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전화가 걸려 왔을 때, 마태우스는 자고 있었다. 손을 더듬어 겨우 전화기를 들자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무시는 데 죄송합니다. 마태우스 씨죠?”
자고 있는 걸 알다니,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는 알라딘의 건축설계를 맡고 있는 메피스토펠레스라고 합니다. 혹시 신밧드라고 아시죠?”

“네, 압니다. 알라딘의 최대 주주잖아요. 그 사람이 왜요?”
메피스토가 말을 이었다.
“신밧드님이 곧 미국으로 떠납니다. 그래서 알라딘을 다른 분에게 넘기고 가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태우스님만한 사람이 없다며, 좀 맡아 주십사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마태우스가 입을 열었다.
“그, 그렇다면 이주의 리뷰에 제가 매주 당선되도 괜찮은 건가요?”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럼요. 마태님이 수락만 한다면 적립금을 몽땅 가져가셔도 됩니다. 요즘은 마태님이 리뷰를 잘 안쓰시긴 하지만요. 껄껄껄.”
마태우스의 심장에 격랑이 일었다.
“그, 그렇다면 뭐 한번 생각해 보죠. 안그래도 제가 공부한 선진기법을 알라딘 경영에 적용하고 싶었거든요. 언제부터 출근하면 됩니까?”
“그게 말입니다...”
메피스토가 한 말은 이랬다. 신밧드는 마태우스가 정말 알라딘을 승계할 능력이 있는지 시험해 보고 결정할 것이다, 신밧드는 평소 알라딘 마을을 지금보다 몇배 더 키우는 꿈을 가지고 있었기에 마태우스도 그 일을 승계해 줬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서재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신밧드님은 자신이 말한 서재가 어느 서재인지 마태우스님이 맞춰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못맞추는 경우 다른 분께 기회가 넘어갑니다.”
“네? 그, 그런 일이...”
알라딘엔 서재가 총 11만개가 있고, 서재지수가 5천을 넘는, 좀 열심히 하는 서재만 해도 3천개가 넘는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맞출 수가 있단 말인가.
“대체 신밧드님이 했던 말씀이 뭔가요? 그걸 듣고 나서 결정하겠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대지 위에 고색창연한 풍차가 서 있다. 풍차 옆에는 말 한 마리가 유유히 풀을 뜯고, 바람에 흔들리는 종소리에서 신의 목소리를 느낀 부부는 조용히 머리를 숙인다. 이게 답니다. 참, 기한은 단 일주일입니다.”
마태우스는 그날밤 한잠도 잘 수가 없었다.

“재미있군요. 풍차라....”
마태우스의 말을 들은 다락방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신밧드님이 표현하신 건 밀레의 <만종> 같아요. 하지만 대체 그게 어떤 서재인지는 저도 모르겠군요.”
“혹시 다락방님 서재가 아닐까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다락방은 고개를 저었다.
“제 서재는 밀레와는 거리가 멀어요. 농촌 풍경보단 좀 도회적이지 않나요?”
듣고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그, 그럼 어디일까요?”
“그건 저도 모르죠. 저는 마태님이 어떤 이유에서 서재를 인수하려 하는지도 알지 못해요. 하지만 님이 하는 일을 도와 드리고 싶네요. 님이 알라딘 대주주가 된다면 제게 적립금을 몰아주실 것 같아서 말이죠, 호호호.”
마태우스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락방님께서 도와주신다면 그 서재를 찾는 건 일도 아닐 겁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눈을 감고 서재의 향기를 느껴보세요. 뭐가 느껴지세요?”
다락방의 말에 마태우스는 눈을 감았다.
“음, 서당에서 아이들이 글을 읽고 있어요. 글들이 하나같이 심금을 울리네요. 마음 좋은 훈장님이 담뱃대를 물고 계시고요. 좋은 서당이라고 추천과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있군요. 아니 이건! 글 읽는 소리 사이로 약간의 발냄새가 느껴져요. 그렇다면 여기는.....”
마태우스는 눈을 떴다. 다락방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네, 맞아요. 이곳은 바람구두님의 서재예요. 서재마실을 자주 다니는 것 같진 않던데, 의외로 서재가 주는 느낌을 잘 표현하시네요.”

