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은 당연한 것처럼 고착화되어 자본주의 착취의 근간이 되었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전쟁터라면 여성은 전쟁터의 군인에게 할당된 전리품이다.


어제 EBS에서 ‘위대한 수업‘을 방송했는데 주디스 버틀러가 나와 젠더 이분법의 모순에 관해 설명했다. 그런데 그녀를 두고 일부 단체들에서 방송금지를 요청하는 등 비난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가 참 기가막히다. 2021년의 마녀사냥을 보는 기분이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유사한 주장을하는 언론매체 기사를 읽었다. 근거를 찾기 위해서였지만 찾지못했다. 그것도 교수란 사람이. ‘누가 그러더라 그러니까 그런거다.‘ 식이다. 믿기지가 않는다. 왜곡은 힘이세다. 휩쓸리기는 쉬워도 맥락을 정확히 살펴보려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건강한 토론문화가 부재해 이것은 더 큰 문제가 된다.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도덕적가치,남녀의 자연질서, 가정의 소중함의 기준은 그들이란 말인가?
옳고 그름의 기준,무질서와 부도덕,혼돈의 기준도 그들ㅋㅋㅋㅋㅋ 갑자기 이 단어들이 무척 낯설게 느껴진다.

사진출처:블로그 행성B









여성이 어떻게 착취당하는지 알지 못하면 남성이 어떻게 착취당하는지도결코 알 수 없다 - P38

임금 노동을 정의할 때, 흔히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은 생산적이지 않다고주장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구조가 어마어마한 양의 사회 서비스를 사적 활동으로 탈바꿈시켜 주부에게 떠맡긴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실제로는 그와 정반대임을 알 수 있다. 

가사노동이 본질적으로 ‘여성의 노동인 건 아니다. 여성이라고 빨래나 청소를 하면서 남성보다 자아를 더 많이 실현하거나 남성보다 덜 힘들진 않다. 빨래나 청소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므로 사회 서비스이다. 자본은 정확히 자본주의 가족 구조를 제도화함으로써 남성을 이런 사회 서비스 역할에서‘해방시켰다. 따라서 남성은 온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직접적으로 착취당하게된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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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1-09-22 15: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밑줄 친 내용을 보면서 욱!하는 심기가 도지네요. 저런, 자연의 질서를 주장하면서 옳고 그름의 기준을 따지면 어쩌자는 것인지. 모순이잖아. 자연에 애초에 옳고 그름이 있지도 않거니와 이런 식으로 반대하면 그 기준을 누가 만들었는지 시비거리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요. 기존의 낡은 관습과 생각을 고치기 위한 도전 의식을 고취시키지 못할 망정 불도저로 막으려고 몹쓸 짓을 저질렀군요.

미미 2021-09-22 15:18   좋아요 4 | URL
네! 결국 자신들만이 객관,도덕적, 옳고 그름의 기준이라는 거고 자신들과 다른 기준은 무질서와 부도덕, 혼돈조장이라는 역시나 이분법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거죠. 이러한 혐오 조장보다 제대로된 건강한 비판을 했으면 좋겠어요.

새파랑 2021-09-22 15: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깨어있는 EBS네요~!!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들으려 하거나 알려고 하는 태도가 필요한데 무작정 비난하는 건 좀 🙄

미미 2021-09-22 16:01   좋아요 2 | URL
다행이죠! 5강까지 아직 4회가 더 남았는데 무사히 다 방송되었으면 좋겠어요! 고정관념과 틀을 깨자는게
범죄를 저지르자는 것으로 와전되는게 답답해요. 다른 생각을 존중하도록 토론 방송도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독서괭 2021-09-22 16: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강의 들었습니다! 성별이분법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는 규범에 불과할 뿐이라는 거, 들으면 이해할 수 있는데 저분이 누군지 몰라도 문해력이 많이 떨어지네요. 우리가 이해합시다..

