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슛! 골인입니다. 나달선수, 오늘 해트트릭을 기록하네요.”

레알 마드리드의 간판 골잡이 라파엘 나달은 사라고사와의 프리메라리가 31라운드 경기에서 3골을 몰아넣으며 팀의 5-1 승리를 이끌었다. 올 시즌 들어 벌써 세 번째 해트트릭인데다 정규리그 27골로 현재 부동의 득점 1위다. 감독과 동료들의 축하세례를 받으며 경기장을 나서면서 나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지? 이 허무함은?’

거의 매 경기 골을 뽑아내고, 팬들과 언론에 의해 ‘금세기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찬사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나달은 왠지 공허한 느낌을 지울 길이 없었다. 게다가 밤마다 악몽을 꾸는데, 꿈의 내용은 늘 똑같았다. 머리가 곱실거리는 한 남자가 나타나 자신을 뭔가로 두들겨 팼다. 꿈이라고 치부하기엔 통증이 너무도 생생했다.

‘왜 자꾸 이러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만한 이유가 없었다. 자신의 성적도 성적이지만 팀도 프리메라리가 6연패를 앞두고 있었다. 한때 라이벌이었던 FC 바르셀로나는 더 이상 자신들을 위협하지 못했다. 레이카르트, 과르디올라, 라모스 등 수많은 감독을 경질해도, 아무리 좋은 선수를 영입해도 바르셀로나는 늘 2위였다. 메시와 호날두, 호나우지뇨와 카카, 레알에서 이적한 라울 등 초호화군단을 구축한 올 시즌에도 바르셀로나는 승점 12점차로 멀찌감치 처져 있었다. 베른트 슈스터 레알 감독은 “바르셀로나는 더 이상 라이벌이 아니다”리며 큰 소리를 쳤다.


그날밤 자리에 누운 채 TV를 보던 나달은 테니스 경기에 채널을 고정했다. 마침 프랑스오픈 결승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로저 페더러와 로빈 소덜링이 맞서 싸우는 중이었다. 결승전답지 않게 경기 내용은 일방적이었다. 페더러는 자로 잰 듯한 스트로크로 소덜링을 유린했고, 소덜링은 이렇다 할 공격도 펼쳐보지 못한 채 3-0으로 지고 말았다.

“페더러라, 저 친구 잘 치는군. 음, 정말 잘해.”

페더러라는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막상 경기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언론에 의하면 페더러는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03년 윔블던에서 처음 우승한 이래 2004년 4대 메이저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고, 2005년 호주오픈에선 마라트 사핀에게 준결승에서 져 3관왕에 그쳤지만, 2006년부터 2010년 호주오픈까지 17개 대회를 연속으로 우승하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올 프랑스오픈까지 우승했으니 연속우승 기록은 18회로 연장됐고, 통산 우승 횟수는 26회로 2위인 샘프라스보다 무려 열두번이 더 많았다.


“테니스를 안치길 잘한 거 같아. 내가 저 친구를 어떻게 이기겠어?”

나달은 페더러의 무시무시한 스트로크를 떠올리며 도리질을 했다. 나달도 사실은 테니스 선수가 될 뻔했다. 나달의 삼촌이자 전직 테니스 선수였던 토니 나달은 나달이 세 살이 되던 해부터 테니스를 가르쳐 주었고, 늘 그에게 “넌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가 될거야”라고 격려했다. 토니의 기대대로 나달은 8살 때 12세 이하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지만, 나달의 마음은 언제나 축구였다. 그건 아마도 바르셀로나의 간판스타이자 스페인 국가대표로 활약한 또다른 삼촌 미구엘 안젤 나달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지만, 뛰는 걸 좋아한 나달의 성향 때문이기도 했다. 샘프라스가 윔블던을 제패하는 모습을 보던 나달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테니스는 재미가 없어. 가만히 서서 라켓만 휘두르잖아.”

스페인과 유럽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을 휩쓸던 12세 때, 나달은 결국 축구를 선택했다. 토니 나달은 “테니스에서도 빠른 발은 좋은 무기가 된다”고 만류했지만, 나달의 결심을 꺾지는 못했다. 토니 나달은 그 이후 미구엘 안젤 나달과 말을 섞지 않고 있다.


축구를 택한 뒤에도 나달은 승승장구했다. 인간의 것으로 믿어지지 않는 빠른 스피드는 그의 큰 자산이었고, 무심코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하던 수비수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게다가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며 개인기까지 화려한 그를 막을 선수는 지구상에 없었다. 언젠가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대결을 뜻함)에서 두골을 넣어 팀을 승리로 이끌었을 때, 아르헨티나 출신의 메시가 그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형, 난 형처럼 축구를 잘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 사인 한 장만 해줄래?”


