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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물론 조교 때 경험에 국한된 얘기지만, 다른 윗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글을 올린다. 내가 관찰한 윗사람들의 특징이다.
1. 무지막지한 명령을 서슴치 않고 내린다
어느날, B교수가 날 불렀다.
"야, 이번주 일요일날 저녁에 최병렬 교수(가명)가 연수 끝나고 귀국을 하거든. 근데 내가 부탁한 기생충을 오는 편에 가져다 주기로 했으니, 니가 공항에 나가서 받아와"
미국에는 기생충을 얼려서 파는 곳이 있는데, 국외는 배송비가 꽤 비싸니까 그렇게 한거다. 그걸 받으면 난 잽싸게 직장으로 가서 기생충을 살려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일요일날 약속이 있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실 난 그날 약속이 있었다. 친구 약혼식날이라, 끝나고 한바탕 놀아보기로 한 터였으니까. 친구가 몽땅 비용을 부담하는, 정말 부담없는 자리, 거길 불참해야 한다니.
"전 최병렬 대표, 아니 교수의 얼굴을 모르는데요?"(내가 졸업한 후 발령을 받은 사람이니까)
B교수는 교수명부에서 조그만 사진을 보여줬다. "이렇게 생겼단 말야, 알았어?"
약혼식 뒤에 나오는 저녁도 포기한 채, 난 여친과 공항으로 갔다. 당시 김포공항은 나오는 곳이 두군데, 여친과 난 커다란 종이에 이름을 써넣은 채 양쪽 입구에 서서 최교수를 기다렸다. 그때가 7시 반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 밤 11시가 다 되었을 때, 직원이 이런 말을 한다. "나올 승객은 이미 다 나왔습니다" 나와 여친은 허탈하게 귀가해야 했다.
다음날, 난 B 교수에게 무지하게 혼이 났다.
"정신을 어따 팔고 있었냐? 나오는 문이 두갠 건 아냐?"
그의 질책은 계속 이어졌다. "마중나간 레지던트들은 다 만났다는데, 넌 왜그래?"
'레지던트야 얼굴을 아니깐 그렇지, 그리고 그 선생도 나를 찾는 시늉이라도 했어야지 않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난 분에 겨워 침묵만 지켰다. 그렇게 혼이 난 며칠 후, B 교수는 다시금 날 불렀다. "다시 기회를 줄게. 이번 구정날 말야..." 나도 존심이 있지, 한마디로 거절했다. "저 고향 내려가야 합니다!"
B 교수만 그런 건 아니다. A 교수는 자동차 10부제가 시행되던 날, 당신 번호가 걸리는 날이면-2일, 12일, 22일-언제나 우리를 불러 술을 먹였다. "차도 없는데 술이나 마시지!"라며. 차가 없는 건 자기 사정이고, 우리는 나름대로 할 일이 있는데 말이다. 그래도 짝홀수를 안했던 게 천만 다행이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A 교수는 내가 일찍 와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일찍 왔으면 내방에 와서 커피라도 타지 여기 숨어있냐"며 야단을 치기도 했다. 남의 사생활에 무관하게 무지막지한 명령을 내리는 것, 이게 위사람의 첫 번째 특징이다.
2. 배려가 없다
난 일년에 두 번 정도는 몸살을 심하게 앓는다. 4년을 일했으니 대략 여덟 번 정도 아팠나본데, 단 한번도 "일찍 들어가 쉬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열이 펄펄 끓고, 계속 앓는 소리를 하는데도! 일을 하다가 밤을 꼴딱 새운 다음날도, 집에 들어가 쉬라거나 그런 말은 죽어도 안한다. 내가 "저 오늘 좀 일찍-일찍도 아니다. 오후 6시쯤 되서니까-들어가보겠습니다"라고 말을 하면 얼굴이 굳어지며 무지하게 당황하곤 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은 윗사람의 두 번째 특징이 아니겠는가.
3. 편한 꼴을 못본다
우리 학교의 학생수는 200명이 넘었다. 그걸 일일이 채점하는 것도 그래서 고역이었는데, 한번은 내가 이런 제안을 했다. "우리 시험문제에 객관식이 꽤 있으니, OMR 카드로 하게 하면 어떨까요?" B 교수의 답변, "너 편하려고 그러냐?" 그 앞에서는 아니라고 했지만, 은근히 부아가 났다. 아니 좀 편하면 안돼? 채점하는 데 드는 시간이 아깝지도 않는가?
참고로 B 교수와 난 코드가 잘 안맞아, 열심히 일하다 기지개라도 켤라치면, 혹은 매점에 뭘 사먹으러 갈 때면 어김없이 실험실에 들어오는 내공을 발휘하기도 했다. 늘 9시가 넘어 퇴근을 했지만, 피치 못할 때 좀 일찍 가보려고 하면 불러놓고 설교를 하셨다.
"넌 지금 일이 우선이 되어야 해!"
그 말이 맞을진 몰라도, 사람이 어떻게 일만 하고 사는가? 토요일까지도 밤늦게까지 일을 했던, 그리고 일요일날도 꼭 나오라고 강요받았던 그시절을 어떻게 견뎠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용하다.
4. 미안한 법이 없다
B 교수가 뭔가를 착각해, 날 무지하게 야단을 쳤다. 억울한 나는 계단에 가서 쭈구리고 앉아 울기까지 했다 (그럴 땐 좀 모르고 지나가면 좋으련만, "어 너 누구 아냐?"라고 아는체하는 사람이 몇 있었다. 쪽팔리게..). 그런데 나중에 사과한 것은 B 교수가 아닌, 나였다. 힘은 법이고, 정의니까.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교수님들은 자신이 잘못한 것도 남의 탓으로 돌렸고, 그 과정에서 소설을 써댔다. A 교수의 말, "난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미심쩍었는데 K가 맞다고 방방 뜨는 바람에 착각을 한거지"
이건 다른 얘긴데, A 교수와 B 교수는 서로 사이가 나빠, 내가 시간이 남아 B 교수의 일을 해주다 A에게 걸리면 방에 끌려가 작살이 났다. "내 말은 말같지 않아?"라고 윽박지르는데, 하여간 힘들었다. A와의 술자리에선 B의 욕이 난무하고, B와 함께한 자리에서는 A의 뒷다마가 주종을 이뤘다. 그 어린 나이에 정신병에 걸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5. 그래서....
지금 난 조교들을 부리는 윗사람이 되었다. 난 내가 겪었던 윗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늘 그들의 편에 서서 같이 놀았다. 우체국, 은행같은 개인적인 심부름은 거의 시킨 적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뭔가를 해달라고 하면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싫어요! 선생님이 하세요!" 내가 그들과 함께하는 것은 식사와 술자리 뿐, 지금은 약간 후회가 되지만, 이미 늦었다. 그래도.. 젊은 여자애들이 나랑 놀아주는 게 어디냐, 하고 생각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