미미 2021-09-22 16:43   좋아요 4 | URL
괭님도 본방사수하셨군요! 다른 강의보다 너무 짧게 느껴져서 아쉬웠어요.ㅎㅎ
강의는 일반 대중을 고려해서인지 책보다 훨 이해쉽게 이야기해서 더 좋았고요.

수이 2021-09-22 2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들바들 떨면서 (왜 떨었대? 너무 좋아서 ㅋㅋㅋㅋㅋㅋ) 보았는데 1분 지난 거 같은데 내일 만나자고 그래서 앗 😦 했지요. 오늘도 본방사수~ :)

미미 2021-09-22 21:41   좋아요 3 | URL
저는 5분 정도로 느꼈는데 비타님 분명 저보다 더 좋으셨나봐요!ㅋㅋㅋㅋ👍
오늘도 기대됩니다ㅋ🤭

mini74 2021-09-22 22: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보편적이고 객관적의 기준이 뭔지 가정의 정의가 뭔지부터 제대로 정립되야 할 것 같은데요. 정말 분노가 !!!! 그나저나 이 프로 너무 좋아요. 시청료의 유일한 쓸모가 ebs인듯합니다.

미미 2021-09-22 22:41   좋아요 3 | URL
저런 주장의 헛점을 보지 못하고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청소년들이 걱정입니다. 제대로 된 독서, 문해력이 필요한 이유로도 보이고요. EBS나 OBS에서 이런 유익한 프로를 많이 해서 좋아요!🤭

막시무스 2021-09-23 13: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괜시리 자기가 정한 기준과 가치관이 무너지고 궁극적으로 자기 이익에 반하니깐 저 난리를 치나 보네요.
저는 강연자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페미니즘은 더더욱 모르지만 그래서 알고 싶고 더군다나 전 대 석학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왜 나까지 못보게 하는건지 모르겠어요. 보기 싫으면 안보면 자기나 안보면되지!ㅠ 대한민국 사람들의 수준을 뭘로보고 가르치려 드는지...

미미 2021-09-23 13:59   좋아요 0 | URL
그렇죠! 각자가 판단할 문제인데 그런 기회를 박탈할 권리는 그들에게 없다고 봅니다. 더구나 요즘 시대에 어떤 방송을 하라 마라하는게 말이 되지 않죠. 다양한 의견들이 자유롭게 오고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헤겔은 철학계의 록스타였고 쇼펜하우어는 무명이었다. 예상할 수 있듯이 쇼펜하우어의 강의에는 학생이 채 다섯 명도 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쇼펜하우어는 다시는강단에 서지 않았다.
- P170

우리는 광각의 세상에서 망원 렌즈로 찍은 사진 같은 삶을 살아간다. 전체적인 그림은 전혀 볼 수 없다. 우리가 택할 수 있는유일한 건강한 반응은, 중국의 농부처럼 아마도 철학‘을 취하는것이다.

👈👈👈👈👈 - P172

톨스토이와 바그너는 자기 서재에 쇼펜하우어의 초상화를 걸어두었다. 아르헨티나 작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쇼펜하우어를 원전으로 읽으려고 독일어를 배웠다. 여러 코미디언도 쇼펜하우어를 사랑한다. 이로써 유머 뒤에는 암울함이 도사린다는 의혹이 사실임이 드러난 셈이다.
- P175

다른 철학자들이 저 바깥세상을 설명하려 시도한 것과 달리 쇼펜하우어는 내면세계에 더 관심이 많았다.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면 이 세계도 알 수 없다. 이 사실은 내게 믿을 수 없을 만큼 명백하다. 왜 그토록 많은 철학자가, 다른 방면으로는 똑똑한 작자들이, 이 사실을 놓치는 걸까? 내 생각에 그 이유 중 하나는 외부를 살피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환한 불빛 아래서자기 열쇠를 찾는 술주정뱅이나 마찬가지다.
- P175

