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를 싫어한다.

좀 심하게 말해 자기계발서란 책들은

뭘 잘 모르는 사람들을 충동질해서 자기 이익을 취하려는 목적으로 쓰였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15년 전 대박을 쳤던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보자.

이 책을 읽고 부자가 된 사람이 과연 있을지 모르겠다만,

확실히 기요사키는 이 책으로 부자가 됐다.

그 책만으로도 그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부족했는지

기요사키는 그 후 똑같은 내용을 사골국물을 만들 듯 우려먹는다.

    

 

 

 

신기한 건 사람들이 그의 책이 나오는족족 샀다는 거다.

차라리 그 책살 돈을 아꼈다면 그만큼 더 부자가 됐을 듯 싶은데.

어쩌면 사람들은 기요사키의 책을 읽는 동안이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헛된 희망을 품게 만드는 것도 재주는 재주겠지만,

그럴 거라면 차라리 로또를 사는 게 확률적으로 더 낫지 않았을까.

 

이렇듯 자기개발서의 가장 큰 특징은 우려먹기라 할 수 있는데,

우려먹기의 대가로 존 그레이를 빼놓을 수 없겠다.

화성과 목성을 각각 여자와 남자에 비유해 둘의 차이점을 분석한 그의 책은

이성에 대해 알고자 하는 수많은 이들을 열광시켰다.

모든 남녀가 다 이 책의 기술에 들어맞는 건 아니라해도

<화성>은 실제 연애에도 도움이 되는 명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난 자기개발서의 필요성은 인정한다는 얘기다.

그레이가 딱 한권만 쓰고 말았다면 난 그를 비난하지 않았겠지만,

돈독이 오를대로 오른 그레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고,

연애를 잘 해보고픈 가난한 청춘들의 지갑털기를 신나게 해댔다.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점점 설 땅이 없어지는 20대들을 위로하는 책이다.

그간 젊은 층을 감싸안는 책이 드물었던 점을 고려하면,

김난도는 이 시대에 청춘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준 훌륭한 멘토다.

언젠가 <컬투쇼>에 나온 김난도가 세대별로 비슷한 유의 책을 준비중이라고 하기에 중장년을 위한 책이 나오겠구나 기대했는데,

그는 의외로 비슷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를 출간했다.

책을 읽지 않았으니 직접적인 평가는 보류하겠지만,

이 책으로 인해 김난도가 젊은이들 최고의 멘토에서

위에서 예로 든 자기계발서 저자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일단 100자평.

  

 

 

  

 

, 이분들도 나처럼 책을 안읽고 비판하는 듯하니 넘어가자

마이리뷰에 올라온 글들은 대체적으로 만족하는 걸로 보아

아직 우리 세대 젊은이들은 위로를 더 갈구하고 있나보다.

좀 지난 일이지만 이 비난의 대열에 변영주가 가세했다.

그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0928024847§ion=04

 

[-20대에 느꼈던 벽이 오히려 지금의 변영주 감독을 있게 한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하나. 그런 면에서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의 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일단 기본적으로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책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정말 치졸하다고 생각한다. 쓰레기라는 생각을 한다. 지들이 애들을 저렇게 힘들게 만들어 놓고서 심지어 처방전이라고 써서 그것을 돈을 받아먹나? 내용과 상관없이 애들한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무가지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걸 팔아먹나? 아픈 애들이라며? 아니면 보건소 가격으로 해 주던가. 20대들에게 처방전이라고 하면서 무엇인가 주는 그 어떤 책도 팔 생각은 없다.

 

이 세상에서 제일 못된 선생은 애들한테 함정의 위치를 알려주는 선생이다. 걷다 보면 누구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인데, 그것을 알려준다는 것은 되게 치사한 자기 위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은 그 친구들이 함정에 빠졌을 때 충분히 그 함정을 즐기고 다시 나올 수 있도록 위에서 손을 내밀고 사다리를 내려주는 일이지, "거기 함정이다"라고 하거나 ", 그건 빠진 것도 아니야. 내가 옛날에 빠졌던 것은 더 깊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영화가 하고 싶어서 막 어쩔 줄 몰라 하는 것과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 중에 더 훌륭한 선택은 없다. 누구나 자기의 선택이 있는 거다. 다만 행복할 자신은 있으시냐고 묻고 싶을 뿐이다.]

 

자기개발서에 부정적인지라 변영주의 말에 더 공감이 갔다.