한번은 토니 나달과 술을 마신 적이 있다. 나달이 축구를 택한 후부터 알코올 중독에 빠진 토니는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야! 너 정도로 축구를 할 사람은 우글우글해. 하지만 너만큼 테니스를 잘 칠 수 있는 선수는 지구상에 없어. 너 우리 스페인 선수 중 그랜드슬램을 마지막으로 우승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 여자부의 콘치차 마르티네스가 1994년 우승한 게 전부야. 남자를 찾으려면 까마득하게 내려가야 한다고. 지금이라도 돌아와, 이 배신자야!”

스페인이 테니스를 못치는 걸 왜 자기 탓으로 몰아붙이는지 나달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2006년 월드컵에서 스페인을 56년만의 4강으로 이끈 건 전혀 알아주지 않다니. 나달은 토니 삼촌과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2010년 월드컵에서 나달은 매 경기 결승골을 넣으며 스페인을 다시 4강에 올려놓았다. 독일에게 져 탈락하긴 했지만, 나달은 국민적 영웅의 반열에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달의 마음은 공허하기만 했다. 월드컵 기간 중 잠시 사라졌던 악몽이 귀국 후 다시 생겼다. 짜증스럽게 눈을 비비던 나달이 TV를 켜자 며칠 전 열렸던 윔블던 결승전을 다시 방영하고 있었다. 그때 봤던 페더러가 쉴 새 없이 영국의 희망이라는 머레이를 몰아붙이고 있다.

“페더러의 서브 에이스가 작열합니다. 앞으로 한 포인트만 더 따면 페더러 선수가 전무후무한 윔블던 8연패를 달성합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페더러의 서비스가 센터라인을 가른다. 페더러의 우승이다. 27회 우승이라니, 이 친구 정말 대단하다.

“토니 삼촌도 참, 저런 선수가 버티고 있는데 나라고 별 수 있겠어?”


휴식을 위해 몬테카를로로 가는 날, 마드리드 공항에서 애인을 기다리던 나달 앞에 웬 사내가 섰다.

“헤이 나달! 나 모르겠나?”

의자에 앉은 채 머리를 들었더니 머리가 곱실한 남자가 운동복 차림으로 서 있는 게 보인다. 옆에는 약간 살이 있는 여자가 애 둘과 함께 다소곳한 표정으로 버티고 있다.

“누구...?”

나달이 앉은 채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가 웃었다.

“난 로저 페더러라고 하네. 자넬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여기서 보는군.”

페더러라니, 얼마 전 TV에서 보던 그 사내다.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 나달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했다.

“아, 페더러! 세계 넘버 원 선수!”

나달의 칭찬에 페더러가 씨익 웃었다.

“그런데 날 만나고 싶어한 이유는? 혹시 당신 축구 팬?”

페더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난 축구 안좋아해. 그저 당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했어.”

무슨 말인지 몰라 나달이 얼굴을 찡그리자 페더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 당신은 모를 거야. 하지만 꼭 알아야 미안하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을 했으니 됐네. 나중에 보세.:

말을 마치자 페더러가 웃기 시작했다.

“음하하하하하하하하하.”


“무슨 일 있어요? 웬 남자랑 얘기하던데.”

애인의 말에 나달은 정신을 차렸다.

“응? 자기 왔구나. 페더러란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내게 미안하다잖아. 원 참.”

애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페더러? 혹시 그 전설의 테니스 선수?”

나달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애인은 페더러가 사라진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페더러! 사인 좀 해주세요. 저 당신 팬이어요!”

순간 나달은 페더러가 꿈속에서 자신을 두들겨 패던 그 남자랑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핫, 나도 참.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달의 애인에게 사인을 해준 뒤 페더러는 잠시 멈춰선 채 1년 전을 떠올렸다. 2009년 호주오픈은 페더러에게 중요한 대회였다. 감염성 단핵구증으로 인해 2008년 시즌 극도의 부진을 겪은 터였으니까. 겨우 US오픈 하나만을 우승하는 데 그친데다 5년간 지켜오던 세계랭킹 1위 자리도 나달에게 내줬다. 나달과의 프랑스 오픈 결승에서 6-0의 치욕을 당한 거야 클레이코트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그토록 애착을 가졌던 윔블던마저 나달에게 내준 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2009년 첫 대회인 호주오픈에서 우승해 명예회복을 해야 했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나달이 약한 하드코트니까 괜찮으려니 했던 호주오픈마저 나달에게 내주고 만 것. 이제 자신의 테니스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설움이 북받쳤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달이 자기를 위로하고 있다. 얄미운 녀석. 병주고 약주다니. 그게 서러워 더더욱 큰 소리를 내서 울었다. 그 장면이 TV로 생중계됐으니 황제로서의 위용은 다 무너져 버렸다. 나달, 그 녀석만 없다면....


라커룸에 들어가 망연자실 앉아 있는데, 웬 눈이 작은 남자가 그에게 걸어왔다. 이런 판국에 사인이라니. 페더러는 손을 내저어 그를 물리치려 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 걸어와 페더러 앞에 섰다.

“Do you want to rewind the time(시간을 돌리고 싶나)?"

