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젊은 교사의 삶이 자신이 가르치던 교실에서 영원히 멈추어 섰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장소가 가장 마음 아픕니다. 그곳이 아니면 개인적인 사유로 취급되거나 묻힐 거라 여긴 겁니다˝
- 허지웅


7월 20일 강남 한복판 서이초등학교 앞에는
초현실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셀 수 없이 많은 근조 화환이 가로.세로 100m인 학교 블럭 전체를 에워쌌다. ‘동료 교사 일동‘ 명의가 많았다. 인도 양옆에 들어선 화환 사이로는 검은 옷을 입은 추모객들이 줄을 지었다

학교 담장에 붙은 무수히 많은 메모지 중 하나에는 ˝교실을 구해라. 교사를 구해라.
더 많이 죽기 전에˝라고 쓰여 있었다
비 오는 날이었다.검은 옷 입은 사람 몇 명이 메모지가 붙은 곳마다 투명한 천막을 덮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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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서거8주기 추도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에는 다시 봉하마을에 오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처음에는 그만큼 본인 스스로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결의를 표한 것 정도로 생각했다. 또한 친구이면서 본인이 모셨던 분이기도 한 전임 대통령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를 생각하면서 감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니 그것은 우리 참모들에게 주는 강력한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고, 그렇기에 무조건 유능해야만 하고, 그렇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해야 한다.˝는 그런 주문 말이다

벅찬 마음 뒷편에는 너무나 명료하게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완수하기 전까지는, 그게 끝나기 전까지는 오지 않겠다˝는 결의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 결의는 대통령 혼자서 지킬 수 없는 것이므로 모든 참모들에게 향하는 메시지였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임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자각하고, 자신과 함께 일할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밝히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추도식에서 우리도 숙연했다. 청와대로 돌아오고 난 뒤에도 이와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문재인 정부가 정권을 재 창출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들이 추구했던 옳고 아름다운 가치는 임기가 없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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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별 (Unsung heroes)
국가안보를 위해 산화했으나 그 이름을 공개할 수 없는 정부 요원을 가르키는 표현이다

국정원은 2017년까지 국정원에서 순직한 18분을 각각 ‘별‘로 형상화하고 그 아래에
이런 글씨를 새겼다

소리 없이 별로 남은 그대들을 좇아
조국을 지키는 데 헌신하리라

국정원 본관 입구에 있는 ‘이름 없는 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제 우리가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예우를 꼬박꼬박 챙기는 나라가 됐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비록 그들의 이름과 공적을 드러내지는 못하더라도, 국가가 반드시 당신의 희생에 보답한다는 약속의 별이기도 했다

2017년 문재인대통령은 국정원 방문의 첫 번째 일정으로 이름 없는 별들 앞에서 헌화하고 묵념을 올렸다. 별 하나가 한 사람의 헌신이었다는 설명에 대통령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2021년 6월 대통령은 다시 국정원을 방문했다. 그 사이 이름 없는 별이 하나 더 늘어있었다
그 별을 보며 대통령은 말씀하셨다

˝이름 없는 별에 그사이 별 하나가 더해진 것에 대해 가슴이 아픕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름과 직책조차 남기지 않은 채, ‘오직 국익을 위한 헌신‘이라는 명예만을 남긴 이름 없는 별들의 헌신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별 하나에, 한 사람의 헌신이 담겨있으니,
바라보는 마음이 그렇다. 누군지. 왜 인지
알 수 없다. 물을 수도 대답할 수도 없다

가장 슬프고 아픈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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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 // 한번 정정당당하게 /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중에서


조국 전 장관 일가에게 느꼈던 분노가
윤석열 정권 앞에선 꺽이는 것인가?

왜 거악에는 분노할 줄 모르고, 불의를 보면 참고 제 불이익에만 민감하고 사소한 악에만 분노하는 것인가?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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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국회 개원 첫날이던 2004년 5월31일, 민주노동당 소속 초선 의원(10명)들이 국회에 등원했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노회찬(1956~2018)이 대답했다

“당사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 데는 5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우리 서민들 노동자 농민 대표가 여기까지 오는 데 사실 50년이 걸렸어요.”

‘진보정당’이 국회에 입성한 것은 1960년 4월혁명 직후 치러진 총선 이후 44년 만에 처음이었다.

노회찬은 이날을 자기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날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혁명가’ 노회찬은 미식가, 요리사, 첼로 연주자, 음악·예술 애호가 등 ‘낭만파’이기도 했다.

“그에게 세상은 점진적으로, 혹은 조건이 맞으면 혁명적으로 바꿔야 할 대상인 동시에 도처에 숨어 있는 삶의 즐거움과 기쁨을 찾아내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한국 사회가 한번도 대통령후보 노회찬을 경험하지 못한 채 그와 작별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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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7-17 17: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들의 국회 등원길 사진은
정말 비장해 보이네요.

그리고 너무 일찍 별이 되셔
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나와같다면 2023-07-17 17:56   좋아요 5 | URL
역사의 어느 순간을 기록하는 사진
유난히 마음이 많이 가는 사진들이 있죠.. 정말 비장함이 느껴지네요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던 사람, 노회찬

그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