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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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원래 추사 김정희를 잘 몰랐다.

 그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세한도'를 그린 사람 정도만 알았다. 책은 '세한도'가 정말 걸작이라 말하고 있었지만 어린 마음엔 솔직히 '내가 그려도 이것보다 잘 그리겠는데 이런 그림이 걸작이라고?'만 생각했다. 외워야 하니까 이름을 외웠을 뿐, 흥미도 관심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추사의 위대함에 대해 제대로 알게되었던 건, 유홍준의 '완당 평전' 을 읽고나서였다. 아마도 최초로 추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 아닐까 기억한다. 유홍준에게 추사란 삶에서 한 번은 꼭 정복해야할 산 같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오로지 추사를 연구하기 위해 나이 40에 성균관대 박사 과정에 입학할 정도로 말이다. 그는 5년 간 박사 논문을 위해 열심히 추사를 연구했지만 유일하게 추사의 학문 세계를 밝힐 근거가 되는 '완당선생전집'의 부실 때문에 논문은 쓰지 못하고 그 연구의 결실은 '완당 평전'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이 책으로 나처럼 추사를 비로소 진정으로 만나게 된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런저런 비판과 질정도 많이 받은 모양이다. 보다 완전한 추사에 대한 책을 위해 유홍준은 '완당 평전'을 시나브로 절판시켰다고 한다. 그러다 2017년. 칠순을 앞둔 작가는 다시금 추사란 산을 올라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미흡하기 때문에 절판시켜 버린 '완당 평전'을 2006년, 추사 서거 150주년을 맞아 공개된 무수한 새자료를 비롯 그동안 발굴하고 연구한 자료까지 포함시켜 보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완당 평전'을 고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후기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곰곰이 생각해보니 '완당 평전'의 성격은 학술인 동시에 문학인데 지금 당장 보완하기 힘든 것은 학술의 문제이지 문학의 문제는 아니었다. 새로운 자료가 아무리 많아도 내가 그려낸 추사 김정희의 인간상과 작가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완당 평전'을 전기 문학으로 개고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예술가의 전기는 나의 학문적 과제였다.(...) 그 생각을 하면서 머리가 홀가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학술적 정확성을 위해서는 자료를 제시할 때마다 출처를 밝히고 고증해야 하지만 문학으로 임한다 생각하니 그런 주석과 고증은 오히려 독서를 방해하는 군더더기였다.(...) 그로인해 역시 추사의 학문과 예술은 논문 형태보다 전기로 기술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p. 576)


 그렇게 하여 이번엔 전기의 형태로 다시금 추사의 생애가 우리 앞으로 찾아왔다. 그것이 바로 '추사 김정희'라는 책이다.



 유홍준에 의하면 추사의 일생은 보통 이렇게 다섯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1) 1786 ~ 1809년(1 ~ 24세) : 출생부터 연경에 다녀오기까지 청년 수업기

 2) 1809 ~ 19년(24 ~ 34세) : 대과에 합격하기까지 10년간의 학예 연찬기

 3) 1819 ~ 40년(34 ~ 55세) : 출세해서 관직에 있는 21년의 중년기

 4) 1840 ~ 49년(55 ~ 64세) : 8년 3개월간의 제주 유배기

 5) 1849 ~ 56년(64 ~ 71세) : 해배 후 서거까지 8년간의 만년기.


 책은 이 모든 시기를 시간 순서대로 담고 있고 그렇게 서장과 종장을 합하여 모두 12장에 걸쳐 추사의 삶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삶은 홀로 만들어지지 않고 살면서 안팎으로 이런저런 관계를 맺게 마련이다. 특히 상호 영향 관계가 두드러지는 학문과 예술은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추사의 삶이 그랬다. 그는 먼 청나라까지 정말 많은 교류를 폭넓게 했다. 그의 시야는 학문과 예술 모두에 걸쳐 결코 한정된 영역에 머무르지 않았다. 특히 금석학과 글씨에 대한 부분은 이러한 추사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자신만 옳다하지 않는 것, 이만큼이면 되었다 자부하지 않는 것,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더욱 타인의 것을 제 것처럼 살피며 공부하는 것. 어쩌면 바로 그러한 타자에의 열림이야말로 추사를 위대하게 만든 원천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 더불어 하면서 함께 쌓인 것들이 추사의 삶 전체에 걸쳐 녹여져 있기 때문에 유홍준이 책의 마지막에 술회한 것처럼 추사의 학문과 예술이란 정녕 산숭심해(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가 되는 것은 아닐지.


