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총선 참여 선언!
조유식 사장, "100년 갈 정당 만든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정당을 만들어 4.15 총선에 참여하기로 해 충격을 주고 있다. 알라딘의 조유식 사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책을 안읽는다"며 "그간 책읽는 문화가 뿌리내리기를 바라며 애써왔지만, 정치력의 뒷받침이 없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생각에 정치참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3월 29일 열린 발기인대회에는 수백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루었는데, 중등도 서재폐인인 진우맘이 만장일치로 대표직에, 찌리릿이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다음은 진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축하한다. 자신에 대해 말해달라.
=알다시피 서재폐인으로, 사람들의 심리분석에 능한 것이 대표가 된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국회에 진출하면 서재는 어떻게 관리하나?
=(화를 내며) 난 국회에 가도 의원이기보다는 네티즌이고 싶다. 아침에 인터넷 켜고 서재관리하고, 오후에 시간나면 국회에 가서 일하면 된다. 의장한테 미리 허락도 받은 사항이다.
-이번에 몇석 정도를 자신하나?
=다른 당과는 달리 우리 알라딘당(가칭)은 탄핵 역풍을 전혀 받지 않은 정당이다. 현재 서울, 남양주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지지율이 급격히 상승 중인데, 일단 20석 정도를 얻어 원내교섭단체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

알라딘당(가칭)의 창당 소식에 정치권은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열린우리당은 "우리 혼자 탄핵의 전리품을 독식하려 했는데..."라며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한민자 연합은 공동으로 성명을 내어 "가뜩이나 지지율이 떨어져 걱정인데, 아예 우리를 고사시키려는 음모"라면서 이번 일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참깨연대와 경질련 등 시민단체는 "알라딘의 정치참여는 문화창달이라는 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서 "그러나 재고로 쌓여있는 수많은 책을 유권자에게 돌린다면 선거가 혼탁해질 것"을 경고했다. 알라딘의 라이벌 업체인 '교봉'과 '그래스물넷'은 "알라딘의 정치참여는 결국 실패할 것"이라며 짐짓 반응을 보이지 않는 척하면서도 "책방이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우리의 소신"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한편 이날 몇 개 지역에서 공천이 이루어졌는데, 주요 후보와 출마지역은 다음과 같다.
★ 남양주-연보라빛우주  ★ 천안갑-검은비   ★ 대구을-플라시보  ★익산-복돌이
★ 마포을-마태우스 ★ 대전을-푸른여우  ★강남갑-마냐      ★수니나라-서초을
★ 덕양갑-자몽상자 ★ 북제주-앤티크    ★강릉-강릉댁

★ 비례대표
1번: 진우맘  2번: 물만두  3번: 켈   4번: 추리소설  5번: 갈대  6번: 평범한 여대생

한편 폭스바겐은 비례대표 순위에서 7위로 밀려 당선가능성이 희박해지자 탈당을 선언했다. 
[정리=마태우스 기자]

알라딘 관계자분들이 만우절 이벤트 때문에 고민이 많으시단다. 그래서 한번 해봤다. 창조의 고통을 이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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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4-03-30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씨인처럼 일등했다고 좋아해야나? 재미있네요. 궁금했던건데요. 대통령과 기생충의 마태우스와 님이 관련이 있나요?

갈대 2004-03-30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기자 팬클럽 결성해야겠는걸요. 역시 퍼갑니다^^

비로그인 2004-03-30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정말 진짜 퍼온 글인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마태우스님은 정말 재간둥이~>.< 교봉과 그래스물넷도 압권입니다. 저도 퍼가요~ ^^

진/우맘 2004-03-30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서재폐인으로서도 바쁜데...알라딘 알콜 대상으로서의 이미지관리와 더불어 대표직까지... 큰일이군요.^^;;;

2004-03-30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eylontea 2004-03-30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흐흐....즐거웠습니다... ^^

chaire 2004-03-30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 님의 상상력은 끝이 없군요... 이글 읽으며 한국기독교당인가가 생각나서 더 재밌었습니다... 글고, 안개속토끼님... 마태우스 님이 그 책 저자시랍니다...^^

레이저휙휙 2004-03-30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마태우스님, 팬클럽 할래요~

쎈연필 2004-03-30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양이 어딘 줄은 모르겠지만... 억수로 잼있네요!!!!!