물론 쓰레기같은 말은 너무 직설적이어서 당사자인 김난도가 불쾌한 건 당연했는데,

의외였던 건 그의 반응이었다.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저를 두고 'X같다'고 하셨더군요. 제가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나요? 아무리 유감이 많더라도 한 인간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모욕감에 한숨도 잘 수 없네요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책을 쓸 정도의 내공이 변영주의 말에 너무 쉽게 흔들리는 건 좀 놀랍다.

게다가 제가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나요란 항변은 그가 진정으로 20대의 멘토인지 의심하게 하기 충분했다.

그래서 아쉽다.

대상은 조금 다를지언정 청춘을 대상으로 하는 위로서를 또 하나 써낸 게.

위로는 현 상황을 바꾸지 못한다는 점에서 마약에 가까운데,

이미 큰 위로를 줘놓고선 비슷한 위로를 또 주는 이유가 대체 뭘까?

63년생이라 40대를 위로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는 걸 이해하지만,

20대를 위한 책을 또 내지 말았다면 좋았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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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3-01-05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자기계발서를 무척 싫어합니다.
자기계발서 열 권 읽는 것보다 소설 한 권 읽는 것이 훨씬, 그러니까 수십 배 수천 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인생은 정해져 있는 것을 선택하는 뷔페 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자기계발서를 읽어보면(뭐...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렇다, 저렇다. 조물주인 양 가르치려 드니까요.
변영주 감독이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녀야말로 2030대를 정말 혹독하게 견뎌온 사람이니까요. 처방전이라면 보건소 가격을 받아야 하는 말이 상당히 재밌으면서도 콕콕 박히네요. 앞으로 자기계발서 안 읽을거지만 뭐... 참 보기 안 좋네요.

마태우스 2013-01-05 20:46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도 그러시군요. 일단 반갑구요 인생은 정해져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게 아니란 말씀, 정말 공감합니다. 변영주 인터뷰 그 대목만 소개되어 아쉬운 것이 다른 좋은 말이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정말 감사드립니다. '자기개발서'라고 써놨는데 님 덕분에 잽싸게 고쳤습니다

비연 2013-01-05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책을 쓸 정도의 내공이 변영주의 말에 너무 쉽게 흔들리는 건 좀 놀랍다.. 이 말에 빵 터졌습니다..ㅎㅎㅎㅎㅎ



마태우스 2013-01-05 20:47   좋아요 0 | URL
부끄럽습니다. 그나저나 비연님 오랜만이어요. 하기야, 친한 친구도 일년에 두어번 만나는 게 우리네 인생이죠. 그러고보면 인터넷 친구가 더 친한 것 같은 생각도 들어요^^ 좋은 일 많이 생기길...!

Mephistopheles 2013-01-05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개발서를 100% 부정할 순 없긴해요. 출판되어 판매되는 속칭 베스트셀러들이 자기개발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긴 하니까요. 근데 말이죠. 사람이 그렇게 책 속의 활자 몇개로 쉽게 계몽하고 변화를 주었던가..란 의문은 언제나 남아요. 그게 가능하다면 교도소와 소년원에 근사한 자기개발서를 묶어 놓고 읽어 주면 재범의 위험은 사라질텐데 말이죠.

전 일종의 자기위로가 아닌가 해요. 난 그래도 책도 사고 변화하려고 노력도 한다...라는

마태우스 2013-01-06 22:16   좋아요 0 | URL
맨 마지막 줄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자기최면, 자기위로.. 정말 사람은 책 속의 활자 몇개로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쿼크 2013-01-05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요사키라..얼마전 파산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네요.. (물론 부채를 갚기 싫어 스스로 파산을 선언하긴 했지만요..) 부업은 책팔이겠지만..본업은 피라미드 사기꾼이죠...저도 자기계발서를 잘 안보는데...소설이든..역사서든..그 속에서 자기계발서적 면모를 보면 흥분은 되더군요..^^

마태우스 2013-01-06 22:1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쿼크님 기요사키 파산은 돈 안주려고 그런 거더라고요. 정말 하는 사업은 다 망했는데 오직 책 인세만 가지고 거부가 된, 그러니까 십시일반 개미들이 돈모아 부자를 만들어준 경우죠... 씁쓸해요

paviana 2013-01-05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주 오픈에 나달 못 나온데요. 흑흑 ..자기 계발서는 안 읽는 주의라 ..세상은 넓고 미미여사 책도 다 못 읽고 지낼 정도로 책은 많은데 그런 책에까지 눈길 줄 여유는 없어서요.