 사진은 청나라 유학자들이 '세한도'를 보고 찬()한 글로, '세한도' 뒤에 저렇게 길게 붙어 있다고 한다.

 국제교류가 얼마나 활발했는지 엿 볼 수 있는 단면이다.


 '완당 평전'과 비교하자면(정확한 비교를 위해 책을 찾았으나 내 집의 서림(書林)을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 없기에 할 수 없이 예전에 읽은 막연한 기억에 기대어 말해야 한다는 게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지만), 확실히 이 책이 추사의 삶을 더 일목요연하게 잘 보여준다. 전기라서 삶의 세세한 면모를 더욱 잘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로 주고받은 서신이나 추사가 타인에게 하거나 타인이 추사에게 한 찬()이나 논()도 많이 인용되고 있기에 추사의 내면은 물론 객관적인 모습까지 조망할 수 있어서 더욱 그렇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이 책은 추사의 삶이 가진 모든 변곡점마다 그것이 어떤 상호 영향 관계로 이뤄졌는지 잘 나타내고 있기에 삶의 모든 굽이마다 추사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만큼은 확실히 알게 만든다. 때로는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너무 많은 자료 때문에 곤혹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달리 보면 그게 또 어떻게든 추사의 산을 넘어보려는 작가의 집념 혹은 추사에 대한 존경으로 되도록 왜곡이나 훼손 없이 추사의 삶을 온전히 보여주려는 노력 같아서 지루함을 느끼려는 머리를 스스로 채찍질하게 만든다. 과문한 주제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너무나 무모한 일이지만, 어쨌든 내게만은 이 책은 '추사 김정희에 관한 집대성'으로 보인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에 실린 풍부한 도판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엔 정말 많은 도판이 컬러로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추사가 평생 동안 심혈을 기울인 것이 금석학과 글씨인 것만큼 그 실체를 보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에 이렇게 많은 사진 자료가 실린 것은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빠짐 없이 수록되어 있기에 추사의 학문과 예술이 삶 전체에 걸쳐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 여정을 시각적으로도 인지할 수 있다.


 이 책은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강상 시절의 추사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사진은 강상 시절에 쓴 추사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잔서완석루'이다.



 추사는 타고난 천재였지만 오늘의 그를 만든 것의 8할은 교류였다. 사람과 정파, 국적을 가리지 않은 많고도 다양한 사귐이 '추사'라는 '산숭심해'를 만든 것이었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으로 그 옛날의 추사처럼 교류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동북아 시대가 열리려는 지금, 이러한 추사의 삶은 특히나 시사하는 바가 많다. 추사 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은연 중에 오늘의 시대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 것까지 알려주는 이 책을 주저없이 추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추사가 말년에 강조했던 허화로움과 고졸함의 가치가 한껏 드러난, 

과천 시절의 대표작이자 기념비적 명작인 '산해숭심, 유천희해'.

 '산해숭심'은 원래 옹방강이 실사구시 정신을 풀이한 말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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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3 22: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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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4 11: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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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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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베라는 남자'를 쓴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소설 '베어타운'은 세월호 참사 후, 1년 동안의 우리나라를 많이 생각나게 한다.

 이 소설은 우리와 결코 먼 얘기가 아니다. '오베라는 남자'를 읽었을 땐, 어쩌다 운이 좋아 원더 히트를 치게 된 작가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베어타운'은 그런 생각을 버리게 만든다. 그저 운이 좋아 성공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내공이 심후한 진짜 작가였다. '베어타운'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이야기와 문장 모두가 감탄스럽다. 집단이 온갖 이유와 논리를 내세워 한 개인의 불행을 철저히 무시하고 배척하는 이야기가 이토록 설득력 있고 깊이가 있다니.