모든 페티시fertish에는 정반대에 있는 혐오가 똑같이 따라오고,
모든 열정에도 상보적인 짜증이 따라온다. 쇼펜하우어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강렬한 음악 사랑은 그에 상응하는 소음 혐오를 낳았다.
- P176

정신적 소음은 우리를 방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음은 다른 소리를 가린다. 시끄러운 환경에서 우리는 신호를 놓치고 가야 할 길을 잃는다.  - P178

책만 열면 바로 해답이 있는데 골머리를 썩일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쇼펜하우어는 대답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생각해서 해답을 내놓는 것이 100배는 더 가치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사람들이 자기 생각과 함께 머무르지 않고 너무 자주 책 앞으로 달려간다고 말했다. "책은 자기생각이 고갈되었을 때만 읽어야 한다."
- P179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썼다. "정보는 그저 통찰로 향하는 수단일 뿐이며 정보 그 자체에는 거의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다. 이런 과도한 양의 데이터 (사실상 소음)는 가치가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이며, 통찰의 가능성을 없앤다. 소음에 정신이팔린 사람은 음악을 듣지 못한다.
- P179

정원과 철학은 서로 잘 어울린다. 프랑스 계몽주의의 총아였던볼테르는 "우리는 반드시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 라고말했다.  - P190

장소는 중요하다. 장소는 생각의 보고다. 그래서 내가 여행을하는 것이며, 그래서 지금 에피쿠로스와 그의 정원의 흔적을 찾아 아테네에 와 있는 것이다. - P191

자신이 무엇을 찾고있는지 알아야만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임기응변할 수 있는 재치가 가장 훌륭한 안내자다.
- P191

죽음에 관해서 에피쿠로스는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고 말한다.
물론 죽어가는 과정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은 그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 고통에는 본질적으로 끝이 있다. 그 고통은 평생 지속되지 않는다. 고통이 가라앉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쪽이든 두려워할 것은 없다.
- P196

에피쿠로스는 늘 그렇듯도발적인 문체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명예가 있는 자와 헛되이 그들을 찬양하는 자에게 침을 뱉는다. 쾌락은 우리가 그 자체로서 욕망하는 유일한 것이다. 그 밖의 모든 것, 심지어 철학까지도, 쾌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한 수단이다.
- P197

에피쿠로스는 쾌락이 최고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어린아이는 무엇에 반응하는가? 쾌락과 고통이다.
불이 뜨겁다는 것과 사탕이 달콤하다는 것은 아이에게 가르쳐줄필요가 없다. 알아서 알기 때문이다.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것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반사적인 행동이다.
- P197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규정했다.
우리는 존재의 차원에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긍정 정서 positiveaffect 의 차원에서 쾌락을 떠올린다. 반면 에피쿠로스는 결핍과 부재의 측면에서 쾌락을 규정했다. 그리스인은 이러한 상태를 아타락시아atarakia 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를 만족으로 이끄는 것은 어떤 것의 존재가 아니라 바로 불안의 부재다. 쾌락은 고통의 반대말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를 뜻한다. 에피쿠로스는 향락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평정平靜주의자 였다.
- P197

내가(저자) 가장 갈망하는 것은 명성이나 부가 아닌 마음의 평화,
"존재하는 데서 오는 순수한 기쁨이다. 그러한 상태를 무언가의 부재가 아닌 측면에서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 P198

쾌락의 사다리 맨 위에는 "자연스럽고 반드시 필요한 욕망이있다. 예를 들면 사막을 걸어서 통과한 후에 마시는 물 한 잔 같은것이다. 그 밑에는 "자연스럽지만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욕망이 있다. 사막을 통과한 후에 물 한 잔을 마시고 나서 마시는 소박한 테이블 와인 한 잔 마지막으로 피라미드 맨 밑에는 자연스럽지도,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 에피쿠로스가 말한 "텅 빈"
욕망이 있다. 