마태우스 2013-01-06 22:18   좋아요 0 | URL
예전엔 나달만 안나오면 무조건 페덜 우승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늙었어요 페덜이... ㅠㅠ

좋은날 2013-01-06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연님처럼 저 글 읽고 역시 라고 생각했어요.
김난도씨가 변영주 감독의 말에 의연하게 대담하게 받아들일줄 알았는데
발끈하는 모습이 상상되어서
사춘기 소녀같단 생각을 했어요.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속담처럼
김샌 느낌..

마태우스 2013-01-06 22:1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발끈할 수는 있지만 그걸 공개적인 트위터에 쓸 정도면 좀 실망스럽죠. 대중서적을 내면 그런 것에는 무감각해져야지 않을까 싶은데 말입니다.

마립간 2013-01-06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별점 3개를 주기는 했지만 베스트 셀러가 된 것인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렇게 따지면 '멈추면, 비로서 보인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우스 2013-01-06 22:19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근데 그만큼 청춘들이 위로를 갈구했다는 반증이죠 뭐... 멈추면 비로소 보인 것들,은 안읽었는데요 햇반스님이란 분이 코빅에서 <멈추면 비로소 멈췄다>로 패러디하더이다^^

saint236 2013-01-06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꼰대정신으로 보이더군요.

마태우스 2013-01-06 22:20   좋아요 0 | URL
사실 꼰대정신이죠 제가 너무 부드럽게 쓰느라 노력해서 그렇지, 꼰대정신이 딱 맞는 말이죠

북극곰 2013-01-07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책을 쓸 정도의 내공이 변영주의 말에 너무 쉽게 흔들리는 건 좀 놀랍다.
저도 빵~!

꼰대정신이 딱이네요. 그거 나도 예전에 해봐서 아는데...... 뭐 이런 식의 위로랄까.

마태우스 2013-01-09 11:25   좋아요 0 | URL
사실 꼰대정신이죠 뭐 원래 위로라는 게 다 그런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2005년을 끝으로 저서계에서 은퇴했으니

책을 안쓴지 벌써 8년이 지났다.

지금 시점에서 과거에 쓴 책들을 평가하자면

"무슨 용기로 저런 책들을 냈을까?"라고 후회할만큼

과거에 쓴 책들이 부끄럽다.

물론 그 책들이 있었으니 오늘의 내가 있는 거겠지만,

누군가 내게 그 책들 얘기를 할 때면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다.

 

 

 

 

 

 

 

 

 

 

얼마 전,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2004년에 내가 쓴 <대통령과 기생충>이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약을 보내는 데 쓰였다는 것.

2쇄도 못찍고 절판된 게 그때는 아쉬웠지만 지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한 그 책이

2010년 1월, 100부 한정판으로 다시 나와 권당 2만원 (약지원금 포함)에 판매됐단다.

 

그때는 정준호의 명저 <기생충, 우리들의 동반자>가 나오기 전이고,

다른 기생충 대중서로 마땅한 게 없었으니 내 책이 선정되었을 텐데,

취지도 좋고 그렇게라도 내 책이 빛을 보는 게 고마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내 동의는 받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새로 찍는 것에 대한 저자의 인세를 받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어차피 그때도 한푼도 못받았는지라...)

그 책이 새로 나와서 현재를 사는 이들에게 읽힌다는 게 영 쑥스러우니까.

만일 내게 물었다면 "칼 짐머의 <기생충 제국>으로 하면 안될까요?"라고 우겨보다가

마지못해 수락하긴 했을 테지만,

그랬다면 어느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이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할 필요는 없었을 거다.

이 사태(라고까지 할 건 없지만)를 겪으면서 얻은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책은 두고두고 남으니 쓸 때 잘 써야 한다.

2) 책이 절판됐다고 안심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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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3-01-05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께 알리지도 않고 새로 찍었단 말입니까...?
그게 가능한 것인지. 저작권 문제도 있고, 그렇지 않나요..?

