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먹은 아기 고양이 비룡소의 그림동화 145
케빈 헹크스 글 그림, 맹주열 옮김 / 비룡소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기 고양이는 보름달을 처음 보았어요.

보름달을 조그마한 우유가 하늘에 있는 줄 알고 아기 고양이는 살며시 두 눈을 감고 목을 쭉 뻗어서 혀를 쑥 내밀고 할짝 거려 보았지만 고양이가 핥은 것은 벌레뿐..

우유접시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아기고양이를 기다리는 것을 같아요. 가여운 아기 고양이..

아기 고양이는 다시 한번 힘을 내어 뛰어 봤지만 계단에서 굴러답니다. 우유접시는 그자리에 있는데 말입니다.

우유접시를 ?아서 길을 쭉 내려가 정원을 가로지르고 들판을 지나 연못가에 이르렀지만 우유접시는 가까와 지지가 않아요.아기 고양이가 나무 위에 올라가서 연못을 내려보니 그속에 커다란 우유접시가 있는거예요. 와 맛있겠다.!

그래서 연못으로 풍덩!!!

가여운 아기 고양이 흠뻑 젖어 버린 고양이는 슬프고 지치고 배도 고팠어요. 집으로 돌아오니 현관앞에는 우유접시가 있었어요. 아기고양이는 아주 행복했답니다.

결국에 맛있게 먹고 행복하게 편안하게  포근이 잠든 모습이 보는 저도 행복하게 느껴지네요

단순한 선으로 표현한 흑백의 그림이 편안하고, 보름달, 둥근 꽃, 고양이의 눈 등을 통해 반복되는 둥근 이미지들이 포근한 느낌을 주네요.

아주 단순한 내용이지만 처음보는 눈에는 그동안 익숙하게 보던 우유접시를 연상케 할수도 있고, 배가 고픈 고양이는 우유를 마시고 싶어서 보름달 즉 우유접시를 따라 다니다가 결국은 현관에 놓인 진짜 우유접시의 우유를 마시지만, 혹시나 아기 고양이는 따라 다닌 우유접시를 먹은 걸로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유를 마시고 만족감 포만감을 느끼며 편안하게 잠든 것 처럼 누워 있는 아기 고양이를 보니 포근히 안아주고 싶은 따듯한 느낌이 드네요..

참 포근한 책인 것 같아요. 내사랑 뿌뿌를 지은 작가의 책이예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Jean Honore Fragonard 프라고나르 [1732.4.5~1806.8.22]

 






 
A Young Girl Reading
1776 Oil on canvas / 82 x 65 cm


 
The Swing
1767 Oil on canvas / 81 x 64 cm


 
Young Woman Playing with a Dog
1765 - 1772 Oil on canvas/ 70 x 87 cm

《프라고나르》 Jean Honore Fragonard / 1732.4.5~1806.8.22 프랑스의 풍속화가. 국적 / 프랑스 출생지 / 남프랑스 그라스 주요작품 / 《음악 레슨》《목욕하는 여인들》 남프랑스의 그라스 출생. 파리에서 J.샤르댕에게 배우고, 이어서 F.부셰에게 사사하였다. 1752년 로마대상을 받고, 1756∼1761년 로마에 유학하여 G.B.P.티에폴로의 영향을 받았다. 파리로 돌아와서는 1765년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역사화도 그렸으나, 대부분 여인 ·아이의 초상, 혹은 목욕하는 여인이나 연인들을 제재로 한 풍속화를 즐겨 그렸으며, 섬세하고 미려한 관능적 정취를 짙게 보여주었다. 동판화에도 뛰어나 부셰의 후계자로서 한 양식을 만들어냈다. 생활면에서도 루이 15세, 16세 치하의 귀족들과 친교를 맺어, 화려한 생활을 했으나, 프랑스혁명 후에는 완전히 영락하여 파리에서 쓸쓸하게 죽었다. 작품은 세계 각지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음악 레슨》《목욕하는 여인들》(루브르미술관) 《그네》(런던 월레스 컬렉션) 《여교사》《사랑스러운 아이》 등이 널리 알려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제임스 티소 James Joseph Jacques Tissot