 소설이 하나의 전선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바로 집단 대 개인의 전선이다. '베어타운'은 한 때 화려한 과거를 가졌으나 이제는 몰락한, 말하자면 겨울잠을 자는 곰 같은 형국의 마을이다. 불행과 절망, 무기력은 만연한데, 부활의 희망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마을.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하키 팀에 전적으로 매달린다. 오직 그것만이 마을을 재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키 팀에 마을의 사활을 걸다 보니 방해 혹은 장애가 되는 인물은 족족 버려진다. 대표적으로 하키 팀 코치 수네가 그렇고, 감독 페테르의 딸 마야가 그러하다.


 대도시의 시끄러운 새끼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정말 조그만 하키팀에서 정말로 재능 있는 선수를 키울 때의 기분을 말이다. 그건 마치 얼어붙은 마당에서 꽃을 피운 벚나무를 보는 느낌이다.(p. 51~52)


 수네, 그는 그렇게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페테를 발굴하여 세계적인 선수로 키웠으며 어디로 갈지몰라 방황하던 다비드에게 청소년 아이스하키팀 감독을 맡게했을 뿐만 아니라 열정 넘치는 케빈을 잘 조련시켜 마을의 미래마저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훌륭한 선수로 만들었다. 이처럼 그는 팀이 아니라 철저하게 개인에게 몰두한 사람이었다. 한 사람에게 열정과 관심을 기울여 제 몫의 삶을 충실히 채워가도록 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집단의 이익에 쫓겨 오래도록 있었던 코치 자리에서 쫓겨난다. 집단이 개인에게 우선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베어타운'은 변했다.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하나의 가능한 수단으로만 존재했던 하키가 그것이 없으면 삶조차 불가능한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하키는 이제 단순히 팀 경기가 아니다. 마을 사람 전체의 삶을 주관한다. 그들 모두가 선수고, 한 팀이다. 다비드가 강조하듯, 승리를 위해 똘똘 뭉친다. 개인은 없다마야의 강간은 그렇게 변해버린 '베어타운'을 극명하게 드러낸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 시합은 전부다 다름없다. 그 뿐이다.(p. 22)


 소설은 처음부터 마야가 하키에 시큰둥 하다는 걸 강조한다. 그는 기타 연주를 더 사랑한다. 기타, 홀로 칠 수밖에 없는 그 악기는 팀이 아니라 개인의 상징이다. 그런 마야가 청소년 하키 팀의 케빈에게 강간 당한다. 청소년 하키팀 감독 다비드는 언제나 팀의 승리를 위해 개인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다비드의 말에 충실했던 케빈이 마야를 강간했다. 개인에 대한 집단의 일격이다.


 마야의 부모인 페테르와 미라는 자식을 한 번 잃은 적이 있다. 그 일로 내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으며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으려 노심초사 한다. 그런 부부에게 또 한 번 커다란 비극이 닥친 것이다. 페테르와 미라 역시 개인의 영역에 서 있다. 페테르는 수네의 퇴출을 거세게 반대하고, 미라는 변호사로 개인의 권익을 위해 싸운다.(미라 역시 하키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하키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할 뿐이다.(p. 23)) 무엇보다 그들이 가진 아픔이 집단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소설 초반은 페테르와 미아 부부 생활을 보여준다. 그런 가족의 모습은 여지없이 사랑스럽다. 가장 진정한 연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서로에 대한 상호 존중과 배려 그리고 가없는 책임이 사랑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초반에 이런 가족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마야의 강간 뒤 나타나는 케빈 가족의 모습과 대조되기 때문이다. 이제와 얘기지만, 소설은 다양한 인물을 담고 있고 저마다 목소리를 가지도록 허용한다. 그 어떤 인물도 함부로 폄하하지 않는다.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공정하게 부여한다. 판단은 독자에게 돌린다. 그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설득력을 가진다는 것, 이 소설의 훌륭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으며 그래서 배크만은 진짜 작가인 것이다.


 이 모든 파노라마에서 우리는 집단의 이익 때문에 쉽게 버려지는 불행한 개인을 본다. 그건 언뜻 벤담의 공리주의 같지만, 케빈 가족과 마을 유력자로 구성된 하키팀 이사회의 모습은 그들이 주장하는 공익이라는 게 사실은 사익의 집합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하키팀 응원단 '불곰'처럼 팀의 승리에 방해되는 이들에겐 폭력을 불사할 정도로 하나로 똘똘 뭉치는 마을 사람들조차 실은 저마다 사익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란 게 드러난다.


