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K의 고개 (1)에는 그리스신화의 오르페우스 얘기가 인용된다.

   

 

……오르페우스는 악기를 잘 다뤘다. 어느 날 사랑하는 아내가 독사에 물려 갑자기 세상을 뜬다. 깊은 슬픔에 빠진 오르페우스는 악기의 선율에 그 슬픔을 담아 아내를 살려달라고 온 세상을 향해 호소한다. 그래도 소용이 없자 그는 결심한다.‘마지막으로 저승의 신들께 부탁해 보자. 우여곡절 끝에 어둡고 험한 저승세계로 간 오르페우스는 저승의 신들 앞에서 자신의 애달픈 사연을 악기에 담아 노래 부른다. 저승의 신들이 감복하여 아내를 지상으로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한다. 다만 지상에 도착하기까지는 절대로 뒤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단다. 오르페우스가 앞서고 아내가 뒤따르면서 어둡고 험한 저승세계를 걸어 마침내 지상세계로 나가는 출구에 닿았다. 아내가 뒤따라오나 궁금해진 오르페우스가 뒤돌아보는 순간 그녀는 다시 저승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라오스에 가 살고 있는 후배 허진이 얼마 전 긴 나무다리(2)사진들을 보내왔다.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데리고 가는 장면의 배경 사진 같았다.


(1) 무심 이병욱의 대표 소설

(2) U - bein Bridge in the rainy season. Myanmar Mandalay.
우기철의 우베인 다리. 만달레이 근교,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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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11-14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보고 직접 찍으신 줄 알았습니다 ㅎㅎ

무심이병욱 2019-11-15 10:15   좋아요 1 | URL
아직 그곳에 여행도 못 갔습니다. ㅎㅎㅎㅎ. 장편 쓰느라 두문불출하며 지내거든요.
 

갈증이 나서였을까?

한밤중에 잠이 깼는데 칠흑 같은 어둠 속 저편에 살아있는 불빛들. TV, 전화기, 셋탑박스에서

나는 불빛이었다.

한밤중에도 문명(文明)이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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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 내외가 오늘 아침 새 아파트로 이사 간다. 내외가 맞벌이하는 바쁜 생활이라 단풍 보러 여행 한 번 못가고 이사 가는 거여서, 조금은 안 돼 보였다. 하지만 웬걸, 떠나는 아파트 구내에 아름다운 단풍이 그림처럼 물들어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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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늦봄 어느 날, 강원대학 201강의실에는 국어교육과 1기와 2기 학생들이 자리를 꽉 채웠다. 학회장을 뽑는 자리였다. 서준섭 후보 측 찬조연설자로 내가 나섰다. 서 후보가 차기 학회장이 되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서 후보는 무난히 당선되었다. , 굳이 내 찬조연설이 아니더라도 그는 가장 유력한 차기 학회장 후보였다. 1기 선배 중 공부를 제일 잘한데다가 (입학시험부터 수석 합격했다는 소문) ‘항상 짙은 푸른색 점퍼를 단정히 입고 캠퍼스를 오가는 모습이어서 국어교육과 학생들한테 호감을 사고 있었던 것이다. 교통도 불편한 그 당시 저 먼 대관령 너머 강릉에서 춘천까지 유학 와 자취하는 학생이 옷을 단정히 입고 다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대개의 자취생들은 옷에 밥풀이나 막걸리 흘린 자국을 하고 다니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런 인연으로 서 형()은 몇 달 뒤, 내가 초대회장으로 있는 그리고 문학회에 영입되었다. 시와 소설뿐인 문학회에 서 형의 가입은 평론 분야까지 갖추게 돼, 명실상부한 문학회가 된 것이다. 1971년에 한 작은 지방대학에 시· 소설· 수필 ·평론을 망라한 문학회라니, 대단한 일이 아닌가.

서 형은 이듬해그리고 문학회’ 2대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3대 회장은 박기동 시인. 4대 회장은 신승근 시인. 5대 회장은 이흥모 시인)

 

서 형은 나중에 모교인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되어 몇 십 년 간 강의하다가 정년퇴직했다. 문학평론가로서도 이미 자리를 잡았다.

 

오늘(2019115) 오랜만에 서 형과 만나 점심식사를 하고 2차로 봉의산 가는 길카페에서 커피도 마셨다.

노후에 들어선 서 형과 나.

