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창비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평론가 홍기돈가 쓴 <페르세우스의 방패>에 나오는 얘기다.
[어느날 홈페이지를 보니 강의를 듣는 한 학생에게서 질문이 올라와 있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명지대 문예창작과에 다니는 제 친구가 있습니다. 수강하는과목 중 소설가 김영하의 강의도 하나 있는데, 김영하가 요구하는 과제가 좀 이상합니다. "이지형의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와 박형욱의 <동정없는 세상>이 소설이 아닌 이유에 대해 써서 제출하라'는 것이 과제 내용입니다. 서평을 요구하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그 작가와 작품을 무시하는 것이지요. 도대체 이런 게 과제로 성립될 수 있습니까? 이게 만약 과제로 성립한다면, 그건 어떤 이유 때문인가요?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170쪽)]

여기에 대해 홍기돈은 이렇게 답했는다.
[김영하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제1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했다. 위에서 언급된 이지형과 박형욱은 각각 5회, 6회의 수상자다. <나는 나를 파괴할...>은 좋은 작품이다. 신인에게 응당 요구되게 마련인 치열한 작가의식이란 점에서 보자면 나머지 두 작품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어떤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이게 소설이 아닌 이유에 대해 써서 제출하라"는 과제가 과연 가능한가. 제 생각을 말씀드린다면 "가능하다"라는 것입니다...]

소설가로서의 자의식에 충만한 김영하, 그의 책을 언제나 재미있게 읽는 나로서는 그런 거만함마저도 사랑하게 된다. <오빠가 돌아왔다>는 지금까지 읽은 그의 소설 중 가장 재미있다. 단편들 하나하나가 나름의 재미가 있어 맛있는 쵸코렛을 아껴먹는 심정으로 이 책을 읽었는데, 내가 워낙 문학에 문외한이라 이 책이 문학적으로 어떤 결함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설을 재미있게 쓸 수 있다는 것도 참 좋은 재능일 듯 싶다.

그의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대목 하나. 유부남인 감독 지망생이 꼬셔서 한번 잔 미녀 소설가에게 한 말이다. [유부남은 누가 찔러주고 간 뇌물 같은 거야. 처음엔 짜릿한데 오래 하면 지저분해져. 그러니 그냥 인생을 즐겨]
후후, 이런 건 어떻게 하면 많은 여자랑 자볼까 하는 유부남들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닌가? 그런 걸 이렇게 멋진 말로 표현한다면 소기의 목적을 더 잘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이 너무 재미없다면, <오빠가 돌아왔다>를 읽으며 김영하에게 빠져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참고로 책 뒤에는 여느 책처럼 문학평론가의 해설이 붙어 있는데, 난 그걸 읽지 않았다. 그런 해설은 독자들로 하여금 책의 여운을 즐길 기회를 박탈하니까. 그냥 독자가 스스로 느끼고 판단하게 하면 안되는 걸까? 25페이지에 달하는 해설이 없다면, 출판비도 더 싸질 텐데 말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4-03-21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뮬라크르의 시대 - 들뢰즈와 사건의 철학, 소운 이정우교수 강의록
이정우 지음 / 거름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이란 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철학을 잘 알아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을 터, 철학을 열심히 공부하는 게 지극히 당연하겠지만, 어려울 거라는 이유로 철학책을 읽는 걸 몇 년째 피해왔다. "내공을 갖추면 읽을래!"라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어느 분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추천해준 게 바로 <시뮬라크르의 시대>인데, 사고 난 지 일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다 읽을 수 있었다. 대학교수직을 초개처럼 던지고 나와 철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이정우의 강의를 책으로 옮긴 책으로, 나처럼 무지한 중생을 철학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최대한 쉽게 개념들을 설명해 놓은 것은 분명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그 강좌를 듣는 사람들도 대단한 사람들인 듯, 토론 때 질문하는 걸 보니 장난이 아니고, 저자의 말 중 다음과 같은 대목이 여러번 나와 날 기죽게 한다.
-이 개념은 다들 알고 계시겠죠?--> 처음...듣는데?
-이 책은 모두 읽어 보셨을 겁니다--> 제목도 몰랐다...
-언어학에서 이건 필수니까...--> 언어학이 뭐지?

