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책 내용은 전혀 기억에 안 남고 이미지만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는 《김연의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가 그런책이다.
자작나무라는 이름을 그 책에서 처음 알게 되어서일까?
자작나무 하면 내용도 기억이 안나는 그 책이 떠오른다. 기억하고 있는 표현이 책 끝부분에 나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책 제목이라니..
도대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뭘까..
알라딘 서점에 올라온 소개글을 보니 더 오리무중이다.
정말 이런 내용이었을까 싶을 만큼..

그 자작나무를 최근에 처음보았다.
한그루씩 있는 것은 봤었는데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은 첨 보았다.
아직은 숲을 조성하고 있어서 인지
나무도 그리 크지 않고 숲도 크지 않았지만 몇년후면 제법 울창한 숲이 되어있을 것 같다.
다시 이 숲을 갈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나무가 울창한 숲은 무서운데
이 숲은 아직은 무섭다기보다는 가만히 앉아 멍~~ 때리고 있기에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후 일정때문에 서둘러 내려와야하는 것이 좀 아쉬웠다. 당분간 갈일이 없는 곳이라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7-05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05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 산수국

산수국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자주 봤는데 수국꽂잎이랑 비슷하게 생겼다고만 생각한 그 꽃이 산수국이었다니~~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reeze 2016-07-04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수국이라고도 하더라고요. ^^

지금행복하자 2016-07-04 13:14   좋아요 0 | URL
나비수국.. 이해가 가는 이름이에요 ㅎㅎㅎ 예쁜이름이네요~
 

한달에 한권씩 읽기.
벌써 영국편을 시작으로 미국.폴란드. 독일까지왔다. 미국편은 거의 읽지 못했다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모임에 참석하지 못해서 - 사실 혼자 읽을 수 있을것 같았는데 상황이 안 도와주더라만은- 거의 못 읽었다.

창비 단편 독일편은 지금까지 -비록 몇권 읽지는 못했지만 - 독일 문학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피터 한트케이나 하인리히 뵐. 헤르타 뮐러. 토마스 만..... 카프카는 또... 쉽게 읽혔던 작품이 없었다. 우리들끼리는 관념론의 나라가 아니라고 할까 그런지 드럽게 어렵다고 우스개소리를 할 정도였으니..

독일문학의 길잡이 입문의 역할을 하는것이 이 작품집의 목표라면 어느정도는 성공적인듯 하다. 이렇게 쉽게 읽히고 내용이 손에 잡히는 작품은 처음이라는 반응이니..
물론 한 두 작품은 제외하고 말이다.

여전히 카프카 작품은 카프카 스럽고
《어느 사랑의 실험》은 독일이라서 나올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해보고 통독이후의 일들을 다룬 발《라톤 호수의 물결》 《인도로 가는 항로는 없었다》는 분단국가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급공감하면서 읽게 되었다.

기억에 남고 다시 읽어보고 싶은 작가는 아무래도 하인리히 뵐의 《광고물 폐기자 》이다. 필경사 바틀비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지금의 직업인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되어서이나 보다. 학생도 주부도 직업이라고 말해야하는 시대에 살아서 인가보다. 직업을 댈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은 살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어서 공감을 이끌어 냈었을 수도 있다.

좀 더 깊이 들어가 읽어 볼 작가는 하인리히 뵐인것은 확실하다.
내년 리스트에 올린다. 하인리히 뵐..
《카트린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읽었고 《어느 어릿광대의견해》는 읽다 말았고..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는... 제목만 보고..
어느 작품을 읽게 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
좋아하는 배우가 나와 더 좋아하는 영화이다
케이트 윈슬릿. 그녀가 주연한 [더 리더]라는 영화.
어린 남자아이와 성인 여자와의 사랑이야기로 세간의 화제가 되었었던 영화.
그 영화에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라는 작품이 나온다. 안톤 체홉의 작품이다.
전범으로 교도소에서 복역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그 옛날 그녀를 사랑했던 어쩌면 지금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남자아이가 그녀가 책 읽어주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한권 한권 녹음해서 교도소로 보내 주었던 책들. 사랑이면서 죄책감이기도 하고 이것밖에 해 줄 것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지만 그 남자는 그녀가 교도소에 있는 동안 계속해서 녹음을 해서 보내준다.
그 옛날 사랑했던 남자와 사랑을 나눈 후 서로의 몸을 기댄 채 그 남자아이가 그녀에게 책 읽어주는 그 시간을 가장 사랑했던 한나는 이제는 교도소에서 그가 녹음해서 읽어주는 책을 듣는다. 그러면서 그녀는 인정하기 싫었던, 인정할 수 없었던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었던 그녀만의 치명적인 비밀 문맹을 깨기 위해 그녀가 해 왔던 일을 알기 위해 그녀는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의 목소리를 따라..
그 시작이 되었던 책이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었다.
녹음기에서 들리는 단어 하나하나를 꼭꼭 눌러 동그라미 해 가면서 소리와 글을 익혀가던 한나의 모습이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라는 작품을 만날 때 마다 떠오른다.