마태우스 2013-01-05 19:42   좋아요 0 | URL
앗 소이진님이다!
저작권은 글쎄요, 계약서를 잃어버려서 누구한테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평생이면 출판사랑만 얘기가 잘 되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저자에게 알렸다면,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Mephistopheles 2013-01-05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엔....소설을 한 번 도전해보시는게 어떨까요 마태님...^^

마태우스 2013-01-07 14:48   좋아요 0 | URL
하하,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더라고요 님이 한 천권 사주신다면...해볼게요

쿼크 2013-01-05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의 허락없이 책을 다시 내놓았다니..예전에 본 이 책 관련 댓글(물론 리뷰에 등록이 되어있습니다..)이 떠오르는군요.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7759272

물론 이 상황과는 다를 수 있겠지만...번역가든...작가든 상황이 녹록치는 않은가 봐요..

항상 자신의 저서(혹은 번역서)에는 레이다를 가동시키고 있어야 할듯 보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마태우스 2013-01-07 14:49   좋아요 0 | URL
우와 이런 일이 있었군요. 10여년만에 다시금 책을 출간하다니... 님 말씀 명심할게요 감사합니다

saint236 2013-01-06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게 가능하군요..요즘같이 저작권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마태우스 2013-01-07 14:49   좋아요 0 | URL
저작권보다, 저는 그저 쥐구멍을 찾고 싶습니다. 제 책이 다시 일어나서 거리를 배회하는 게요...ㅠㅠ
 
악의 교전 1 악의 교전 1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0121230일 밤 11,

난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안읽은 책이 놓인 책꽂이를 훑었다.

그때 내 눈에 띈 책이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

<신세계에서>를 읽고 난 뒤 그의 책을 마구 사들일 때 같이 산 책인 듯했다.

 

영화를 볼 때나 책을 볼 때나 난 사전설명 없이 보는 걸 선호하는데,

이 책 역시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읽기 시작했다.

바르고 성실한 고교교사 하스미 선생이 까마귀 한 마리를 감전시켜 죽일 때 잠깐 고개를 갸웃했지만

하스미가 훌륭한 선생으로 묘사되는 대목이 이어지자 역시 그렇군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목이 악의 교전인데 은 도대체 언제쯤 나오냐며 책장을 넘기던 중

다음 장면에서 머리를 맞은 듯 멍해졌다.

여고생 한 명이 자기를 위기에서 구해준 하스미에게 매달렸을 때 하스미는 이렇게 한다.

위로를 바라는 야스하라(여고생)를 뿌리치기가 망설여졌다...하스미는 바로 역발상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야스하라를 꽉 끌어안고 적극적으로 키스하는 자세를 취했다.”(126)

, 이 장면은 도대체 뭐지?

그제야 책의 제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책장은 숨가쁘게 넘어갔다.

 

새벽 한시가 됐을 때 아내가 말했다.

한시다. 지금 자야지 내일 출근하지!”

조금 버텨보려 했지만 아내는 완강했다.

안되겠다 싶어 불을 껐지만, 잠이 올 턱이 없었다.

난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 쓴 채 휴대폰 불빛에 의존해 책을 읽었다.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에 아내가 눈치를 챌까봐 조심하면서.

아내가 방향을 돌려 내 쪽을 향하는지 이따금씩 확인하면서.

그러다보니 시간은 새벽 4시를 넘어섰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억지로 잠을 청했고,

다음날 퇴근하자마자 다시금 책을 집어들었다.

2012년의 마지막 순간이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책을 다 읽고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201311, 새벽 3시였다.

내 몸안에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친 느낌이었다.

얼마 전 기시 유스케에 대해 비난했던 게 미안했다.

폭풍에 몸을 맡기고 싶다면 <악의 교전>을 펼치시라.

    

*제목을 낚시성으로 달았더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이래서 인터넷 신문들이 제목을 그렇게 다는구나,는 걸 이해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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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1-04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저 이거 읽을래요!

마태우스 2013-01-04 20:31   좋아요 0 | URL
오옷 낚였네요!

Mephistopheles 2013-01-04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어요 좀 더 선정적인 문구를 넣어야 확실한 낚시성 제목이 될 수 있어요 마태님..
예를 들면..

"12월 31일 새벽 이불 속에서....충격" 보다는 앞에

"여교사가 제자와 12월 31일 새벽 이불 속에서....충격"

전자가 릴낚시면 후자는 거의 저인망어선 수준의 낚시라죠.
(사실 후자의 제목이 페이퍼의 내용과 관계도 있으니까 말이죠..우히히)

마태우스 2013-01-04 20:32   좋아요 0 | URL
이, 이건 좀 너무 나간 게 아닌가 싶어서 못했답니다^^

지나다가 2013-01-04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왜 이러세요, 이건 너무너무 약합니다~ 요즘 누가 이런 정도의 낚시에 낚인답니까!