사막을 걸어서 통과한 후에 물 한 잔을 마시고 나서테이블 와인을 마신 다음 마시는 값비싼 샴페인 한 병이 여기에해당한다. 에피쿠로스는 이 텅 빈 욕망이 가장 큰 고통을 낳는다고 했다. 이 욕망은 만족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두려움 없이짚으로 만든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황금 의자와 호화로운 식탁을 앞에 두고 걱정에 빠져 있는 것보다 낫다."
- P199

에피쿠로스는 기운 내라고 말한다. 자연이 당신을 돌봐줄 것이다. 자연은 반드시 필요한 욕망은 채우기 쉽게, 불필요한 욕망은채우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사과는 나무에서 열린다. 테슬라자동차는 나무에서 열리지 않는다. 욕망은 우리를 최고선으로 이끌고 텅 빈 욕망에서 멀어지게 하는 자연의 GPS다.
- P201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가진 것이아니라 우리가 즐기는 것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며, 올바른 마음가짐만 갖춘다면 아주 적은 양의 치즈만으로도 소박한 식사를성대한 만찬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 P202

톰은 모든 쾌락은 좋은 것이고 모든 고통은 나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고통 대신 쾌락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어떤 쾌락은 미래의 고통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그러므로 피해야 한다. 폐암의 고통은 흡연의 쾌락보다 더 크다.
마찬가지로 어떤 고통은 미래의 쾌락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러므로 견뎌야 한다. 예를 들면 운동을 하는 고통이 그렇다.
- P209

베유는 1909년 파리에서 지독하게 세속적이고 매우 지적인 가족의 딸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책에서 위안과 영감을 찾았다. 열네 살에는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 대부분을 암기했다 - P221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지금 당장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바로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인 것만이 우리 앞에 존재한다. 이건 은유가 아니다. 사실이다. 많은 연구에서 나타나듯이 사람은 자신이 관심을 기울이지않은 것을 보지 못한다.
- P222

관심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어디에 관심을 기울이기로결정했느냐, 더 중요하게는 어떻게 관심을 기울이느냐가 곧 그 사람을 보여준다. 지난 삶을 돌아볼 때 어떤 기억이 표면 위로 떠오르는가? 어쩌면 결혼식처럼 커다란 사건일 수도 있고, 우체국의말도 안 되게 긴 줄에서 뒤에 선 사람과 나눈 뜻밖의 다정한 대화처럼 작은 사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은 가장 주의를 기울인 순간일 확률이 높다. 우리의 삶은 가장 열중한 순간들의 총합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베유는 "가장 큰 희열은 가장 온전하게주의를 기울였을 때 찾아온다" 라고 말했다.
- P222

베유는 "가장 큰 희열은 가장 온전하게 주의를 기울였을 때 찾아온다"라고 말했다. 이런 드문 순간에 우리는 베유가 "극도의 관심"이라 부르고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몰입"이라 부른 정신 상태에 진입한다.

몰입 상태가 되면 자의식이라는 허울이 사라지고 전과 다른 시간감각과 더욱 고조된 현실감을 경험한다. 모든 것이 현실보다 더생생하다. 대부분의 삶과 달리 몰입은 "그 자체를 계속 추구하게될 정도로 매우 보람 찬 상태"라고, 칙센트미하이는 말한다.
- P223

베유는 중국의 기근 소식을 듣고 눈물을 왈칵 터뜨렸다. 동료철학자였던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보부아르는 이렇게 회상했다. "전 세계에 맥박이 울리는 심장을가진 그녀가 부러웠다."  20세기 프랑스 철학의 거장이자, 당시에는, 그리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남자들만의 클럽인 곳에 여성회원이었던 두 시몬은 1928년 소르본 대학의 안뜰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 P227

생산성을 높이기위해, 더 훌륭한 노동자나 부모가 되기 위해 관심을 기울이지 말것. 그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동이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이유에서 관심을 기울일 것.
- P227