나에게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안톤 체홉이 아니라 <더 리더>의 한나에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볼 때 작품 속에 나오는 소품들이 그냥 등장하는 것은 아니기에 이 소설에 대해 호기심을 생기기는 했지만 흐지부지 시간이 흘러가고 체홉의 다른 작품을 읽을 기회는 있었어도 실상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만나지는 못했었다.
최근에 일러스트와 함께 새로 출간된 것을 보고 즉시 구입했다. 일러스트가 많이 들어가고 여백이 많은 책 읽기는 역시나 행복하다.


“ 정말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어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의 줄거리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하지만 간단한 줄거리 속에 던져지는 질문은 그때도 그렇겠지만 지금도 그 무게감이 만만치 않다. <더 리더>의 한나에게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 당시 거의 대부분의 남녀가 그랬듯이 정략결혼해서 그럭저럭 지위도 누리고 쾌락도 추구했던 디미트리라는 초로의 남자와 역시나 결혼해서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의 외침에 따라 여행을 떠나온 젊은 여자 안나 와의 휴양지에서의 만남... 뜨거운 사랑.. 열정..
그리고 제자리로의 귀환.... 그러나 이 만남이 그들에게 주어진 여파가 장난이 아니었었던 것이다.
그녀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면서도 자신이 취하고 안정과 지위 때문에 미적미적하고 있다 그 열정을 누르지 못하고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그 여인을 찾아 나선 드미트리.. 그리고 다시 불타오르는 사랑... 망설임도 없이 두려움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었을 것이고..
이런 내용의 이야기는 고전에서도 지금도 소설이나 연극등 여러 작품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안나 카레리나 역시 그런 내용이다.. 그러나 안나는 그 삶의 무게를, 도덕적 양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자신을 기차로 던져버리고 만다.
그러나 체홉은 활활 타오르는 그 순간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그 이후는 독자의 몫이라는 것인가? 열린 결말이다. 이럴수가.. 역시 체홉이다. 고전인데 열린 결말이라니~ 때론 타인의 눈에 의해서 때론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스스로를 기만했던 삶을 그래서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했던 그 삶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제대로 살아보기로 결정한 그 두 남녀.. 미래에 대한 막연한 환상만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두 남녀. 그들에게 이 선택이 제대로 살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선택에 대한 옳고 그름은 나중의 문제일 것이다. 도덕적 잣대도 양심의 소리도.. 이런 것들에게 귀를 귀울이다 보면 진정 본인의 감정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제대로 살기 위해 이런 것들에게서 두 눈 질끈 감을 필요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체홉 역시 그러한 것일까?

- 그에겐 두 가지 삶이 있었다. 하나는 원한다면 누구나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공적인 삶이었다. 그 삶은 그의 지인이나 친구들의 삶과 쏙 닮은, 조건부 진실과 조건부 기만으로 가득차 있었다. 반면에 다른 하나는 비밀스럽게 흘러갔다. 몇몇 낯선 우연들이 겹치다 보니, 말 그대로 우연이겠지만, 그에게 중요하고 흥미로우며 꼭 필요한 모든 것, 그가 자신을 속이지 않고 진실할 수 있는 모든 것, 그의 삶의 알갱이를 이루는 모든 것은 다른 이들 모르게 이루어졌고 진실을 가리기 위해 덮어 쓰고 있는 그의 거짓과 껍데기, 가령 은행업무나 클럽에서의 논쟁, ‘저급한 인종’이라는 말, 아내와 함께 기념일 파티에 가는 일만이 명백하게 겉으로 드러났다. 그는 자기 기준에 따라 다른 이들을 판단했기에, 보이는 대로만 믿지 않았고, 모든 사람에게는 마치 밤하는 같은 비밀의 장막 아래로 각자의 가장 흥미로운 삶, 진짜 삶이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개인의 존재는 비밀리에 유지되고 부분적으로는 이 때문에 교양인들이 사생활의 비밀을 보장해야 한다고 그렇게 예민하게 구는지도 모른다. 53p -

- 어느새 머리가 새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 이렇게 늙고 추해진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가 손을 얹은 어깨는 따뜻했고 가볍게 떨고 있었다. 그는 이 생명에 연민을 느꼈다. 아직은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답지만 분명 그의 인생처럼 퇴색하고 시들기 시작할 것 이다. 어째서 그녀는 이토록 그를 사랑하는 것일까? 그는 여자들에게 항상 본래의 그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비쳤다. 그들이 사랑한 것은 진짜 그가 아니었다. 그들이 살면서 애타게 갈구해 오던 누군가를 상상속에서 만들어내 사랑한 것이다. 여자들은 혹여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은 뒤라 하더라고 계속해서 그를 사랑했다. 그와 함께 있어서 행복했던 사람은 그 가운데 한명도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여자들을 만나고 사귀고 헤어졌지만 그는 단 한번도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뭐라고 불러도 무방했지만 결코 사랑이 아니었다. - 55p