마태우스 2013-01-04 20:32   좋아요 0 | URL
알라디너들의 순진성을 믿어봤는데 역시 좀 약했죠?^^

paviana 2013-01-04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낚였어요...흑 반성하고 있어요.

마태우스 2013-01-04 20:32   좋아요 0 | URL
아니 이 정도에 낚이시다니, 험한 세상을 어케 사시려고...^^

좋은날 2013-01-04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 읽고싶어 져요.

마태우스 2013-01-04 20:33   좋아요 0 | URL
그죠? 역시 낚시가 쵝오^^

sweetmagic 2013-01-04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머가 어캐 된거래요 ?? 눼??눼???

마태우스 2013-01-04 20:33   좋아요 0 | URL
제가 원래 리뷰에다 스포일러는 자제하고 있답니다. 궁금하심 직접 읽으삼!! 그나저나 매직님 반가워요 제가 안그래도 요즘 매직님이 옛날에 만들어주신 노트에다 메모하고 있어서, 님 생각 가끔씩 했어요

재는재로 2013-01-04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사이코패스를실감나게그려낸 실제이런인간이존채한다면하고두렵죠

마태우스 2013-01-04 20:34   좋아요 0 | URL
아유, 이런 인간이 존재한다면....정말 무섭죠. 좋은 선생으로 보이면서 사이코패스니 더 무서운 듯...

moonnight 2013-01-04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낚였어요. 즐겁게. ^^ 보관함에 넣었어요. 새해 첫 주문 때 함께 해야겠네요. ^^

마태우스 2013-01-04 20:34   좋아요 0 | URL
댓글을 가장 많이 다신 분답게 제 서재에도 달아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낚여주셔서 더더욱 감사!

블루데이지 2013-01-04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확실히 낚였네요^^처음뵈어요~마태우스님!
하지만 낚여진것이 전혀 억울하지않은 글 잘 읽고갑니다!

마태우스 2013-01-04 20:35   좋아요 0 | URL
블루데이지님 안녕하세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앞으론 낚는 것보단 좀 더 진실성 있는 글로 인사드릴게요!

BRINY 2013-01-04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핸드폰 조명으로 한밤중에 책을 읽으실 수 있다니, 아직 눈이 좋으시군요!

마태우스 2013-01-05 17:59   좋아요 0 | URL
브리니님 안녕하세요
눈이 좋기도 하지만, 요새 휴대폰 조명이 무지 밝아서요.
화면 열었다 닫으면 3분씩 켜져 있더라고요
수시로 번호를 누르면서 책을 읽었답니다
그만큼 의지가 강했다는...^

soyo12 2013-01-04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와 이불 속에서의 2년.......충격....
이 정도가 적정선일 듯 합니다. ^.^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

마태우스 2013-01-05 17:59   좋아요 0 | URL
정말 오랜만이어요. '이불속에서의 2년..충격'은 너무 야해요 호호호호. 정말 훨씬 더 많이 낚았겠네요^^ 소요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

순오기 2013-01-05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년인사도 못 나눴는데, 제목에 낚여 새해인사를 드립니다.
2013년 마태님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마태우스 2013-01-05 18:00   좋아요 0 | URL
알라딘 최고의 거물을 낚다니, 기쁩니다
님의 기대에 걸맞게 열심히 활약하겠습니다

hnine 2013-01-05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같은 사람을 낚을려면 이 정도로 안됩니다 ㅋㅋ

마태우스님,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

마태우스 2013-01-05 18:01   좋아요 0 | URL
그, 그렇군요. 앞으로 분발할게요
글구...건강하라는 말이 그전엔 그렇게까지 와닿지 않았었는데요, 요즘은 그게 제일 공감가는 말이어요. hnine님도 건강 & 행복하시길

쿼크 2013-01-05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와 유사한 느낌을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에서 느꼈습니다. 정말 심취해서 읽었지요.. 얼마나 심취했냐면..스티그 라르손과 관련한 웹페이지뿐만 아니라 외국 미디어의 인터뷰까지 찾아 읽었고..동거녀(혹은 여친, 부인) 에바 가브리엘이 쓴 '밀레니엄 스티그와 나'도 도서관에서 찾아 읽었지만..이 책은 읽다 그만두었어요.. 가장 큰 이유가 이 책 표지에 있는 금발미녀와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그녀의 사진이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더군요..^^ 어쨌든.. 정말 심취해 있었어요.. ~~
 