 바로 이러한 모습 때문에 마을 전체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마야는 세월호 참사로 보이고, 그 마야를 위해 마을과 맞서 싸우는 페테르와 미라는 유가족으로 보이는 것이다. 참사 후 1년 동안 우리나라 역시 '베어타운'의 마을 사람들과 똑같은 이유로 삼성이 준 돈으로 일베가 유가족 단식 현장 바로 옆에서 치킨과 피자 폭식 투쟁을 하는 등, 세월호 유가족들을 얼마나 무시하고 핍박했던가. 이것은 비단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다. 공동체라면 어디나 빠질 수 있는 어둠이다. 그렇기에 그런 위험에 대해 사유의 시간을 가져오는 '베어타운'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하기사 작가가 있는 스웨덴도 이민자에 대한 차별을 공공연히 옹호하는 우익들이 널리 지지받고 있는 형편이 아니던가.


 공동체는 어려울수록 약한 존재를 배제해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는 경향이 있다. 현재 미국, 일본, 유럽 할 것 없이 횡행하고 있는 자신과 다른 이들에 대한 차별이 단적인 예다. 그러나 '베어타운'은 이처럼 약한 누군가를 배제해서 이뤄지는 연대란 그것이 제아무리 거창하고 아름다운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다만 지옥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것도 억지로 독자를 원하는 자리로 끌고 가지 않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면서 말이다. 이는 비단 공동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역시 얼마든지 자신의 이익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타인을 지옥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의 말이었다. 그는 도움을 구하려 새벽에 홀로 찾아온 프란츠 파농을 오직 자신의 사생활이 침해된다는 이유로 문전박대했다. 실존주의는 개인의 자유에 천착한 철학이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집단이 개인에게 가하는 중력을 없애버리려 했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이러한 모습은 자유의 추구의 이면엔 이기심이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때문에 이 소설의 개인은 그런 개인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것이 소설이 페테르와 미라가 자식의 상실이라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이유다. 또한 마야와 아난의 관계가 소설이 마지막에서 강조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여기의 개인은 책임을 기반으로 한다. 책임이란 내 것을 내려놓고 타자를 떠맡는 모습이다. 페테르가 이제 막 아버지가 된 다비드 보다 훨씬 더 강하고, 그들의 가족과 마야와 아난의 관계가 마을 사람들이 이루는 집단 보다 훨씬 더 강했던 것 역시 책임이 반석이 된 연대였기 때문이다.


 결국 '베어타운'은 우리들에게 '무엇이 진짜 연대인가?'를 묻고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도 답하고 있다. 가장 강한 자를 위해 뭉치는 게 아니라 가장 약한 자를 위해 뭉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연대라고. 우리는 나만의 이익과 자유를 무리의 힘에 기생하여 타인에게 강요하고픈 유혹을 쉽게 받는다. 이렇게 하는 게 쉽고 덜 귀찮기 때문이다. 사랑은 힘들고 귀찮다. 내가 내려놓아야 할 이익과 자유가 많고 짊어져야 할 책임은 큰 까닭이다. 하지만 그런 유혹에 빠지지 말고 가장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자의 아픔 또한 내 아픔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를 통한 연대야 말로 진짜 연대라는 것을 '베어타운'은 강조한다. 눈 위의 난 곰 발자국이 아니라 새 발자국처럼 조용하게...


 지난 4월 27일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다. 우리는 이제 더 큰 공동체를 바라고 그것을 목전에 두고 있다. 다시금 연대의 모습에 대하여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이다. 그 사유를 '베어타운'을 길잡이 삼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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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뉴욕의 맛
제시카 톰 지음, 노지양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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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뉴욕의 유명 푸드 블로거이기도 한 제시카 톰의 첫 소설, '단지 뉴욕의 맛'의 원제는 무시무시하다. '음식 매춘부'인 것이다.

 어떤 때는 제목이 작품의 모든 것을 말해주기도 하는데, 바로 이 작품이 그러하다. 권력과 부가 가져다 주는 맛에 취해 그만 자신의 본 모습도, 원래 신념도 깡그리 잊어버린 여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푸드 블로거 출신답게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음식 세계과 한가득 펼쳐진다. 곳곳마다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허기질 때 읽으면 곤란한 책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티아.

