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 - 이별과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가는 법
안 앙설렝 슈창베르제 & 에블린 비손 죄프루아 지음, 허봉금 옮김 / 민음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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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대로 애도하는 방법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머니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부터 인생은 이별과 상실의 연속이다."

 

위의 말처럼 우리는 언제나 이별을 하고 상실을 경험한다. 딱히 인간관계만의 이별과 상실만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을 준 동식물, 사물이 모두 포함된다. 정들었던 고향, 차, 집, 물건 등을 잃어버리거나 버려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겪는 상실감을 똑같이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별' 방법에 대해서 어느 곳에서도 배우지 못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수학과 영어 등의 지식은 열심히 배우지만 내 마음을 돌아보고 이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고 배우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슬픔을 외면하고 무시한 결과 '마음의 병'을 얻게 된다. 그것은 결국 자신을 해치는 결과를 낳게 되고 더 심한 경우에는 우울증을 겪다가 자살까지 선택하기도 한다. 아래의 말은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단면을 보여준다.

 

"우리는 앞만 보며 달리고 성공하는 법만 배웠을 뿐 감정을 다스리고 깊은 슬픔에서 벗어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제대로 이별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이별을 마주 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어렵다. 그 이별을 생각만 해도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슬프기 때문에 그 상황을 무시하거나 내 인생에서 아예 없었던 일로 만들기 위해 모든 흔적을 지우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내 자신을 모두 죽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 사람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만이 그 사람과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그 사람을 잊어버리려 노력하는 것보다 그 사람을 내 마음 속에 기억하는 일이 더 가치있는 일인 것이다.

 

이 책이 더 가치 있다고 느낀 이유는 4월에 일어난 비극 때문이다. 세월호 사고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 연쇄적으로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 같아 더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그 사고 소식을 접한 모든 사람들, 사고를 당한 당사자, 생존자, 생존자의 가족, 그리고 대한민국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 소식에 아픔과 극도의 슬픔을 느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아픔으로 인한 정신적인 공항 상태, 우울함은 아직도 우리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그들을 애도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겨우 그 아픔을 이겨내기도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 그 아픔이 제대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충분히 애도하고 난 후에야 고인은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게 된다. 하지만 슬픔이 우리를 파괴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잘 보살펴야 한다."

 

우리는 남을 사랑하고 돕기 위해서는 먼저 내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고 말한다. 자주 듣던 말이지만 정말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흔히 여성들에게 자기 자신을 평가해 보라고 하면 대다수는 자신을 뚱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평균 체중에서 훨씬 못 미치는 데도 우리는 거기서 더 빼려고 혈안이 되어 있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작은 즐거움을 매일 주면 큰 도움이 된다. 작은 즐거움은 큰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이다. 자기에게 상을 주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평생 그 사실을 무시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얘기가 나오고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아픔을 이겨내야 할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외에도 내가 사랑하는 집, 장소, 고향, 직장, 자동차 등의 사물을 잃어버렸을 때의 아픔도 그와 맞먹는 트라우마를 우리에게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심리상담의 실제 많은 사례를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심리극이나 역할극처럼 내 마음 속에 난 상처를 어떻게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꿀 수 있을지의 방법도 나와 있어서 다른 상담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 듯 했다.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다. 슬퍼할 수 있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신체의 아픔도 시각화하여 마음으로 고통을 줄이는 일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치명적인 암에 걸려도 그것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더 나은 방향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좌절하든지 아니면 긍정적인 가치관으로 삶을 더 가치있게 받아들이든지, 그 선택은 바로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이렇게 외칠 수 있다. 바로 '평안'을 부르는 주문이다.

 

날마다, 모든 면에서, 나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날마다, 모든 면에서, 나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날마다, 모든 면에서, 나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그리고 아주 잘 되고 있다.