크림슨의 미궁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요 몇 년 사이에 읽은 책 중에서 이 작가를 존경한다고 할만큼 감탄한 책을 딱 하나 고르라면 단연 기시 유스케의 <신세계에서>. 작가는 원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존재지만, 그 책에서 기시 유스케는 정말 완벽하리만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냈다. 그런데 그 책이 절판된 걸 보면-겨우 구해서 봤다-그렇게까지 많이 팔리진 않은 모양이다. 제대로 된 긴박감이 느껴지는 하권 중간 부분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책을 읽는 게 쉽지 않아서라고 생각하는데, 온갖 추악한 비밀들이 드러나는 마지막 부분이 그간의 노력을 모조리 보상해 주고도 남는다는 점에서 책의 절판이 좀 아쉽다.

 

그 뒤 기시 유스케의 팬이 되어 그의 이름이 들어간 책은 죄다 사는데, 진정한 거장은 단 한편의 작품으로 승부하는 법이어서인지, 그런 감동을 다시 만나는 게 쉽지가 않다. <다크 존>은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읽다가 던져 버렸고, <자물쇠가 잠긴 방>은 꼭 기시 유스케가 아니라도 쓸 수 있는 작품 같았다. 그러다 읽게 된 게 <크림슨의 미궁>, 학위 심사 때문에 인천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이 책을 들고 나갔는데, 심사를 마치고 다시 천안 톨게이트로 돌아올 때쯤 책을 다 읽어버렸다. 무인도 비슷한 곳에 버려진 아홉명의 남녀 중 한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건 배틀로얄을 비롯해서 너무 여러번 써먹어 이젠 식상하기까지 한 소재다. 나름의 재미가 있긴 했고, “정보가 제일이다는 교훈을 주긴 했지만, <신세계에서>의 감동을 맛보는 건 다음 책으로 미뤄야 했다. 그래도 요즘 너무 오랫동안 리뷰를 안썼다는 생각이 들었고, 별반 한 일도 없는데 2012 서재의 달인 앰블럼을 달아준 알라딘 측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저질 리뷰를 한편 써보고자 한다.

 

아홉명의 남녀 중 여자는 딱 두명이었다. 한명은 나이든 아주머니에 성격도 이상한 걸로 묘사가 되니, 남은 여자는 서른살 가량의 아이란 이름을 가진 자. 이혼 경력이 있는 마흔살의 남자 주인공(후지키)은 처음에 이 여자를 그다지 예쁘게 보지 않았다. .“얼굴 생김새 보면 매우 평범한 일본인이었다”(28) 게다가 아이는 눈초리가 사시 비슷했다. 그럼에도 이 넓은 정글에 여자라곤 딱 그녀밖에 없다는 생각이 그의 시선을 바꿔 놓는다. “아이는 개성적인 용모의 이민이었다. 두 눈의 초점이 어딘지 모르게 어긋나 보이는 것마저도...여성적 매력을 자아내는 데 한몫을 하고 있었다.”(42) 남자들은 여자를 어떻게 한번 해보려 하면 장점을 찾기 마련인데, 후지키는 그녀는 예쁘다라며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다.

 

게임 참가자 아홉 명이 만났을 때, 그들은 짝을 지어 동서남북으로 흩어질 운명이다. 여기서 아이는 후지키에게 북쪽으로 가자고 하고, 그녀에게 흑심이 있었던 후지키는 거기에 수긍한다. 그 보람은 177쪽에서 얻을 수 있었다. 깨끗한 물을 보자 아이가 수영을 하고 싶다고 한 것. 후지키는 당연히 하라고 한다. 옷이 물에 달라붙어 모든 게 보일 테니까. “후지키도 틈을 주지 않고 얼른 물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물이 정말 맑았기 때문에..모든 게 보였다.” 보고나니 더더욱 마음이 동한 후지키, “후지키는 부끄러워하며 뒤돌아선 아이의 목덜미가 참 예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이제 둘이 일을 치는 건 시간문제.

