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컴퓨터 방에서 벌레가 나온 건 벌써 3주쯤 전의 일이었다. 벤지를 위해 가져다 놓은 물그릇에 검은색의 벌레가 빠져 있다. 그릇을 닦고 다시금 물을 담아 줬지만, 잠시 후 보니 물에는 또다시 벌레가 떠있다. 이번엔 한마리가 아니라 서너마리쯤이고, 그릇 옆에도 두세 마리가 더 붙어 있다. 벌레가 무서운 것은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방불케 하는 그들의 전략 때문이리라. 난 슬슬 무서움을 느꼈고, 그 후부터는 벤지 물그릇을 방에 들여놓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 했다고 벌레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어느날 문득, 방바닥을 들여다본 나는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 바닥에는 무수히 많은 벌레들이 꿈틀거리고 있었으니까. 난 살충제를 가져다가 방안에다 뿌렸는데, 잠시 후 들어가보니 수많은 벌레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이 벌레들과 더불어 컴퓨터를 썼다니, 갑자기 몸이 가려워지는 느낌이었다. 그 후부터 컴퓨터를 쓸 때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고, 오래 붙어있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수없이 살충제를 뿌렸지만 벌레들은 계속 나왔다. 벤지가 왜 그방에 있기를 싫어하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언제나 내 곁에 누워있던 그 녀석은 내가 그방에 있을 때는 문밖에 나와 있었는데, 난 단순히 그걸 방이 더워서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벤지를 위해 깔아준 이불을 들춰보니, 벌레가 장난이 아니게 나온다. 얘길 하지 그랬니... 미안해진 난 녀석을 깨끗이 목욕시켜 줬고, 그 참에 나도 오랜만에 샤워를 했다^^.
며칠 전부터 벌레는 좁은 컴퓨터방을 탈출해 드넓은 마루로 진출했다. 마루에 있는 벤지 물그릇에서는 어렵지 않게 벌레를 관찰할 수 있었고,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벌레를 죽여봐도 말짱 허사였다.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시스코'라는 데 연락을 하면 된단다. 인터넷에서 시스코를 찾아봤다. '미국의 식품도매 회사'란다. 아, 식품회사에서 그런 벌레를 다루는구나. 좀더 찾아보니 '네트워크 장비' 어쩌고 하는 말만 나오지, 벌레 얘기는 안나온다.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넌 뭐야???"
이상한 건 내 귀였다. 오늘 아침, 난 '세스코'에 전화를 걸어 청소를 예약했다. 드넓은 평수에 따르는 높은 비용에 잠시 망설여졌지만,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어여쁜 목소리와 "그 방법밖에는 없습니다"라는 단호한 그녀의 말, 그리고 그 집은 나와 어머니, 벤지가 앞으로도 쭉 살아갈 터전이라는 생각에 하겠다고 했다. 몇주간 벌레와 동거를 했으면서도, 막상 신청을 하고 나니 어서 빨리 그 날이 와서 벌레가 멸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벌레가 꼬인 건 내가 환경을 청결하지 못하게 한 탓이다. 세스코 직원의 말에 따르면 그 벌레는 물기가 있는 곳에 잘 번식한다는데, 벤지가 물을 먹다가 흘린 물이 진원지가 되었나보다. 바퀴벌레보다야 낫지만, 어찌되었건 벌레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