겠네요!! 더 다양한 작품들이 녹음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 책의 몇몇 작품들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요~♡
 

「우리 인생이나 저승 세계나 매한가지로 불가해하고 무섭습니다. 유령을 두려워하는 자라면 나도, 저 불빛들도, 그리고 저 하늘도 두려워해야 마땅하지. 왜냐하면 이 모두가잘 생각해 보면 저승의 망령들만큼이나 불가해하고 환상적이니까. 햄릿 왕자가 자살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혹시라도죽음 뒤의 꿈속에서 망령들이 나타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오.  - P19

그녀의 목소리와 창백한 얼굴은 분노를 담고 있었지만그 눈은 부드럽고 열정적인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미 나는 이 아름다운 존재를 나의 소유물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나는 그녀가 지금껏 본 적이없는 찬란한 황금빛 눈썹을 가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그녀를 품에 안고 애무하고 그 눈부신 머릿결을 쓰다듬을
수 있다고 상상하니 갑자기 너무나 꿈만 같아서 나는 미소 지으며 눈을 감았다.

(아 어떻게 이렇게 쓰지? 특히 눈을 감았다니..
역시 오디오와 활자는 느낌이 다르닷) - P30

나는 내 방으로 갔다. 테이블 위의 책 옆에 드미트리 페트로비치의 모자가 놓여 있었고 그것은 나에게 그의 우정을 상기시켜 주었다. 나는 단장을 들고 정원으로 나갔다.
거기에는 벌써 안개가 피어올랐다. 아까 강에서 보았던 그키 크고 홀쭉한 망령들이 나무와 덤불 사이를 배회하며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이들과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응? 누구랑???)

평소와 다르게 투명한 공기 속에서 잎사귀 한 잎 한잎, 이슬방울 하나하나가 뚜렷하게 구별되어 보였다. 그모두가 몽롱한 정적 속에서 나에게 미소 짓고 있었다. 초록색 벤치를 지나가다가 나는 셰익스피어 연극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달빛은 여기 벤치 위에서 저토록 달콤하게 잠들었구나!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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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7-16 0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 연극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저도! 오늘 셰익스피어의 연극 한구절(한편/두편)을 떠올렸는데!!

체호프의 단편들은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에 읽으면 그 느낌이 ✌이지만

미미님이 밑줄 쫘악 쳐주시는거 따라 읽는것도 재미 ✌

미미 2021-07-16 00:52   좋아요 2 | URL
어쩐지 통한 느낌이네요😉
아 스콧님이 올려주신 글 읽었는데 셰익스피어도 그렇고 후반 발췌문들 다 좋아서 아침에 맑은 정신으루 다시 읽어보려구요! 으앗~결국엔 셰익스피어인가요~ㅎㅎ💕

새파랑 2021-07-16 06: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다시 읽으려고 꺼냈어요 😊 역시 밑줄장인 미미님~!!

미미 2021-07-16 09:25   좋아요 2 | URL
너무 재밌어요!! 놓지 않았으면 밤새야 했을 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