 그녀는 대학생 때 그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썼던,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마지막 요리 시간에 대한 글이 예상 밖의 호응을 얻고 뉴욕타임즈에도 소개되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 평론가인 헬렌의 칭찬까지 받게 되자 원래의 꿈을 바꿔 헬렌처럼 요리 평론가를 꿈꾸게 된다. 그는 뉴욕대학원 환영회장에 헬렌이 온다는 얘길 듣고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하여 공들여 준비한 요리를 가지고 참석한다. 그러나 티아가 정작 만난 것은 헬렌이 아니라, 헬렌에 이어 뉴욕타임즈에 요리 칼럼을 쓰는 마이클 잘츠였으니. 첫 인상도 별로였고, 첫 만남도 좋지 않았던 티아는 마이클 잘츠가 자신을 알아봄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피하려 했으나 자신이 헬렌을 만나게 해 줄테니 메일 주소를 알려달라는 말에 헬렌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그만 알려주게 된다. 그 때는 티아가 대학원을 나와 진로를 결정해야 할 시기로, 헬렌의 인턴이 되는 것이 티아가 가장 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달콤한 사탕이 충치를 부르듯, 귀에 달달한 유혹 역시 독을 품고 있게 마련이다.

 그녀는 헬렌의 인턴이 되기는 커녕 자신이 지원하지도 않았고 단 한 번도 원한 적이 없었던 유명 레스토랑의 휴대폰 보관실을 담당하는 인턴 자리로 가게 된다. 요리 평론가가 되고 싶은 그녀에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경력이라 담당 교수를 찾아가 항의하지만, 뜻밖에도 자기가 거기에 지원한 걸로 나온다. 어찌된 영문인지 도통 모를 일이었지만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것도 평론을 쓸 때 아주 유용한 경험이 되어줄 것이라는 담당 교수의 말에 설득되어 티아는 결국 거기서 일을 한다. 그러다 그 레스토랑에서 다시 한 번 더 마이클 잘츠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더 음험한 유혹의 손길을 뻗쳐 온다.

 자신이 지금 미각을 잃어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칼럼을 쓸 수 없으니 티아더러 대신 써달라고 하는.


 그렇지 않아도 아무도 몰래 레스토랑의 요리를 평가하러 온 마이클을 유일하게 알아봐, 정성껏 서빙한 것으로 레스토랑의 신임을 한껏 얻고, 또한 뉴욕의 레스토랑에 가장 영향력이 큰 마이클과 대등하게 요리에 대해 말한 경험 때문에, 누군가에게 영향력 즉 권력을 미친다는 것의 쾌감을 알아버린 티아는 마침내 그 요구를 받아들이게 되고 마이클 잘츠의 이름을 빌어 자신이 일했던 레스토랑마저 글로 몰락시키는 등, 점점 권력의 단맛에 취해 어둠의 길로 가게 된다.(이런 걸 전문 용어로 '흑화'라고 하던가?) 그렇게 요리가 정말 좋아 글을 써는 게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글을 쓰는, 제목 그대로 '음식 매춘부'가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커커스 리뷰'도 말했듯이, 영화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다'가 연상되는 것 같다. 그 영화 역시 패션 업계 최고 권력이 가지고 있는 힘과 화려함에 눈이 멀어 원래 자신의 모습을 차츰 잃어가는 이야기이니까. 하지만 굳이 커커스 리뷰의 말을 듣지 않아도 소설을 읽으면 절로 영화가 떠오를 것이다. 그 영화가 뉴욕 패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려주었듯 이 소설도 그 세계에 있지 않으면 잘 모를 수밖에 없는 뉴욕 레스토랑 세계에 대해 한껏 알려주고 있으니까. 다시 말해 주방이라는 뒷 세계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레스토랑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메뉴와 고객 관리를 하며 몰래 잠입하는 요리 평론가 사진을 미리 걸어놓고 대처하는 모습 등등. 적어도 뉴욕에선 유명 요리사가 요리 하는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는 특정 고객에게만 할애된다는 것만은 이 소설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당연하게도 티아는 씁쓸한 경험을 한다. 권력을 얻는 대신 늘 자기 곁에서 힘이 되어 주었던 소중한 사람을 하나씩 잃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티아는 소중한 교훈을 얻는다. 540페이지의 두툼한 분량이지만 전개가 빠르고 잘 모르던 뉴욕 레스토랑의 요리와 현장이 펼쳐지는 지라 읽는 건 순식간이다. 아마도 이 소설을 즐기지 못하게 만드는 단 하나가 있다면 그건 주인공이 아닐까 한다. 주인공이 소설에서 가지는 마음, 하는 선택과 행동이 그리 널리 공감을 얻긴 힘든 까닭이다. 하지만 그걸 삶의 소중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한다면 그런 티아의 모습 쯤은 살짝 눈감아 줄 수 있지도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브루클린 출신답게 뉴욕적인 분위기가 가득하고, 여기저기 요리와 레스토랑에 대한 얘기가 넘쳐난다. 이런 분위기, 이런 소재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이만한 먹음직스런 정찬도 또 없을 듯 하다. 군침이 도시는 분들은, 주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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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 완전한 비핵화, 핵없는 한반도 실현
- 문재인 대통령, 올 가을 평양 방문…회담 정례화
-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성지역 설치, 쌍방 당국자 상주
- 모든 적대행위 중지, 비무장 지대를 ‘평화지대’로 
- 8·15 이산가족 상봉
-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 연결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정상 회담의 결과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서명한 뒤 공동 발표 하였습니다. 아래는 선언문 전문입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화와 번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한결같은 지향을 담아 한반도에서 역사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뜻깊은 시기에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하였다.