 

그런데 위기가 닥치자 후지키는 후회를 한다. “파트너가 힘없는 여자라는 점이..훨씬 더 무거운 책임감과 압박감을 주었다. 신뢰할 만한 남자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했다.”(209)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위기가 지나가자 다시 후지키는 본색을 드러낸다. “당신에 대한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더 알고 싶어. 모든 것을...”(263) 아이는 놀라서 묻는다. “지금 내게 구애하고 있는 거예요?” 그 다음 유치한 대화가 몇 개 오가고, 결국 그 일이 벌어진다. “후지키는 눈을 깜박였다. 아이의 눈동자 속에 달이 두 겹으로 비치는 듯했다.”(268)

 

이제부터 스포일러. 목적을 이룬 후지키는 몇 번의 위기를 극적으로 이겨내고 자신의 나라인 일본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한다. 마지막 장면. “...지금 후지키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은 한가지 뿐이었다....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413) 하지만 난 안다. 후지키가 도쿄에서 다시 아이를 만난다면, 그녀가 더 이상 예쁘게 보이지 않을 것임을. 만나자고 하는 그녀에게 난 이제 네가 지겨워!”라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남자가 하는 말을 다 믿어선 안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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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2-30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었어요. 으음~~ 리뷰의 제목도 재밌네요.
이 리뷰를 읽으니 마태우스 님이 사랑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은 것 같네요. 그 이유는 사랑이란, 일종의 환상이 빚어내는 이상한 정신병이 아닐까, 하는 제 생각과 맞아떨어져서요. 한때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사랑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른 뒤 싫증나서 냉정하게 보면 사랑할 만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대상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 그리고 남는 것은 이기심이죠.
누구나 단점이 있는데, 사랑하면 그게 안 보이고 심지어 그 단점이 장점으로 보이기까지 하다가 사랑이 깨지고 나면 그 단점이 아주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죠.

남자가 하는 말을 다 믿어선 안 되는 게 아니라, (여자도 포함해서) 사랑에 빠진 자의 말을 다 믿어선 안 될 것 같아요. (사랑에 빠진 자가 무슨 말을 못하겠어요.ㅋㅋ)
그런데 특히 남자가 사랑에 빠지고 싶은 욕구가 강하고 뻥도 세서 남자의 말을 믿어선 안 된다는 님의 결론은 정답 같네요.

새해에도 이렇게 재미있고 영양가 있는 글, 많이 올려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주제넘게 아는 척을 하고 갑니다. 재밌어서요.)

마태우스 2013-01-04 01:23   좋아요 1 | URL
으아...리뷰보다 훨씬 더 멋진 댓글이네요. 일년이 지난 후에야 답을 다는 저를 용서해 주세요. 사랑에 빠진 자의 말을 믿으면 안된다는 거, 앞으로 살면서 명심해야 할 진리인 듯 싶어요. 어맛, 어차피 저는 이제 그런 말을 들을 리가 없는데 무슨 소리를...! 암튼...서재의 달인 되서 기분 좋습니다^^ 님의 도움이 컸죠. 새해의 목표도 당연히 2013 알라딘 서재의 달인입니다!!

심장원 2012-12-31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덕분에 많이 배우네요.
소개해 주신 책 저도 하나씩 찾아 읽고 있습니다.
새해에도 좋은 책, 좋은 작가 많이 소개해 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태우스 2013-01-04 01:24   좋아요 0 | URL
아 네...심장원 선생님 여러가지로 감사드립니다. 갈수록 책을 안읽는데요, 님이 채찍질 많이 해주세요 심선생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

moonnight 2013-01-04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리뷰가 너무 흥미진진해요. +_+
그런데요. 저는 이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줄거리가 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거랑 달라요. 흑. 어찌된 일이죠. ㅠ_ㅠ
 
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 - 밑줄 긋는 여자의 토닥토닥 에세이
성수선 지음 / 알투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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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과 작가 사이가 그렇게 가까운 건 아니다.

하루에 100권 이상의 신간이 쏟아지는 요즘에도 책을 내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또한 책을 냈다고 해서 누구나 작가라고 불리는 건 아니다.

작가라는 호칭은 그래도 어느 정도 괜찮은 책을 낸 후에야 따라오는 법이니까.

하지만 일반인이 책을 열심히 읽고 평소 글쓰기를 즐겨한다면,

그는 책만 내지 않았을 뿐 작가에 가까운 사람이라 부를 수 있겠다.

내가 아는 그녀도 책을 내기 전엔 작가에 가까운 일반인이었다.

그녀의 홈페이지와 알라딘 서재엔 주옥같은 글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으니,

책만 낸다면 곧바로 작가 반열에 올라서는 거였다.