베유는말한다. 보답에 대한 기대 없이 타인에게 온전한 관심을 쏟을 때에만 우리는 이 "가장 희소하고 순수한 형태의 너그러움"을 베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나 연인에게서 관심을 받지 못하는 - P227

다른 많은 기차역처럼 세인트판크라스역도 기능과 아름다움이라는 두 가지 다른 목12적을 품고 지어졌다. "Mi-usine, mi-palais." - 반은 공장, 반은 궁전, 1851년 런던에서 수정궁 대박람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된 이후 여러 도시가 기차역의 앞면은 돌 벽으로, 중앙 홀은 유리와 강철로 짓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바로 야누스적 건물,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건축학적 역설이다.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적 문제에 맞붙을 수 있는유일한 장소는 기차역이라고 말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기차역은 돌과 강철의 모습을 한 철학이다. 예술과 상업을 향한 기차역의 이중적 충성은 가끔은 역설적인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기차역은 공장이다. 기차역은 궁전이다. 두 서술 모두 사실이다.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 P230

불안에서 나오는 지적 조급함이다. 지적 조급함은 물에 빠진 사람이 칼이라도 붙잡으려 하는 것처럼 나쁜 아이디어라도 붙잡으려고 한다. 베유는 우리의 모든실수가 "생각이 아이디어를 너무 성급하게 붙잡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며, 이렇게 일찍 차단되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고 말한다.
- P238

모든 부주의는 이기심의 한 형태다. 우리는 그게 무엇이든 간에 자기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나머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보다 더 흥미롭고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들이 그토록 부주의한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억눌려 있고, 정체되어 있다. 관심은 우리 삶의 피다. 피는 잘 돌아야 한다. 관심을 썩히는 것은 곧 삶을 죽이는 것이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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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9-21 21: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오늘은 추석입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고 계신가요.
보름달처럼 좋은 소원 이루시고,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미미 2021-09-21 22:13   좋아요 3 | URL
네~♡ 서니데이님도 연휴 잘 보내고 계신지요. 요 며칠은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았어요.🤭

scott 2021-09-22 0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광각의 세상에서 망원 렌즈로 찍은 사진 같은 삶을 살아간다. 전체적인 그림은 전혀 볼 수 없다. 👈
우리는 현란한 SNS시대에 별그램용 사진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은 ㅋㅋㅋㅋ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건강한 반응은
👈

。 ♡ 。  ♡。  ♡
♡。 \  |  /。 ♡
 좋아요 💗👆
♡。 /  |  \。 ♡
。 ♡。   。  ♡。

미미님 이책 재독 하시는 중인가봐여 ? ^ㅅ^

미미 2021-09-22 06:11   좋아요 2 | URL
아앗 스콧님 ㅋㅋㅋㅋㅋ아직 완독하지 못한거예요ㅋㅋ
오랜만에 생각나 펼쳤어요~♡ 😳🤭😍
 

사는 동안에도 죽은 후에도 또 그 후에도 평판이나 명성. 그런건 어찌될지 단정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저 자기답게, 원하는 대로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온전한 자신의 빛깔로. 이왕이면.

헤겔은 철학계의 록스타였고 쇼펜하우어는 무명이었다. 예상할 수 있듯이 쇼펜하우어의 강의에는 학생이 채 다섯 명도 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쇼펜하우어는 다시는강단에 서지 않았다.
- P170

다른 철학자들이 저 바깥세상을 설명하려 시도한 것과 달리 쇼펜하우어는 내면세계에 더 관심이 많았다.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면 이 세계도 알 수 없다.  - P175

모든 페티시Fetish에는 정반대에 있는 혐오가 똑같이 따라오고,
모든 열정에도 상보적인 짜증이 따라온다.  - P176

정신적 소음은 우리를 방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음은 다른 소리를 가린다. 시끄러운 환경에서 우리는 신호를 놓치고 가야 할 길을 잃는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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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1-09-21 17: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미 님은 글 제목을 잘 뽑으세요. 간결한데 정곡을 찌르는 메시지를 전하는 제목 때문에 궁금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어요.
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실 테지요 ^^