 

 

* 알라딘 민음사의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즐거움의 목록에는 끝이 없다. 편히 쉬기, 몽상에 잠기기,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 순간을 음미하기, 휴식의 즐거움과 달콤함을 맛보기, 빈둥거리며 게으름 피우는 즐거움, 자신을 위한 꽃 배달, 하늘 쳐다보기, 비오는 모습 쳐다보기, 독서, 미술관 관람, 공원 산책, 친구와의 수다, 운동, 여행, 그림 등의 취미 생활, 자기만의 공간 갖기, 생활 패턴의 변화 등 일상의 작은 즐거움은 무궁무진하고 다양하며 대단히 개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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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애니멀 -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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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


 

우리는 언제나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소비한다. 이야기는 끝이 없다.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는 엄마의 자장가와 옛날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 왜 우리는 '이야기'에 열광하고 그 이야기에 몰입하고 빠져드는 것일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먼저 우리는 어린이들이 이야기의 세계 속에 있는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그들은 어린이로서 언제나 네버랜드에 살고 싶어한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철이 들면서 그 이야기의 세계 속에서 빠져 나오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우리는 영화, 책 등의 다양한 미디어를 통한 '이야기'를 소비한다.

 

왜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고 몰입하게 되는 것일까? 조너선 갓셜은 다양한 분야의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이야기'는 옛날 원시시대부터 사회화를 위한 도구로서 활용되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의 놀이에서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역할이 고정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평등을 부르짖으며 놀이 방식을 바꾸어봐도 여전히 남자아이들은 거칠게 싸우고 뛰어다니는 모험의 이야기를 쫓았고 여자아이들은 보호와 모성, 집안일 등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다.

 

이것은 한 사회에서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처럼 도덕성이나 윤리, 가치관에 대한 내용을 배울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꿈'의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왜 꿈을 꾸는 것일까? 우리의 기억을 정리하는 중에 생기는 쓸모없는 부산물로 보는 학자들도 있지만 조너선 갓셜은 한 사회의 도덕이나 윤리, 가치관을 미리 배울 수 있는 시뮬레이션이라고 보았다. 우리의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소망을 꿈 속에서 이뤄지는 정도라면 우리는 악몽을 꾸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부자가 되거나 하늘을 나는 등의 꿈같은 일이 이뤄지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안 좋은 일을 꿈꿀 때가 더 많다. 이것은 꿈에서 우리에게 도덕적인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한 사회화의 예행 연습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영상이나 책을 보면서 실제에서 일어났을 때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느낀다. 이건 꿈을 꿀 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우리가 꿈을 꾸면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이유는 그때에는 몸의 근육이 무기력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공포를 느꼈을 때와 공포영화나 공포 관련 책을 읽었을 때에 뇌에서 활성화되는 부분이 똑같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나 책 등의 창작품에서 받을 수 있는 영향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뇌의 같은 부분이 활성화 되므로 어떤 가상의 이야기 하나로 우리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아돌프 히틀러가 어렸을 때 바그너의 오패라 <리엔치>를 관람하고 나서 독일 민족을 해방시키고 자유로 이끌어야 하는 의무가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섯 살 아이가 받은 영향은 끝없이 이어져 결국 독일 게르만 민족의 위대한 영웅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것 외에도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흑인 노예 해방과 미국의 남북전쟁에 준 영향, KKK단을 부활시킨 <국가의 탄생>, 자살 모방을 일으킨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984>, <앵무새 죽이기> 등 세계 역사에 영향을 준 작품들이 적지 않다.

 

결국 '이야기'는 과거부터 존재해 왔고 현재, 미래를 관통해 나갈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단지 그 도구가 달라질 뿐이다. 이야기는 게임산업과 접목해 나가서 현실보다 더 다양한 사이버 세계를 구축해 나갈 것이다. 옛날의 시는 오늘날의 노랫말 가사로 재탄생되고 있다. 랩에서는 시의 작법들이 많이 적용되어 이제는 시와 함께 노랫말도 문학적인 가치로 인정받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아무것도 없는 두 장의 사진이나 도형에서도 우리는 그 둘 사이의 관계에서 무수한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노력하는 동물이다. 우리가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동물'이라는 것을 여러 사례를 들어 흥미롭게 서술해 나가고 있다.

 

 

* 알라딘 민음사의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인간은 이야기에 탐닉하도록 진화했다. 이 탐닉은 전반적으로 인간에게 유익했다. 이야기는 쾌감과 교훈을 준다. 우리가 현실에서 더 잘 살 수 있도록 세상을 시뮬레이션 한다. 우리를 공동체로 결속하고 문화적으로 정의한다. 이야기는 인류에게 귀한 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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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의 외딴섬 여행 무민 그림동화 14
토베 얀손 글.그림, 이지영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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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가족들의 단란한 여행


시기가 시기인 만큼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고 있지만 아직 우리들은 아픈 상처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화책을 순수하게 동화로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 슬프기그지 없다.