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하였다.

양 정상은 냉전의 산물인 오랜 분단과 대결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고 민족적 화해와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하게 일어나가며 남북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담아 역사의 땅 판문점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1. 남과 북은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이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온 겨레의 한결같은 소망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절박한 요구이다.

ⓛ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으며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관계 개선과 발전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기로 하였다.

② 남과 북은 고위급 회담을 비롯한 각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하여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문제들을 실천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하였다.

③ 남과 북은 당국 간 협의를 긴밀히 하고 민간교류와 협력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지역에 설치하기로 하였다.

④ 남과 북은 민족적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하기로 하였다. 

안으로는 6.15를 비롯하여 남과북에 다같이 의의가 있는 날들을 계기로 당국과 국회, 정당,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를 적극 추진하여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밖으로는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를 비롯한 국제경기들에 공동으로 진출하여 민족의 슬기와 재능, 단합된 모습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로 하였다.

⑤ 남과 북은 민족 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남북 적십자회담을 개최하여 이산가족·친척상봉을 비롯한 제반 문제들을 협의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당면하여 오는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⑥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다.

①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당면하여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하였다.

② 남과 북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하였다.

③ 남과 북은 상호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이 활성화 되는 데 따른 여러 가지 군사적 보장대책을 취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쌍방 사이에 제기되는 군사적 문제를 지체 없이 협의 해결하기 위하여 국방부장관회담을 비롯한 군사당국자회담을 자주개최하며 5월 중에 먼저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다.

한반도에서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이다.

① 남과 북은 그 어떤 형태의 무력도 서로 사용하지 않을 데 대한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하고 엄격히 준수해 나가기로 하였다.

② 남과 북은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서로의 군사적 신뢰가 실질적으로 구축되는 데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하였다.

③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④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하였다.

양 정상은 정기적인 회담과 직통전화를 통하여 민족의 중대사를 수시로 진지하게 논의하고 신뢰를 굳건히 하며,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향한 좋은 흐름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 위하여 함께 노력하기로 하였다.

당면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가을 평양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2018년 4월 27일 
판 문 점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김정은

 

 

 정말 감격스런 날이네요.