    

 

굳이 해외영업을 하지 않는 사람도 읽으면 좋은 책입니다.”

자신의 영업 노하우를 담은 <나는 오늘도 유럽출장 간다>는 독자들에게 좋은 평을 받긴 했지만,

자기 개발서에 가까운 책이어서 그런지 그녀를 작가라고 부르는 이는 별로 없었다.

아쉬운 점은 그녀 서재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을 외면한 채 해외영업의 노하우에만 주목한 기획이었다.

그녀의 두 번째 책 <밑줄 긋는 여자>는 이런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녀 특유의 장점을 듬뿍 살린 책이었고,

당연하게도 이 책은 독자들의 호평을 이끌어 냈다.

성수선의 <밑줄긋는여자>는 오랜만에 그 쏠쏠한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고, 말라가던 나의 감성의 샘을 다시한번 자극해줬으며...”

회사를 다니면서 책까지 쓰느라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니었겠지만,

책의 판매량은 충분히(까지는 모르겠다만) 그녀의 노력을 보상해 준 것 같다.

  

  

그리고 201211, <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가 나왔다.

위로에 능하다는 그녀의 장기가 십분 발휘된 이 책은 두 번째 책을 훨씬 뛰어넘는,

당분간 그녀의 대표작으로 군림할 만한 자격을 갖춘 책이다.

우리는 누구나 혼자다. 애인이 있든, 결혼을 했든,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든....”(5)

여우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 너는 영원히 책임이 있는 거야라고 말했지만, 지나친 책임감도 병이다.”(67)

아무리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도 혈액의 90퍼센트가 물이듯이, 인생의 90퍼센트는 별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일상들로 채워진다. 그러니까 사람이 살 수 있는 거다.”(87)

난 거의 모든 문장들에 공감하며 책장을 넘겼다.

많은 위로서가 시중에 나와 있지만, 이 책만큼 마음에 와닿는 책이 또 있을까 싶었다.

독자들의 반응도 2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원래 준비된 작가였던 성수선은 이 책을 계기로 완전히 작가 반열에 올랐고,

그녀는 앞으로 능력있는 해외영업 차장보다는 심금을 울리는 작가로 훨씬 더 많이 기억될 것 같다.

늘 궁금했다.

뭐 하나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그녀가 과연 결혼을 할까?

결혼을 한다면 지금같은 삶을 조금은 희생해야 하니, 어쩌면 하고싶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혼자>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언젠가는, 안자일렌(등반을 할 때 두명이 함께 끈으로 묶이는 것)을 할 것이다....그때 용기를 내서 말할 것이다. 저랑 안자일렌하실래요?”(165)

그녀가 결혼하면 이런 멋있는 책을 못쓰지 않을까 우려되지만,

이런 기대도 된다.

그녀가 결혼을 하면 결혼생활에 대한 더 멋있는 책을 써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성수선 작가님,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늘 응원합니다. 힘들더라도 네 번째 책 빨리 좀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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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2-12-27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수선 작가님도 대단하지만 작가를 예쁘게 북돋워주시는 마태님도 위대하게 보여요.
마태님 신간도 새해엔 기대해도 되지요? 얌전히 기다리겠습니다.
마태님, 새해 좋은 일만 가득하시고, 촌철살인하는 유머와 풍자에게도 미리 안부 전합니다.^^*

마태우스 2012-12-29 20:50   좋아요 0 | URL
제 신간이요..호호. 글쎼요. 기대해도 될런지....<----뭔가 있긴 하지만 말할 수 없다는 그런 뉘앙스입니다^^ 한해동안 늘 좋은 댓글 달아주신 님에게도 정말 감사드려요.

마립간 2012-12-28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에 복귀하셨네요. 내년에도 틈나는 대로 서재활동도 하셨으면 합니다.

마태우스 2012-12-29 20:50   좋아요 0 | URL
어머나 마립간님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기준이 뭔지 모르겠네요 작년보다 더 안한 거 같은데.... 그래도 앰블럼 보니 기분 좋습니다 음하하하ㅏ

Mephistopheles 2012-12-28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벌써..꾸준히 출판하시네요...^^

마태우스 2012-12-29 20:4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전 7년간 책을 못내고 있는데...^^

2012-12-28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29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3-01-04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은 여전히 열심히 살고 계시네요. 마태님도 그렇고. 존경스러워요. ^^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마태우스님도 논문만 사랑하지 마시고 얼른 새 책 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