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를 싫어한다.
좀 심하게 말해 자기계발서란 책들은
뭘 잘 모르는 사람들을 충동질해서 자기 이익을 취하려는 목적으로 쓰였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15년 전 대박을 쳤던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보자.
이 책을 읽고 부자가 된 사람이 과연 있을지 모르겠다만,
확실히 기요사키는 이 책으로 부자가 됐다.
그 책만으로도 그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부족했는지
기요사키는 그 후 똑같은 내용을 사골국물을 만들 듯 우려먹는다.

신기한 건 사람들이 그의 책이 나오는족족 샀다는 거다.
차라리 그 책살 돈을 아꼈다면 그만큼 더 부자가 됐을 듯 싶은데.
어쩌면 사람들은 기요사키의 책을 읽는 동안이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헛된 희망을 품게 만드는 것도 재주는 재주겠지만,
그럴 거라면 차라리 로또를 사는 게 확률적으로 더 낫지 않았을까.
이렇듯 자기개발서의 가장 큰 특징은 ‘우려먹기’라 할 수 있는데,
우려먹기의 대가로 존 그레이를 빼놓을 수 없겠다.
화성과 목성을 각각 여자와 남자에 비유해 둘의 차이점을 분석한 그의 책은
이성에 대해 알고자 하는 수많은 이들을 열광시켰다.
모든 남녀가 다 이 책의 기술에 들어맞는 건 아니라해도
<화성>은 실제 연애에도 도움이 되는 명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난 자기개발서의 필요성은 인정한다는 얘기다.
그레이가 딱 한권만 쓰고 말았다면 난 그를 비난하지 않았겠지만,
돈독이 오를대로 오른 그레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고,
연애를 잘 해보고픈 가난한 청춘들의 지갑털기를 신나게 해댔다.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점점 설 땅이 없어지는 20대들을 위로하는 책이다.
그간 젊은 층을 감싸안는 책이 드물었던 점을 고려하면,
김난도는 이 시대에 청춘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준 훌륭한 멘토다.
언젠가 <컬투쇼>에 나온 김난도가 세대별로 비슷한 유의 책을 준비중이라고 하기에 중장년을 위한 책이 나오겠구나 기대했는데,
그는 의외로 비슷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를 출간했다.
책을 읽지 않았으니 직접적인 평가는 보류하겠지만,
이 책으로 인해 김난도가 젊은이들 최고의 멘토에서
위에서 예로 든 자기계발서 저자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일단 100자평.

뭐, 이분들도 나처럼 책을 안읽고 비판하는 듯하니 넘어가자
마이리뷰에 올라온 글들은 대체적으로 만족하는 걸로 보아
아직 우리 세대 젊은이들은 위로를 더 갈구하고 있나보다.
좀 지난 일이지만 이 비난의 대열에 변영주가 가세했다.
그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0928024847§ion=04
[-20대에 느꼈던 벽이 오히려 지금의 변영주 감독을 있게 한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하나. 그런 면에서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의 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일단 기본적으로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책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정말 치졸하다고 생각한다. 쓰레기라는 생각을 한다. 지들이 애들을 저렇게 힘들게 만들어 놓고서 심지어 처방전이라고 써서 그것을 돈을 받아먹나? 내용과 상관없이 애들한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무가지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걸 팔아먹나? 아픈 애들이라며? 아니면 보건소 가격으로 해 주던가. 20대들에게 처방전이라고 하면서 무엇인가 주는 그 어떤 책도 팔 생각은 없다.
이 세상에서 제일 못된 선생은 애들한테 함정의 위치를 알려주는 선생이다. 걷다 보면 누구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인데, 그것을 알려준다는 것은 되게 치사한 자기 위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은 그 친구들이 함정에 빠졌을 때 충분히 그 함정을 즐기고 다시 나올 수 있도록 위에서 손을 내밀고 사다리를 내려주는 일이지, "거기 함정이다"라고 하거나 "야, 그건 빠진 것도 아니야. 내가 옛날에 빠졌던 것은 더 깊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영화가 하고 싶어서 막 어쩔 줄 몰라 하는 것과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 중에 더 훌륭한 선택은 없다. 누구나 자기의 선택이 있는 거다. 다만 행복할 자신은 있으시냐고 묻고 싶을 뿐이다.]
자기개발서에 부정적인지라 변영주의 말에 더 공감이 갔다.
물론 ‘쓰레기’같은 말은 너무 직설적이어서 당사자인 김난도가 불쾌한 건 당연했는데,
의외였던 건 그의 반응이었다.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저를 두고 'X같다'고 하셨더군요. 제가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나요? 아무리 유감이 많더라도 한 인간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모욕감에 한숨도 잘 수 없네요”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책을 쓸 정도의 내공이 변영주의 말에 너무 쉽게 흔들리는 건 좀 놀랍다.
게다가 ‘제가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나요’란 항변은 그가 진정으로 20대의 멘토인지 의심하게 하기 충분했다.
그래서 아쉽다.
대상은 조금 다를지언정 청춘을 대상으로 하는 위로서를 또 하나 써낸 게.
위로는 현 상황을 바꾸지 못한다는 점에서 마약에 가까운데,
이미 큰 위로를 줘놓고선 비슷한 위로를 또 주는 이유가 대체 뭘까?
63년생이라 40대를 위로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는 걸 이해하지만,
20대를 위한 책을 또 내지 말았다면 좋았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