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머리에 우편물을 받고는 하마터면 왈칵 울뻔 했습니다."
그분의 편지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미안함이 몰려왔다.
"그럼 그렇지! 교수님이 날 잊지는 않았을 텐데, 했던 겁니다."
그랬다. 그는 내 생각보다 훨씬 내 편지를 기다렸다.
그분과 인연을 맺은 건 아마도 1년 전일 거다.
내가 경향에 쓰는 칼럼이 너무 드문드문 실리는지라
다른 글도 볼 수 없냐는 게 그분의 말이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사이트에 쓰는 글과 개인적으로 일기처럼 쓰는 글을
편지와 더불어 보내드린 게 펜팔의 시작이었다.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고 그분의 신상에 대해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지 않았지만,
몇 번의 편지가 오간 후 그는 자신의 전과에 대해,
언제까지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왔다.
아내는 "나중에 찾아오면 어떡해!"라면서 내 펜팔에 반대를 했지만,
난 "앞으로 십몇 년 있어야 한다더라"며 아내를 달랬다.
펜팔,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우리의 관계는 수평적이진 않은 모양이다.
난 대략 3-4주에 한번씩 편지(글 모음을 포함해서)를 보냈지만
그는 내게 거의 일주에 한번꼴로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를 자주 보내지 못하는 게 미안했다.
별다른 낙이라곤 없는 그곳에서 얼마나 내 편지를 기다릴까.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는 탓이겠지만, 날 무지하게 훌륭한 사람으로 알고 의지하던데.
가끔씩 편지와 더불어 재미있을만한 책도 보내드렸다.
그분이 먼저 "이 책을 보내주심 좋겠다"라고 한 적도 있는데.
한번은 학교에서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바빴던 적이 있다.
그날 마침 그분이 보내달라고 하신 책이 학교로 배달되어 왔기에
"잘 읽으세요"라는 쪽지만 달랑 첨부한 채 보내드렸다.
약자-현재 위치가 그렇다는 얘기다-는 언제나 강자의 눈치를 살피기 마련이라,
그는 편지 대신 쪽지만 첨부한 게, "감히" 책을 보내달라고 요구한 자신 때문에
내가 화가 났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뒤 그는 거의 이삼일에 한번씩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책 같은 거 요구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황급히 그런 게 아니다, 그날 많이 바빠서 그랬다는 답장을 보내드렸지만,
내 편지가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엿새 정도가 걸렸는지라
난 그가 보낸 사죄의 편지를 서너통 가량 더 받아야 했다.
그 후부턴 좀 더 그분을 배려해야겠다 싶었지만,
연말이란 시기와 이사 등으로 인해 답장이 좀 늦어진 게
그분으로 하여금 내가 변심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들었던 것 같다.
앞으로는 내가 좀 바빠도 그분을 먼저 배려해야겠다.
아내의 말처럼 그가 나중에 날 찾아올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지만,
그가 날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는 건 많이 부담스럽다.
나중에 내 실체를 알고나서 나에게 실망하면 어쩌나 싶어서.
그러고보니 한번도 그를 찾아갈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게 신기하다.
언제 한번 깜짝 면회를 가서 그를 놀라게 해주고 싶다.
아내는 펄쩍 뛰며 말릴 테고, 지금은 나도 확실히 결심이 서지 않았지만,
내 방문이 지금 그가 하는 일에 격려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