 19세기  프랑스 화가 제임스 티솟 ( James Tissot )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그는 영국을 좋아했고 영국에서 많이 활동했으므로 제임스 티솟이라는 이름이 더 유명한데요. 하지만 그의 원래 이름은 프랑스식으로 자끄 조세쁘 띠소 (  Jacques Joseph Tissot ) 이죠.
그는 미국 화가 제임스 맥네일 휘슬러 ( James Mcneil Whistler )를 만난 후 그에게 감화받아 그의 이름을 휘슬러와 같이 제임스로 바꿉니다.


그는 프랑스 낭트의 부유한 상인의 집에서 태어나 일찍이 화가가 되려고 파리로 가서 정식 미술 교육을 받았는데요.
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던 것보다는 새롭게 유럽을 휘몰아치던 아방가르드의 바람이었습니다. 그는 마네, 드가 등등 여러 지인으로부터 비형식적으로 새로운 미술을 배워나갑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아방가르드 미술을 온전히 따르지만은 않았는데요.
그는 아방가르드적인 시각에 전통 아카데미의 테크닉을 조화시켜 색다른 작품 세계를 만들어나갔습니다.
이런 그림은 그당시 미술계에서 높이 인정받았으며, 그는 성공한 화가가 될 수 있었죠. 그는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그당시 화려한 상류층으로 살아가며 여러 유명인들과 어울렸습니다. 그는 마네처럼  주로 이런 상류층의 모던한 생활상을 그렸는데, 여기서 그는 마네와는 또다르게 패션이라는 것에 매우 주목하게 되죠.


하지만 프랑코- 프러시안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영국으로 가게 되는데, 처음엔 좀 곤란했으나  이내 그의 관심과 특기를 살린 그림으로 영국의 미술계에 도전합니다.
그는 처음부터 옷, 인테리어, 악세사리, 에티켓에 매우 관심이 많았는데, 이런 관심을 바탕으로 그당시 영국의 신흥 부자들의 상류 사회를 섬세하게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 신흥 부자의 화가 ( Painter of Parvenu )" 라는 별칭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죠.

사실 티솟이 접했던 당시 영국의 빅토리아 사회는 전쟁과 식민지 등으로 재화가 넘쳐나 그만큼 신흥 부자가 급격히 늘어났고, 새롭게 등장한 이들의 고급 취미를 맞출만한 예술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이에 영국의 라파엘 전파나 빅토리안 신고전주의 작품들이 선전했지만, 영국의 감성을 잡아내면서도 프랑스 감성이 덧붙여진 색다른 이 화가에게 그들은 주목했죠.
그의 작품은  이들 라파엘 전파나 빅토리안 신고전주의같은 정밀함과 럭셔리한 유미주의가 보이고 있지만, 이에 프랑스의 아방가르한 인상파적 필치를 또한 지녔기에 확실히 영국 화가들의 작품과는 차별되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특히 그의 섬세한 옷의 주름 묘사, 세밀한 악세사리의 표현은 폭팔적인 열광을 자아내죠.
그래서 그는 영국에서 그림으로 또 성공하고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주제면에서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행복하지만 센티멘탈한 애정보다는 고통스러운 모던 러브를 그리고 있었기에 유명한만큼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는데요.
티솟의 작품의 주제는 그당시 통념에는 좀 맞지 않고 비도덕적이라는 평까지 들어야했습니다. 그래서 통속적 화가로도 불렸죠.
그 일례가 그의 모델인 아일랜드 출신의 이혼녀,  캐슬린 아이린 켈리 뉴튼 ( Kathleen Irene Kelly Newton ) 에서 크게 부각되는데요.
그녀는 사생아를 낳아 이혼당해 부도덕하다고 손가락질 받던 여자였지만, 티솟은 그녀를매우 사랑했죠.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용납하지 않아 티솟은 같이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했습니다.
그러나 티솟은 그녀를 끝까지 사랑했고 그의 그림에 이상적인 여인으로 남기죠.
어쨌든 티솟은 참 로맨티스트이죠?

