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은 언제나 과대평가되지만, 공포는 그렇지 않지. p.105
독서 정체기에 빠져있던 나를 가뿐하게 건져 올려준 작품. 배경은 멕시코. 변호사가 사랑에 빠진 여자친구 로라에게 다이아몬드를 선물한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그로 인해 빈털털이가 되다 시피 했고 그래서 투자자들의 돈으로 사업가 라이너와 마약밀매를 하려한다. 이 투자자들의 정체는 베일에 싸여 있지만 변호사 주변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경고한다. 그리고 그는 탐욕으로 인해 그들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의 연인 로라도 마찬가지로 무지를 택한다. 이 소설에서 핵심적인 인물인 말키나(라이너의 여자친구)가 로라에게 선물 받은 다이아몬드 반지의 가치를 아느냐고 묻자 로라는 알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녀는 연인의 사업에 관여하고 싶어하지않는, 신앙을 가진 '순수'한 이미지로 그려지고 말키나는 상대적으로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알고 있음은 물론이고 자기 연인인 라이너를 도청하여 사업내막까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 '타락한'이미지로 그려지는 그녀는 로라의 신앙을 조롱하듯 신부를 찾아가 고해실에서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고해실
신부: 어디 출신이시지요?
말키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신부님은요?
신부: 네?
말키나:어디 출신이신가요?
신부:애리조나 주 피닉스입니다.
말키나:피닉스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 여자와 데이트해 본적 있어요?
신부:아뇨. 당연히 없죠.
말키나:남자와는요?
신부:아뇨.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 P74
하지만 스릴러가 늘 그렇듯 일이 꼬이게 되고 변호사는 난감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 그제서야 웨스트레이(브로커)를 통해 좀 더 알게 된 투자자들의 정체는 끔찍한 공포 그 자체다. 결국 사랑과 탐욕에 빠지면서도 그 내막을 알고 싶어 하지 않던 이들은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코맥 매카시는 이러한 무지에 대해 여러차례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날린다. 테르티움 논다투르(라틴어로 '제3의 존재는 없다'라는 의미). 우리는 우리가 소비하는 것들로 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고기를 먹기 위해 직접 도축할 필요가 없고 플라스틱을 사용하기 위해 직접 제작할 필요가 없다. 그만큼 자본주의는 생산과정에서 멀어지는 소비자를 죄책감으로 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준다. 편리하고 간편한 것. 더 저렴하고 또는 더 고급스러운 것. 더 많은 풍요, 높은 고층건물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가 외면하게 되는 것들은 부족한 매립지와 탄소가스,미세플라스틱, 초미세먼지, 질병으로 되돌아 오고 있다.
웨스트레이: 스너프 필름 본 적 있나?
변호사: 아뇨. 본 적 있어요?
웨스트레이: 아니, 볼 생각은 있나?
변호사: 전혀요.
웨스트레이: 스너프 필름의 소비자는 그 생산에 필수적 존재인 법이지. 그걸 본다는 건 곧 살인에 연루된다는 뜻이야. - P99
마침 최근에 넷***에서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관한 다큐를 봤다. 미국의 거리에서 마약에 취해 쓰러진 사람들, 마약에 손을 댄 뒤 빠져 나올 수 없어 마약 딜러로 근근히 살아가며 스스로 계속 주사를 하는 비쩍마른 사람들. 그리고 멕시코에서 어떤 경로로 마약이 제조되고 유통되는지 업자들의 비공식적인 협조를 얻어 인터뷰가 이어지고 비밀스러운 이동경로를 추적해 보여준다. 수년간 중간책을 맡아 마약을 운반하고 있다는 한 청년은 말한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이 일을 계속 할 거니까. 이용자가 있는 한 이 사업은 망할 리 없으니까. 위험한 만큼 거액을 벌 수 있으니까 ."라고. '카운슬러'에서도 맥시코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정화조 차량이 계속 등장한다. 그 안에는 결코 분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품에서 드러난 공포와 위험의 내막에는 이런 마약 카르텔이 있다. 하지만 소설과 영화속에서 조직 말단의 무덤덤한 일처리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대사로 전해지는 핵심인물들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져 공포를 자아낸다. 소설을 읽고 바로 보게 된 영화도 그런 면에서 원작을 잘 살렸다. 모호한 것은 언제든 당사자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듯이. 먹거나 혹은 먹히거나.
우아하게 사냥감을 잡아먹는 모습은무척이나 감동적이에요. 언제나 그랬죠.
섹시한가요?
물론이죠. 그런 일은 늘 섹시하죠. 하지만 품위와 자유도 느껴져요. 사냥꾼은 다른 곳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죠. 사냥꾼은 무엇이 되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되지 않았느냐에 의해 더 잘 정의된다고 봐요. 그가 누구인가와 그가 무엇을 하는가 사이에 전혀 차이가 없죠. 사냥꾼이 하는 일은 다른 존재를 죽이는 거예요. 물론 우리는 다른 문제고요. 우리는우리가 선택한 길을 가기에 부적합한 것 같아요. 부적합할 뿐만 아니라 준비도 제대로 안 되어 있죠. 그 모든 피와 공포를 베일로 덮어 버리고 싶어 하니까. 그래서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심약한 마음 탓에모든 현실에 눈을 감아 버렸죠. 그리고 그 결과 우리의운명이 정해졌고요. 아마도 당신은 찬성하지 않겠죠. 글쎄요. 하지만 비겁한 인간보다 더 잔인한 것은 없어요. 그리고 다가올 대학살은 우리 상상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크죠. 이제 그만 뭘 주문할지 정할까요? 배고파 죽을 지경이에요. - P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