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떻게 알았지?
간만에 알라딘에 들어왔더니 화제의 서재글이 예전과 다르단 느낌을 준다.
낯설긴 하지만 어디서 본 듯한 그런 글들이 화제의 서재글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알았다. 아, 싸움이 났구나.
"좋은 봄날인데 왜들 싸우고 그래요. 벚꽃 보면서 잊읍시다, 하하"라면서
내가 오늘 찍어온, 천안 근교의 벚꽃 사진을 올리려 했는데
다음 글귀를 보고 그 생각을 접었다.
"이곳 알라딘에는 무슨 일만 터지면 갑론을박이 정점을 찍은 다음
기다렸다는 듯이 심판관처럼 나타나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

그림 1. 어떻게 알았지,란 유행어를 만든 김지호
이 글귀를 본 느낌은, "아니 어떻게 알았지?"였다.
그 동안 가끔 심판관처럼 나타나 상황을 정리한 적이 몇 번 있었고,
이번에도 그러려고 했으니까.
몇 번이나 심판관을 자처한 까닭은 알라딘의 대주주라는 자의식과 더불어
심판질을 하다보면 일말의 희열감을 느끼기 때문인데,
내 속마음을 들키고 말았으니 이번엔 그렇게 못하게 됐다.
저 글귀를 못봤으면 얼마나 쑥스러웠을까, 생각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린다.
2. 벚꽃
왜 날이 따뜻해지지 않느냐, 벚꽃철이 좀 늦게 오는 거 아니냐 등등의 생각을 한 게
불과 지난주였는데
거짓말처럼 벚꽃이 만개했다.
서울도 그렇지만 천안 역시 길거리에 벚꽃만 잔뜩 심어놨는지라
굳이 여의도에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
원래 토요일 아침, 아내를 꼬셔서 벚꽃 길을 같이 걸어볼까 했는데
아침부터 비가 오는 바람에 좌절되고 말았다.
속절없이 떨어지는 벚꽃을 보면서 "올해는 벚꽃보기 틀렸구나"고 혼잣말을 했는데
생각해보면 작년, 재작년이라고 해서 벚꽃을 제대로 본 적은 없다.
오히려 벚꽃철이 되면 사람이 많다고, 여의도엔 발길조차 내딛지 않았잖은가?
그러고 있는데 학교 홈페이지에 어느 분이 글을 올렸다.
"어디어디 가니깐 벚꽃이 좋더라."
인터넷을 찾아보니 천안 근처 연춘리부터 운용리에 이르기까지
10킬로에 걸쳐 벚꽃길이 있단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아내랑 두 아이들을 데리고 연춘리로 향했다.
그곳이라고 어제의 비에 온전한 건 아니었지만,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은 매일 갈비를 먹어도 재산이 줄지 않는 것처럼
벚꽃이 워낙 많다보니 그 정도의 벚꽃에도 입이 떡 벌어졌다.
평생 본 것보다 더 많은 벚꽃을 보고 나니 여의도가 우습게 느껴지고,
천안으로 이사온 것에 대한 만족감이 더 높아졌다.

그림 1. 이런 길이 10킬로나 이어진다니 얼마나 멋졌을까요? ,라고 자랑하는 사진
3. 벚꽃(2)
본의 아니게 방송에 나간 적이 있다.
외모도 그렇지만 말투가 어눌한데다 표정처리도 엉망인지라
방송에 그리 적합한 인간은 아니건만,
뭘 잘 모르는 작가들이 가끔 날 섭외한다.
첫회를 찍고나면 "오! 저런 사람이 있어?"라며 신선한 느낌을 받지만
두번째부턴 "저 사람... 계속 저러네."라며 실망하고,
세번째를 찍고나선 조용히 날 불러서 말한다.
다음주부턴 나오실 필요 없다고.
그런 전력을 생각하면 이번 프로는 좀 오래 간 편으로,
무려 다섯번이나 방송을 찍었다.
소위 말하는 '고정'이 된 셈,
하지만 기뻐하긴 일렀다.
다섯번째 촬영을 하루 앞뒀을 때 작가한테서 전화가 왔으니까.
"죄송하지만 저희 프로가 폐지됐어요."
폐지 이유는 말을 안했지만, 그간의 전력으로 보아 나 때문인 듯하다.
간만의 고정인데 그렇게 돼서 아쉽고,
이제야 방송이 뭔지 좀 알아가는 마당이라 아쉽고,
TV에 나오는 날 보고 기뻐하는 어머니 생각을 하니 더더욱 아쉽다.
물론 제일 아쉬운 건 출연료를 받아서 아내에게 가져다 주는 기쁨이 박탈된 것.
역시나 배신하지 않는 것은 논문 뿐이니
앞으론 논문을 열심히 써야겠다. <---오늘의 결론

그림 3. 벚꽃길 초입부에서 애들과 함께. 들어간 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