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글을 쓴 뒤 등록버튼을 누를지 말지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그 뒤의 반응을 보니 그 망설임은 충분히 이유가 있었던 것 같네요.
여기서 블로그질을 시작한 후 가장 많은 욕을 들어먹었으니까요.
고인에 대한 얘기를 이제 그만 하려고 했지만, 어느 분의 말씀 때문에 다시금 글을 씁니다.
그분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대화의 문을 닫아걸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시는 것은, 자기모순/자기기만/자기부정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행위는 마태우스 님 자신도 결코 떳떳하지 못한 처신이라고 생각하시리라 믿습니다.]
그간 제가 알라딘에 글을 자주 쓰지 못한 건, 솔직히 사정이 어려워서였습니다.
요즘 연구를 열심히 하는지라 학교에선 글 쓸 시간이 거의 없고,
학교에서 못한 일들을 집에 가져갈 때도 많거든요.
그래도 그 글에 대해 제 블로그에 올라오는 댓글에는
나름대로 성심성의껏 답변을 드렸다고 생각을 합니다.
한 글에 올라오는 댓글은 보통 2-3일 정도가 고작이기에
마지막 댓글을 남기고 이제 다 정리가 되었거니 하고 마음을 놓고 있었지요.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들어와보니 그 뒤로도 많은 분들이 글을 남기셨더군요.
예를 들어 이런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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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경 2009-05-30 02:52 댓글달기 | 삭제 | URL
참 답답합니다...왜 갑자기 노무현이 그런 추앙을 받아야 하는 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열변을 토하시는데, 그건 오로지 그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다 몰아가시네요..가장 최저점의 지지율 기록을 그 사람에 대한 전체적 지지율로 확정 지으려고 신문 자료까지 들이대시는 님의 열성도 놀랍네요.아뭏든 실망이 큽니다..그리고 어디가서 나도 노무현 지지했다 이러구 떠들지 마시기 바랍니다.님이 쓰신 황당한 글 그게 그렇게 폼납니까. 안습입니다. 노무현의 가치 조차 인정 못하는 우리 사회의 대표 주자시네요..테니스 열심히 치세요.개그달인님 |
그러고보면 사람은 한순간인 것 같습니다.
논문이 없어 잘릴까봐 빌빌대던 제가 갑자기 논문을 제일 많이 쓰는 베스트 5 안에 들어간 것도
두가지의 우연이 겹친,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제 아내같이 좋은 사람을 만나 귀여운 강아지들과 살아가게 된 것도
싫다는 데 자꾸 선을 보라고 괴롭히던 어느 분 덕분이지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인생은 한방입니다."
문제는 그 한순간이 꼭 좋은 일만 가져오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 글을 쓰지 않았다면, 석경이란 분은 저에 대해 그저그런, 혹은 괜찮다는 감정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제 생각을 확인하고 난 뒤
석경님에게 전 아주 나쁜 놈이 되버렸지요.
그가 쓴 "마태님 폼 좀 잡고 싶으신가요" 같은 댓글을 보면서,
한 사건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는 게
이렇게 누군가를 증오할 이유가 되는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왜 그분들은 제 의견을 '나랑 의견이 다르구나' 또는 '웬 이상한 놈이 헛소리를 하냐'고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저에 대해 어느 정도 기대를 하셨기 때문이겠지요.
그러고보면 다른 분들의 기대란 것도 글을 쓰는 데 있어 검열기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글을 올리는 걸 여러번 망설인 이유도 거기에 있었나 봐요.
이번 글을 통해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만,
생각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전 여전히 고인이 실패한 대통령이며,
이명박의 집권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그가 자살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훌륭한 대통령으로 격상되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댓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집권 기간 내내 그를 악의 화신으로 묘사하던 민주노동당이
"노무현, 당신은 우리의 희망입니다"라는 플래카드를 천안역에 붙여놓는 게 뜬금없습니다.
그를 욕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는 게 이상했습니다.
그가 자살을 하는 대신 그냥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면,
그래도 이런 반응이 나왔을까 하는 게 제가 궁금한 점이었습니다.
그 궁금증이 '자살을 부추기는 사회'를 쓴 이유였고,
제가 욕을 바가지로 먹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글에 담긴 비아냥과 조소가 불편하셨던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두번째 페이지에 올라온 수많은 익명의 댓글들에
일일이 댓글을 달지 못하는 것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과거에 인터넷에서 쌈질만 한 놈이라 웬간한 글에는 초연한 편이지만
제 진의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분들과의 대화는 상처가 남더군요.
그래도 이번 일이 전혀 무의미하다고 생각진 않습니다.
한 사람의 발언은 무슨 사안이 있을 때마다 되풀이됩니다.
제가 앞으로 무슨 글을 쓰건간에 알라딘 분들은 제게 이럴 겁니다.
"쟤는 노무현 죽었을 때 왜 추모하냐고 한 놈이야."
이건 절대 비교가 아닙니다만
황석영 선생의 말을 이제 귀기울여 들을 사람이 없듯이,
제가 쓰는 글들도 별반 주목하는 분이 없을 것 같네요(황석영과 절 비교한 게 아니랍니다 절대!_.
저에 대해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 저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전 제 갈길을 홀연히 갈 테니,
즐거운 서재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