그리 좋은 발음은 아니었지만 이 남자가 미쳤다는 건 알 수 있는 말이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종을 하나 꺼냈다.

“Hit this bell if you want(그러고 싶다면 이 종을 쳐라).”

너무 피곤했고, 순전히 귀찮았기에 페더러는 종을 쳐서 남자를 좇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땡~~~”

종소리는 컸고, 오래도록 울렸다. 페더러는 그 종소리를 들으며 의식을 잃어갔다.


“이봐. 일어나! 경기 시간이 다 됐어.”

코치가 깨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2003년, 윔블던 1회전을 앞둔 무렵이었다. 테니스 황제의 신화가 시작된 그 대회에서 페더러는 전 대회 우승자 휴이트를 누르고 첫 우승을 한다. 우승을 하고도 담담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방송사 리포터가 물었다.

“전혀 기쁘지 않나요?”

페더러는 그 말에 씨익 웃어 보였다.

“조금요. 전 제가 우승할 줄 미리 알고 있었거든요.”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2004년, 페더러는 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는다.

“천재 축구선수 라파엘 나달, 레알 마드리드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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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10-07-07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 나달이 계속 축구선수해서 레알에 입단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런 생각이 드신거죠?
이번 준결,결승 보니까 왜 나달이 잘 하는지 정말 잘 알겠더군요.
8월말에 있을 u.s오픈이 벌써부터 기대돼요.ㅎㅎ
나달 우승 기념으로 추천도 했어요.

마태우스 2010-07-07 18:21   좋아요 0 | URL
나달이 축구를 했으면 좋겠다는 게 아니라
나달이 위대한 선수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테니스판에 나달이 없었다면 남자테니스가 얼마나 재미없었겠어요?
어찌되었건 추천에 감사드립니다

paviana 2010-07-08 16:0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진짜 나달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시는거에요?
에이 아닐텐데 ㅋㅋ

루체오페르 2010-07-07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잘 모르고 관심이 없는 분야라 어떤 글인지 잘 모르겠으나 마태님 특유의 유머가 묻어나서 정독 하다보니 그림이 보이네요.ㅎㅎ

마태우스 2010-07-07 18:20   좋아요 0 | URL
오오, 지루한 얘기를 정독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조선인 2010-07-07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니스도, 축구도 몰라서... 쩝...

마태우스 2010-07-07 18:20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혹시 스포츠 안좋아시는 분이 계실까봐 스포츠소설이라고 써놨다는....

... 2010-07-07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달의 등장과 함께 흥미를 잃었던 테니스의 세계에 다시 빠진 저로서는, 그 어떤 것보다 끔찍한 상상이군요-.-

마태우스 2010-07-08 09:25   좋아요 0 | URL
상상에 불과하니 너그러이 봐주세요. 제가 워낙 페더러 빠인지라...

2010-07-07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9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10-07-07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빠와 축빠는 서로 좀 별로인 편인데, 마태님은 야빠에 축빠에 테빠까지 ...
저도 도통 뭔소리인지 모르지만, 혹시 알까 끝까지 읽어보긴 했습니다 ...

물론 뭔소리인지 전혀 모르겠슴다만 ㅜㅠ

마태우스 2010-07-08 09:27   좋아요 0 | URL
저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시네요. 전 축빠가 아니구요, 축구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K리그 팀이 몇개인지도 잘 모르는데요. 글구 제 소설이 그렇게 어려웠나 다시한번 읽어보게 되네요. 나달이나 페더러를 전혀 몰라도 내용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stella.K 2010-07-07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3류 소설이었는데...
그래도 추천이 높은 편이군요. 역시 마태님은...짱이야!ㅋㅋ

마태우스 2010-07-08 09:28   좋아요 0 | URL
추천이 많은 건 소설이 좋아서라기보단 노력이 가상해서 혹은 친분 때문에 눌러주신 걸로 압니다. 여러가지로 고맙습니다.

moonnight 2010-07-08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어요. 항상 느끼지만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어떻게 하시는지 +_+;
근데, 마태님도 독일이 이길 거라고 짐작하셨군요! 저도 스페인이 이번에 네덜란드랑 결승 올라갔으면 좋겠다 바라면서도 아무래도 독일이 이기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새벽에 경기보고 깜짝 놀랐어요. 개인적으론 네덜란드가 이번 월드컵 우승했으면 좋겠어요!!! ^^

마태우스 2010-07-09 11:06   좋아요 0 | URL
부끄럽습니다. 글구 이번 월드컵은 참 틀리는 거의 연속이어요. 아르헨 하는 거 보고 우승하겠다 했는데 탈락. 독일이 진짜 잘한다 했더니 탈락. 브라질은 우승하겠지 했는데 탈락. 이건 뭐... 문어가 제일입니다.

2010-07-08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결혼생활이 2년 하고도 5개월이 경과했다.

