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밤나무 한 그루가 올봄 들어 고사(枯死)했다. 주위의 다른 나무들은 녹색 잎들을 내면서 새봄을 만끽하는데 이 밤나무는 전혀 그런 모습 없이 침묵에 쌓여있다.
사람으로 치면, 멀쩡한 청년이 하루밤새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된 것 같다.
‘까닭이 뭘까?’
밤나무에만 도는 병에 감염된 걸까? 하지만 병사한 것으로 보기에는 줄기가 너무 굵고 단단하다. 그냥 두자니 보기 흉해서 톱으로 베어버리려 했지만 굵고 단단해서 그만뒀다. 톱날이 망가질 듯싶었다.
병사한 게 아니라면 하필 밤나무를 심은 땅 속에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가 있는 게 아닐까? 워낙 돌이 많은 춘심산촌이라 그럴 개연성이 크다. 밤나무의 연한 뿌리가 그 바위를 만나게 되자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고사했으리라.
까닭이 짐작된다 한들 고사해버린 나무라 희망이 없다. 매해 가을, 탐스런 밤송이들이 달리던 밤나무의 죽음. 본디 나무는 말 못하는 생명이지만, 왠지 이 밤나무는 깔깔대고 잘 웃기까지 하다가 갑자기 웃음도 잃고 허무의 정적(靜寂)에 든 것 같다.
하긴 밤나무만 죽는 게 아니었다. 어느 몹시 가물던 여름에는 새끼 뱀 한 마리가 밭 한가운데 놓은 스프링클러 아래에서 아가리를 벌린 채 죽은 모습으로 발견된 적도 있다. 목이 타서 물을 찾아다니다가 땡볕에 그런 모습으로 죽은 것이다.
두더지도 농로에서 잠자듯 주검으로 발견됐다.
더 자세히 살피면 지렁이, 곤충들… 숱한 주검들이 있었다.
태어났으므로 죽는 것이다.
춘심산촌 농장 또한 피할 길 없는 자연의 섭리 속에 푸르른 신록을 구가(謳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