그래서 난 열흘 정도를 이 책에 매달려야 했는데, 다 읽고 나니 그래도 뿌듯하긴 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는 구조주의에 시간 개념을 덧붙인 것이 후기 구조주의고, 후기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던이 다르다는 것, 서양 철학은 합리주의와 반합리주의가 패권을 주고받으며 성장한 학문이라는 것 등등을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오늘 만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라이프니쯔가 그랬는데, 너에게 일어날 모든 일은 사실은 너 안에 내재된 거래" 친구의 대답이다.
"그게...무슨 말이야?"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가 물었다.
나: 너, 혹시 들뢰즈 알아?
친구: 누군데?
나: 그럼 미셀 푸코는? 판옵티콘이랑 권력에 대해 말한 사람 말야
친구: 몰라. 알아야 해?

흠.. 그렇단 말이지. 난 내가 철학에 문외한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꼭 그런 건 아닌가보다.  그러니 맨날 "난 철학 몰라몰라!"라고 자학만 하지 말고, 본격적으로 철학에 대해 공부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정도의 내공에 무슨 대단한 철학책을 읽기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이 책에서 이정우가 읽으라고 추천해준 책들은 한번 읽어볼 생각이다.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공이 쑥쑥 자라지 않겠는가?

다음과 같은 저자의 말도 마음에 든다. "이제 단순 소개나 번역이 아니라, 이들 사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우리 특수성과 관련되는 연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서구에서 탈근대는 그들 자신의 근대에 대한 탈이지만, 우리에게 탈근대는 또 다르죠. 하나는...보편적인 의미에서 근대성의 극복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난 100년간 진행되어 온 서구화에 대한 반성이라는 것이죠"
가까운 장래에 철학 아카데미에서 그의 강의를 들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시: 3월 20일(토)
마신 양: 소주 한병+알파

부제: 민주주의와 변의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몇차례 촛불집회에 참여해 봤으니, 따스하기만 한 낮과는 달리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는 것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집회 때마다 내게 목도리를 빌려준 사람으로부터 "옷좀 제발 든든히 입고 오라"는 전화까지 받은 터였다. 그런데 난 무슨 배짱인지 봄냄새가 물씬 나는 옷차림으로 광화문에 갔고, 그 사람의 목도리를 빼앗아 두르고도 밤새 덜덜 떨었다. 추위에 대비해 마신 소주 4잔은 전혀 도움이 안됐다. 말이라도 잘 들리면 모르겠지만, 내가 앉아있던 시청 옆 도로는 마이크의 사각지대, 멍하니 앉아만 있으니 더더욱 추웠다.

추위보다 더 날 괴롭혔던 것은 최근들어 맹위를 떨치고 있는 변의. 어제도 분명 2차례나 일을 치렀건만, 저녁을 먹은지 한시간여가 지나자 어김없이 변의가 찾아왔다. 난 변의를 가장 잘참을 수 있는 자세로 바꾼 채 버텨야 했는데,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이렇게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자세가 훌륭하다고 변의를 완전히 잠재울 수는 없는 일, 난 대략 여섯차례 정도의 방귀를 뀌었는데, 내 주위 사람들 중 유독 이탈자가 많았던 게 혹시 그때문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밤 9시경, 참다못한 난 같이온 사람들을 설득, 인근 술집으로 갔고, 엊그제처럼 술집 화장실을 막는 건 아닌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막히진 않았지만 물을 세 번 내렸다). 한시간 동안 술을 마시고 다시금 광화문에 왔고, 빈곳을 노려 무대 가까이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신해철, 안치환, 정태춘 등 유명 가수들이 나오자 사람들은 열광했고, 주최측이 표방한 '문화축제'라는 것도 어느정도 실감이 났다.