무민이는 시리즈로 나와 있는 것으로 토베 얀손이 창조해 내었다. 1934년에 최초로 '무민' 시지즈를 발표해 1966년 어린이 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하고 핀란드 최고 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무민 시리즈는 텔레비전 만화영화 및 뮤지컬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타요나 번개맨처럼 어린이들의 엄청난 인기를 누렸을 것 같았다.

그리고 동화의 무대인 핀란드 난탈리에는 무민 테마파크가 세워져 있다고 하니, 조카들이 간다면 정말 좋아할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서울이나 전국 각지에서 진짜 타요 버스가 돌아다니고 그걸 타는 어린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민'은 곰돌이나 하마를 닮기도 했는데,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예부터 전해 내려온 전설 속의 동물이라고 한다. 이것처럼 우리나라에서나 동양에서 예전부터 내려오는 동물들을 오늘날에 맞게 재탄생시켜 봐도 재미있을 것이다.


외딴 섬에서 단란하게 놀던 무민이 가족들은 배가 떠내려가 버려서 결국 뗏목 배를 만들어 바다에 나선다. 


바다에 나갔다가 큰 파도를 만나 위험에 처하지만 결국 그들은 무사히 외딴 섬으로 다시 되돌아 왔다.


그 덕분에 무민이 가족들은 떠내려가 버린 줄 알았던 배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들은 배를 잃어버렸다가 배에서 조난을 당할 뻔도 하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가게 되어서 무척 기뻐한다. 그리고 다음을 향한 모험을 기대하기도 한다.

문득 세월호 사건에서도 이 동화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다들 어디선가 조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본다. 이렇게 간단하게 바다에서 살아나올 수 있는 동화 속의 얘기가 너무나 아프게 비참한 현실을 깨닫게 만든다. 현실은 현실이라고.

하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이런 현실을 가르쳐주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듯 하다. 아직은 현실을 모르고 이렇게 동화 속 세상에서 재밉고 즐겁게 지낼 권리가 있으니까. 아니, 어른의 잘못만 아니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의무일 것이다.

현실도 현실이지만 집으로 다시 돌아올 희망에 부풀어야 하는 어린이에게 이 동화책을 읽어주고 싶다. 그리고 다른 무민이 시리즈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졌다.



* 알라딘 도토리 통신의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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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텍스트의 시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컨텍스트의 시대
로버트 스코블, 셸 이스라엘 지음, 박지훈, 류희원 옮김 / 지&선(지앤선)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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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상상은 미래가 아니라 현실


모든 사람은 미래를 상상한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상상, 아니 우리 모두의 상상은 미래가 아니라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손목시계에서 나오는 홀로그램 그래픽, 하늘을 나는 이동수단, 얼굴을 보며 하는 통화, 자동 운전, 걸어다니는 컴퓨터,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분석하는 안경, 체내 주입 바코드, 투명망토 등등 그 상상은 끝이 없다. SF 관련 소설이나 영화에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더 많은 모습들이 그려지고 있기도 하다. 우주여행, 화성이주, 시간여행, 공간이동 등 헛소리 같기만 했던 이러한 상상이 언젠가는 현실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상상이 곧 현실이 될 것이라는 조짐은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들고 다니는 핸드폰에서 손목에 차는 것으로 바뀌는 시점에 있고 구글은 구글 글래스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핸드폰과 스마트폰이 나와 세상을 변혁시킨 것처럼 구글 글래스는 또다시 우리의 문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줄 것이 틀림없다. 그것은 멀지 않은 미래이고 곧 현실이다. 핸드폰이 처음 나왔을 때는 너무 비싸고 컸지만 몇 년 안에 크기도 작아지고 상용화될 정도의 가격이 된 것처럼 구글 글래스 또한 그럴 것이라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구글 글래스를 시험 착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의 모습은 새로운 세상을 예고하고 있다. 내가 갈 곳을 미리 예상하여 교통 흐름이 없는 곳으로 길안내를 해주는 내비게이션 기능, 나의 몸 상태를 체크하여 아침에 일어날 순간과 입고 나갈 옷, 들어올 때에 맞춰 집에 불을 켜 주는 등의 비서 역할도 쉽게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구글 글래스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우리가 옷을 입는 것과 같은 패션 액세서리가 될 것이다.