 오래도록 오늘을 기리기 위해 여기에 새겨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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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유령함대 세트 - 전2권 - 미중전쟁 가상 시나리오
피터 W. 싱어.오거스트 콜 지음, 원은주 옮김 / 살림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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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 학자이자 사이버 보안 및 사이버 전쟁 전문가인 피터 W 싱어와 '월 스트리트' 신문의 국가안보 및 방위산업 전문기자 출신인 오거스트 콜이 함께 쓴 '유령 함대'는 우리나라에선 이제야 출간되었지만 실은 2015년에 나왔다. 그 때부터 입소문이 대단했다. 특히 군대 쪽에서 지휘관이라면 꼭 읽어야 한다는 말이 많아 나와서 팔랑귀인 나는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그러나 싶어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읽어보게 되었다. 현재 한창 개발중인 군사 기술을 토대로 밀리터리 스릴러를 쓰는 건, 이제는 작고한 톰 클랜시의 전문 분야였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잭 라이언 시리즈는 첫 선을 보인 '붉은 10월'부터 '공포의 총합'까지 많은 소설들이 다시 영화로 만들어질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가 미친 영향은 게임도 못지 않아서 '레인보우 식스'나 '스프린터 셀' 혹은 '고스트 리콘'등, 게임 좀 해 본 사람이라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게임들이 그의 시나리오와 감수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톰 클랜시의 소설도 아닌데 삼천포로 빠진 것처럼 이런 얘길 하는 것은 '유령 함대' 역시 그 계열에 속하기 때문이다. 톰 클랜시 소설에 대한 향수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사후, 오래도록 끊어졌던, 흔히 '테크노 스릴러'로 불리기도 하는 그 장르의 맛을 '유령 함대'에서 다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중국과 미국의 전면전을 다루지만 현재는 아니다. 때는 2026년. 세계는 당신이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바뀌었다.

 일단 주요 에너지가 더이상 석유가 아니다. 석유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다란에 떨어진 '더티 밤'이라 불리는 방사능 폭탄 때문에 몰락했다. 그 여파로 사우디아라비아 국가 자체가 무너져 더이상 석유를 채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여파를 일으켰다. 무엇보다 중국의 시진핑 정권이 붕괴되었다. 오일 사태로 인한 경제적 혼란의 가중으로 도시 노동자가 정부에 대해 거센 저항 운동을 일으켰는데 시진핑 정권이 예전 '천안문 사태'처럼 폭력으로 진압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중국은 예전 천안문 사태 때의 중국이 더이상 아니었다. 그런 폭력적인 진압을 보고 시진핑 정권에 대해 희망을 잃어버린 산업 자본가와 군부 장성들은 반란을 획책, 시진핑 세력들을 모조리 숙청하고 정권을 잡는다. 그들은 예전의 시진핑처럼 한 개인에다 권력을 귀속시키지 않고 '위원회'란 집단에게 권력을 귀속시킨다.




 이런 위원회는 두 가지 과제에 직면했다. 하나는 외부의 것으로, 정권의 바뀜으로 인한 혼란을 틈타 인접한 러시아가 언제든 침공할 수 있었다. 그들은 러시아와 비밀리에 협약을 맺어 이 돌발 위기 변수를 제거한다. 또 하나는 내부의 것으로, 에너지 문제가 정권의 변화를 가져온 만큼 그들 역시 시급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갑작스런 석유의 퇴출은 전세계에 혼란을 가져왔고 각국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아 곳곳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제 에너지원은 전쟁마저 불사하게 만드는 새로운 화약고였다. 그러던 차에 중국은 태평양의 마리아나 해구에서 천연 가스가 대량으로 매장된 것을 발견한다. 중국은 이 에너지 자원 확보에 두 번째 동티모르 분쟁으로 인도네시아가 몰락하고 말레이시아가 다시 독재국가로 돌아간 시점에서 태평양의 안보와 자원 확보에 위기를 느끼고 있는 미국이 가장 커다란 방해물이 되리라 내다봤다. 미국을 선제적으로 제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중국의 '위원회'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우선 러시아와 거짓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척하여 미국의 눈을 딴 데로 돌린 다음, 원래는 미국과 러시아가 함께 운영하던 우주 정거장을 장악(이것이 소설 프롤로그의 내용이다.)하여 GPS를 무용지물로 만든 후, GPS 없이 핵 추진 선박들을 효과적으로 찾을 수 있는 '체렌코프 방사선'을 이용하여 미국 함대를 추적,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동시에 자신들이 미국에 수출하여 이제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중국산 마이크로 칩들을 매개로 미국 전역의 컴퓨터 시스템을 바이러스에 감염시켜 혼란을 초래한다. 이는 사회적 혼란만이 아니라 미국의 대응 공격도 무력화시켰는데, F-35 라이트닝을 비롯하여 많은 미국의 첨단 무기들이 중국산 마이크로 칩을 탑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원회의 공격은 아주 효과적이었고 그들은 화와이를 침공한다. 2026년, 또 한 번 아시아의 진주만 공격이 개시된 것이다.


