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으로 이사간 지 첫 번째 맞는 추석명절.
지난 설 때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내내 집에 있었는지라
명절 때 귀성과 귀경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당일에 모든 걸 끝마치기로 했는데,
개 한 마리를 데리고 가야 하는데다 (개 데리고 택시 타는 건 참 어렵다)
들러야 할 곳이 많아 좀 럭서리한 여행을 생각했다.
1) 차를 타고 천안아산역에 가서 1일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하루 7천원이다)
2) KTX를 타고 천안아산--> 서울로 올라간다.
3) 서울역 앞에서 차를 한 대 렌트한다 (출장을 많이 다닌 덕분에 골드회원이라, 싸게 할 수 있다)
4) 차를 서울역에 반납하고 서울--> 천안아산으로 내려온다
5) 세워놓은 차를 타고 스위트 홈에 온다
이렇게 하면 귀경과 귀성 단계에서 교통체증을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
그야말로 환상적인 여행이 될 것 같았다.
물론 일은 아주 순조롭게 됐다.
이 행사를 위해 15일 전쯤 기차표를 예약해둔 터였으니,
걱정할 게 뭐가 있겠는가?
장모님 댁에 가서 인사를 했고, 처가 쪽이 불교를 믿는지라 절에도 갔고,
아는 분게 인사도 갔고, 음, 지인도 만났고,
간만에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생선회를 떴고,
그 회를 들고 본가에 가서 어머니랑 같이 회를 먹었다.
내려가는 기차 시간이 밤 10시 6분이라 거기에 맞춰 집에서 나와서 서울역에 갔다.
차도 무사히 반납했겠다, 이제 남은 건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일.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10시 6분 차에 대한 안내가 전광판에 전혀 뜨지 않는 거였다.
10시 1분은 있고 15분도 있는데 왜 그 중간에 있는 6분 차에 대한 안내가 안나올까?
십분 전부터 승차준비 하라는 멘트가 나와야 하는데 말이다.
뭐가 잘못됐나 싶어 몇 번이나 승차시간을 확인했지만
날짜와 시간은 틀린 게 없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뭐가 틀렸는지를.
기차 방향이 천안아산--> 서울 로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난, 천안아산--> 서울 을 두 번 예약한 거였다!
갑자기 집에 갈 방법이 없어졌다.
택시를 타자니 20만원, 아니 밀리는 걸 감안하면 30만원이 들 것 같고,
그렇다고 렌트를 하면 차를 다시 갖다줘야 하고, 그때까지 렌트비가 장난이 아닐 것이다.
고속버스는 개한테 너무 힘들 것 같고, 기차표는 남은 게 한 장도 없었다.
정말 심난했고, 아내한테 미안한 마음이 굴뚝같았다 (자상한 아내는 화를 내지 않았지만).
그때 전광석화같이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그건 어머니 차를 가지고 천안에 내려가는 거였다.
평소 어머니는 차를 거의 안쓰시는지라 거의 세워 놓기만 하시니
다음에 서울 올라올 때 가져가면 되는 거 아닌가!
어머니한테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빌려주신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어머니 댁에 다시 가서 차를 몰고 나왔다.
물론 이게 꼭 해피엔드는 아니었던 것이,
내려가는 길이 막.혀.도. 너.무. 막.혔.다.
우리집까지 대략 세시간 정도 걸렸고, 집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두시였다.
그 정도면 선방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내와 개는, 가는 내내 힘들어했다.
다행히 개-참, 이름이 뽀삐다-는 이내 회복을 했지만
아내는 그 후부터 몸살이 나서 계속 누워만 있다.
남편을 잘못만난 대가를 치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나저나 난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
말도 안되는 실수들이 자꾸만 늘어가고 있으니,
나이 든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