아내에게 한 약속 중 “하루 열 번씩 웃게 해주겠다”는 건 유머의 고갈로 인해 못지키고 있지만

집안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건 나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래봤자 애들 뒷바라지 하는 것과 설거지가 고작이지만 말이다.


내가 약속이 없는 날이면 아내는 늘 나를 위해 맛있는 저녁을 차려준다.

전화로 그날의 메뉴를 미리 말해 주는데, 이런 식이다.

“오늘은 쭈꾸미야!”

아쉬운 건 아내와 함께 식사하는 일은 드물다는 것.

내가 일반인의 저녁 시간을 지나 귀가하는 것도 이유지만,

아내의 말에 의하면 “요리하는 동안 냄새를 너무 맡아서, 먹기가 싫다”는 게 더 큰 이유다.

옛날에 술만 퍼마시지 말고 요리라도 배울 걸 그랬다.

주말엔 내가 손수 만든 식사를 아내에게 갖다바치면 멋있잖은가?

하지만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라곤 라면과 김치찌개가 전부고,

그나마도 지금은 못하게 됐다.

라면은 냄비가 바뀌니 물을 못맞추는 신세가 됐고,

김치찌개는 작년 크리스마스 때 시도했다가 참담하게 실패한 이후 다시 엄두를 못내고 있다.‘


엘신님을 보면서 부럽다고 느낀 건,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페이퍼 곳곳에 묻어 있어서다.

예컨대 ‘가오리’가 들어가는 글의 결론; 지적이 없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

수선님 책의 리뷰에는 이런 말을 했다. “근데, 떡이라니! 평소에도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을 명절 선물로 주는 사람이 어딨어요?”

오늘 쓴 ‘나는 오늘도 다슬기를 굽는다’에서는 “살아 있는 것을 봤는데 어떻게 먹어?”라고 한 적 있고,

두달 전에 쓴 ‘수닭의 벼슬’이란 글에서는 ‘음식의 맛은 혀가 닿기 전에 결정된다’고 했다.

‘레시피의 두얼굴’이란 주옥같은 글의 주제는 ‘레시피는 음식의 20%에 불과하다.’였듯이

요리에 대한 주옥같은 글들이 서재를 수놓고 있다.

이러니까 엘신님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거다.

대표적으로 마기님이 계시고, 마녀고양이님도 열렬한 팬이고,

루체오페르님도 은사(은근히 사모함)고 있는 듯하고,

여기서 그만두면 스텔라님처럼 “저도 팬이어요”라고 서운해할 사람이 아주 많을 듯하다.

2004년 내가 약간의 인기를 얻었던 이유는 남자가 드물었던 희소성 때문이지만

남성의 비율이 31%를 넘은 현재(2010.5월 통계)는 더 이상 희소성만으로는 인기인이 될 수 없다.


벤쟈민 드 보부아르(1214~1278)는 “21세기를 지배하는 단어는 요리다”라고 했다.

그러니 젊은 남자들이여, 인기인이 되고 싶으면 요리를 배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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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26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기님은 누구셔요?

마태우스 2010-06-26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수정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기님!!!

비로그인 2010-06-26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남자들이여, 인기인이 되고 싶으면...유머를 익히시라!
난 우낀 남자가 젤 좋아요^^

마태우스 2010-06-26 22:15   좋아요 0 | URL
아...저도 옛날엔 좀 웃겼는데ㅠㅠ

비로그인 2010-06-26 22:19   좋아요 0 | URL
푸하하~~
이젠 귀여운 컨셉으로 갈아타보셔요~~
내 눈엔 우낀 남자보다는 귀여운 남자쪽이 무거워~~ㅋㅋ

마녀고양이 2010-06-26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 절대 엘신님 팬 아니예여!
저는 엘신님을 너무너무................. 놀리는게 잼나염! 아하하.
팔짝팔짝 뛴다니까요, 엘신님이.. 흐흐

마태우스 2010-06-26 22:15   좋아요 0 | URL
잉 그렇군요. 팬 많다고 부러워했는데 아니란 말이죠 으음....역시 보이는 게 다가 아니군요!!

L.SHIN 2010-06-26 23:11   좋아요 0 | URL
마녀님...메피님의 수제자가 되어서는 절대 아니되옵니다.-_-
세상엔, 그것 말고도 배울 게 많다니까요,글쎄.

