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꾸미기 관련 방송이 늘어난것 같다.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집 안에서의 생활이 늘어나다 보니 당분간 계속 인테리어의 중요성은 커지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집의 규모가 크건 작건 서울이건 지방이건 대체로 주부들의 책상이 없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자기만의 방'을 읽고나서 여성이 자신의 공간을 가지는 것의 중요성이 더 크게 와닿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공간을 만드는 과정은 처음부터 꼭 단독으로 쓰는 방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형편에 따라 어디에 두건 책상 하나로 시작할 수도 있다. 내 책을 올려놓고 내가 뭔가 생각을 정리해 써 낼수 있는 한 평의 공간. 그것의 있고 없고는 개인 삶의 확장에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방송에서 주부들의 공간이라고 보여주는 것은 주로 주방이다. 여성들의 자투리 공간을 위해서는 아일랜드 테이블을 넉넉히 잡거나 식탁을 활용해 주부들이 거기서 가계부도 쓰고 노트북고 사용한다는 식이 대부분이다. 동선이 편하고 넉넉한 주방. 큰 냉장고와 각종 주방기구들로 꾸며진 모습이 그 주부의 삶의 여유와 행복을 나타내는 듯 그려진다. 이 외에 수납이 충분한 옷방정도가 추가로 등장한다. 책상을 놓을 자리는 역시 없다. 최근에 본 어떤 방송에서는 일 때문에 이사를 자주 다녀야했던 남편이 아내를 위해 새로 집 전체를 아내가 원하는 대로 설계했다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역시나 주방에 가장 큰 포커스가 맞춰졌고 은퇴한 남편을 위한 서재공간이 따로 있었다. 뜨개질을 좋아하는 아내는 거실에 앉아 뜨개질을 한다. 2층에는 손님방도 있다. 여유가 있던 남편은 아내를 위해 거실 전망을 신경썼다. 집 앞에 누군가 집을 지을까봐 그 땅도 구입했다. 아내가 남은 여생 가꿀 텃밭이라고 했다. 하지만 역시 아내의 책상은 없다.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일까? 여자들도 학생 때는 책상이 주어진다. 직장에 다니면서는 제각각이다. 책상이 빠지고 화장대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책상을 포기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부가 되는 순간 책상은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이들이 생기고 그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책상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된다. 남편은 책상을 가질 수도 있고 불필요하게 여긴다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집에 부부의 서재공간이란 것이 생긴다면 부부 공동이 사용하는 것이거나 대부분 남편의 것이다. "이 서재는 아내가 사용하고 있어요." 하는 곳은 장담하건데 아주 드물것이다.
주부들이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과 자신의 책상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이게 너무 답답하고 서글프다. 뭔가를 도모하려면 쓰기는 기본이다. 바꾸는 것 이전에는 일단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구상하고 도모하고 계획하고 문제를 직시하는 것. 그건 책상에서 이루어진다. 그 위에서 생각을 정리함으로써. 황정은의 소설 '연년세세'에서 눈물나는 장면이 있었다. 백화점에서. "언니! 가족들을 위해서 말고 언니를 위해서 좋은 이불 사요."
나는 바꿔 말하고 싶다. "언니! 가족들을 위해서 말고 언니를 위해서 좋은 책상 사요."
책상 말고, 화장대 (하이킥 시리즈에는 책상이 없다.)
‘책상의 부재‘는 대부분 여성 인물에게 해당됐다. 일기 쓰는 서민정, 노트북으로 인터넷 검색을 자주 하는 이현경, 공부하는 황정음과 백진희. 이들은 무언가를 공부하거나 읽고 쓸 때책상이 없어 화장대에 앉아야 했다. 남성 인물의 생활 환경을비교해 보면 문제점은 더욱 극명해진다. 공부와 담쌓은 이윤호에게도, 다락방 신세인 이민용에게도, 조연인 강세호에게도 모두 책상이 있다. 더 늘어놓자면 공부 안 하는 정준혁과안종석도, 백수인 이준하도, 똑똑한 이민호와 윤계상도 모두무언가를 하기 위해 책상 앞으로 향했다. 모든 시즌을 통틀어 공간의 크기와 열악함, 연령대, 주조연, 지적 수준, 성격을막론하고 남성 인물은 전부 자신의 일에 바로 몰입할 수 있는책상 하나쯤은 갖고 있었다. 반면 여성 인물의 방 풍경은 많이 다르다. 책상 자체가 없고, 필요할 때는 화장대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 P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