- 안나 세르게예브나와 그는 서로 사랑했다. 아주 가까운 혈육처럼, 남편과 아내처럼, 다정한 친구처럼. 두사람은 운명이 서로를 맺어주었다고 느꼈다. 왜 그에겐 아내가 있고 그녀에겐 남편이 있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서로 다른 새장에 갇혀 지내게 된 암수 철새 한쌍 같았다. 그들은 과거의 부끄러운 일들과 현재의 모든 것들을 서로 용서했다. 사랑이 두 사람 모두를 변화시켰다고 느꼈다..............“어떻게, 어떻게?”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며 그는 물었다. “ 어떻게?” 그러자 조금만 지나면 해결책을 찾아 새롭고 아름다운 인생을 시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분명히 알고 있었다. 끝은 아직도 멀고도 멀었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복잡하고 힘겨운 일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57p


<더 리더>의 한나에게는 글을 모르지만 사람들에게 말을 하지 못하고 아는 것처럼 전차검수원을 그리고 교도원을 하면서 의도하지 않은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지 않아 그 죄를 모두 뒤집어 썼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타인에게 그리고 옛날의 그 남자에게 자신에게 까지 숨기게 되는 그 삶이 글을 알게 되면서 죄를 제대로 인식하고 스스로의 삶이 얼마나 부끄럽고 기만적인 삶이었는지를 알게 되어 비록 비극이지만 제대로 살기로 선택하기로 했던 그것이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자>의 주제와 일맥상통하다고 감독은 생각했을까? 진정 부끄러운 것은 글을 모른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 때문에 스스로를 기만하고 타인을 기만하고 그리고 삶 자체도 기만하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한나는 말하고 있고, 안정된 삶을 위해 감정을 속이고 감추고 적당히 가면을 쓰고 사는 것이 삶을 기만하는 것이라는 것을 체홉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에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 생각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20대 중반의 대학생이 아파트옥상에서 투신했다. 삶의 아이러니.. 신의 장난이라면 너무 잔인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지나가다가 벼락에 맞을 확률보다 더 낮은 확률이라고 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하필 가족과 함께 그 아래를 지나가던 40대 초반의 가장이 그 학생과 부딪혀 죽고 만 것이다.
20대 중반의 대학생은 원하지 않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하고 40대의 남자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안정된 직장을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서 7년차 근무하고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 그 지역을 소재로 한 영화가 뜨는 바람에 바빠져 그 날도 막차를 타고 늦게 퇴근하는 길이었다고 한다.
아빠를 남편을 기다려 함께 가던 아내와 아들.. 그리고 그들에게 어서 오라고 손을 흔들던 그 가장은 그 순간 가장 행복했을 지도 모른다.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 아닌가.. 하지만 그들에게 닥쳐온 것은 아름다운 그 후 이야기가 아니라 비극이었다. 그들의 삶이 생활이 전혀 상관 없는 사람에 의해서 그럴 의도도 아니었던 상황에 의해 붕괴되고 만 것이다.
자살한 사람에게도 비극이고 그 사고를 당한 사람들에게도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비극이다.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과 공무원을 준비해서 안정을 찾은 사람.. 원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사람과 원하는 삶을 찾아 이제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사람..
제대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던 사람과 겨우 자신의 삶을 찾아 제대로 살기 시작한 사람..
제대로 사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서 제대로 사는 삶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가식을 버리는 일이 개인적인 문제로만 보이기는 하지만 더 리더의 한나, 북구의 공시준비생이나 날벼락을 맞은 공무원을 보더라도 단순히 개인적으로 제대로 살기만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나치의 치하에서 먹고 살기 위해 나라가 시키는 대로 했고 무지해 그녀가 유대인들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몰랐을 뿐 명령에 따랐던 한나. 그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그녀에게 어떤 죄를 뒤집어 씌웠는지도 몰랐던 것은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 있겠다. 그런 그녀가 글을 알게 되고 그녀가 한 일이 지니는 무게를 알게 되었을 때 그녀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결과를 보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다. 개인에게만 그 무게를 실어주기엔 나치가 한 일이 너무 끔찍하고 엄청난 일이기에.. 그 과정에서 그녀는 그녀의 삶에 대한 선택의 순간마저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직업들 이었을 뿐..
북구의 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 아닐까.. 지금까지 일이 일어나면 그랬듯이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리기엔 이제 우리 사회가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이 아닐까. 먹고 살기위해 원하지 않은 삶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심지어 그 먹고 사는 문제마저 제대로 해결 되지 못하고 있다. 가령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 되었다고 보자. 어째든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하고 소박하게나마 미래를 생각이라도 하게 되었다고 해서, 나 하나 잘 먹고 잘 산다고 해서 그 이후의 삶이 평탄하게 지속되리라는 것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위의 40대 가장처럼 언제 어디서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 의해 그 삶이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상관없는 사람의 삶이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만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 결국 사회와 함께 풀어갈 문제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다. 즉 혼자만 조심해서는 더 이상 살아가기 힘든 사회가 된 것이 아닌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죽어가는 사람이 최근에 얼마나 많은지..
그들에게 당신들이 조심하지 않아서 그러잖아... 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 이제는 충분히 알고 있다.

