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다 읽고 났을 때는 사위에 눈이 그쳐 있었고, 세상은 안으로 조금씩 더 젖어가고 있었다. 창밖에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다, 책 속의 명화들을 바라보다… 그럭저럭 행복한 휴일이었다]
카이레님이 쓰신, 최영미의 <화가의 우연한 시선>에 대한 마이리뷰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멋진 시작에, 리뷰 제목도 쿨하게 "그림, 생으로부터 발신되어온 모티브"다. 이것만 그런 게 아니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서평은 이렇게 시작된다.
"소설을 덮고 난 후 읊조리었다, 그렇지, 유쾌한 패배로다, 우리의 인생은!"
<나쁜 남자, 착한 여자>의 서평 첫머리, "이만교의 미덕은 재밌게 쓸 줄 안다는 것이다. 이런 미덕은 김영하도, 은희경도 지닌 것이다. 이 세 작가의 특징은 현실을 문학적 분위기로 치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들은 오히려 현실과 일상, 인간 내면과 인간 관계 같은 것들을 싸그리싹싹 그 밑바닥까지 훑어내버린다"
카이레님의 글을 보면서, 난 서평이 쓰기 싫어져 버렸다. 왜? 1단계: 그래, 서평은 저렇게 써야돼! 2단계: 그럼 내 서평은 서평도 아니네? 3단계: (문천식 버젼으로) 나 안해! 나 안해!
해도 안될 때 사람은 포기하게 되는 법이지만, 그럼에도 내가 서평쓰기를 중단하지 않는 이유는 10편당 한장씩 지급되는 상품권 때문이다. 어쩌면 70위권을 달리고 있는 내 서재 점수의 상승을 바라서일 수도 있다. 못쓰는 서평이지만 열심히 쓰다보면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한 적도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기대는 접은 상태다.
사실 난 서평을 어찌 써야 하는지 모른다. 배운 적도 없다. 어려서 내야 하는 독후감은 죄다 책 뒤에 붙은 해설을 베껴서 냈고, 그나마 책은 읽지도 않았다. 그러니 내가 서평을 잘쓰면 그게 이상한 거다. 서평을 쓸 때는 줄거리를 쓰면 안된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만, 그게 다다. 도대체 뭘 써야 할지, 책을 읽고 나면 쓸말이 없어 고민이다. 남들은 2천자가 적다면서 두편으로 나누어 서평을 게시하기도 하는 모양이던데.... 그래서 난 나 나름의 방식으로 서평을 쓰고 있다. 예컨대 내가 얼마전에 쓴 폴 오스터의 <환상의 책> 서평을 보자. 난 이 책을 이렇게 정의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이 책은 '미남 주변에는 이쁜 여자가 꼬인다. 하지만 이쁜 여자를 너무 밝히면 망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냉정하기 짝이 없는 알라디너 여러분들은 이렇게 내 서평을 응징했다.
"4분중 0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 "
이 책은 원래 어떤 내용인지 알기위해 다른 분의 서평 두개를 인용한다.
-'내 삶이 내 것이기도, 내 것이 아니기도 하다면..그럼 기왕이면..' 이것이 나의 결론이다.
-우리는 친밀했던 이들의 존재를 그들과 관련된 '기억'으로서 확인받고, 잘 알지 못했던 이들의 존재는 그들에 관련된 '기록'들로 확인받는다...환상의 책>에는 누군가,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경험이 있는 이의 어깨를 조용히 다독거리는 듯한 따뜻함이 배어있다.
보라. 미남, 이쁜 여자 하는 얘기는 언급되지도 않고, 다들 존재가 어떠니 하는 얘기뿐이다. 사실 나도 그런 말을 하고 싶긴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표현이 안되는데. 나도 좋아서 저런 서평을 쓴 건 아니란 말이다.
역시 최근에 쓴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의 시작 부분을 보자.
"이 글의 작가는 외과 레지던트다. 우리나라의 레지던트들은 박봉에 무지하게 바쁜 일상을 영위하느라 책을 쓸 여력이 전혀 없을 테지만, 미국의 레지던트는 좀 다른가보다"
작가의 직업을 말하고, 봉급이 어떻고.... 카이레님이 쓴 "사위에 눈이 그쳐 있었고"와 그야말로 천양지차 아닌가. 이런 서평을 계속 써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어쩌겠는가. 마이페이퍼만 쓰면 이상하니까, 가끔 리뷰도 써야지. 내가 쓴 리뷰를 읽는 분도 괴롭겠지만, 쓰는 나는 더 괴롭다. 나도 서평을 잘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