님은 최강의 재간둥이어요!!!

플라시보 2004-03-30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쿡쿡. 재밌습니다. 마태우스님의 할랑한 글은 정말 저를 즐겁게 합니다.

mannerist 2004-03-30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소식: 성북 갑(매너 서식지) 공천에서 탈락한 매너는 격렬히 반발하며 진/우맘님을 비롯한 지도부에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적절한 해명이 이루어지지 않을 시, 이제껏 자신이 공천/활동 과정에서 MSN등을 통해 P2P로 음악파일과 스캔본을, 혹은 이런저런 선물(=뇌물)을 뿌린 당원들의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특히 현재 당선이 유력한 공천자와 당대표 역시 이 살생부의 후폭풍에서 벗어날 수 없을거란 근거가 부실한(?) 협박까지 늘어놓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에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알라딘당(근데 이러먼 서재 쥔장들은 40인의 도적인가요? 그건 알리바바인가? -_-;)도 공천과정 잡음이 끊이지 않는 구태 정치를 이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ㅎㅎㅎ... 저도 해보니까 재밌네요. ^_^o-

sooninara 2004-03-30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서초을이라니...이사를 가야하긴 하지만..^^
뽑아만 주신다면 열~씸~히..해보겠습니다..
국회도서관에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어서 엄마들과 아이들이 같이와서 책도보고
국회에서 의원들이 땡땡이 치나..날치기로 안건 통과하는지 감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수니나라를 여의도로~!!!!!!!!!!!!!!!!!!!!!!!!!!!!!!!!!

마냐 2004-03-30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즐겁기까지 한데다, 공천까지!!! 캬캬. 마태우스님, 만우절 기념 이벤트만 마시구, 평소에도 자주 이런 기사를 써주시면, 인류 평화에 기여하시구, 알라딘 폐인들의 정신 건강과 피폐해진 심리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연우주 2004-03-30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곧 서울로 위장전입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요! ^^ 그냥 이 동네에서 뿌리박고 살아야 하나? ^^ 마기자의 가상 기사 란으로 퍼갑니다~~~^^

비로그인 2004-03-30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웃겨도 된다말입니껴?? 제 서재에 온통'[펌]알라딘, 총선 참여 선언!'으로 도배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이퍼갔음....그리고 누가~ 누가~ 탈당한답디까?? 그런말 한적 없소이다.

진/우맘 2004-03-31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매너리스트....당신 나하고 둘이 토론 좀 해야쓰겄어.. ㅡㅡ;
(흡, 매너님께 받은 것을 50배로 토해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 36권 곱하기 50이면 그게 만화책 몇 권이다냐....TT)

조선인 2004-04-03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게 웃기지 않아요. 정말 이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안타깝게도 노원구에 출마자가 없으니 비례대표 전원 당선을 위해 투표하고 싶네요. ^^
 

 

 

 

 

 

봄이다. 봄을 예찬한 사람들은 무수히 많지만, 그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었다. 난 이 자리를 빌어 최대한 객관적으로 봄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1. 기간
봄이다. 가을과 더불어 책읽기 좋은 계절인 봄,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봄은 점점 없어져 가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는가 싶으면, 어느새 30도를 웃도는 날씨로 변해 버리니까. 더위를 유난히 타는-살이 쪄서 그런거지만-나는 오늘도 너무 더워서 힘이 들었는데, 다가오는 여름을 어떻게 보낼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오늘도 기온만 본다면 잠바 같은 건 걸치지 않아도 되지만, 잠바 없이 와이셔츠만 입으면 사람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난 입지도 않을 잠바를 팔에 걸치고 출근을 하고, 수업에 들어갈 때도 그렇게 들어갔다. 거추장스러워 죽겠다... 벌써부터 반팔을 입은 용감한 사람이 눈에 띈다. 어제 어떤 여인네는 아예 소매없는 옷을 입고 거리로 나섰더만. 기온이 높아서인지 벚꽃이 피는 날짜가 점점 당겨지는 느낌인데, 이런 추세로 나가다간 10년쯤 후엔 아예 봄이 실종되지 않을까?