그런데 그녀는 너무나 일찍 생을 마감하게 되고, 이에 절망한 티솟은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종교와 영혼에 심취하는데요.
그는 종전과 달리 종교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러고보면 시대의 조류가 어떻고 미술계의 유행이 어쩌니 저쩌니해도 화가의 개인사는 여전히 화가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네요.
어떤 사건으로 인생이 변하는 만큼 그림도 바뀌니까요.
예술도 사람이 하는 것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요.


이제 그의 그림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제임스 티솟의 " 온실 안에서 <라이벌들> ( In The Conservatory < Rivals >) " 입니다.

온실 안에서의 티타임 파티라...
집에 이렇게 온실을 가지다니 이는 상류층 아니면 어림도 없는 일이겠죠?
이런 온실은 영화 " 순수의 시대 "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그당시 영국의 상류층에서는 이런 온실에 세계로부터 수집한 온갖 식물을 가져다놓고 일종의 호사를 부렸겠죠?
언뜻봐도 온실 속의 식물은 영국의 식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어쨌든 시원한 수목아래서 나무 향을 맡으며 한가한 티타임 파티를 갖는 그들이 참 여유로워 보이는데요.
이는 자연과 함께하는 멋진 가든 파티처럼 언뜻 참 낭만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림의 제목에서 드러나듯 그리 편하고 즐거운 파티는 아닌가 보네요.
뭔가 라이벌간에 팽팽한 신경전이 알게 모르게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두 겉으론 다 웃고 있지만요.
이는 그당시의 허영이 가득한 상류 사회 ( Vanity Fair )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도 하네요.


이 그림을 보면 이는 확실 프랑스가 아닌 영국의 상류사회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마네의 작품에 드러나는 프랑스의 신흥 부르조아와는 확실히 다르죠.
이 그림에서는 영국 상류층의 사교 문화와 격식에 대해 확실히 보여주네요.
그리고 인테리어에 있어서도 저런 나무 벽은 영국색을 확실히 드러냅니다.

티솟은 상류층 중에서도 특히 여성을 주로 그리는데요.
아무래도 그의 관심이 옷과 악세사리, 인테리어에 있기 때문이겠죠.
정말 여성들의 화려한 옷이 너무나 아름담고 섬세하게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저 수많은 주름 묘사 정말 대단합니다.
옷만 보면 영국의 상류사회가 프랑스보다 훨씬 화려해보이네요.
사실 호사하면 또 프랑스인데 말이죠.


 








이 그림은 제임스 티솟의 " 너무 이른 ( Too Early ) " 입니다.

저야 그림만 보고는 무엇이 이르다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그림을 보면 아직 파티가 무르익지 않은 것 같네요. 사람도 얼마없고, 보아하니 멋진 남자 파트너들이 별로 보이지도 않고요.
또한 이 그림에서는 이런 곳은 처음인 듯 뭔가 어수룩해 보이는, 하나같이 앳된 아가씨들이 보이는데, 그녀들에겐 이런 파티가 혹시 이르다고 하는 것일까요?

어쨌던 이 파티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상상만하던 공주풍의 럭셔리 파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네요.
여자들은 보통 어렸을때 캔디류 만화, 신데렐라, 이런 것들을 보면서 예쁜 드레스를 입고 그런 화려하고 귀족적인 파티에 가보는 것을 상상해보곤 하죠.
그곳엔 언제나 멋진 왕자님이나 귀족적인 꽃미남이 있고요.