-내 친구 중 울산에서 올라온 친구가 있었다. 서울에 올 일이 있어서 온거지만, 자기 부인이 간김에 촛불시위에 참석하고 오라며 컵과 인터넷으로 뽑은 노래 가사들, 돗자리 등을 싸주었다고 했다. 훌륭한 부인이다. 앞으로 잘해줘야겠다.
-어찌어찌 해서 알던 여자애를 무대 앞으로 가다 만났다. 어머님이 촛불시위에 참가하시려고 전주에서 올라오셨다나? 또다른 남자애도 만났는데, 하여간 거기서 누군가를 만나면 너무 반갑고, 진한 연대감이 느껴진다. 예컨대 이런 것. "니가 그렇게 훌륭한 얘였구나!"
-이용할만한 화장실이 없는 것은 참으로 불편한 일이다. 월드컵 거리응원 때 기저귀가 그렇게 잘 팔렸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내가 12시가 조금 못되어 빠져나간 것도 바로 소변 때문인데, 역시나 시청역 화장실 앞에는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뉴스를 보니 탄핵가결을 찬성하는 또라이들이 세종로에서 집회를 했단다. 2천5백명쯤 왔다는데, 극우 애들은 왜이리 게으른지 모르겠다. 독립신문의 꼴통 신혜식은 말한다. "탄핵반대만 문화집회냐?" 후후, 누가 뭐라나. 그래도 난 그들이 왜 세종로에 모였는지 이해할 수 없다. 시위란 건 원래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았을 때 벌이는 수단, 국회에서 이미 탄핵안이 가결되었는데 왜 시위를 한담? 할 일 정말 없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냐 2004-03-21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클...민주주의를 지키는건 정말 어렵군요. 전 미리 겁먹어, 집에서부터 애들 쉬야 억지로 시키구...저녁 먹구 또 화장실 들렸습니다. 물론 애들 옷두 잔뜩 입혔죠..^^;; 과연 신해철이 오냐, 안 오냐..를 갖구 궁금해했는데, 역시 늦게까지 민주주의를 지키시면, 보답이 있군요.

연우주 2004-03-21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글과 상관없지만, 저도 습관적으로 한때 '남자애', '여자애'란 말을 잘 썼어요. 오죽하면, 군인애들, 이란 말까지 썼지요. 그러다 최근 들어 안 쓰는 이유는, 더 이상 제가 '애'자를 붙일만한 나이는 아니란 생각에서 였는데, 마태우스님은 아직도 쓰시는군요!
아, 그리고 민주주의 지키기 힘드네요. 정말.

마태우스 2004-03-21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어머, 우리가 같은 장소에 있었다니, 반갑습니다!
우주님/쓰고 보니까 좀 이상하네요^^

가을산 2004-03-22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스로만 보았던 화장실 문제를 이렇게 리얼하게 묘사하다니! ^^
씨~~ 인기 가수는 왜 서울에만 나오냐~~ !
대전은 주로 풍물과 춤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지만요.
전 초등학교 때부터 재래식 화장실이 무서워서 참는건 이력이 났습니다.
하루종일 외출시에도 어떨때는 한번도 화장실을 가지 않아서 저 스스로 '괜찮나?' 걱정되기도 합니다.

sunnyside 2004-03-22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주주의를 위해 그정도의 변의를 참는건 제게 예사랍니다. ㅎㅎㅎ
(실은 .. 저와 함께 광화문에 갔던 이들이 '부녀회' 멤버들인데요. 우리 '조직'은 맥주를 마실 때마다 화장실 안가기 시합을 벌이곤 했답니다. ^^;)
 

 

 

 

 

 

* 딴지일보 기자이신 나뭉님이 DVD21이라는 잡지에 쓴 글입니다. 너무 맘에 들어 퍼왔습니다. 다른 분들도 맘에 드셨으면 하구요.

-------------------

오늘도 신문에는 심은하의 컴백 기사가 대서특필 돼있다. 은퇴한지가 벌써 5년이 흘렀거늘 그녀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 줄 모른다. 최근에는 이혼하고 잠적한 고현정의 기사가 스포츠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경우가 잦은 걸 보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연예계를 떠난 여배우에게 왜 이렇게들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걸까?

한마디로 한국 영화계에 쓸만한 여배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쓸만한 여배우는 왜 없는 것일까? 매력적인 여성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한반도를 휩쓸고 있는 두 영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만 보더라도 매력있는 여자의 역할을 찾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게다가 소위 대박의 신화를 열었던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에서 여성 캐릭터는 남성 캐릭터를 받쳐주는 보조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여배우가 자라날 토양이 척박하다.

물론 <바람난 가족>, <피도 눈물도 없이>처럼 여배우가 전면에 나섰던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묘한 포즈의 문소리를 전면에 내세운 인상적인 포스터를 보면 알 수 있듯 이 영화에서 문소리가 맡은 호정은 연기보다 오히려 벗은 몸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역할이었다. 또한 <피도 눈물도 없이>는 독불로 분한 정재영의 역할이 전도연, 이혜영을 압도하였다.