2. 옷
봄이 오니 길거리를 걷기가 힘들다. 여인네들이 짧은 치마 아래로 늘씬한 다리를 뽐내며 다니기 때문. 이 여자를 보려면 저 여자가 눈에 띄고, 저 여자를 보고 있자니 그 여자가 등장한다. 옛날처럼 서울 거리에 뚜껑없는 맨홀이 여기저기 있다면, 많은 사람이 맨홀에 빠질 듯. 난 그다지 뻔뻔하지가 못한지라 안보는 척하면서 눈을 돌려 보려니, 집에 들어오면 눈이 몹시 피곤하다 (지하철에서는 유리에 비추어 보기도...^^). 요즘 애들은 어쩜 그렇게 다리가 길고 이쁜지 모르겠다. 혹자는 우리가 서구식으로 먹어서 그렇다는데, 육식이 다리가 길어지는 지름길이라면, 고기만 무진장 먹어온 나는 왜 이렇게 다리가 짧은 걸까? 다리 길이가 유전자에 각인된 것이라는 주장은, 엄마, 아빠가 모두 키가 작은데도 늘씬한 여인이 나오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원인이야 어찌되었건, 그녀들의 존재는 두고두고 감사할 일이다.

3. 몸
봄은 헬스의 계절이다. 바캉스에서 멋진 몸을 과시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부지런히 헬스를 다녀야 하니, 헬스장은 3월부터 대목을 맞는다. 그러고보니 수영이라는 걸 해본 적이 꽤 오래된 것 같다. '몸 만들어서 가겠다'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수영장에 가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 배를 집어넣겠다는 허황된 생각을 버리던지, 아니면 몸을 진짜로 만들던지, 올해 여름엔 수영장에 한번은 가봐야겠다.

4. 나른함
봄은 사람을 졸리게 한다. 나도 기차에서 졸다가 제때 못내릴 뻔한 적이 여러 번이다. 오늘도 손에 들고있던 책을 떨어뜨리는 통에 놀래서 깼더니 영등포역, 서둘러 내릴 수 있어 다행이다. 봄엔 왜 졸리는 걸까? 네이버를 찾아봤더니 "춘곤증 때문"이란다. 뭐야 그게? 내 생각을 말하자면, 땅에서 올라오는 아지랑이가 사람을 졸리게 하지 않을까? 아니면 따스한 봄 햇살 속에 수면효과를 나타내는 성분이?  혹시 아는가? 봄은 졸린다는 편견이 사람을 졸리게 만드는지도. 어찌되었건 빨리 이 비몽사몽의 상태가 지나갔으면 좋겠다.

봄이다. 내가 봄을 불렀더니 봄이 어느새 다가와 벚꽃이 되었다. 한번...따라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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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30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갈대 2004-03-30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폭소를 터트리게 하시는군요. "없어보인다"에서 웃고야 말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봄이 제일 좋습니다. 여름도 좋구요^^

비로그인 2004-03-30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와이셔츠에 잠바때기를 흐음...그렇군요. 정장바지에 와이셔츠에 잠바를...청바지에 와이셔츠에 잠바를...그러구 뛴다는 말씀이시죠!!흐음 상상이 갑니다.

비로그인 2004-03-30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깨각만 제대로 떨어지면 와이셔츠 하나만 입어도 멋지기만하던데....
괜한 옷 탓만 하시는 듯.....

마태우스 2004-03-30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weetmagic님/정곡을 찌르시다니... 나빠요!
폭스바겐님/정장바지는 아니구요, 그냥 캐주얼한 방수바지를 입고 다닙니다.
갈대님/님은 날씬하셔서 더위에 강하신가봐요? 전 더위는 영...