컨텍스트의 시대를 대표하는 다섯 가지 힘은 모바일, 소셜 미디어, 데이터, 센서, 위치이다. 모두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은 환경이다. 이러한 다섯 가지 힘으로 우리의 생활 모습은 어떻게 바뀌어 갈 것인지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컨텍스트의 시대>이다. 그것이 멀지 않은 미래라고 하는 것은 상용화 전의 상태로 시험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섯 가지 힘이 우리의 생활을 혁신할 것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무인 자동차는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구글 글래스는 사람의 눈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쇼핑을 하다가 어느 가게에 들어가도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바로 가져다 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물건을 하나하나 비교하지 않아도 개인 비서가 알아서 가장 좋은 물건을 골라서 보여줄 것이다. 우리를 고민하게 하고 갈등하게 하는 사소한 문제들에 대해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혁신의 시대가 우리에게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컨텍스트의 저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모습에 고무되어 다양한 사례를 들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편리한 세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현실 또한 잘 알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경제적,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유출로 스미싱을 당하고 스팸문자로 괴로워하고 있다. 그것이 한번이 아니고 자주 일어나다 보니 더이상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감각도 사라질 정도이다.


구글 글래스는 내가 보는 모든 시선을 따라가고 기록한다. 내가 음식점에서 먹은 것과 간 곳을 기록하여 다음에 다시 방문할 때 그 메뉴를 다시 내놓을 정도이다. 나의 계획을 알고 있어서 내가 어디로 가고 집을 언제 비울지도 알고 있다. 이런 정보가 나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편리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상대방도 이런 정보를 알게 된다는 점에서 정보 유출에 대한 위험성도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개인의 사생활 노출에 대해서는 선택일 뿐이며 그만큼 편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느냐, 아니면 그냥 불편함을 감수하느냐에 대한 문제라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개인의 사생활 노출에 대한 문제는 끝에 조금만 다루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는 희망 앞에서 그것보다는 잘못 쓰이게 될 위험성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새로운 생활에 대한 혁신보다는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정보 유출을 막을 수 있는 기술에 대한 내용을 더 다루었다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에 역자가 우리나라에서 이뤄지고 있는 컨텍스트 시대의 모습을 담은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신은 거리감이 있어서 그런지 딱히 현실이 아닌 몇 년 후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면 당장 '내일'이라는 현실감이 들고 더 흥미로웠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그런 활동을 더 조사해서 책으로 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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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09: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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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0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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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 하이에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케인스 하이에크 - 세계 경제와 정치 지형을 바꾼 세기의 대격돌
니컬러스 웝숏 지음, 김홍식 옮김 / 부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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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끝나지 않을 세기의 대결


한 사회의 경제를 국가가 통제를 해야한다는 입장과 인위적인 통제는 필요없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러한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케인스와 하이에크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고 그들의 생각이 담긴 책을 저술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리고 후학들의 연구로 그들의 사상은 더욱 탄탄해졌다.


그동안 서양의 금본위제 폐지와 국제통화기금의 탄생, 미국의 경제적 성장, 2008년 금융위기까지의 경제사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기업가들의 목적이 정책 입안자들의 입장과 결부되어 경제사의 큰 흐름을 형성하는 모습을 본 것이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가 나타나면서 파생상품이 어떻게 미국과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분석한 글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은 케인스와 하이에크로 대변되는 거시경제학과 미시경제학의 관점에서 어떤 정책들이 입안되고 행해지게 되었는지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냉전시대 등의 시대 흐름 속에서 분석해 내고 있다는 새로운 관점이 흥미로웠다. 특히, 케인스에게 도전하는 하이에크의 모습이라던지, 본인들 보다 그들의 사상을 따르는 후학들이 나서서 싸우는 것이라든지, 미국 대통령이 바뀌면서 경제 위기에 대응하는 모습 등등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케인스는 세계 경제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다. 하이에크와 살았던 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1차 세계대전 전후로 오스트리아에서 낯선 나라인 영국으로 온 하이에크는 자신의 경력을 세우기 위해서는 그러한 케인스에게 도전하는 것이 가장 빨리 경제학자로서 자리를 잡는 일이었을 것이다. 새파랗게 젊고 연구실적도 별로 없는 하이에크가 경제잡지에 실은 도전적인 글을 보고 케인스가 얼마나 분노에 사로잡혔을지 상상이 되었다. 그 후 그들의 논쟁을 더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런 자리는 더 이상 마련되지 않았다.


