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간 난 매주 5,000원씩 로또를 샀다.
꿈에 나왔던 숫자들을 조합해 다섯 게임을 만들었고,
일일이 기입하기 귀찮으니 기입된 OMR을 갖고 다니다
로또 판매점에 가서 내밀곤 한다.
근데 지난 목요일, 이상한 꿈을 꿨다.
굵은 지렁이 다섯 마리가 방안을 기어다닌다.
징그럽다고 이리저리 피해다니다 그만 넘어졌는데
지렁이 한 마리를 무릎으로 깔았다.
다리에 지렁이 피가 빨갛게 묻은 상태로 잠에서 깼다.
이게 무슨 꿈인가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로또를 사야겠다 싶었다.
원래 사던 번호로는 이미 샀기에 자동으로 해달라며 2천원을 내밀었다.
근데 그 아저씨가 이런다.
"혹시... 교수야?"
처음에 난 "교수가 이렇게 로또나 사고"라는 힐난으로 알고 도망가려고 했는데
잠시 정신을 차려보니 그렇다고 도망갈 이유가 뭐가 있담?
그래서 특유의 멍청한 표정으로 "네?" 하고 물었다.
"당신 혹시 교수냐고."
왜 그러냐고 묻자 아저씨가 이런다.
"얼마 전에 TV에서 봤어."
내가 로또를 산 그 장소는 내 본가 근처였고,
작년 초 결혼을 하기 전 내가 줄기차게 로또를 사던 곳이기도 했다.
로또가 나오기 전에는 지나갈 때마다 즉석복권을 샀기에
그 아저씨는 당연히 날 기억하고 있을 터였다.
그런 내가 TV에 나왔으니, 반가울 만도 했다.
그제서야 난 미소를 띠고 "아, 네 그게요 어찌어찌하다보니 나가게 됐어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
십여년 전, TV 리포터를 하던 시절이 두달쯤 있었다.
어느날 지하철에서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라는 걸 받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지금 생각하니 의경이었다)이 다가왔다.
나한테 "저..." 이러기에 뭔가 잘못되었다 생각하고 튀려고 했는데
그가 이런다.
"혹시 TV 나오시는 분 아니세요?"
그제서야 난 미소를 띠고 "아, 네, 그게요"라고 대답했고,
그는 자기 동생이 내 팬이라면서 만나서 반갑다고 했다.
알아봐 주는 건 좋지만 그게 하필 내가 현금서비스를 받을 때라니.
이와 비슷한 사례 두 번째.
군대에 가기 전, 스물다섯차례의 환송회를 감당할 길이 없어
사채를 빌려쓴 적이 있다.
생활정보지에서 광고를 보고 찾아갔는데,
150만원을 빌리는데 선이자에 공증까지 한다며 30만원을 떼고 120만원을 줬다.
그것도 현금으로 주는 게 아니라 은행계좌로 보내준단다.
은행까지 따라갔다.
그가 송금을 하는 동안 난 특유의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은행원이 갑자기 나한테 이런다.
"혹시... 사랑의 스튜디오 나오신 분 아니세요?"
난 억지웃음을 지으며 "아, 네, 그게요..."라고 했고
그녀는 만나서 반갑다면서 몇마디 말을 더 시켰다.
알아봐 주는 건 좋지만, 하필 사채를 빌릴 때라니!
지나간 일은 그렇다 쳐도 앞으로는 행동을 좀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TV에 나왔던 사람이 로또를 사는 건 좀 거시기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