무스탕 2010-06-26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꼭 라면이랑 김치찌개가 아니라도 좋아요. 생오이를 썩뚝썩뚝 썰어놔 주셔도 좋고 파프리카를 박박 닦아서 반 뚝 잘라서 올려놔 주셔도 좋고 풋고추를 광나게 씻어서 고추장이랑 같이 내놓으셔도 좋아요.
중요한건 마음이지요. 여자는 단순한데서 감동 먹는다니까요 :)

마태우스 2010-06-28 10:44   좋아요 0 | URL
그, 그렇죠 중요한 건 마음이지요. 근데 제 아내는 미식가라, 마음만 가지고는 안될 것 같더라구요. 오이를 한번 썰어놔보긴 하겠습니다....-.-

L.SHIN 2010-06-26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하, 아,놔~ 도대체 형님이 뭔 글을 쓰시나 했더니...
요리 때문이라니. 세상에 나만큼 요리하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는 인간이 어딨다고..ㅋ
이런 걸로는 나를 제대로 연구했다고 할 수는 없어요,형님. -_-
그러니까 쉽지 않을 거라 그랬죠? ㅋㅋㅋ

그래, 나에 대해 할 말이 정녕 이것 뿐이던가요? 응?
고작 애정이 요것 밖에 안 되었다 말입니까! 응?

그리고 오늘 페이퍼 제목 틀렸어요. '다슬기를 굽는다'라니요!
냇가에서 만수무강하라고 풀어줬다니까요,글쎄... 아, 다들 나한테 왜 그러는거야..ㅜ_ㅡ

마태우스 2010-06-28 10:46   좋아요 0 | URL
어, 엘신님에 대한 애정을 다 풀어놨다간 남들의 눈총을 받사옵니다. 그 점 이해하셔야죠!! 제가 늘 엘신님 생각하는 거 아시죠? 글구 좀 더 종합적인 분석을 하면 엘신님이 무서우실까봐 트렌디 드라마 스타일로 했습니다. 글구 다슬기 얘기는... 원래 이게 3류소설 카테고리에 들어갈 작품인데 제가 설정을 잘못했네요. 양해바람!

L.SHIN 2010-06-28 10:55   좋아요 0 | URL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을테니까, 어디 애정을 과시해보세요,형님. -_-
솔직히 말해요. 괜히 잘못 썼다가 나한테 맞을까봐 그런 거죠? 응? ㅋㅋㅋ
(아,누가 보면..내가 맨날 형님 때리는 줄 알겠..;;)

pjy 2010-06-27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투의 화신이자 떼쟁이군요,,마태님은 ㅋㅋ;

마태우스 2010-06-28 10:46   좋아요 0 | URL
드, 듩켰다...^^

stella.K 2010-06-27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머가 남다르고, 설거지 잘해주는 남자랑, 꽃미남에 요리 잘 하는 남자랑
누구를 선택할거냐? 묻는 것 같아요. 질투도 맞는 것 같고.ㅎ
저는 음식은 해 줄 수가 있는데, 설거지 잘해주고, 유머와 꽃미남을 합쳐놓은 그런 남자 원해요. 어디 없을까요?ㅍㅎㅎㅎㅎ

저 추천했는데요, 사실은 엘신님을 위해 했다는 거 고백하고 갑니다. 흐흑~

마태우스 2010-06-28 10:46   좋아요 0 | URL
으, 역시 스텔라님은 엘신님 팬! 글구 엘신님은 유머도 남다르고 설거지도 잘해줄 것 같지 않으세요? 외모도 저랑 비교가 안되지만요.

루체오페르 2010-06-27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그걸 다 기억하시고 글까지 남기시는걸 보면 마태님도 엘신님을 은사하고 계신듯??ㅎ

저는 마태님도 은사 하고 있습니다. 모르시겠지만 알라딘에서 마태님을 뵙기전에 마태님을 뵌적이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아니고 강의하신 영상을 통해서요. 그땐 재밌는 강사분,강의라고 생각했다가 알라딘에서 알아가고서야 그분이 같은분,마태우스님이란걸 알았죠. 자세한 이야기는 또 나중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겠습니다.ㅎㅎ

여튼 저 그때 신기하고 놀랐습니다. 강연에서 본분을 그분 서재에서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글도 재밌으시고...그후로 은사~ 하고 있습니다.^^

마태우스 2010-06-28 10:47   좋아요 0 | URL
잉...제 강의 영상이라니, 갑자기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어디가서 행동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책가방 2010-06-28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리 잘하는 사람이 뚝딱 해주는 맛있는 요리보다, 요리 못하는 사람이 끙끙거리다 수줍게 내놓는 맛없는 요리가 더 감동일거예요.
라면에 물조절 힘들면 어때요? 누군 처음부터 잘했나 뭐..하다보면 느는거지...ㅋ
못한다고 안해주면 그게 더 밉다구요~~

파도타기 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됐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마태우스 2010-06-28 10:48   좋아요 0 | URL
첨뵙겠습니다 그리고 말씀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잘한 사람은 없으니, 저도 열심히 연습해서 웬만한 건 스스로 하는 사람이 되보겠습니다. 그래, 연습을 해야겠어요!
 

벤지를 잃고 방황하던 내게 예삐는 그야말로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 외모, 그 애교, 그 영리함, 지난 2년간 예삐는 내게 너무도 많은 웃음을 줬다. 




 

어느날, 고양이를 쫓던 예삐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한번 그러다 말겠지 했지만, 그런 일은 이따금씩 계속됐다.  