비로그인 2004-03-30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봄과 가을이 좋은데, 봄은 너무 어물쩍 여름으로 넘어가버려서 아쉬워요. 어서 여름을 대비해야할텐데...너무 나른하네요. ^^

파란여우 2004-03-30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 짧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거 아닌가요? 그나저나 마태우스님~ 몸좀 만드셔서 여름에 해변엘 가셔야 하지 않을까요? 수많은 인파속에서 눈에 띄는 저 멋진 몸매의 남자를 보아!..ㅎㅎㅎ '해변의 마태우스'또는 '북극곰 드디어 해변의 킹카로 서다' 이런 후기 기대하고 싶은데요^^

비로그인 2004-03-31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온이 높아서인지 벚꽃이 피는 날짜가 점점 당겨지는 느낌인데, 이런 추세로 나가다간 10년쯤 후엔 아예 봄이 실종되지 않을까? --> 통계에 의하면 최근 10년간 우리나라 기온 상승율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다라고 봐도 될 정도로 낮답니다(서울대학교 통계연구소,모 교수님 말씀). 그럼... 왜 기온이 상승도니다고 느낄까요 ? ~ 그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실내 인공 기후환경에 우리 몸이 너무 의존, 적응되어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네요. 그럼 ..10년 후 봄이 없어질 걱정은 안하셔도 될 듯....

마태우스 2004-03-31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올해는 이미 틀린 것 같은데요? 내년에 하면 안될까요?
sweetmagic님/괜히 걱정했군요. 사실과 우리가 받아들이는 느낌은 언제나 차이가 있네요.
앤티크님/제가 이 글을 쓴 뒤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역시 제겐 신비한 능력이 있는 듯...
 

 

 

 

 

 

지갑을 보니 돈이 별로 없다. 맨날 그렇게 놀러 다녔으니, 돈이 바닥에 근접한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오늘은 돈 안쓰고 조신하게 살아야지 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나더니 내 지도학생이 들어온다. 잊지 않고 나를 찾아온 걸 보면, 작년 1년간 그가 의사고시 재수를 할 때 밥을 사줘가며 격려를 해준 게 도움이 되었나보다. 인턴을 하는 대신 군대에 지원한 그는 4주간의 혹독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터였다. 온김에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지 싶어 그가 원하는대로 중국집에 가서 있는 돈을 다 털어서 탕수육을 사줬다. 생즉사, 사즉생이라고, 돈을 아끼려면 쓰게 된다는 옛말을 실감하게 된다. 이젠 카드 되는 곳만 가야겠다...

4주 동안, 그가 가장 힘들었던 건 훈련이 아니라 '자유의 박탈'이었다. 통제된 곳에서 한달간 지내면서, 그는 자유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우리가 숨쉬는 이 자유의 공기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절실히 느꼈다나.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는 병영사회에 가깝다. 오랜 기간의 군사독재는 군사문화를 사회 곳곳에 이식시켜 놓았고, 그 잔재는 아직도 끈질기게 남아 사람들을 괴롭힌다. 회사에서 직장 상사가 아래 직원들에게 폭탄주를 먹이는 것도 군사문화의 일종이지만, 그런 게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은 중고등학교가 아닐까 싶다. 똑같은 옷을 입히고, 지금은 아니지만 머리를 짧게 깎기를 강요하고, 일과 후의 생활도 통제를 받는다. 내가 죽으면 죽었지, 그 시절로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공부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자율성이 전혀 존중받지 못하는 숨막히는 분위기 탓인지도 모른다.

누나한테서 전화가 왔다. 중학교 1학년인 누나 아들, 그러니까 내 조카가 졸업선물로 받은 휴대폰을 빼앗겼다고 그게 나 때문이란다. 친구도 별로 없고 부모와도 말을 거의 안하는 조카는 나에게는 유독 마음을 열었고, 그와 나는 휴대폰 메시지로 많은 말을 나누어 오던 터였다. 내가 이틀만 메시지를 안보내도 "삼촌 요새 바빠?"라는 메시지를 내게 날리곤 했다. 오늘 아침, 출근을 하던 중 조카 생각이 나서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기현아, 벌레삼촌이야. 학교갔니? 삼촌은 오늘도 지각이다^^"
그게 원인이었다. 휴대폰을 끄는 걸 깜빡했던 탓에, 조례를 하던 담임의 귀에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신호음이 포착된 것. 휴대폰에 민감해 절반 가까운 학생의 휴대폰을 빼앗았던 담임은 당연히 내 조카의 휴대폰을 빼앗았고, 한달간 돌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풀이 죽은 내 조카, 집에 와서 이렇게 말한다. "삼촌은 왜 그때 메시지를 보내서..." 4월 1일날 무슨 게임을 다운받는다고 들떠있었다는데(요금이 2만원 정액제라 다음 달이 돼서야 그게 가능하다나? 이해를 잘 못했음).....