둘은 온갖 서재를 찾아다니는 강행군을 시작했다.
“명색이 서재인데 책이 보이지 않아요. 책 대신 소녀시대가 보여요. 잠깐,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려오는군요. 그렇다면 이곳은 야클님?”

“장미 한송이가 아름답게 피어 있어요. 꺾고 싶어서 다가가게 돼요. 손을 뻗어 볼게요. 아얏! 그만 가시에 찔려버렸어요....”
하이드님
“카리스마와 내공이 뿜어져 나오고 있어요. 심각한 걸 좋아하는 취향 같아요. 어디선가 꽃미남의 웃음소리가 들려요.”

마노아님
“말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어요. 1대 1 고객상담실에 온 기분이랄까? 이분은 일관되게 외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말을 했다고 해서, 그게 다가 아니다~”

신지님
“아늑한 호수가 보여요. 나무 한그루가 앞에 있고, 호수 뒤로는 정자가 있어요. 정자 안에는...음, 커다란 트로피가 보여요. 리뷰대회에서 1등을 해서 받은 것 같은데요. 그리고...희미하게 고기 냄새가 나네요. 엄마와 딸이 고기를 먹고 있어요.”

순오기님
“수많은 지식들 사이로 생채기가 보여요. 안다는 건 곧 상처받는 거라고 말하고 있네요. 방문을 닫고 있어 더 이상 볼 수가 없네요. 다른 데서 집기를 가져다가 잔뜩 바리케이트를 쳐 놨네요. 앗, 무슨 벨소리가 들려요. 문틈으로 봐야겠어요. 어, 반짝반짝 빛나는 게 새 휴대폰인가봐요.”

아프락사스님
“중국집인가봐요. 만두 냄새가 나요. 만두 저 너머엔 미스테리같은 안개가 자욱해요. 주방장이 뭐라고 말하는 게 들려요. 인생도 미스터리, 책도 미스터리, 내 맘대로 미스터리다.”
물만두님
“휴우, 힘드네요. 서재의 느낌을 파악한다는 게.”
마태우스가 이마를 찡그린 채 머리 마사지를 했다.
“알라딘 마을의 경영자가 되는 게 그렇게 쉽겠어요? 그래도 생각보다 잘해내고 있어요. 서재를 느끼는 감각은 타고난 것 같은데요.”
마태우스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일주일 안에 다 못끝나겠어요. 가봐야 할 곳만 해도 이렇게 많으니...”
순간 다락방이 마태우스의 손에 쥐어진 리스트를 빼앗았다.
“잠깐만요. 지금 우리가 뭔가 실수하고 있는 것 같아요.”
“네?”
“신밧드님의 글귀는 분명 고즈넉한 곳을 가리키고 있어요. 근데 우리는 너무 유명 서재인 위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마태우스가 입을 딱 벌렸다.
“서재의 달인만 해도 한둘이 아닌데, 준 달인 서재까지 다 찾아가자고요? 그걸 어떻게...”
다락방이 마태우스에게 맥주캔을 내밀었다.
“자신없는 소리는 이제 그만해요. 신밧드님이 괜히 마태님한테 이 일을 맡겼겠어요? 충분히 해낼 수 있으니까 그런 게 아니겠어요?”
“한 여인이 서 있어요. 재즈 신발을 신고 우아하게 턴을 하네요. 여자가 말하네요. 짧은 치마를 입으면 예뻐 보여서 좋다고요.”
Arch님
“육교 위에 누군가가 돛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게 보입니다. 아주 날씬한 사람이군요. 그런데 구수한 사투리를 쓰고 있네요? 혹시 여기가 신밧드님이 말한 그 서재? 아, 그건 아니네요. 정치적인 냄새가 많이 나는 걸로 봐서요.”
노이에자이트님
“노래소리가 들려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그렇다면 신밧드님의 그 서재는 바로 여기? 아, 하지만 이곳에선 풍차 대신 유비쿼터스란 단어가 떠오르네요. 길게 이어지는 계단도 보이구요. 여기도 아닌 것 같아요.”
hnine님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렇지 않나요?”
다락방의 말에 마태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말했죠. 열정 그 자체보다 열정의 방향이 중요하다고. 지금 제가 방향을 제대로 찾은 것 같아요.”
마태우스는 다시 맥주캔 하나를 땄다.
“엄마의 사랑이 느껴져요. 아이의 웃음소리도 들려오고요. 근데 이상하게 담배 피우는 남자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네요? 그 뒤에 미모의 여인이 한명 서 있군요. 그 여인이 말을 하네요. 내 발은 너무 오래 걸어왔다,고요.”
Jude님
“책으로 가득 찬 도서관에 미모로운 20대 여인이 서 있어요. 옆에 두 아이가 서 있네요. 놀라워요! 열 살 먹은 아이가 그 여인에게 엄마,라고 부르고 있네요. 누나인 줄 알았는데...”
세실님
갑자기 마태우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여, 여기는....퀴퀴한 냄새가 나요. 한때 찬란한 빛을 발했던 고성이었는데, 지금은 쇠락했어요. 창틀에는 먼지가 쌓이고... 왠지 제가 여러번 왔던 느낌이 나는군요. 이 고성의 주인은 대체 어딜 간 걸까요?”