그나마 지난해 영화를 돌아보면 <스캔들>, <싱글즈>, <장화, 홍련> 속의 여성 캐릭터가 꽤나 인상 깊었더랬지만 역시 부족한 감을 지울 수가 없다. 그만큼 한국영화계에는 여성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이 미비하고 그로 인해 쓸만한 여배우는 한정되어 있으며 그 결과 영화계를 떠난 왕년의 스타에 목을 매는 기이한 경우가 연출되게 된 것이다. 심은하, 고현정에 목 매는(?) 현상이 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남성영화 제작 위주 풍토 속에서 이상적인 역할을 갈구하는 여배우가 충돌하면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경우가 바로 <바람난 가족>의 출연을 둘러싸고 발생한 명필름과 김혜수 간의 대립이다.

당시 여론은 <바람난 가족>의 출연을 확정한 상태에서 사극 <장희빈>의 겹치기 출연을 강행한 김혜수의 행동을 나무라는 쪽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이 도의상 옳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김혜수의 그 같은 결정이 이해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바람난 가족>에서 맡은 역할은 여자주인공. 앞서에서도 말했지만 그 역은 그동안 김혜수가 쌓아온 이미지와는 정반대되는 것으로 상당한 희생을 요구하는 역할이었다. 게다가 영화가 말하고 있는 바는 남성 가부장 사회의 해체. 그에 반해 TV 사극 <장희빈>에서 김혜수가 연기하게 될 장희빈은 여배우라면 누구나가 한번 쯤은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다. 궁중 암투의 중심에 서서 이를 조정하고 지시하는 적극적인 역할. 영화사측과 갈등이 생긴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의 원인이 여성 캐릭터의 부재에서 기인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다. 매력있는 여성 캐릭터의 증가만이 이를 해결 할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하다면 주연급 여배우의 부족현상은 계속 될 것이며 그로 인한 심은하, 고현정과 같이 은퇴한 배우에게 목 매는 현상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욱일승천하는 한국 영화계여, 이제는 여배우를 키워라!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럴껄 2004-04-2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뭉님이 자기 펌글에는 코멘트가 존나(딴지체니 양해부탁드립니다) 없다고 시무룩해서 제가 하나 남깁니다. 이렇게 해서 나뭉님 가슴에 존나(역시! 딴지체) 대못이 박힐 것이라 믿습니다.
 

 

 

 

 

 

의사인 내 매제는 노무현이 되었을 때 "내 인생은 끝이다"라며 울먹였다고 한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거지, 왜 그런 얘기를 하는가 싶었지만, 노무현의 당선이 의사들에게 가져다준 공포감은 그처럼 엄청났다. 노무현 집권 1년을 보면 의사들의 공포감이 기우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노무현 탄핵 이후 의사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 한번 미운 놈은 영원히 미운가보다.

축제분위기에 젖은 의사들 중 한명인 내 매제는 내게 말한다. 왜 광화문에 가냐고. 불만이 있으면 총선 때 표로 심판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지금 경찰이 촛불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시위는 합법의 테두리에서 해야 하지 않느냐?"
그의 말을 듣고 생각한 걸 여기다 적는다.

먼저, 촛불시위가 합법이냐 불법이냐는 경찰이 판단할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고, 집회.결사의 자유가 헌법상으로 보장되어 있다. "야간에는 시위가 불법"이라는 집시법은 분명 헌법의 하위법이며, 그 자체가 위헌이다.

매제에게 물었다. 군사 쿠테타가 일어나면 어쩔 거냐고. 거리로 나간단다. "쿠테타 자체가 불법이니까, 불법으로 맞서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는 게 그의 논리다. 총과 칼이 동원되지 않았다고 이번 탄핵이 쿠테타가 아닌 것은 아니다. 다들 아는 얘기겠지만, '선거법 위반'은 논란이 있고, 국정혼란과 경제파탄처럼 자의적인 조항은 탄핵사유가 될 수 없다. 측근비리 운운은 열배나 많은 불법자금을 쓴 한나라당으로서는 감히 할 수 없는 얘기일테고. 주어진 권한을 사용했다고 하지만, 대통령이 약간의 위기를 침소봉대해 국회를 해산해 버린다면 그것 역시 쿠테타일 것이다.

