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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조선 운동사 -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
한윤형 지음 / 텍스트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영화 <나홀로 집에>가 3,400억원을 벌어들인 건 매컬리 컬킨의 연기 덕분이었다.
특히 두 손을 뺨에 대고 비명을 지르는 그의 연기는 두고두고 기억될만큼 귀여웠다.
이듬해인 1991년 무슨무슨 코믹배우상을 받았던 그의 필모그래피는 거기서 중단됐고,
최근 공개된 그의 사진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최근 모습 완전 아저씨, 귀엽던 케빈의 모습은 어디에?”
잘 나가던 아역이 스타로 자리잡는 게 흔해진 요즘이지만,
미달이나 컬킨처럼 엄청난 스포트라이를 받았던 배우가 나중에 그와 비슷한 인기를 누리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한윤형은 안티조선으로 유명해진 친구다.
당시 아흐리만이라는 필명으로 수준높은 글을 썼던 그는
고3 시절, 조선일보에서 주최하는 논술대회에서 1등을 했지만,
안티조선을 선언하며 수상을 거부해 화제가 됐다.
어떻게 고교생이 그럴 수 있을까 존경스러웠고,
그런 친구 덕분에 우리 사회에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할까 생각하던 2009년, 그의 첫 번째 책이 나왔다.
반가움에 그 책을 샀고,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성실함에, 생각의 깊이에
진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뒤에 나온 <뉴라이트 사용후기>는 친일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은 명저였고,
그 후부터 난 거리낌 없이 “한윤형은 내 스승이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의 세 번째 책 <안티조선 운동사>의 마지막 책장을 오늘에야 덮었다.
18,500원의 책값이 좀 비싼 게 아닌가 싶었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런 생각은 저 멀리 달아나 버린다.
깨알같은 글씨에 담긴 내용의 묵직함과 매 페이지마다 묻어나오는 성실함은
그가 참 잘 자랐구나,며 감사하게 만든다.
안티조선 운동을 주제로 우리 사회의 지난 10여년을 돌아보는 이 책은
말 그대로 지난 십여년의 역사 그 자체인데,
소름끼치게 객관적이고, 분석의 깊이는 석유시추선 저리가라다.
근 일주일간 이 책을 읽느라 밤에 잠도 잘 못잘 정도였는데,
앞의 두 책보다 이 책이 훨씬 더 재미있었던 건
나 또한 안티조선에 열광해 ‘우리모두’ 사이트를 밤새 클릭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당시 난 조선일보만 없어지면 좋은 세상이 온다고 믿을만큼 순진했었는데,
그런 희망이 있었기에 그 시절엔 살맛이 났던 것 같다.
자신의 블로그에서 한윤형은 앞으로 글쟁이로 살겠다는 뜻을 비췄다.
그런 말이 부끄럽지 않게 블로그에 올라오는 그의 글들은
한편 한편이 다 주옥같은 명문으로 그것만 엮어도 책이 될 것 같지만,
그는 그렇게 하는 대신 책을 위해 처음부터 다시 글을 썼다.
그런 성실함 덕분에 <안티조선 운동사>는 지난 10여년에 관한 한
어느 책보다도 뛰어난 역사책이 될 수 있었다.
그의 책들이 당장 베스트셀러가 되진 못할지라도,
향후 역사는 한윤형을 ‘현대사의 아버지’로 기억할 것이다.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한윤형의 십분의 일만큼만 성실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