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기간을 4개월 앞두고 지금 사는 아파트에 이사온 건
하루라도 빨리 우리 강아지들이 좋은 환경에서 살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손바닥만한 흙밖에 없는데다 주민들도 적대적인 이전 아파트와 달리
이 아파트는 그래도 수풀이 우거진 산책로가 곳곳에 있었으니,
마이너스통장을 만들면서까지 올만한 가치가 있었다.
오늘 밤 8시 반쯤, 난 아파트 단지 내를 걷고 있었다.
습한 날씨 때문에 몸이 다 젖었기에 어서 집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픈 마음뿐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해피야! 해피야!”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웬 여자가 울부짖으며 단지 내를 배회하고 있다.
“개 지나가는 거 못보셨어요?”
사색이 된 그녀를 외면할 수 없어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개 좀 찾아주고 들어갈게.”
그 아낙에게 다가가 개의 색깔을 물었다.
갈색이라고 말하던 그녀의 눈이 커졌다.
“어? 뽀삐아빠네?”
세상에, 그녀는 우리 부부가 다니는 동물병원의 미용 선생이었다.
사태는 더 심각했다.
동물병원에 미용을 맡긴 개가 병원 문이 열리는 순간 밖으로 뛰쳐나갔고,
계속 도망가다 우리 아파트 단지로 들어온 것.
자기 강아지도 아니고 남이 맡긴 개를 잃어버린 거니,
미용선생 자리를 잃는 것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백만원을 물어줘야 할 큰일이었다.
그때부터 난 본격적으로 갈색푸들을 찾기 시작했다.
난 녀석이 사람이 안가는 어두운 곳에 숨어있다고 생각했기에
우리가 잘 가는, 수풀이 우거진 쪽을 뒤졌다.
하지만 너무 어두워서 개가 있다해도 찾을 수가 없을 것 같았기에
가방도 내려놓을 겸 잠깐 집에 들러 후레시를 가져가기로 했다.
그런데, 쿠쿵.
우리 동 출입문을 열자마자, 엘리베이터 앞 계단에, 갈색 푸들 한 마리가 떨고 있는 거다.
이거다,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난 출입문 쪽으로 가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개 찾는 사람을 봤느냐”고 물었고
그 여자는 저쪽을 가리켰다.
난 크게 소리쳤다.
“해피 여기 있어요!”
미용선생은 빛의 속도로 달려왔고,
우리 동 계단 앞의 푸들을 보더니 해피가 맞다고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이쪽으로 모신 거예요?”
난 몰지 않았다.
자기 스스로 들어왔을 뿐.
하지만 난 “그, 그런 셈이죠”라고 대답했는데
이건 나중에 우리 애들이 미용할 때 서비스라도 더 받았으면, 하는 잔머리의 일환이었다.
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 미용선생을 피해 위층으로 달아나는 해피를 잡았고
해피는 결국 그녀의 품에 꼭 안긴 채 병원으로 향했다.
내가 아니었다면 과연 해피를 찾을 수 있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미용선생이 워낙 크게 해피를 부르며 아파트 단지를 돌고 있었으니,
내가 아니라 우리동에 사는 다른 사람이라도 해피를 보면 그녀에게 얘기를 해줬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해피를 찾아준 건 다음과 같은 우연에 빚을 졌다.
1) 그녀와 나, 그리고 해피는 거의 동시에 아파트에 도착했다.
2) 해피는,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출입문이 열린 틈을 타서
하필이면 우리 동에 들어가 있었다.
3) 그리고 난 계속 단지 안을 돌기보단 후레시를 찾기 위해 우리 동으로 갔다.
여기에 한가지 더한다면, 개를 잃어버린 사람이 하필이면
내가 단골로 다니던 병원의 미용선생이었다.
이런 우연 몇 개가 겹쳐서 해피를 찾았지만,
그래도 같이 개를 찾아주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인만큼
내가 해피를 찾은 건 칭찬받아 마땅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