 결국 화와이는 중국에게 점령된다. 우주 정거장의 체렌코프 방사선과 사이버 공격 때문에 더이상 과거의 전략과 전술로 중국을 상대할 수 없게 된 미국은, 핵 추진을 하지 않는 예전의 구축함(바로 이렇게 이미 현역에서 오래전에 퇴역한 구축함을 '유령 함대'라 부른다.)으로 중국을 타격하려 한다. 그러나 함포 사격은 또 중국에게 탐지될 것이었으므로 절대 탐지할 수 없도록 전자기력을 사용해 포탄을 날리는 레일건으로 승부를 보려 한다. 사정거리가 거의 4000km나 되고 음속의 6배로 포탄을 날릴 수 있기에 적들이 탐지하기도, 대처하기도 어려운 레일건을 장착한 '줌월트'는 화와이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건 항해를 시작한다.


 여기까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상황과 이야기를 대체적으로 소개해 보았다. 물론 이 소설엔 내가 앞에서 한 얘기만 나오지 않는다. 소설은 수 많은 인물들에게 저마다 목소리를 부여하면서 전개되는데, 여기엔 점령 당한 화와이에서 저항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나오고 또 중국 쪽의 시선도 나온다. 많은 목소리가 시점을 달리하며 병행되고 있기에 이야기 되는 상황의 전체를 가늠하기가 좀 어렵기 때문에 내가 이해한 것을 발판으로 그 전체적인 맥락을 말해 본 것이다.


 둘 다 현대 군사 기술과 안보 체제에 전문가라 그런지 소설에 나오는 기술이나 병기들이 현실감이 넘친다. 무엇보다 레일건에 대한 것은 진짜 그대로다. 그러나 2015년에 나왔다는 한계 때문에 레일건에 대한 그들의 예언은 어쩔 수 없이 빗나가게 되었다. 그들이 소설을 발표한 2015년만 해도 레일건은 줌월트 급의 구축함에 장착하여 실전 배치될 예정이었지만 2018년 현재는 레일건이 전기를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는 것을 비롯한 비용 상의 문제로 실전 배치가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한 편, 중국은 실제로 배치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레일건을 개발 중인 걸로 알고 있다. 이렇게 현실감이 넘치기에 소설 속 내용이 좀 오싹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막강하다는 미군 함대가 저렇게 손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바야흐로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 예전엔 핵탄두와 같은 병기였지만 이제는 사이버 공격으로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키는 거란 걸 실감하게 되었다. 소설이 잘 보여주듯, 아무리 단단해 보이는 체제라도 아주 작은 요소로도 파국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자신을 너무 과신하여 전쟁을 일으킬 생각을 하는 것보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로 평화 체제를 더욱 굳건히 하는 게 현명한 선택인 것이다.


 이런 실감은 만일 내가 2015년에 이 소설을 읽었다면 더욱 소름으로 다가왔으리라. 올해 초만 해도 북한의 핵실험이 얼마나 동아시아에 어마어마한 긴장을 가져왔던가? 그러나 내일은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날이고 종전의 가능성이 넘쳐나고 있다. 갈등으로 얼어 붙었던 겨울이 가고 화합의 따스한 봄날이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소설 또한 편안한 기분으로 읽었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이 결코 SF인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내겐 SF로 보일 정도로. 후후. 그래서 이런 말까지 덧붙여 두고 싶다. 대체적으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이지만 아무래도 중국과 미국의 전쟁이라는 거대한 스케일을 다루는 지라 드라마에 구멍이 다소 있으며 인물의 처리도 매끄럽지 않은 약점도 있다고. 때문에 인물들에게 비중을 두기 보다 전략이나 전술 또는 정치적인 면에 더 많이 비중을 두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든다는.


 아무튼 오랜만에 만나보는 톰 클랜시 스타일의 소설이라 예전의 추억도 생각나고 해서 재밌게 읽었다. 나처럼 그런 소설에 향수가 있으신 분들은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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