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나는 아내가 위험하게도 뱀이 다니는 풀숲에서 따온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우리 춘심산촌 농장 한 편에 심어놓은 산딸나무의 열매들이란다.

풀숲의 산딸기(뱀딸기)와 흡사하지만 기본적으로 과()가 다르단다. 풀숲의 산딸기는 장미과인 데 비해 산딸나무는 층층나무과란다.

족보야 어쨌든 이 산딸나무 열매는 예쁜데다가 맛있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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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이 선배한테 직접 물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습니다. 선배님의 작품 중 무채도는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거든요. 동기인 한수산 씨의 부초, 이외수 씨의 꿈꾸는 식물과 견줘도 결코 못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빛을 보지 못했습니까?”

이 선배가 착잡한 표정으로 답했다.

운이 없는 게지.”

 

모름지기 작가는 작품으로 자신을 보이는 것이다. 만일 서로의 작품 수준이 실망스러웠다면 이 선배와 나 사이의 친분은 생겨나지 않았을 게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이 선배의 뛰어난 작품들이 제 빛을 보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고, 이 선배 또한 같은 생각에서일까 내게 발표지면을 소개해 주고 싶은 후배로 여겼다.

그 결과 열흘쯤 지난 72, 우리는 서울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 부근에서 정각 10시에 만났다. 지상으로 나와 부근에 있는 모 문예잡지사의 주간을 만나 뵈었고, 이어서 2차로 재경춘고동창회사무실로 가려고 다시 지하로 내려가 전철을 탔다. 재경춘고동창회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쟁쟁한 동문들의 연락처나 다름없는 곳이다.

전철 좌석에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춘천의 김유정 문인비얘기에 이르렀는데 이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그 비(), 내가 잘 알던 선배님이 세운 비이거든.”

그 말에 놀란 내가 대꾸했다.

그 비는 우리 돌아가신 아버지가 세웠는데?”

뭐라고? 그럼 자네 선친 함자가?”

내 입에서 선친 이름이 나오자 이 선배가 놀라서 내 손을 쥐고는 더 이상 말을 못했다. ‘절그덕 절그덕전철 가는 소리만 존재했다. 이 선배가 이윽고 감회에 젖어 말했다.

자네가 그 선배님 아들이었다니!나를 얼마나 귀여워하고 대견해하셨는지 몰라. 막걸리 집에서 많은 얘기를 하시곤 했지. 당시 춘천의 몇 안 되는 낭만파 예술인이셨다고. 1969년에 내가 군대 갔다가 제대하면서 춘천에 돌아왔지만 집안이 그 사이에 서울로 이사 간 바람에 따라가느라고 미처 못 뵙고 헤어진 건데그 후 세월이 흘러 선배님이 돌아가셨다는 소문만 듣게 돼유족이라도 만났으면 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나중에 자세한 얘기를 듣겠네.”

전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나왔다. 따가운 햇살이 이 선배와 나를 맞았다. 재경동창회 사무실을 찾아 앞서 걸어가는 이 선배를 뒤따르면서 나는 이런 생각에 잠겼다. ‘소설(픽션)이 현실을 못 따라가는구나. 소설은 현실을 가공해서 나오는 거라고 말들 하는데이렇게 현실이 소설을 압도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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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춘천교대는 2년제로서 학비 대부분을 국가에서 지원해줬단다. 특히 남학생들은 군사훈련도 병행하여 군 복무가 면제되는 특전까지 있었다고. 아무리 그런 이점이 있었다 해도 훗날의 소설가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시에 입학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해 못 할 일은, 입학들은 했지만 정작 졸업한 사람은 드물었다는 사실이다. ‘최종남만 졸업했을 뿐 그 외는 몇 년씩 다니다가 자퇴하거나 다른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해 떠나거나 한 것이다. (나는 기회가 되면 그에 얽힌 사연들을 모아 작품으로 써 볼까 한다. 흥미로운 작품이 될 것 같다.)

 

이도행 선배가 다시 춘천에 내려온 것은 산하가 온통 푸르른 6 22일이다. 아내 분과 함께 온 것이다. 거주지인 수원이 여기 춘천보다 몇 배로 큰 도시임에도 상춘(上春)했다는 표현을 하였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갈 때 사용하는 상경(上京)’이란 말에 빗대 춘천에 온 것을 상춘이라 하는 것이다. 이 선배가 얼마나 춘천을 좋아하는지 짐작 되는 표현이다. 이 선배의 춘천 사랑은 그 날 내게 마침내(?) 선사한 책 두 권의 제목들에도 여실하다.

봄내춘천 그리움

봄내춘천 옛사랑

이 선배가 춘천에서 살았던 기간은 11(19581969)밖에 안 되지만 평생 마음의 고향으로 삼고 있음에!