병원에서 잠정적으로 내린 진단은 디스크, 

하지만 실신의 양상은 디스크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병원에서 예삐 가슴에 청진기를 대본 의사는 예삐의 심장이 늦게, 그것도 불규칙하게 뛴다는 걸 발견했다. 

심전도를 찍어보니 120번은 뛰어야 할 예삐의 심장은 50번 정도밖에 뛰지 않았고, 

위 심전도 그림에서 보듯 안뛰는 구간이 수시로 나타났다. 

"이 정도면 인공 심박기를 달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그걸 할 수 있는 곳은 강원대밖에 없어요."   



지방선거날, 선거를 일찍 마치고 우린 춘천으로 떠났다. 

검사를 마치고 수술 시간까지 강원대 잔디밭에 앉아서 놀았는데, 

잠시 후 자신에게 닥칠 시련을 모르는 예삐는 계속 애교를 부리며 놀았다. 

수술에 들어간 지 한시간 반이 지났을 때, 의사선생님은 마취에서 덜깬 예삐를 안고 왔고, 

조금 있다가는 저 상자에 들어가 회복을 기다려야 했다. 

예삐가 좋아하는 육포를 내밀어 봤지만 먹지 않았다. 

얼마나 아팠을까, 자길 저렇게 만들었다고 우릴 원망하지 않을까... 

의사가 말했다. 

"참 담력이 있는 강아지네요. 검사 때도 그랬지만 잘 견뎠어요." 




예삐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데는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이틀 후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현관에 마중을 나온 예삐는 

늘 하던만큼은 아니지만 반갑게 날 맞아 주었다. 

인공 심박기의 도움으로 뇌에 혈액공급이 원활하게 되서 그런지 

예삐는 더이상 실신을 하지 않아도 되며, 

예전보다 더 건강하게 달리고, 애교를 부린다.  

예삐가 예뻐 죽겠을 때, 가끔씩 벤지 생각이 난다. 

내가 다른 애를 좋아하는 걸 벤지가 싫어하지 않을까? 

하지만 가장 내 걱정을 많이 해준 벤지의 성격으로 보아 

내가 예삐와 더불어 웃으며 사는 걸 바라리라고 생각해 본다. 

배터리의 수명이 십년 정도라니,  

십년쯤 있다가 또 예삐를 데리고 춘천에 가야지.   

원래 담력이 있는 녀석이고, 두번째 하는 거니까, 더 잘 견뎌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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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17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삐 홧팅!

2010-06-18 0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0-06-18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기특한 예삐. 이렇게 예뻐해주는 마태님이 계시는 한 예삐 포에버~~~

2010-06-18 0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0-06-18 09:25   좋아요 0 | URL
ㅎㅎ 쫌 그렇긴 하죠? ㅎ

마태우스 2010-06-18 11:21   좋아요 0 | URL
쫌이 아니라 많이 그런데요^^

2010-06-18 0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0-06-18 07:1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우리집에서 딸 둘과 아내는 눈이 무지 큰데, 저만 작다고 놀림 많이 받습니다. 글고보니 매직님도 눈이 치명적으로 예쁘셨던 기억이...^^

하이드 2010-06-18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삐 화이팅! 예삐를 만난 마태님, 마태님을 만난 예삐, 서로에게 행운이고, 행복이에요.

마태우스 2010-06-18 11:22   좋아요 0 | URL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제가 받는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무해한모리군 2010-06-18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 수술을 받고도 빠르게 회복을 했네요.
십년안에 더 좋은 기술이 나오지 않을까요?
예삐 화이팅!

마태우스 2010-06-18 11:2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음 좋겠어요. 십년 뒤에는 좀 안아프게 배터리를 갈 수 있는 기술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스탕 2010-06-18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삐가 빨리 회복되어서 다행이에요.
어려운 수술 잘 견뎌줘서 고맙구요.
예삐도 아빠엄마를 잘 만났고 마태님도 예삐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눈에 보여요 ^^

마태우스 2010-06-18 11:2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정말 잘 견뎌 줬지요. 배 가르는 수술이 아니어서 그런지 다음날부터 뭘 좀 먹더라고요. 어찌나 대견하든지요.^^

건조기후 2010-06-18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부정맥이라고 하시더니 큰 수술을 할 정도였던 거군요. 에휴... 작은 것이 고생 많았겠어요. 수술 잘 끝났고 건강해졌으니 이제 이름처럼 예쁘게 잘 지낼 일만 남았네요. ^^

마태우스 2010-06-18 11:24   좋아요 0 | URL
그냥 한두번 잘못뛰는 게 아니라 실신할 정도로 상태가 안좋은지라... 큰 수술 시켜서 애한테 미안했어요. 앞으론 정말 건강할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루체오페르 2010-06-18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엽네요! 건강이 회복되어 다행입니다. 동물 좋아하는 사람은 대부분 심성이 곱다는 말을 이 글을 보면서 느낍니다. 앞으로도 함께 건강하게 지내길 기원합니다.^^
 
