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공제회라는 게 있었다. 정부에서 어느 정도 책임을 져주는 교원공제를 본따 만든 것으로, 20%의 이율을 보장하고 콘도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단다.
저축은행 사태에서도 드러났듯 이런 게 나온다면 일단 한번 의심해봐야 한다.
무슨 수로 은행보다 높은 이자를, 그것도 20%씩이나 줄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난 노후에 관심이 없어서 안들었지만,
돈을 불리고픈 많은 교수들이 관심을 보였다.
우리나라 교수 숫자를 대략 5만명으로 잡는다면,
8%에 해당하는 4천명의 교수가 교수공제회에 가입했다.
그게 대략 5년쯤 전의 일인데,
교수들이 다달이 돈을 내거나 목돈을 맡겨서 만든 4천억원 중
절반 가량이 허공으로 날아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표의 가족들이 전부 교수공제회에 들어가 삥땅을 쳤고,
자기 명의로 부동산을 마구 사들였다니 안봐도 비디오다.
대표는 책임을 지고 남은 돈을 반납한다고 했지만,
나머지 절반이나마 찾게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회적 약자가 아닌, 교수들이 피해를 입었는지라 사회적 이슈가 되진 않았고,
조그맣게 난 기사에는 "쌤통이다" "헛똑똑이들이군!" 같은 댓글만 달렸다.
약자든 강자든간에 당한 사람은 억장이 무너지는 일,
집 대출금을 아직 못갚은 한 교수는 1500만원 정도의 손실을 봤고,
학교는 다르지만 선배 교수 하나는 노후자금을 몽땅 넣어 놔서 피해액이 1억5천만을 넘는단다.
그들을 어떻게 하면 위로할 수 있을까 싶어 네이버를 뒤졌고,
'가장 큰 위로는 잘 먹이는 것'이라는, 내 가치관과 동일한 글을 찾아냈다.
점심 때, 천오백만원 교수와 돼지두루치기 하는 집에 갔다.
안그래도 먹는 걸 좋아하던 그 교수는 어느 새 돈 잃어버린 사실은 깨끗이 잊고
두루치기를 입에 넣기 시작했다.
"맛있네요!"를 연발하면서.
문제는 1억5천 플러스 알파.
나 혼자론 안되겠다 싶어 그와 친한 몇몇을 긴급 소집했고,
그 부부를 위한 성찬을 마련했다.
피자에 파스타, 그리고 스테이크가 왔다갔다하는 훈훈한 식사에 그 부부는 약간의 위안을 얻은 듯했고,
2차로 그분들 집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인생 뭐 있냐, 먹는 게 최고다, 이런 얘기를 나누다 왔다.
평소엔 그렇지 않겠지만 적어도 그날만큼은 난 그들에게 좋은 친구였고,
오는 내내 마음이 훈훈했던 건, 물론 그 핑계로 잘 먹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스스로 내가 멋진 놈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