여기도 티솟의 인테리어와 코스츔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빛을 발하는데요.
화려한 샹들리에하며 저 분홍 드레스 너무나 예뻐서 입이 안다물어집니다.
하지만 이 파티장의 분위기는 좀 프랑스 풍이네요.
하지만 옷이 위와 연결되는 영국풍이기에 이곳은 과연 어느 나라인지 확언할 수는 없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중에서"

안드레 케르테츠(Andre Kertesz 1894 ~ 1985)
1894년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안드레 케르테츠(Andre Kertesz 1894 ~ 1985)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진에 매료되었다. 어렸을 때 케르테스는 자기 집 다락에서 사진 설명서를 하나 발견했는데 그걸 보고 그는 사진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임종 후 그는 처음에는 상업 학교에 다니다가 그 이후에는 양아버지를 따라 부다페스트의 주식시장에서 일하게 된다. 틈틈이 35mm라이카 카메라를 가지고 헝가리의 한가로운 풍경을 담은 스냅형식의 사진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kertesz_wandering_violinist]

[kertesz_white_horse]

[kertesz_feeding_the_ducks]
본격적으로 전업 사진가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25년 파리에 도착해서 이다. 그는 파리로 이주해 살게 되는데 생계를 잇기 위해 25달러에 사진들을 판다.

그래도 적성에 맞지 않은 은행일 보다는 차라리 훨씬 더 나은 것이 였다.

그는 차차 초상사진가, 보도사진가의 명성을 얻으며 Frankfurter Illustrierte (프랑크푸르터 일루스트리르테)지, the Berliner Illustrinte (베를리너일루스트리테)지, the Nationale de Fiorenza (나시오날 드 피오렌자), Sourire (수리르)지, Uhu and Times(우후 앤 타임즈)지 등 프랑스, 독일, 영국,의 잡지들을 위해 일하게 된다.
파리 시절 (1925-1936) 케르테스는 그의 고향인 부다페스트에서와 같이 파리 시내를 산책하며 사진을 찍는다. 우연히 만난 사람과 친구들 그리고 그가 자주 방문하던 곳을 스냅 사진 형식으로 담는다. 이러한 사진은 프랑스의 전형적인 르포르따쥬 사진 수법으로 후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의 사진과 많은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The Dancing Faun, 1919]
이 시기에는 특히 아방가르드(전위작가)의

영향을 받아 35미리 라이카(Leica) 소형 카메라로

뒤틀린 누드 사진을 찍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은 대부분이

초 현실적 이고, 구성주의 적인 요소로 가득찬

좀 더 복잡한 현대적경향을 가진 것 들이다.

[Satiric Dancer, 1926]
1927년 몽파르나스에 있는 “성스런 봄”이라는 이름의 작은 화랑에서 첫번째 개인전을 통해서 브라사이, 로버트 카파등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들처럼 저널리즘의 입장에서 사진을 제작한 것이 아니라 매우 주관적인 입장에서 사진을 제작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당시의 대부분의 사진가 들은 잡지의 일정한 편집의 방향에 맞게 제작하는 스타일이라면 케르테츠는 이와는 좀 다르게 자신의 주관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선구적이다. 주관주의 경향의 사진들은 1950년에 와서 TV 출현으로 인한 그래픽 저널리즘의 급격한 쇠퇴 이후에나 대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케르테츠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어쩌면 저리도 우연적인 만남이 필연처럼 느껴질까 하는 것이다. 사진은 현실의 단면을 잡아낸다는 점에서 파편적이지만 그의 사진들은 현실의 단면이 마치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하나의 소우주를 형성한다. 그래서 그것은 파편으로 보이지 않고 하나의 화면에 자리잡은 온전한 세상이 된다.

