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최동원을 넘어설 수 없어!"
<퍼펙트 게임>에서 해태 감독은 최동원과 대결하게 해달라는 선동열에게 이렇게 말한다.
85년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겠지만,
그 시점이 영화 속에서처럼 87년이라면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1986년 24승 6패에 0.99라는 신화적인 성적으로 MVP를 수상한 이후
1992년 건초염에 걸려 마무리 투수로 전환하기 전까지
선동열은 쭉 최고의 투수였다 (다승왕에 실패한 87, 88년에도 선동열이 최고였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그의 방어율이 너무 뛰어났다)

그 이전에는 최동원이 최고였냐고 묻는다면, 여기에도 별반 동의할 수 없다.
82년은 박철순의 해였고 (24승 4패)<--이땐 최동원이 합류하기 전이었다
83년은 누가 뭐래도 30승을 올린 장명부의 해였다 (최동원 9승 16패).
85년은 각각 25승을 거둔 김시진과 김일융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최동원 20승 9패<---방어율은 최동원이 더 뛰어나기에 최동원의 손을 들어줄 사람도 있겠다)
최동원이 최고의 투수였던 건 27승 13패 6세이브라는 기록을 남긴 1984년 한해뿐이다.
물론 이때의 임팩트는 어느 투수도 보여주지 못할만큼 위대한 것이었고,
거기에 덧붙여진 한국시리즈 4승은 롯데 팬들에게 그를 전설로 추앙받게 하기에 충분했다.
농구와 달리 야구는 선수 한명이 잘한다고 우승하는 스포츠가 아니지만,
84년 롯데의 우승은 오직 최동원 혼자의 힘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비교적 약체였던 롯데에 몸담았던 탓에 잘 던지고도 승리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더 안타까운 건 뒤를 받쳐줄 투수가 없어 가혹할 정도로 혹사를 당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요즘 프로야구는 선발투수가 대개 4일을 쉬고 마운드에 오른다.
게다가 중간계투와 마무리 투수가 대기하고 있어서
투구수가 100개를 넘기면 교체가 이루어진다.
반면 80년대 프로야구는 그저 아마야구의 연장이었다.
투구수와 관계없이 선발투수가 한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는데,
1987년 5월 16일 선-최 대결에서 두 선수가 15회까지 던진 건 라이벌의식도 있겠지만
그게 당시 관행이었던 탓도 있다.
그 예로 선동열은 같은 해 OB의 김진욱과 15회까지 완투대결을 펼쳐 1대 1 무승부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 두산 감독이 된 그 김진욱!).
게다가 어제 나온 선수가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 나오는 일도 허다했다.
선발진이 특히 허약했던 롯데로선 우승을 위해서라면 최동원을 무리하게 쓸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최동원이 던진 이닝수를 보면 눈물이 날 정도다.
162경기를 치루는 메이저리그에서도 200이닝 이상을 던지는 투수가 드문 와중에,
최동원은 게임수가 100-110게임에 불과하던 시절 5년 연속으로 200이닝을 넘겼다 (84년 284이닝, 86년 267이닝).
영화에서 최동원은 어깨수술 자국이 난무한 몸으로 15회를 던졌고,
수시로 병원에 가서 진통제를 맞았는데, 이건 아마도 사실일 거다.
그의 전성기가 84년-86년까지 3년에 불과했던 것도,
선동열-최동원의 빅매치가 3번밖에 열리지 못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의 투구수가 제대로 관리됐다면 더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을테고,
덜 혹사를 당한만큼 성적도 나아질 것으로 추정되는만큼
누가 최고 투수냐는 논쟁에서 최동원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지금보단 많았을 거다.
하지만 당장의 성적에 눈이 먼 감독들은 아쉬울 때면 최동원을 마운드에 올렸고,
그는 1992년 한창 나이 때 (35세) 롯데가 두 번째로 우승하는 광경을 관중석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최동원에게 팀복이 없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지나친 건 아니다.
최동원 얘기는 이 정도로 하고 영화 얘기를 하면서 글을 마감해 본다.
<퍼펙트게임>은 감동을 자아내려 너무 애를 써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당시 야구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서인지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내가 재미있게 본 야구 영화는 다음과 같다.
1위 임창정의 연기가 돋보였던 <스카우트>
2위 만년 꼴찌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즈를 소재로 한 <메이저리그>
3위 임창정의 연기가 돋보였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4위 좀 유치한 내용이지만 마지막 장면이 돋보였던 <내츄럴>
물론 이건 <머니볼>을 안본 탓으로, 그 영화를 보고나면 이 중 하나가 빠질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