Le Monde Diplomatiqu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6 - 한국판
르몽드(월간지) 편집부 엮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페론주의의 아르헨티나’ ‘뉴욕 경찰이 접수한 학교’ ‘이탈리아 마니풀리테의 좌절’ ‘볼리비아 기득권의 자치 요구’ ‘기로에 선 일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 디플로)를 뒤적이다 보니, 갑자기 스스로가 왜소해 보인다. 우리네 신문이 다루는 주제와 르 디플로의 그것이 너무도 판이하게 달라서다. 우리네 신문은 1면에 ‘한나라당이 어쩌고저쩌고’, 2면은 ‘민주당이 어쩌고저쩌고’ 3면은 ‘막가는 정치’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 국제적 사건은 6면에 잠깐 소개를 하는 게 고작이지 않은가? 신문이 일간지고 르 디플로가 월간지라는 것도 관계가 있겠지만, 어디선가 주워들은 풍문에 의하면 외국신문은 1-3면을 국제적 사건에 할애한단다. 게다가 우리나라 월간지라고 해서 폭넓은 주제를 다루는 건 결코 아니다. “김심은 어디에 있나”라든지, “이회창 칩거” “박근혜 삐짐” 같은 기사들이 월간지를 채워 왔으니까.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제정세에 둔감한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건, 그리고 경상도와 전라도를 나눠가면서 쪼잔하게 싸우고 있는 건 언론 탓이 클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런 질문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 시국이 어떤 시국이냐, 정치.사회 각 분야가 전부 80년대로 회귀하고 있는 마당인데, 한가하게 국제 정세나 훑고 있을 수야 없지 않느냐? 하지만 프랑스라고 해서 뭐 시급한 문제가 없을까? 모르긴 해도 그곳 역시 국내 정치로 신문의 80%를 채우라면 그럴 수도 있을 거다. 그럼에도 그네들은 국제정세를 열심히 탐독한다. 프랑스가 국제사회에서 큰소리를 치는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혹자는 프랑스가 잘 사니까 그런다고 하지만, 세상이라는 게 꼭 GDP만으로 설명되는 건 아니다. GDP로는 빠지지 않는 일본이 국제사회의 중요한 일원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르 디플로를 통해 새롭게 안 사실은 하나가 되고 있는 유럽의 앞날이 그리 순탄치 못하다는 것. 관련 기사의 한 대목이다. “과연 유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유럽이 통합되고 나서 잘 나가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나름대로 어려움이 많은가보다. 때가 때이니만큼 월드컵 얘기도 빠질 수 없는데, 르 디플로는 FIFA의 지나친 돈벌이를 지적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1990년대에 치른 세 차례 월드컵 중계를 위해 지불한 액수는 18억원 정도”지만 2002년에는 코리아 풀이 무려 455억원을 지불했다는 것. 2006년에는 그보다 적은 260억이었지만, 그래도 90년대에 비해 열배 이상 뛰었다. 이게 다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혈안이 된 FIFA 때문으로, SBS 독점중계 역시 그 일환이란다. 르 디플로의 기사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회 종료 이후 이에 대한 면밀한 사후 평가를 통해 SBS 독점중계의 득과 실을 철저히 따져보고 이를 토대로 한국 스포츠 방송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우려스러운 점 하나. 퇴임 때 35만 달러였던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재산이 2007년 1억달러가 되었고, 3선에 성공한 블룸버그 뉴욕 시장의 재산이 50억달러란다. 디플로는 ‘돈과 정치의 밀월 관계가 어느 때보다 돈독해지고 있다’고 표현했는데,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는 이유가 정치 때문이라는 거다. 재산이 수백억에 이르는 대통령을 둔 우리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아 영 씁쓸하다.


우리 언론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광활한 시야에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게 르 디플로를 읽는 고통이지만, 두 장 정도 읽고 적응을 하기 시작하면 적토마를 타고 달리는 느낌을 주는 것이 르 디플로의 기쁨인 듯하다. 이런 르 디플로가 마케팅 상대로 알라딘과 손을 잡기로 했다. 대부분의 잡지는 전화를 걸어 “우리 잡지 한권만 봐달라”고 마케팅을 하지만, 고품격 잡지인 르 디플로의 전략은 차원이 다르다. 알라디너 한명에게 그 달치 리뷰를 부탁하고, 그분한테 1년치 구독권을 주는 것. 앞으로도 이어질 리뷰 릴레이의 두 번째 주자로 아프락사스님이 수고해 주시기로 했다. 앞으로도 고품격에 목마른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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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6-18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ㅠㅠ 정말 국제적인 시대에 필요한 월간지인듯 하네요. 르몽드는 알았는데 디플로는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정기구독 하고픈 가치가 충분할듯 합니다. 마태님 정보 감사합니다.^^

ps : 아하,그러니까 마태님께 디플로에서 리뷰제의가 온것이고 이 글이 첫번째 시작인거군요? 와우~
ps2 : 한겨레 링크중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사이트가 링크되있네요.
http://www.ilemonde.com/

노이에자이트 2010-06-19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르몽드 지가 경영난으로 매각절차를 밟는다고 하는군요.쟁쟁한 언론사들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지나가던중 2014-08-29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 디플로)를 뒤적이다 보니, 갑자기 스스로가 왜소해 보인다. 우리네 신문이 다루는 주제와 르 디플로의 그것이 너무도 판이하게 달라서다."