총선 때 표로 심판하면 된다고? 침묵은 암묵적 동조를 의미하며, 의회의 쿠테타에 대해 한달이 넘는 기간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린 '바보'다. 촛불시위는 실직자나 하는 것이라고 말한 홍사덕 총무를 비롯해, 수구세력들이 촛불시위를 흠집내기 바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들은 놀란 것이다. 국민들의 분노가 이렇게 크다는 것에. 그들은 두려운 것이다. 자신들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매제는 안가봐서 모르겠지만, 촛불시위는 지극히 평화적인 집회다. 시민들에게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폭력 등 불미스러운 일은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집회 후 자원봉사자들은 거리를 깨끗이 치우며, 만약에 대비해 출동한 경찰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의 표정을 보라. 군부독재 시절의 시위같은 비장함은 전혀 없다. 참석자들은 자유롭게 발언하고 웃고 떠들며, 발랄하기 짝이 없는 노래들을 따라 부른다. 그렇다. 촛불시위는 하나의 축제며, 정이 넘치는 장이다. 촛불시위는 의회의 쿠테타에 나 혼자만 분노하는 게 아님을, 그리고 이 땅에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 수없이 많음을 말해준다.

오늘 광화문에는 수십만이 모일 예정이다. 거기서 타오를 촛불은 그만큼의 희망을 이 땅에 심어줄 것이다. 우리가 광화문에 가야 할 이유다.

* 촛불집회에 딱 어울리는 노래는 이재성의 <촛불잔치>인데, 그게 안불려져서 아쉽다. "촛불잔치를 벌려보자 촛불잔치야---아/촛불잔치를 벌려보자 촛불잔치---야!"


댓글(7)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누아 2004-03-20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성당이나 절에 가면 초를 공양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빛은 어둠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게 합니다. 아무리 어두움이 빛을 이기려해도 어두움이 짙으면 짙을수록 빛은 더 환합니다. 광화문의 촛불을 보며 두려움마저 일어납니다. 그 질서정연함과 평화로움에...합법적인 절차로 국회에서 이루어진 탄핵과 불법이라는 촛불시위의 차이는 너무 두드러져 보입니다. 제가 바라는 법은 언제나 평화와 질서와 국민의 편에 서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평화로우며 질서 있으며, 국민의 편에 서 있습니까? 국회보다 광화문에 빛과 법이 있습니다.

_ 2004-03-20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그래서 민주의 가식을 쓰면서 뻐기고 있는 한국에서 속아지에는 왜 '야간에는 시위가 불법'이라고 규정해놓았는지 모르겠군요. 그럼 다들 바쁠때인 아침에 해야하나?.;; 사덕씨가 좋아하겠군요. 요즘 그의 줄줄 흘러내리는 얼굴을 보면 정말 밥맛이 떨어집니다.;;

마태우스 2004-03-2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nua10님/앗, 처음 뵙겠습니다. 그런데...글을 그리도 잘쓰시다니... 제 홈피에 퍼갑니다.
Bird나무님/글쎄말에요. 정말 말도 안되죠? 그 홍사덕도 예전엔 거리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자리가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 같습니다. 이재오, 김문수도 그렇구...

플라시보 2004-03-20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촛불시위가 불법이라는 말 자체가 웃긴다고 생각합니다. 촛불로 불을 지르겠다는 것도 아니고 화염병을 집어 던지거나 돌맹이를 던지겠다는 것도 아닌 평화적인 시위인데 야간 운운하며 불법이라고 한다는 것은 70년대 야간통금 만큼이나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고생 미군장갑차 희생 사건때도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도 불법이었을까요? 그때는 분위기가 '얼씨구나 우리국민 장하구나'였던 것 같은데... 성격만 다르지 그때나 지금이나 시민들이 하나되어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 것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나라에서 그걸 막을 이유도 명분도 없는것 같은데 계속 그런 딴소리들을 해대다가는 영원히 국민의 신임을 잃을수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자기네 친척 중에 1회용 종이컵이나 초를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 적극 장려했을 것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들은 딱 그 정도 수준으로만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 같습니다.

가을산 2004-03-20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무대에서 마태우스님께서 불러 보시죠! ^^ 아마 히트칠거에요.
의사 소통이 단절이 되면 그때부터 생각과 판단도 단절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개혁적이라던 대통령 후보들도 청와대에 들어가면 왜 다들 그렇게 변하는지... '인의장막', 그리고 '시스템의 경직성'을 깬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가봅니다.
플라시보님, 홍사덕 총무의 발언을 보면, 친척 중에 촛불공장 사장이 있는게 틀림 없습니다.
혹시라도 초가 덜 팔릴까봐 매일 자극하는 말을 해주잖아요? ^^

진/우맘 2004-03-20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촛불잔치를 열창하다가 무대 아래로 질질 끌려내려오는 마태우스님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chaire 2004-03-20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촛불집회에는 촛불잔치를!... ㅋㅋㅋ 넘 재밌는 발상! 암튼, 저도 오늘은 광화문에 출동할 건데... 떨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