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아! 나 당첨됐다!”
지난 2월 초, 친구분과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셨던 어머니는 뜻밖의 횡재를 한다. 영화 뒷면에 2박3일의 제주도 여행권에 당첨됐다고 적혀 있었던 것. 영화사와 여행사가 제휴해서 이벤트를 벌인 모양이었다. 뒷일을 부탁한다는 어머니 명에 따라 해당 여행사의 홈페이지에 가서 회원가입을 했다. 여행기간은 3월 1일부터 2년간 선택할 수 있으며, 여행날짜를 예약하기 위해서는 9만9천원의 세금을 부담해야 한단다. 다음날 돈을 부치고 나서 여행사에 전화를 했다.
“입금 확인 되셨고요, 예약상담-예약이 아니라-은 3월 2일부터 가능합니다. 그때 전화 주세요.”
공짜로 여행을 가게 된 어머니는 소녀처럼 좋아하셨고, 이모에게 전화해 같이 가기로 약속을 했다. 삼일절 아침, 어머니는 내게 전화해 3월 27일부터 29일까지를 최종 날짜로 낙점하면서 예약을 그때로 해달라고 했다. 그 다음날, 난 그 여행사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중이었다. 또 걸었다. 통화중이었다. 그렇게 이십여통의 전화를 걸다보니 오후 세시였다. 또 안되겠지,란 마음에 전화를 거니 신호가 간다. 잘못 건 줄 알고 놀래서 끊었다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다시 걸었더니 이럴 수가, 또 신호가 간다. 한참 동안 벨을 울린 끝에 담당자와 통화가 됐다.
담당자: 예약은 6월부터 가능합니다.
나: 네? 3월에 가는 건 안되나요?
담당자: 그렇습니다. 저희는 3개월 전 예약만 받습니다.
나: 할 수 없죠. 그럼 6월 12일로 해주세요.
담당자: 그날 예약은 이미 찼습니다. 남은 날이 xx일과 xx일밖에 없습니다.
나: 버, 벌써 그렇게 됐나요? 알겠습니다. 그날로 해주세요.
담당자: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호텔은 이미 매진이 돼서 대체 숙소에서 주무셔야 합니다.
나: 네? 버, 벌써 그렇게 됐나요? 알겠습니다.
담당자: 식사는 따로 제공 안되고요, 알아서 드셔야 합니다.
나: 네? 그, 그렇군요.
담당자: 운전하실 분은 누구신가요?
나: 운전이라뇨?
담당자: 저희가 렌트카를 드리거든요. 48시간이 지나면 연체료는 본인 부담입니다.
나: 레, 렌트카요? 사람들 다 같이 다니는 거 아닌가요?
담당자: 아닙니다.
나: 그, 그렇군요 (어머니 렌트카 운전하라고 하시면 기절하실 텐데...)
담당자: 비행기 예약을 3월 중으로 해서 저희한테 알려주시면 저희가 그 시간에 맞춰 렌트카를 드리겠습니다.
나: 네? 비행기 예약도 안해주시나요? 그, 그렇군요.
전화를 끊고 나니까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뭐 이딴 게 다 있냐, 하는 심정이랄까. 안되겠다 싶어 다시 전화를 걸어 예약을 취소해 달라고 했다.
담당자: 취소는 한번까지 할 수 있고, 그 후엔 일체 변경이 안됩니다.
나: 안갈테니 9만9천원 낸 거 다시 돌려주세요.
담당자: 고객님 죄송합니다. 환불은 2월 28일까지만 가능합니다.
나: 그럼 안돌려주시겠단 말인가요?
담당자: 고객님, 저희 홈페이지 약관에 다 나와 있는데 안읽어보셨나요?
나: 그게 말이 안되는 게, 여행 예약이 3월 2일부터고, 그 여행이 이렇게 그지같다는 걸 예약을 해봐야 아는데 안돌려주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담당자: 고객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 기분도 안좋습니다.
나: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안된다, 비행기 예약도 내가 해라, 이런 그지같은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담당자: 고객님, 흥분을 좀 가라앉히고요, 제 얘기를 좀 들어보세요. 처음에 계약하실 때....
나: 그러니까 그건 내 책임이라는 거잖아요! 안간다고 하는데 돈을 못내준다는 게 이치에 맞냐고요!

난 말을 조리 있게 하는 편은 아니다. 게다가 흥분하면 더 말을 못한다. 하지만 목소리가 크면 이기는 법, 몇 번 소리를 친 끝에 난 환불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리고 롯데관광에 전화를 걸었고, 매우 친절한 담당자-이름이 장미였다-와 얘기를 한 끝에 3월 27일에 떠나는 제주도 여행권 두 장을 예매했다. 숙소도 KAL호텔로, 듣도보도 못한 그곳과는 차원이 다르다. 비용이 좀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어머니가 여행 가신다고 저리도 좋아하시는데. 그간 여행 못보내드린 내가 나쁜 놈인 거지. 어머니는 내가 롯데관광에 예약을 했다고 하시면 틀림없이 화를 내면서 당장 취소하라고 하실 게다. 그래서 난 여행 당일까지 어머니한테 이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을 거다. 굿모닝여행사-어맛! 말해버렸다-가 아니라 롯데관광이라는 말에 어머니는 이게 웬일이냐며 화들짝 놀라시겠지. 어쨌거나 어머니, 여행 잘 다녀오세요. 제가 크루즈 여행은 좀 어렵더라도 제주도는 가끔 보내드릴 수 있답니다. 그리구요, 앞으로 여행권 같은 건 당첨되지 마세요.

* 물론 일은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진 않았다. 오늘 아침 어머니는 전화를 걸어와 “한명을 더 추가해 달라”고 주무하셨다. 추가 비용을 내겠다면서. 두명의 비용이 37만원이었으니 한명 추가해봤자 18만 원 정도 될 거라고 생각을 하신 모양이다. 어쩌겠는가. 그거만 받고 차액은 내가 부담하는 수밖에. 급속히 비어가는 지갑을 보니 어젯밤의 흐뭇함이 조금은 묽어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