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 다녀왔다.
외국 가는 걸 그리도 싫어하면서도 가야 했던 이유는,
내가 미라 연구팀 소속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발굴되는 미라를 가지고 연구하는 건 한계가 있다.
나오는 게 대부분 300-400년 된 조선시대 미라고,
거기서 나오는 기생충도 별반 새로울 게 없었으니 말이다.
발에 차이는 게 공룡 뼈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무덤이 많다는 몽골,
그쪽 사람들에게 우리의 연구 상황을 말해주고
공동연구를 하자고 꼬드기는 게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나를 비롯한 미라 팀 다섯명과 몽골어과 교수를 중심으로 한 고고학 연구팀 4명,
이 일기는 그들과 함께 한 3박4일의 간단한 기록이다.
4월 25일 (토)
여행가방을 쌀 때, 책을 세 권 챙겼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부터 진중권의 <이매진>을 읽기 시작했고,
비행기 안에서도 계속 안자고 그 책을 읽었다.
몇페이지 안남았을 때 방송이 나온다.
"이제 곧 징기스칸 공항에 도착합니다."
책 두 권으로 남은 일정을 견뎌야 한다니, 갑자기 공포감이 엄습했다.
호텔에 도착한 건 밤 12시 즈음.
독방이어서 좋았고, 좁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잠이 안와서 두시까지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읽었다.
4월 26일(일), AM 7시.
여러 번 말한 적이 있지만 난 외국에 가면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한다.
심리적인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인데,
그건 잘사는 나라건 못사는 나라건 마찬가지다.
더 희한한 건 현지에 있는 한국식당에서도 밥을 먹지 못한다는 것.
그걸 잘 아는 아내는 식빵 한 줄과 딸기잼, 그리고 땅콩버터를 싸줬고,
거기에 더해 내가 '마술 도시락'이라고 명명한 신기한 도시락을 구해 왔다.
마술 도시락은 통이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햇반을 위쪽 통에 넣고 카레를 그 위에 부은 뒤
아래쪽 통에는 물을 넣고 무슨 주머니난로 비슷한 걸 넣는다.
그러면 1분도 안되어 아래쪽 물이 끓기 시작하고,
그렇게 8-10분 가량 놔 뒀다가 밥을 먹으면 된다.
이번 여행을 떠날 때 그리 큰 걱정을 안한 건,
여행 가방의 반을 차지한 먹거리들 덕분이었다.
일요일 아침, 식당으로 가 사람들에게 "속이 안좋다"고 한 뒤
내 방으로 와 마술 도시락을 먹었다.
카레에 장조림 햄, 통조림 김치.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일회용 숟갈로 밥을 뜨면서 "이것만 있으면 일주일도 버티겠다"며 껄껄 웃었다.
밥을 다 먹고 점심에 먹을 빵을 만들었다.
땅콩버터에 딸기잼을 듬뿍 발라 만든 빵, 점심도 두렵지 않다.
4월 26일, AM 10시
자연사 박물관을 견학하다.
겉으로 보기엔 그다지 넓어 보이지 않았는데,
그 안엔 별 게 다 있다.
티라노사우르스의 뼈가 풀세트로 갖춰져 있는 걸 보고 놀라다.
거의 한시간 반을 걸어다닌 것 같다.
* 날씨에 관해서
몽골이 북반구라 추울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안내자가 보내온 메일에 의하면
우리가 가기 전전날 눈이 왔단다.
그 메일에 낚인 우리 일행은 다들 중무장을 하고 왔는데,
난 혹시나 싶어 반팔을 하나 가져갔다.
학회날을 제외하곤 내내 반팔만 입고 살았다.
몽골의 햇볕은 아주 강렬했고, 밤에도 전혀 춥지 않았다.
4월 26일, PM 12시
일행 중 한명과 잘 아는 몽골대사관 영사가 한국식당에서 밥을 샀다.
불고기 조림이 전체요리로 나오고 각자 밥을 시켰는데,
혹시나 싶어 불고기 한점을 먹어보니 역시나 안되겠다.
가방에서 빵을 꺼내 몰래 베어먹었다.
이렇게 맛있는 빵이 있다니,라고 감탄하면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미라 팀에 있는 친구가 이런다.
"야, 진짜 맛있다. 난 이곳 음식이 체질에 맞나 봐."
글로벌 시대에 맞는 그가 부러웠다.
4월 26일, PM 2시
피곤해 죽겠는데 말을 타러 국립공원에 가잔다.
나보다 연로한 누군가가 "좀 쉬다 가자"고 했더니,
가는 동안 차에서 자란다.
가이드와 운전사를 포함해 봉고차 안에 열한명이 타니 좁았지만,
그래도 피곤하니 잠이 왔다.
말이 국립공원이지, 그냥 초원에 천막과 더불어 말 몇 마리만 있었다.
조랑말이어서 타기가 미안했다.
그 말도 무지 힘든 듯 간간이 신음소리를 냈다.
살을 빼긴 빼야겠구나 싶었다.
같이 말을 탄 일행 중 두명은 말에서 떨어졌지만
난 별 탈 없이 30분 가량이 소요되는 한바퀴를 완주했다.
친구가 이런다.
"너 말 잘 타더라. 말과 완전히 혼연일체가 된 것 같았어."
말에서 내리면서 날 태우느라 힘이 빠진 말을 쓰다듬으면서
연방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제 좀 쉬어."라고 하며 뒤로 돌아서는데,
아주 뚱뚱한, 대략 80킬로는 되어 보이는 미국여자 한명이 그 말에 올라탄다.
마음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