그 날 나는 선사받은 두 권의 책을 이 선배와 헤어진 뒤 집안에 틀어박혀 이틀에 걸쳐 다 읽었다. 그리고 소감을 문자와 카톡으로 연실 전했다.

중편소설 무채도가 압권입니다. 추운 날 시신 태우는 화덕에서 잠을 자는 양중사. 선배님의 작품들 중 대표작이라 여깁니다. 연숙, 고모부, 말대가리 등 개성 강한 인물들. 한동안 제 뇌리 속에 살아서 숨 쉴 듯싶습니다. 두 권의 책을 완독함으로써 소설가 이도행의 세계를 깨닫게 됐습니다. 모름지기 예술가는 작품으로 존재합니다. 조폭이 칼 솜씨로 존재하듯이. 스님이 불심으로 존재하듯이 말입니다.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봄내춘천 옛사랑을 방금 다 읽었습니다. ‘달빛 소나타 풀꽃 목숨 하나가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달빛은 금실과 은실로 직조하듯 전개해나간 솜씨가 일품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문장 가다듬기에 특별한 공을 들인 게 분명합니다. 왜냐면 다른 작품들 문장과 그 느낌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풀꽃은 연숙이란 여인의 비극적 생애가 한반도의 처절한 분단사와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하는 수준작이었습니다. 생모인 고모가 왜 굳이 불교식으로 고인의 넋을 달래려고 나섰는지 그 심정이 헤아려집니다. 억겁의 연과 한을 달래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선은 이 정도만 언급하고 다음에 뵀을 때 이어서 하겠습니다.”

문자와 카톡으로 읽고 난 감흥을 전하고 나서 내게 의문이 생겨났다.

, 이런 좋은 작품들(특히 중편 무채도)이 널리 알려지지 못했을까?’

, 다른 동기 소설가들만큼 빛을 보지 못했을까?’

그 때까지만 해도 이 도행 선배가,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생전에 아끼는 후배였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나는 물론이고 이도행 선배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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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3일은 얼마나 햇살이 따가운지!

후평동의 연당막국수는 따가운 햇살들을 피하려고 마련한 그늘 쉼터 같았다. 이도행 작가, 최종남 작가, ‘강복남 (이도행 작가의 지인)와 나, 이렇게 넷이서 막국수를 먹었다.

선배작가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소중한 자리다.

소주 한 병 시킬까요?”

최종남 작가는 차 운전을 해야 하므로 사양했고 이도행 작가는 술을 끊어서 사양했다. 강복남 씨는 훤한 낮에 마시긴 좀 그렇지하며 사양했다. 그렇게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커피라도 마시고 헤어지자 2차로 간 데가 문화예술관 부근 산마루에 있는 클잎정 카페다.

이도행 작가가 내게 말했다.

내 정신이 예전 같지 않네. 책을 준다고 약속해놓고 그냥 왔다니까.”

, 천천히 주셔도 괜찮습니다.”

그건 아니지.”

하긴, 3월 김유정 추모제 때 인사를 나눈 뒤 며칠 지나지 않아 내가 첫 작품집 숨죽이는 갈대밭을 수원의 아파트로 보내드렸으므로 미안해할 만도 했다. 강복남 씨(이름이 향토적이라 잊지 않는다.)까지 자리에 와 앉았는데 최종남 작가가 오지 않았다. 주차하느라 시간이 걸린다고 보기에는, 클잎정 카페 주위에 공터가 많아서 이상하게 여겨졌다. 얼마 후 최종남 작가가 숨을 힘들게 쉬어가면서 나타나 나는 속으로 놀랐다.

여기 카페가 높은 데 있으니까 올라오기가 힘들었지 뭐야.”

나중에 알게 됐는데 최종남 작가는 기흉이라는 호흡기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인들은 다 아는 사실이라 했다. 그래서일까, 안색까지 하얗게 돼 느릿느릿 빈자리에 앉는 그의 모습을 보며 안스러워할 뿐이었다.

 

그 몇 달 뒤 최종남 작가가 세상을 뜰 줄이야. 전년도에 당신의 작품집 단둥역이 나왔을 때 출판기념회에 참석 못한 후배()를 잊지 않고서, 나중에 전화하여 점심식사를 함께하며 그 작품집을 선사한 최종남 선배 작가. 고마움을 나는 늘 잊지 못한다.

주위 풍경이 눈 아래 있는, 산마루의 클잎정 카페. 밖에는 따가운 햇살들이 여전해서, 카페는 마치 범람하는 햇살 바다의 배 한 척 같았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알게 됐다. 이도행 최종남 이외수 한수산 네 사람의 선배 소설가가 춘천교대 동기라는 걸. 대한민국에 이런 경우가 어디 또 있을까. 시인 최돈선까지 동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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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를 수확했다.

까만 오디는, 몇 달 간 내리쬔 햇살들의 결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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