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떤 책을 안 읽도록 설득해주는 서평이 제일 좋아요. 돈과 시간을 절약하게 하거든요.”
로쟈님이 고명섭 기자와의 대담에서 한 말이다. 서재에 올려진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자니 난 어떤 서평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재미있는 서평?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서평? 것도 아니면 신나게 까는 서평? 잘 모르겠다. 남들이 나한테 “좋은 서평이 뭐라고 생각해?”라고 물어봤다면 미리 생각해 봤을텐데, 한번도 내게 그런 질문을 한 이가 없었다.
주제넘게도 학교에서 ‘과학적 글쓰기’라는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과목명을 보면 논문이나 보고서를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것 같은데, 올해 처음 가르치는 거라 뭘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칼럼과 소설쓰기, 논문 잘쓰는 법 등등이 혼합된, 정체불명의 과목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중 ‘감상문 잘쓰는 법’에 대해 강의를 했는데, 잘 쓴 서평을 찾기 위해 굳이 여러 사이트를 헤맬 필요가 없다는 건 내가 알라딘에 몸담은 보람이다. 강의준비를 위해 알라딘 리뷰들을 뒤지다보니 정말 주옥같은 서평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blanca님이 톨스토이 저 <크로이체르 소나타>에 대해 쓴 서평은 이렇게 시작한다.
“톨스토이는 덮어놓고 인정해 버리고 싶은 작가인데 단편과 중편에선 매번 어그러진다.”
톨스토이가 그간 성적 욕망을 감추고 고결한 척 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걸 다 드러냈다는 내용인데, 이 글을 소개하면서 학생들한테 이렇게 말했다.
“이 분은 톨스토이의 삶을 완전히 꿰뚫고 있기에 이런 서평을 쓸 수 있는 거죠. 이런 글을 쓰려면 내공을 쌓아야 합니다.”
blanca님이 쓴 <노란 서점의 불빛> 리뷰도 멋졌다. 노란 색깔이 들어가는 고흐의 시로 시작한 이 서평은 blanca 님의 어릴 적 추억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노란 색과 연관된 것들이 이어지니 서평이 굉장히 시각적으로 되죠? 멋지네요.”
후와님이 쓴 <친화력>(괴테 저) 리뷰도 인상적이었다.
“괴테를 읽는 건, 어떤 면에서는 매우 불쾌한 일이다.”
이유는 100년도 더 전에 살았던 괴테의 지식이 후와님 자신보다 더 많다는 걸 인정해야 하니까,였다.
“첫 줄에서부터 궁금증을 유발하죠. 괴테 읽기가 왜 불쾌할까,라는 궁금증이 들잖아요? 어떤 글이나 그렇지만 서평도 시작이 참 중요합니다.”
위의 두 분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리뷰는 다락방님의 것이다. <추락>에 대한 다락방님의 서평 중 한 대목.
“이래저래 생각하다가 오늘 출근길, 나는 아무런 책도 들고 나오지 못했다. 어떤 글자도 읽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대목을 소개하면서 학생들한테 이랬다.
“책의 느낌을 이 정도로 소개할 수 있다면 달인의 경지에 오른 겁니다.”
하지만 내가 다락님의 서평 중 가장 좋아하는 건, <내일을 위한 약속>에 관한 글이다.
남자와 여자가 손을 잡는 장면에서 이런 묘사가 있다.
‘그는 털이 부숭부숭한 자기 손과 섬세하게 매끄러운 그녀의 손을 비교해 보았다.’
여기에 대한 다락방님의 묘사, “털이 부숭부숭...털이 부숭부숭...아 싫어.....아이쿠야, 털이 부숭부숭이라니...털이 부숭부숭하지 마세요.”
이 대목을 소개하면서 난 이렇게 말했다.
“감상문이라는 게 꼭 책의 핵심을 건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줄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먼지같은 대목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대한 자기의 경험과 느낌을 담아 넣으면 그게 멋진 감상문인 거죠. 우리는 출판담당 기자가 아니잖아요.”
강의가 끝나고 난 뒤 의대까지 500미터를 걸어가면서, 이런 식으로 강의해도 되나 생각해 봤다. 서평에 대해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텐데, 90명에 가까운 학생들한테 내 생각을 강요하고 있다니. 나 자신도 서평을 그리 잘 쓰지 못하면서 서평에 대한 강의를 하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고. 그러고보면 교수라는 자리는 위험한 자리일 수 있다. 손등의 털에 대한 리뷰가 쏟아진다면 그건 다 내가 초래한 일이니 말이다. 그렇긴해도 난 다락방님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사람들이 다락방님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다면 이 세상이 훨씬 더 살만한 곳이 되리라는 그런 자신감. 그래, 난 별로 잘못한 게 없어.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 새 연구실 앞이었던 기억이 난다.
<나를 생각해>(이은조 저) 서평이벤트를 열었는데, 참여가 영 저조하다.
그런 내가 안돼 보였는지 반딧불님이 외롭게 참가해 주셨다.
반딧불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서평이벤트가 열리고 있음을 다시 공지해 본다.
제목: <나를 생각해>(저자 이은조) 서평이벤트
기간: 5월 13일부터 5월 29일(일요일) 자정까지
방법: 제 서재의 '마이페이퍼' 카테고리 중 '서평이벤트'에다가
이 책의 감상문을 써주시면 됩니다.
시상: 1등 1명 알라딘 상품권 5만원
2등 1명 알라딘 상품권 3만원
발표: 5월 30일(월요일) 낮 12시 이전
심사방법: 댓글수, 추천수, 공정한 심사위원단 선정 등 여러 제안이 있었지만
알라딘 마을과 무관하지만 나름의 문학성을 갖춘 제 미녀아내가
심사를 하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