그의 개인전이 있었던 이듬해 5월에는 나다르와 아트제의 회고전을 개최중이던 사진 독립 살롱전에 베르니스 애보트, 만레이, 폴 아우터브리지 등 초현실주의 경향의 사진가들 과 함께 그룹전에 참가한다. 이 때에 출품한 작품 중 [포크]는 그 관심의 집중이 대단하였는데, [르뷔 에브도마데르]지에 의하면 전시회를 통틀어서 유일한 순수예술작품이라 평하면서 “누구든 접시하나와 포크하나만 있으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러치만 케르테츠가 이미 이것을 해버렸다”라고 말했다.
케르테츠는 이 사진이 텍스트를 덧붙여서 식기 광고 이미지로 쓰일 수도 있었던 양면성을 지녔음을 예상하고 있었다. 즉 그의 [포크]는 예술과 상업성이라는 이중의 생명력을 띠고 있었다. 일정한 형태로 과장된 손잡이의 선과, 부리 끝의 굽은 모양새를 정확히 보여주는 이 사진은 세심하게 구성된 기록물이면서도 놀랄만한 심미성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케르테즈는 포크 이미지처럼 수수한 이미지들을 멋지게 기록하는 저력으로 이력을 쌓아나갔다. 그는 특히 라이카 카메라로 작업했기 때문에 그의 스냅형식의 사진들은 한결 자연스러운 면이 돋보였다. 그렇다고 그의 작업이 전적으로 스냅형식의 우연한 산물은 아니었다. 거울면에 반사된 누드distortion(왜곡) 시리즈 작품들은 초현실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 사진들은 상을 일그러지게 하는 거울 속에 투영된 이미지들을 잡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미지의 이미지이다. 케르테츠는 거울 앞에 알몸의 여체를, 장딴지와 무릎은 부풀어오르고 불확실하게 나타나지만, 그 나머지 부분과 특히 손은 정상적으로 보이게 배치했다. 결국 사진 전체의 통일된 형태는 사실상 기호들의 복합체로 드러나고 있다. 즉 그 형태는 신체 어느 부위의 기표로서 읽히는 것이지 그 통일성이나 전체성 속에서 읽히는 것이 아니다. [왜곡]사진은 여기에서 여자의 성(性)을 표시하기 위해서 손을 의도적으로 선택한다. 이는 우연의 결과 물인 스냅쇼트의 형식에서 탈피한 치밀한 계산법을 사용하는 것인데 결국 이 이미지는 사진이 얼마나 비현실적으로 흐를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셈이다.

[kertesz_distortion]

[Arm & Ventilator, 1937]

[Chez Mondrian, 1926]
당시의 초현실주의자들은 공통되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무의식의 흐름을 형상화 하는데 사진이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사진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상식적으로 보고자 하는 것 이상의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정확한 의사전달의 기능을 포기하는 데신 잠재된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었다.

일찍이 20년대 포토저얼리즘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보도사진가로서 그 명성이 대단했던 케르테츠는 1936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다. 그의 체류는 원래 짧게 의도 되었지만 중간에 2차 대전이 시작되어 그는 미국에 계속 머물러야 했다.

그는 여기서 프리랜서 사진 작가로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보그 (Vogue) 와 룩 (Look)지에서 일한다. 그는 이 작업들을 하면서 패션 사진 작가로서 이력을 쌓게 되지만 여전히 그의 사진의 경향은 변함이 없었다.

1964년 그의 일련의 사진들은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회고 전을 가진다. 그의 사진들은 포토저널리즘 일정한 스타일과는 다른 경향이었기 때문에 미국에 건너와서 줄곤 라이프지(Life)나, 룩(Look)지에 그의 사진이 실린 적은 없었다.

그가 다양한 사진 이력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사진이 가지고 있는 ‘비밀스러운 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Watchmaker's Shop, Christopher Street, 1950]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연 2006-02-19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집니다..이 책 읽고 그림이나 사진 올리시는 분들이 많네요^^
담아갈께요~~ 아. 저는 비연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동그라미 2006-02-19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네요..^*^* 놀러갈께요..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의 '젊은 여교사'




 

1736년~1737년, 캔버스에 유화, 62 X 66 cm

 

 

 

 

 

 

 

 

 

 

 

 

 

 

 

 

식전의 감사기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