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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달리다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먹구름이 세상을 휘감아 덮었다.”
심윤경 작가의 첫 줄을 읽으면서 감격에 겨웠다.
심작가의 팬이라면 다들 공감하겠지만,
심윤경은 책을 그리 자주 내는 작가가 아니다.
데뷔한 지 10년이 다 됐지만, 그가 낸 책은, 창작동화를 제외한다면, 4권이 고작이고
그나마도 2008년 <서라벌 사람들> 이후 4년만이다.
그러니 책이 어떻다를 떠나서 심작가가 낸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할 수밖에.
난 이 책의 리뷰를 쓸 마음이 없다.
자기 애인과 사랑에 빠졌을 때 객관적 판단이 어려운 것처럼,
심작가가 낸 4년만의 신작 앞에서 쓰는 내 리뷰가 객관적일 자신이 없어서다.
다만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한다.
첫 번째. 지난 4월 심작가님이 우리 학교 강의를 왔을 때 이런 말을 했다.
“<몰입>(황농문 저)이라는 책 읽어 봤어요? 전 그걸 겪었답니다. 작년에 새 작품을 쓰는 내내 몰입 상태였거든요. 그간 제게 소중한 건, 물론 책도 중요하지만, 제 가정과 아이였어요. 그런데 몰입 상태가 되니까 가정이 뭐가 중요하냔 생각이 들고, 심지어 아이가 옆에 와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거예요. 그때 제 유일한 관심사는 ‘빨리 이 작품을 쓰자’ 뿐이었어요. 밥도 먹고 싶지 않았고, 잠도 오지 않았어요. 엄청 대단한 작품을 쓴다는 그런 느낌이 저를 엄습했어요.”
꼭 심작가의 팬이 아니라도 책에 약간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듣고난 뒤 심작가의 책이 언제 나오는지 수시로 검색해 보지 않겠는가?
결국 내가 이 책의 출간을 알게 된 건 우연히 연락이 된 문학동네 관계자 분을 통해서였다.
그 책이 바로 얼마 전 시중에 나온 <사랑이 달리다>다.

두 번째, 아내는 책 고르는 것에 까다로운 편이다.
웬만큼 재미있는 책이 아니면 조금 읽다가 말아 버린다.
‘결혼하면 내가 산 책을 아내도 읽으니 2배 이익이다’라던 내 추측은 틀렸다.
그런 아내가, 내가 권하지도 않았는데 집으로 배달된 책을 보더니 냉큼 가져가 읽는다.
몸이 안 좋아서 일찍 자겠다고 해놓고선 말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 아내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이번 책 정말 대단하더라. 나 어제 무지 피곤했잖아. 그런데도 책을 놓을 수가 없는 거야.
어찌나 재미있는지, 책장을 아껴가며 넘긴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더라고.“
나와 달리 심작가의 팬이 아닌 아내의 이 말에 난 안도했고,
‘몰입’의 힘이 실로 대단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몰입 상태가 되어 <네이처>에 논문을 싣는 상상을 잠깐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너도 나도 네이처만을 노리는 이 각박한 세상에서
나마저 네이처를 꿈꾼다면 세상은 얼마나 더 각박해지겠는가?(말이 안되는 논리이긴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몰입의 결과물인 <사랑이 달리다>를 읽으며 주말을 보내는 것도
충분히 보람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