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인 내 매제는 노무현이 되었을 때 "내 인생은 끝이다"라며 울먹였다고 한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거지, 왜 그런 얘기를 하는가 싶었지만, 노무현의 당선이 의사들에게 가져다준 공포감은 그처럼 엄청났다. 노무현 집권 1년을 보면 의사들의 공포감이 기우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노무현 탄핵 이후 의사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 한번 미운 놈은 영원히 미운가보다.
축제분위기에 젖은 의사들 중 한명인 내 매제는 내게 말한다. 왜 광화문에 가냐고. 불만이 있으면 총선 때 표로 심판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지금 경찰이 촛불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시위는 합법의 테두리에서 해야 하지 않느냐?"
그의 말을 듣고 생각한 걸 여기다 적는다.
먼저, 촛불시위가 합법이냐 불법이냐는 경찰이 판단할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고, 집회.결사의 자유가 헌법상으로 보장되어 있다. "야간에는 시위가 불법"이라는 집시법은 분명 헌법의 하위법이며, 그 자체가 위헌이다.
매제에게 물었다. 군사 쿠테타가 일어나면 어쩔 거냐고. 거리로 나간단다. "쿠테타 자체가 불법이니까, 불법으로 맞서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는 게 그의 논리다. 총과 칼이 동원되지 않았다고 이번 탄핵이 쿠테타가 아닌 것은 아니다. 다들 아는 얘기겠지만, '선거법 위반'은 논란이 있고, 국정혼란과 경제파탄처럼 자의적인 조항은 탄핵사유가 될 수 없다. 측근비리 운운은 열배나 많은 불법자금을 쓴 한나라당으로서는 감히 할 수 없는 얘기일테고. 주어진 권한을 사용했다고 하지만, 대통령이 약간의 위기를 침소봉대해 국회를 해산해 버린다면 그것 역시 쿠테타일 것이다.
총선 때 표로 심판하면 된다고? 침묵은 암묵적 동조를 의미하며, 의회의 쿠테타에 대해 한달이 넘는 기간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린 '바보'다. 촛불시위는 실직자나 하는 것이라고 말한 홍사덕 총무를 비롯해, 수구세력들이 촛불시위를 흠집내기 바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들은 놀란 것이다. 국민들의 분노가 이렇게 크다는 것에. 그들은 두려운 것이다. 자신들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매제는 안가봐서 모르겠지만, 촛불시위는 지극히 평화적인 집회다. 시민들에게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폭력 등 불미스러운 일은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집회 후 자원봉사자들은 거리를 깨끗이 치우며, 만약에 대비해 출동한 경찰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의 표정을 보라. 군부독재 시절의 시위같은 비장함은 전혀 없다. 참석자들은 자유롭게 발언하고 웃고 떠들며, 발랄하기 짝이 없는 노래들을 따라 부른다. 그렇다. 촛불시위는 하나의 축제며, 정이 넘치는 장이다. 촛불시위는 의회의 쿠테타에 나 혼자만 분노하는 게 아님을, 그리고 이 땅에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 수없이 많음을 말해준다.
오늘 광화문에는 수십만이 모일 예정이다. 거기서 타오를 촛불은 그만큼의 희망을 이 땅에 심어줄 것이다. 우리가 광화문에 가야 할 이유다.
* 촛불집회에 딱 어울리는 노래는 이재성의 <촛불잔치>인데, 그게 안불려져서 아쉽다. "촛불잔치를 벌려보자 촛불잔치야---아/촛불잔치를 벌려보자 촛불잔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