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원래 9시 뉴스를 안본다. 왜 안보냐고 물을 때마다 "신문이 뉴스보다 3배나 더 정보량이 많은 거 알지?"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신문도 잘 안본다. 사설, 칼럼만 대충 훑어보고 출근을 한다. 그러다보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강에 아이를 던진 아버지의 얘기라든지, 얼마전 발생한 남자아이 두명의 유괴살해 사건 같은 것도 통 몰랐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제부터 9시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뉴스를 안볼 때는 모르지만, 보고나니 우리나라가 참 사람이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철도에서 추돌사고가 연속해서 일어나고, 전기가 끊긴 집에서 초를 켜놓고 살던 노부부가 불에 타서 숨졌다. 대통령의 친척은 순식간에 650억인가를 모아 출국금지가 내려졌으며, 정치권은 맨날 쌈질이다. 역시 뉴스를 안보는 게 마음은 편한 것 같다.
오늘 뉴스 중 가장 엽기적이었던 것은 한 계모의 만행이었다. 6개월 전 애들을 패다가 이웃의 신고로 경찰에 잡혀갔던 그 계모는 끝내 딸을 패 죽이고야 말았다. 남은 아들도 얼마나 맞았는지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중태란다. <천국의 계단>에서도 의붓 딸을 학대하는 계모 얘기가 나오는데, 이런 류의 뉴스는 애들을 이뻐하며 착하게 사는 수많은 계모들의 마음에 못을 박는다. 영.유아 학대의 대부분이 친부모에 의해 저질러지지만, 사회의 인식이 그렇지 않은 것은 이런 류의 사건은 유난히 더 크게 보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겨우 목숨을 건진 아들은 커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아동학대는 우리나라만의 얘기는 아니다. 내가 요즘 신나게 읽고있는 <나는 고발한다, 현대의학을>(지은이는 미국의 외과의사다)의 일부를 옮긴다.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고 자지러지게 울던 생후 2개월된 남자아이를 본 적이 있다. 아이 아빠는 목욕시키다가 잘못해서 뜨거운 물 수도꼭지를 트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의 화상에는 물이 튄 모양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의료진은 아동학대를 의심하게 되었다. 우리는 손상부위가 또 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아이의 전신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다섯개 내지 여덟 개의 늑골-갈비뼈-골절과 양다리 골절이 보였다. 일부는 몇주전에 생긴 것이고 일부는 새로 생긴 것이었다...아동확대의 확실한 증거가 나타났으므로 아이는 부모에게서 격리보호되었다]
생후 두달된 애한테 화상을 입히고, 골절을 시키다니. 그게 인간인가? 그보다 심한 경우도 있다.
[1949년부터 1968년 사이, 필라델피아의 여인 마리 노에한테서 태어난 열 명의 아이들이 모두 하나씩 차례로 사망했다. 하나는 사산이었고, 하나는 출생 직후 병원에서 사망했지만, 나머지 여덟은 아기 때 집 침대에서 숨을 거뒀다. 새파랗게 질려...헐떡거리는 것을 발견했다고 노에는 말했다. 매번 부검도 실시되었으나...증거가 없었다]
여기까지 읽고, 난 유아돌연사증후군(SIDS, sudden infant death syndrome)을 생각했다. 생후 몇달 안된 영아가 갑자기 죽고, 이유는 모르는 증후군. 매년 수천명의 아이들 목숨을 앗아가는 그 병에 대해 혹자는 호흡기를 침범하는 바이러스를 의심하기도 하고, 베개 같은 데 질식해서 그렇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하여간 그 당시 노에의 아이들은 그 증후군이라고 인정이 되었단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8명이 모두 그렇게 죽을 수가 있는가? 의문을 가진 기자와 검사의 합작으로 30년이 지난 후 사건은 재조사에 들어갔고, 당시 70세이던 노에는 전격 구속되었다.
경찰 취조에서 노에는 네 아이를 질식사시킨 것을 인정했고,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됐는지 기억이 안난다고 말했다. 변호사는 밤샘조사에 의한 자백이라며 신빙성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결국 그녀는 살인죄로 수감되었다. 방청석에 있던 77세의 남편은 놀라서 고개만 가로저었다나. 검시관의 말이다. "SIDS 사망이 하나면 비극, 둘이면 미스테리, 셋이면 살인"
애를 때리면 당장 경찰이 뜨는 미국에서도 이럴진대, "내 자식 내가 패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우리나라에서는 보다 많은 아동학대가 발생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쥐어 패려면 아예 낳지나 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