카페 창()으로는 소양강이 보인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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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별다방 미쓰리의 첫 구절이 이렇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바닷가

바닷가라면 당연히 바다가 보여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곳에 위치한 별다방. 분명히 임대료도 싼, 그늘진 자리에 잡은 다방의 미쓰리이므로 그녀 앞날은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어려운 처지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 가난한 기억 너머의 잘못, 즉 시대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화자(話者)는 진단한다. 결국까만 바닷가/ 홀로 반짝이는 별이 되어가는/ 내 사랑 미쓰리라고 매듭지음으로써 주인공 미쓰리한테 애틋한 마음을 전하고 만다.

 

작품폐선, 강가에 놓인 낡은 배를 노래했으되 그 노래에 담긴 감성은 그토록 풍성할 수가 없었다.

매 구절 묻어나는 슬픈 감성. 예로써 한 구절만 봐도 여실하다.

늦 코스모스 져 가는 강 언저리에 서면을 보면제 철에 핀 코스모스가 아닌 늦게 핀 코스모스며, 피는 게 아닌 지는 상황이며, 걷기 편한 강가가 아닌 강 언저리이며, 화자가 걷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쓰인 시어 하나하나에 담긴 한 맺힌 슬픔에 나는 박재삼의 대표 시 울음이 타는 강을 다시 보는 듯싶었다.

초저녁 노을빛 아련하기만 한 나의 사랑은/ 저기 떠나는 자의 모습으로 서 있더라라는 구절을 본다. 여기서저기 떠나는 자란 표현 또한 내 눈길을 잡았다. 가슴 아픈 상처를 주고 떠나는 이를 이리도 냉정히 표현할 수 있을까. ‘이나그대라 부를 만도 한데 굳이()’라 부른 것은 그만큼 화자가 냉정한 자세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화자는 속으로 절규하는 것일러니.

반은 물속에 반은 물 밖에 걸린 채/ 온몸에 돋은 수초를 쓰다듬으며/ 시간아 가거라 어서 거거라

할 때 나는 주인마저 잃고 방치된 호숫가의 폐선을 바로 눈앞에서 본 듯싶었다. 사진기로 폐선을 촬영한들 이처럼 적나라하게 나타낼 수 있을까.

조 시인은 처절한 폐선의 모습에서 오히려 행복을 느끼는 역설(逆說)을 노래한다.

이제 그대의 시절 속에 함께할 수 없으니/ 더는 떠나보낼 수 없어 행복하더라.’

더 이상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딱한 존재로 전락한 그대. 그 때문에 나는 비로소 그대와 마음 편하게 함께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마치 고려가요가시리의 한 대목을 보는 듯했다. 별리를 감내하며 돌아올 그 날을 기다리는 이 땅의 정한(情恨).

 

작품 그 저녁의 눈물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날의 가슴 아픔이다.

오지 말아야 할 저녁이 오고 말았다.’며 첫 구절부터 참담하다. 작품 곳곳에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나타나 있다.

사랑한다, 더 이상 수신되지 않는 그 말나처럼 밤이 무서워 늘 형광등을 켜고 자던 아이도 있었다./ , 정말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런 비극적인 날에도 저녁 식사들을 별 일 없는 듯 하는 현실. 이에 화자는 절망한다. 결국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저절로 눈물이 떨어지는 저녁이 있었다.’는 말로써 세월호 사건의 가슴 아픔이 평생 갈 것임을 암시한다.

 

첨언: 시집 별다방 미쓰리를 읽어보면서 내 첫마디가 이랬다.

참 맛깔나게 시를 쓰는구나!”

이제 그 까닭을 스스로 헤아려 본다.

비유하자면, 특정 음식을 즐기는 편식이 아니라 갖가지 음식을 골고루 맛보듯이 갖가지 소재를 다 시로 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낡은 폐선,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아이들, 가장을 잃은 어느 상갓집, 바닷가의 한 초라한 다방, 한국 시어머니한테 구박받는 베트남 며느리, 직장생활 하는 여성의 고달픔, 아파트에서 연실 콩콩 뛰는 아이들, 개집, 악어가죽 가방, 포도나무, 병실 . 딱히 소재의 가림이 없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되어서 나도 모르게 맛깔스럽다(delicious)고 표현한 게 아닐까?

 

이 가을에 맛깔스런 시들을 선사한 조현정 시인. 문운(文運)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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