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가을 어느 날, 나는 삼척 읍내의 한 서점에 들렀다가 소스라쳤다. 무심코, 진열대에 놓인 문학관련 월간지를 펼쳤는데 평론가 김영기 씨가그리고 문학회에 대해 자세히 쓴 글이 있었던 것. 고향 춘천을 떠나 머나먼 삼척에서 객지 생활하는 중에 내 대학시절의 문학회 얘기를 만날 줄이야!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흐를 뻔했다.

 

 ‘그리고 문학회가 창립되기는 19715. 그 다음 달인 6월에 1회 문학의 밤을 도청 앞 춘천시립문화관에서 열 때 초청 강연자로 그분(당시에 강원일보 논설위원)을 모셨었는데그 인연을 잊지 않으셨는지 문학관련 월간지에 그리고 문학회 창립에 따른 대학가 문학 활동을 꼼꼼히 소개한 것.

 

오랜 세월이 흐른 며칠 전(202087) 그분을, 이도행 선배 작가의 주선으로 춘천의 한 카페에서 뵈었다. 그분은 지난 시절 강원도내 문화활동, 특히 문학활동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이끌어가던 ()에서 물러나 이제는 평온한 노후를 보내고 계셨다. 그 옛날의 나를 기억하고 계실까 싶었는데 천만에 놀랍게도 우리 부모님까지 다 기억하고 있었다. 이도행 선배가, 반세기만에 만난 그분과 나를 사진 찍어 주었다. 강물 흐르듯 후닥 지나가버린 세월도 사진 찍힌 것 같은 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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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직생활 30년 중 27년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3년을 중학교에서 보냈다.

 

중학교에서 근무할 때다시골 읍에 있는 중학교인데도 대도시의 중학교 못지않게 학력제고에 극성이었다보통 6시간 본수업 후에도 보충수업을 두 시간씩늦도록 학생들을 공부시켰다그러니초등학교에서 편히 지내다가 막 중학교에 입학한 1학년 학생들은 아주 힘겨워했다그래도 하루 이틀 지나가면서 원래 중학교는 그러는가 보다’ 체념하며 적응들 하는데 그렇지 못한 학생이 하나 있었다나는 몇 십 년 지난 지금도 그 학생의 이름을 기억한다○○이었다.

 

산의 진달래꽃들이 아름답던 봄날에 녀석은 느닷없이 학교를 결석했다부모도 그 사실을 몰랐다가 담임선생의 연락을 받고 알았다니 사유(事由)가 딱히 없는 무단결석이었다.

대개 학생이 무단결석한다 해도 하루쯤이며해 저물녘 자진 귀가해서 부모님한테 호되게 야단 맞고는 다음 날부터 정상 등교를 하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그러질 않았다하루이틀사흘무려 일주일이 되도록 무단결석이 이어졌다부모가 파출소에 실종인 신고를 할 만도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은녀석이 동네 산에서 지내는 모습이 수시로 목격된 때문이다학교의 담임선생 또한 녀석과 친한 학생들을 찾아 녀석의 행방을 알아봤는데 역시 같은 대답이었다.

걔가 혼자 산에서 진달래꽃들을 따며 놀다가 우리가 이름을 부르며 가면 얼른 다른 데로 숨어버린다니까요산이 우거져서 찾을 수 없어요.”

결국 부모가 결정을 내렸다. ‘학교 다닐 생각이 전혀 없는 아들이니까 학교를 자퇴시키자.’

 

그 후 전개된 녀석의 행로가 흥미로웠다녀석은 자신이 이제 학생 신분에서 벗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하산(?)하더니 아는 중국집의 배달원이 된 것이다부모가 시킨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뤄진 일이라 했다.

놀랍게도자기가 다녔던 학교의 교무실에도 철가방을 들고서 배달 온 녀석작은 몸에 철가방은 무거워보였다선생 한 분이 짓궂게 물었다.

일이 힘들지 않니?”

말없이 미소만 짓는 녀석.

공부보다 이런 게 더 좋아?”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 나는 깨달았다녀석은 하루 종일 딱딱한 의자에 앉아 공부하기보다는 철가방을 들지언정 여기저기 바람 쐬며 다니는 게 좋은천생 자유인(自由人)이라는 사실을.

 

이제 환갑 나이가 됐을 녀석지금쯤 잘 됐다면 그 시골 읍의 어느 중국집 사장님이 돼 있지 않을까그러면서 계산대만 지키지 않고 가끔씩 직접 철가방을 들고 밖으로 배달도 나갈 것이다. 오토바이를 신나게 타고서 말이다.