날개님 panda78님 실론티님 짱구아빠님


스타리스카이님 진주님 수니나라님
다락방이 말했다.
“서재활동을 하시다 뜸해지신 분들 같군요. 같이 지내던 누군가가 떠난다는 건, 남은 사람에게 슬픔과 추억을 안기죠. 마치 풍차처럼.”
마태우스가 흠짓 놀랐다.
“다락방님, 풍차라고 했어요, 방금?”
다락방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저도 모르게 그만....”
마태우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남쪽을 가리켰다.
“이제 알겠어요. 풍차가 있는 곳을!”
둘은 고즈넉한 서재 앞에 섰다.
“이번엔 다락방님이 눈을 감고 느낌을 말해 봐요. 뭐가 보이죠?”
“부부가 머리를 숙이고 있는 게 보여요. 자고 있는 건 아니어요. 무엇인가에 감사하는 기도를 하고 있어요. 아아, 저기, 풍차가 보이네요! 마태님, 드디어 찾았어요!”
마태우스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건 임신을 뜻합니다. 이 서재의 주인은 지금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고 있어요. 말 한 마리는 학교 선생을 의미하고, 그 말이 풀을 뜯는 건 그 여인이 일에서 벗어나 전업주부 생활을 시작했단 소리예요. 예부터 ‘풀’이란 현모양처를 뜻했거든요.”
다락방도 거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종소리라는 표현은 남편이 테니스를 친다는 것의 은유이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태우스는 다락방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제가 스페인어를 전공해서 아는데요, 풍차를 스페인어로 말하면 바로 이 단어가 됩니다.”
마태우스가 적어 낸 답안을 받은 메피스토는 다짐하듯 말했다.
“기회는 단 한번뿐입니다. 자신 있습니까?”
“네.”
메피스토는 천천히 종이를 폈다.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놀랍습니다. 그 서재가 깐따삐야님의 서재인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메피스토의 말에 마태우스는 씨익 웃었다.
“정답을 맞춘다는 것, 그건 자신의 강박관념을 질서화하는 행위니까요.”
주식 인수증을 받고 나가려는 마태우스를 메피스토가 붙잡았다.
“그게 무슨 말인지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강박관념을 질서화한다는 게...”
마태우스가 다시금 씨익 웃었다.
“이봐요, 메피스토님. 그걸 알면 제가 여기서 이러고 있겠어요? 다 그러면서 살아가는 거죠.”
한달 후, 마태우스는 짧은 편지를 받았다.
“마태우스님, 저 다락방이어요.
4주 연속 저를 이주의 마이리뷰에 당선시켜 줘서 고맙긴 하지만, 좀 곤혹스러워요.
제가 이런 대가를 바라고 님을 도운 건 아니었거든요.
그저 그 서재가 누구의 서재인지 호기심에서 님을 도운 거라고요.
제발 좀 이주의 리뷰 당선자에서 절 빼주세요.
전 실력으로 그 상을 받고 싶은 사람이어요!
정 미안하시면 차라리 제5회 리뷰대회 1등상을 타게 해주시면 안될까요?”
2009년 리뷰대회 1등은 결국 다락방님에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