제대로 산다는 것..
이제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사회의 공론이 되어가고 있다.
정말 진지하게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도외시 할 문제는 더더욱 아니고, 더 이상 남 탓만 하고 사회 탓만 할 문제가 아니라 나를 변화시키고 내 주위를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이제는 무엇인가를 해야하지 않을까..
우리를 흔들어 대는 보이지 않는 힘에 정체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흔들리지 않고 버텨나가는 힘을 나 혼자만이 아니라 이제는 함께 버텨나가는 힘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우리 사회가 올 때 까지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이대로 둘 수 만은 없지 않을까 하는... 이전의 세대들이 그대로 두어서 지금의 사회를 만들어 지금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인정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나와 상관없는 젊은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또는 성장하고 있는 내 자식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제는 획 던지는 돌에 지나가는 개구리가 맞아 죽는 비극이 빈번히 벌어지는 이 사회에 이제는 반기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않은 생각이 든다..

무엇을 해야 할까...
제대로 살기 위해..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는 내가 지금 이 나이가 되었을때는 좀더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좀 더 좋은 세상에서 물질적으로만이 아닌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을거라 믿었었는데..
이런 기성세대들의 안이한 생각들이 지금의 사회를 만든것일까..
아이들의 꿈이 공무원이라는 말을 들을때마다..
돈 많이 버는 것이라는 말을 들을때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어요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차피 취직도 안 된다면서도 하는 말을 들을때마다..
맘이 무거워진다..
입으로는 꿈을 가져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라 하고 말은 하지만...
그들을 흔들어 대는 어른들의 모습에 꿈을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케이트 윈슬럿 좋아합니다. 처음에는 뭐 미녀 배우치고는 좀 매력 없다 했는데 아,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칩니다. 500일도 좋지만 더리더.. 정말 좋았습니다..

지금행복하자 2016-06-30 14:1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케이트 윈슬렛의 인생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고 그런 로코배우에서 인식이 많이 달라지게 만들었으니까요~

samadhi(眞我) 2016-06-30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며칠 전 조카에게 이 책을 권해주었지요.

지금행복하자 2016-06-30 14:13   좋아요 0 | URL
삽화가 들어있서서 전 더 좋았어요~^^
 



속해있는 고전읽기 동아리에서 《소크라데스의 변명》을 강독하고 있다
당시의 상황과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곱씹어 가면서 읽고 있다
혼자 쑥 읽어가는 것과는 다가오는 무게감이 확실히 다르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당시 아테네사람들의 소크라테스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책속에 나와 읽었다

구름과 같이 뜬 구름잡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일까?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
유창한 언변으로- 정과사를 뒤집을 만큼의 기똥한 언변- 판결을 이기고 싶어 소크라테스를 찾아가지만 자격미달로 쫒겨나고 아들을 다시 제자로 보내 비법을 배워 채권자들을 쫒아내기는 하지만 똑같은 논리로 부모를 때리기시작하자 못된것만 배워왔다고 소크라테스를 비난하는 농부 스트렙데시아의 이야기 이다.

청년교육에 대한 고민은 예나지금이나 마찬가지 일것이고 연극이 그리스 민주주의의 교육의 일환임을 감안하면 이런 내용의 연극이 무대에 올려지고 많은 우매한 시민들이 봤을때 소크라테스에대해 잘 모르던 사람들 마저 연극의 소크라테스처럼 사론으로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으로 알게 될것 같다.

생각을 좌우하는 일..
특히 사회를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실리는 무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회를 그 사회를 이끌어가야하는 청년들 아닌 속한 소속원들을 교육시키는 일.
그들을 깨어있게 할지 잠자는 채로 내버려둘지..
아니 깨어있게 하려고 하는 자들에 대해 어떻게 인식을 심어줄지 섬세하고 기술적인 전술이 필요할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처렁 다양함을 표방하는 사회에서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힘든 사회에서는
진짜같은 가짜가 더 힘을 얻는 사회에서는 전술이 더 필요할것 같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6-06-29 2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9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9 2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9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9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9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