틀림없는 내 예감이다.   

 

사진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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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날씨였다. 낡은 선풍기 한 대가 돌고 있지만 교실을 시원하게 만들어주기보다는 무덥고 끈끈한 공기를 휘젓는 짓에 불과했다. 초보교사인 나는 교단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다가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선생에 대한 예의상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뿐 더위에 지쳐서 반쯤 졸고들 있었다.

본보기로 한 학생을 일으켜 세워 한바탕 야단침으로써 수업 분위기를 일신시킬까 했지만그래 봤자 그 효과가 몇 분 가지 못할 것 같았다. 워낙 무더운 날씨였으니까. 나도 모르게 신세한탄을 했다.

나 참, 이렇게 수업해먹기 힘들어서야!”

그러자 1분단의 뒤쪽에 앉아 있는 녀석이 큰 소리로 대꾸했다.

그래도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봉급이 나오잖아요?”

순간 교실에는 적막이 흘렀다. 학생들이 졸다 말고 확 잠이 깨서 과연 이 불의의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까두려운 눈빛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교단에 선 지 얼마 안 된 초보교사로서 나는 판단을 잘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이런 판단을 한 것이다. ‘저 녀석이 날씨가 하도 무더워서 자기도 모르게 한 말일게다. 괜히 문제 삼으면 일만 복잡해진다.’ 그래서 이런 말로 넘겨버렸다.

허허허그러게 말이다.”

긴장했던 학생들 모두 와하하! 웃어버렸다. 그 바람에 녀석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고 교실은 아연 활기가 살아났다. 나는 수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어언 환갑 나이가 됐을 녀석. 지금 어떻게 지낼까? 지금도 많은 사람이 있는 회의석상 같은 데에서 불쑥 난감한 소리를 하진 않을까? 예를 들면 마을 회의 중에 이장님이 한창 얘기하는데 불쑥 이장님은 배도 고프지 않소? 밥 먹고 합시다!’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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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가 차 뒤쪽에서 났다. 실내 후시경을 보니 웬 교통경찰차가 사이렌에 경광등까지 번쩍이며 차 뒤로 따라붙고 있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차를 세웠다. 교통경찰차도 따라서고 이윽고 경찰관 한 명이 내렸다. 내 차의 열린 운전석 창 가까이 와 말했다.

범칙금을 내셔야겠습니다.”

그러면서 서류에 뭘 적는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결코 과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딱지 한 장 떼이면 몇 만 원인데 가만있을 수 없었다.

아니, 제가 뭘 어겼습니까?”

운전 중 전방주시태만입니다.”

아니, 조심해서 천천히 달렸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건 어째 이상하다. 그렇다, 꿈을 꾸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빨리 깨자.’하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거실 아랫목이었다.

늙어서일 게다, 새벽 4시경에 잠이 깬다. 그러면 컴퓨터를 켜서 하룻밤 새 뉴스도 보고 그러다가 6시경에 혼자 주방에서 아침밥을 먹는다. 곤하게 자는 아내를 깨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식후 30분에 혈압약과 통풍약을 먹는다. 전에, 약봉지를 달고 사는 노인들을 참 한심하게 여겼는데 내가 바로 그런 노인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약 기운에다가 식곤증이 복합적으로 밀려오면서 다시 아침잠을 30여 분 잔다. 오늘은 그 순간에 교통경찰한테 혼나는 꿈을 꾸다 깬 것이다. 꿈이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참 어이없다는 생각도 든다. 꿈속에서이라는 걸 의식했으니 말이다. 어릴 적은 물론이고 한 10년 전만 해도 자면서 꾸는 꿈은 조금도 의심 없는 완전한 꿈이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분명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꿈과 현실이 경계를 잃어가고 있다.

모처럼 꾸는 꿈조차 순수함을 잃다니!’

정처 모를 실망감에 거실 창밖을 망연하게 내다보았다. 어제는 종일 흐린 것 같더니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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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 16, 횡성에 갔다. 교직을 퇴직한 후에도 지역의 멘토로서 알차게 사는 두 지인을 만나보기 위해서다.

섬강 가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란 유명한 레스토랑 정원에서, 50년 만에 만난 두 지인. 우선 기념사진부터 찍었다. 사진의 왼쪽이 현원명 동기, 가운데가 홍의재 선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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