미미 2021-09-21 18:19   좋아요 2 | URL
헤헷~😆 감사해요~오거서님!!
오거서님도 풍성하고 유쾌한 한가위 보내고 계시겠죠?!🙋‍♀️🌜🌕

북다이제스터 2021-09-21 19: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인용문 읽으니 제겐 헤겔보다 쇼팬하우어가 더 좋은 이유를 알겠습니다. ^^

미미 2021-09-21 19:17   좋아요 3 | URL
저도 이 부분들 읽으며 쇼팬하우어가 더 좋아졌어요!ㅎㅎ😆😉

새파랑 2021-09-21 19: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제목뽑기 천재 미미님~!! 사람일은 모른다는건 최근에 부쩍 많이 느끼는거 같아요. 그런데 알수 없는 인생이기 때문에 재미있는거 같아요^^

그레이스 2021-09-21 19:20   좋아요 3 | URL
제비뽑기로 읽었어요ㅋㅋ
뒤에 문장까지 쭈욱 말이 돼서

미미 2021-09-21 19:20   좋아요 2 | URL
역시 통찰력 천재 새파랑님! 탁월한 결론입니다👍👍제스타일이기도 하고요ㅋㅋ😆

미미 2021-09-21 19:2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저 제비뽑기천재😍
 

 지식은 귀를 단련시킨다. 어디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알게 되고, 딴 생각에 빠질 가능성이 줄어든다.

🌸🌸🌸🌸🌸 - P168

진정한 듣기를 위해서는 판단을유보해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이처럼 아무런 판단 없이 음악을들을 때 "절대적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 P169

쇼펜하우어에게는 느린 멜로디가 가장 아름다운 슬픔이었다.
그는 느린 멜로디를 "발작적인 울부짖음"이라 부른다.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좋은 예다. 나는 슬플 때마다 이 곡을 듣는다. 내 생각에 이건 자기 고통에 푹 빠진 자기밖에 모르는행동이 아닌, 무언가 더 숭고한 행위다. 

그 음악은 내 슬픈 기분과잘 어울리고 내 감정을 인정해주지만 한편으로는 슬픔의 원인과거리를 두게 도와주기도 한다. 나는 슬픔을 삼키지 않은 채, 또는슬픔에 삼켜지지 않은 채 슬픔을 경험할 수 있다. 그 씁쓸함을 음미할 수 있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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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21 1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이책 아직도 읽으시는건가요? 😄
지식은 귀를 달련시킨다니 저는 눈을 단련시키는거 같아요~!@

미미 2021-09-21 11:5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아직도 못읽은 책 엄청 많아요😆😭
 

자본은 핵가족을 확립했고, 그 안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다. 여성은 사회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독립적 존재로 노동 시장에드러내지 못하는 종속적 존재가 되고 만다. 남성에게 종속되면서 여성은 독창성을 펼칠 가능성, 노동 활동을 성장시킬 가능성을 차단당한다. 마찬가지로, 여성이 성적, 심리적, 정서적 자율성을 표명할 길도 역시 가로막히고 만다.
- P35

반복해서 말하지만, 뇌부터 자궁까지 여성 신체의 온전함이 이토록 심하게손상된 적은 없다. 다른 이들과 함께 기차, 자동차, 비행기 생산에 참여하는 일과,
수백 년간 한결같이 고립된 채 몇 발자국도 되지 않는 부엌에서 끝도 없이 빗자루질을 하는 일이 같을 수는 없다.
- P36

여성은 창조적 능력을 성장시킬 가능성을 강탈당했듯이 성생활도 강탈당했다. 여성의 성생활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기능으로 대체되었다.  - P36

사회화된 생산에서 여성이 당하는 착취를 규명한 이들조차 가정에서 착취당하는 여성의 지위를 이해하는 데까진 나아가지 못했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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