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서 제5회 리뷰대회를 한다기에 들어가 봤더니
세상에, 1등 상금이 100만원이다!
2등 상금만 해도 50만원이니, 2등만 해도 1년간 책값 걱정은 없을 것 같다.
순간적으로 욕심이 생겼지만
내 리뷰실력으로 1등을 꿈꾸는 건 내가 페더러와 테니스를 쳐서 이길 확률보다 낮아 보이고
참가상 획득에 그친 지난 네 번의 대회가 내 현주소를 말해준다.
그렇다고 “난 리뷰를 못쓰니까 안할래!”라고 하면 좀 없어 보이니,
이렇게 정리하련다.
“대상도서를 보니깐 읽은 책들 리뷰는 이미 썼고,
안읽은 책들은 그다지 읽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난 기권이다!”
그냥 기권하려다 누가 우승을 할지 맞추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내가 전화번호를 아는 알라디너 47명에게 문자를 보내 우승자를 점쳐 보라고 했다.
세분을 제외한 44명이 답을 주셨는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우승자 전망을 써본다.
1위. 바람구두님, 21표
http://blog.aladin.co.kr/windshoes
리뷰의 대명사로 불리며 숱한 팬을 거느리고 있다.
500여편의 리뷰로 1만회가 넘는 추천을 받아 최다추천 기록을 가지고 있고,
“그의 글을 읽을 때는 항상 추천부터 한다”는 ‘선 추천 후 감상’이란 생활패턴을 유행시켰다.
특히 리뷰의 제목을 잘 짓는 걸로 유명한데,
예를 들어 <D에게 보낸 편지>의 리뷰는 이런 제목을 달고 있다.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시절의 오만>
무지하게 시적이고 읽고 싶어지는 제목이 아닌가?
같은 책에 붙은 다른 제목들과 비교해 보자.
부리: <D는 당나귀인가, 당나라인가?>
전설의 미자: <편지 쓴지가 오래되었구나>
제네시스: <D에게 보낸 편지를 읽다>
정말이지 구태의연한 제목들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구두님의 리뷰는 본인의 경험이 잘 녹아들어가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예를 들어 이 책 저자인 앙드레 고르의 결혼 얘기를 하다가
“아내와의 결혼을 결심하기 전,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것이 과연 잘하는 결정인지 알 수 없었다.”
같은 구절을 삽입함으로써 갑자기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이어지는 구절, “그때 나에게 용기를 준 사람은 세 명의 여인이었다”
여인이 셋이나 나오다니, 점점 흥미진진해지지 않는가?
그러니 사람들은 더 이상 <D>에게 관심을 갖는 대신
구두님의 앞날이 어찌될까 궁금해하는 거다.
굴지의 일간지 부리일보는 구두님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바람구두가 알라딘에 둥지를 틀어 다행이다. 그래스물넷에 있었다면 어쩔 뻔했어?”
2위. 다락방님, 11표
http://blog.aladin.co.kr/fallen77/3173392
우리 현실과 책 속의 세계를 기가 막히게 연결시키는 재능이 뛰어나며,
문체가 감각적이어서 읽는 이의 가슴을 그대로 강타한다.
예컨대 <이름 뒤에 숨은 사람>의 리뷰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달콤한 도넛츠가 먹고 싶었다. 커피와 함께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이 글이 올라오고 난 뒤 던킨도너츠의 매출액이 5.3% 신장했는데,
던킨 측에서는 아직도 그 원인을 조사 중이란다.
굴지의 일간지 부리일보는 다락방님의 리뷰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을 했다.
“그의 리뷰는 호수처럼 맑고 평화롭지만, 글자 하나하나가 칼날처럼 내 부리를 두들겨 팬다. 다락방은 원 책보다 리뷰가 더 좋게 느껴지는 그런 리뷰를 쓰는 몇 안되는 리뷰어다.”
3위 드팀전님, 7표.
http://blog.aladin.co.kr/apple21
드팀전님의 글은 늘 읽는 이로 하여금 “옳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어느 분은 드팀전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머리가 멍해진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건 그 글을 읽음으로써 정신세계가 한 단계 고양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대회인가 지지난 대회인가 드팀전님이 리뷰대회 1등을 한 게 불리한 점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드팀전님이 또 1등을 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드팀전님의 리뷰는 책에 대해 빠삭하게 정리를 해주고,
그 이면에 뭐가 있는지를 파헤쳐 줌으로써
리뷰만 읽어도 책을 읽은 사람보다 책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게 해준다.
[‘여신이여! 그대는 나를 보내줄 생각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오.’
이 말에서 나는 오뒷세우스가 상징하는 알레고리의 가장 중요한 한 대목을 본다.
그것은 '의심'이다. '오뒷세우스는 의심하는 인간'이다.]
이런 해박함 때문에 일선 학교에서는 드팀전님의 리뷰를 실습교재로 쓰기도 한다는데,
드팀전님에 대해 굴지의 일간지 부리일보는 이렇게 평했다.
“파전도 아니고 김치전도 아닙니다. 오직 드팀전입니다.”
4위. 마냐님, 2표
http://blog.aladin.co.kr/goodmom
‘남은 건 책밖에 없다’라는 타이틀로 알라딘을 석권했던 1세대 서재인으로
‘마립간’ ‘마태우스’와 더불어 ‘마삼트리오’의 일원이다.
마냐님의 특징은 글을 쉽게 쓴다는 것.
<1Q84>란 책에 대해 어떤 분은
“하루키의 엘레강스하면서도 소프트한 실존주의 철학을 그대로 드러내준 수작으로,
하이쿠를 쓰다가 사요나라를 외치는 자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한다“라는,
몇 번을 읽어도 해독이 안되는 난해한 리뷰를 남겼다.
반면 마냐님의 리뷰를 보라.
[회사가 이사한 뒤 가끔 출근길에 걷는다. 운동할 시간도 없고, 책 볼 시간도 많지 않다는 이유로, 책을 읽으며 걷는다. 집에서 회사까지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하루끼의 이 책은 길 위에서 읽었다. 길바닥에서 읽기에는, 들고 다니기에는 꽤 무거운 책이었는데, 충분히 몰입할 만 했다. 순식간에 100쪽을 읽어버릴 수 있었고, 한남대교 걸을 때 잠깐 강을 봐주며 읽기에도 낭만이 있는 책이었다. 읽는 동안 즐거웠는데, 정작 책을 덮고 나니 입맛이 쓰다. 원래 하루끼가 이랬던가. 기억이 가물거린다. 하루끼에게 빠져들었던 젊은 날의 나로부터 너무 멀리 온 걸까.]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다!
‘길바닥’ ‘입맛이 쓰다’같이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자주 쓰는 단어만 가지고도
이렇듯 멋진 문장을 탄생시키는 걸 보면
마냐님의 손은 예술가다.
저 문장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다음 사항을 쉽게 알 수 있다.
1) 마냐님의 회사는 이사를 갔다. 1시간 20분 거리로.
2) 이 책은 무겁다.
3) 마냐님은 더 이상 젊지 않다 (외모는 젊던데...?)
리뷰 몇줄로 이렇게 많은 정보를 주는 마냐님,
그의 팬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다.
마냐님에 대해 굴지의 일간지 부리일보는 이렇게 말했다.
“마녀라고 잘못 읽지 마라. 이름 갖고 장난치면 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