케인스가 <일반 이론>을 출간하면서 논쟁을 하려고 했지만 하이에크는 어떤 이유에선지 그 자리에 나서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던 하이에크는 마지막에 서로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 비판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 이유가 충분하게 납득되지는 않았다. 처음 영국에 왔을 때는 케인스의 이론에 대해 이해할 수 없고 많이 부족하다며 직설적이게 비판했던 그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나이가 들어서 지쳤던 것일까, 아니면 그만큼 케인스의 이론에 대해서 비판할 수 없다고 느꼈던 것일까?


이러한 논쟁은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1920년대에 있었던 카프문학의 순수참여 논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문예지를 통해 첨예하게 대립했던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의 대립은 그 이후에도 지금도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이다. 문학은 순수하게 예술적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 당시 사회에서 행동으로 참여해야 하는가는 아직도 답이 없는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논쟁보다는 우리나라의 순수참여 논쟁이 더 치열했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어쨌든 케인스의 <일반 이론> 이후에 '케인스 혁명'이 이뤄지고 세계 경제는 케인스의 독무대가 되었다. 그 시점에서 하이에크가 받았던 조롱과 놀림, 무시, 평가절하를 당했던 것은 바로 순례자가 악마의 유혹을 받으며 참고 견디는 인고의 세월과 닮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참다가 결국 하이에크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다른 이들은 결국 하이에크의 사상을 버리고 케인스의 이론을 숭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이에크는 세상에 혼자 남는 외로움을 견뎌내고 광명을 찾았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케인스의 이론을 박살낸 것은 1970년 대 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일어난 '스태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국가의 총 수요를 늘려 물가가 상승하면 경제 호황으로 인해 실업이 떨어져야 하는데, 물가가 상승하는데도 실업이 발생하는 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러한 스태그플레이션은 케인스의 이론을 박살내고 하이에크의 사상이 다시 출연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 총리는 이러한 하이에크의 사상을 기반으로 국가의 경제 통제를 낮추고 공공기관들을 민간기업으로 바꾸는 개혁에 착수했다. 기업들의 규제를 철폐하고 세금, 특히 부유세를 감면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며 경제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제 개혁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현재도 다양한 평가가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하이에크로 대변되는 사상 속에서도 2008년 금융위기 같은 일이 일어나면 국가는 결국 경제위기에 관여하여 막대한 세금을 퍼붓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실업으로 고통당할 것이 예상되므로 그러한 경제위기를 그냥 놔두면 더 오랫동안 지속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해 자신들의 지지율이 떨어지게 될 것이므로 하이에크가 주장하는 대로 그냥 두고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 국가 지도자들의 생각으로, 이럴 때는 케인스의 사상을 도입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인천공항을 민영화한다고 하거나 의료법을 개정하여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경제 개혁이 이뤄지려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나로서는 하이에크의 사상은 너무나 이상적이고 유토피아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의 인격을 너무 믿는 행위로서 비양심적인 행위도 쉽게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이 반영되지 못한 이론이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많은 사람들이 법을 어기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개인들의 자발적 선택으로 경제가 알아서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올바른 경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기업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나 또한 케인스의 이론을 따르는 '케인스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공산주의나 전체주의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성적인 국민의 선거 투표가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하이에크의 자유경제사상이 개인의 자유 추구보다는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배려와 보호가 더 우선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케인스의 이론처럼 국가의 통제와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케인스의 이론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역풍을 맞았지만 그것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수정될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 앞으로 후학들에 의해서 보완될 거라고 생각한다. 


케인스와 하이에크는 결국 이론일 뿐이다. 케인스가 자신의 이론을 현실 속에 적용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는 훨씬 유동적이라 이론이 그대로 적용되지 못하는 측면이 많다. 결국 정책 입안자들과 국가 지도자들이 경제를 면밀히 관찰하고 그때 그때 마다의 적당한 처방이 필요할 것이다. 그때마다 케인스와 하이에크는 서로 번갈아 가면서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케인스냐, 아니면 하이에크냐에 대해서는, 인간이 경제 생활을 하고 있을 동안에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싸움일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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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09: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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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18: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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