=========================================================================
디플로 자체가 일간지 르몽드의 자매지로서 해외토픽을 다루는 월간지랍니다.
 
이노센트 맨
존 그리샴 지음, 최필원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존 그리샴의 책을 나올 때마다 읽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레인 메이커>를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데,

그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가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게 고마울 정도였다.

하지만 너무 탐독을 해서 그런지 어느 순간부터 존 그리샴을 멀리하게 됐고,

그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어도 시큰둥했다.

그런 내가 <이노센트 맨>을 읽게 된 건 하이드님의 리뷰 때문이었다.

“...황당하고 억울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그 정의를 찾는다는 점에서 소설로서는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은 소설을 읽는 것과는 달라서, 지루하고, 답답하고, 누명을 쓴 사람에 대한 무한 동정과 악덕검사에 대한 무한증오 같은 건 잘 생기지 않더라.”


이 구절을 읽고 생각했다. “내 스타일야!”

<아내의 유혹>같은 선악드라마를 좋아하는 내게

권력을 쥔 악당에게 주인공이 계속 당하는 스토리는 ‘딱’이다.

게다가 이 책은 소설이 아닌, 논픽션으로,

그리샴은 <이노센트 맨>을 쓰기 위해 18개월의 조사기간이 필요했단다.

악의 화신 빌 피터슨 검사를 비롯해 등장인물 모두를 실명으로 쓰는 것도 쉽지 않았을텐데,

이 책의 내용이 실화라는 건 소설을 읽는 데 박진감을 더해줬다.


책에 나오는 ‘악’은 우리가 익히 봤던 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는데,

예컨대 이런 구절들.

검찰과 경찰은 자신들이 잘못 짚었다는 사실을 끝내 시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이 옳았다는 헛된 믿음에 끈질기게 집착했다 (415쪽).”

“그들은 석방되었고, 결백을 입증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사과하거나 해명하거나 보상하려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402쪽).”

존 그리샴의 분노가 내게도 전해지는 느낌이다.

그 ‘악’들이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 것도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검사는 자신의 임무인 기소에만 충실했다면 아무런 책임이 없다...경관들은 명백히 헌법을 위반하지 않는 이상 책임을 면할 수 있다 (430쪽).”


사놓고 책꽂이에 꽂혀 있던 이 책을 갑자기 집어든 건

둘째 강아지 수술을 위해 춘천으로 떠나던 아침이었다.

춘천의 병원에서 수술시간을 기다리면서,

그리고 마취가 덜깨 괴로워하는 녀석을 간병하면서

짬짬이 이 책을 읽었다.

<이노센트 맨> 덕분에 그 숨막히는 지방선거 개표도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고

결국 450쪽의 그리 얇지 않은 책을 이틀에 읽어버렸다.

이 책이 아니었던들 난 그 이틀을 불안과 안타까움 속에서 보내야 했을 것이며,

내게 이 책을 소개해준 하이드님한테 감사드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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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4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5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6-05 0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그리샴..추억의 이름이군요..전 사실 원작 소설보다, 영화로 다 봤는데, 코폴라가 감독한 <레인메이커>가 제일 훈훈하고 재치있었던 것 같네요. 원작의 덕도 있겠군요.

마태우스 2010-06-05 09:44   좋아요 0 | URL
책을 먼저 읽은 사람은 늘 "영화보다 책이 나아!"라고 하더군요.^^ 그리샴에겐 따스한 마음이 있는 것 같아 좋습니다.

stella.K 2010-06-05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표결과 그다지 관심없는 사람이 저 말고 마태님도 계셨군요.
괜히 반가운 생각이...^^
그런데 춘천까지 가셨어야 했나요?
암튼 예삐 지금은 좋아진 거죠?
마태님은 하이드님 때문에 읽으셨다고 했는데 전 마태님 때문에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요즘 고노무현 대통령의 <운명이다>를 조금씩 읽고 있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악에 대한 관심이 스멀스멀 다시 깨어나고 있는 느낌입니다.ㅋ
이만하면 저에 대한 안부 인사가 되는 건가요?^^

2010-06-05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0-06-05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째 강아지 수술은 잘 되었는지요. 존 그리샴은 제 절친이 완전 광분했던 작가라 기억하고 있는데 제가 책을 읽어 보았는지를 잘 모르겠어요. 본인이 변호사출신이 아니었는가 싶은데...읽어보고 싶게 만드시는군요.

2010-06-12 0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