휴대폰을 끄지 못한 것은 조카의 잘못이다. 하지만 한달씩이나 그걸 압수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다. 담임 자신도 휴대폰이 없으면 불편한 것처럼, 학생들 역시 휴대폰이 절실히 필요하지 않겠는가? 아이들이 휴대폰이 무슨 소용이냐 하겠지만, 나이든 사람들 역시 과히 생산적이지 못한 수다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가. 미안해진 난 누나에게 "학교 가서 달라고 우겨봐!"라고 졸랐지만, 누나는 당장은 면목이 없으니 며칠 있다가 가보겠단다. 이래서 난 조카의 눈밖에 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다. 나쁜 담임 같으니...

내가 중 2 때 담임 선생은 우리에게 군것질을 하지 말라는 걸 캐치프라이즈로 내걸었고, 하다못해 매점에서 사먹는 것조차 금지시켰다. 그 일환으로 담임은 같은 반 친구 중 누군가가 군것질을 하면 반드시 자신에게 고자질을 하라고 시켰는데, 난 한번도 다른 이를 고발하지 않았건만, 언젠가 햄버거 한쪽을 얻어먹었던 난 고발을 당해 벌금을 냈다. 친구가 친구를 감시하는 사회에 살면서 북한의 5호담당제를 비판하는 아이러니, 그토록 비교육적이던 학교 풍토가 지금은 얼마나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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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30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저도 고등학교때 삐삐가 울려서 당황한적이 있습죠!! 다행이도 중학교때(재단이 같으면 선생님이 돌고돈다)담임선생님이 고등학교로 와서 날카로운 시선 한번으로 그쳤지만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그래도 다시 돌려준다는게 어딥니까??우리때는 삐삐, 반지, 목걸이. 만화책 모두 졸업날 가져가라 했는데....세상 좋아졌네요....마태우스님은 그때쯤 사랑의 스튜디오에서 "우글우글합니다" 그러시지 않았나 혼자 계산한번 해봅니다

호랑녀 2004-03-30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초등학교두요.
3학년인 제 아이, 도서부장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도서부장이 뭐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추천해주고(좋지요), 수업시간에 만화책을 보는 아이를 선생님께 이르는(물론 선생님은 말하는 이라고 하셨겠지요) 일을 한답니다.
반장 부반장은 선생님 없을 때 떠드는 애들 이름 적어서 선생님께 고자질하는 게 임무이고, 또 주번(질서지킴이)은 복도에서 뛰는 사람 적어서 선생님께 일러바치는 것이 임무이고...
5호담당제가 파바박! 떠올랐습니다.

마냐 2004-03-30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말씀은 정말 슬프네요. 휴대전화 한달 빼앗긴 마태우스님 조카도 그렇구....그나저나 마태우스님의 '시테크'는 놀랍네요. 일하랴, 학생 챙기랴, 조카 챙기랴, 폐인 업무 보시랴..책 읽으랴..광화문 가랴.. 술 마시랴....^^

연우주 2004-03-30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얘기하니까 찔리는군요. 저도 핸드폰 여러 번 뺐었는데...--;
 

 

 

 

 

 

병팔이가 큰일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장실엔 방이 두칸 있었는데, 한칸에만 사람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저긴 더러운가보군"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일이 급해 그 화장실에 들어간 병팔이는 깜짝 놀랐다. 너무 깨끗해서. 일을 보던 중 병팔이는 왜 다음 칸에만 줄을 서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엄청나게 야한 얘기가 화장실 문에 씌여 있는데, 결정적인 장면에서 이렇게 끝이 나 있었으니까. "다음 칸에서 계속"

어릴 적부터, 공중 화장실에 씌여진 낙서를 볼 때마다 불쾌감이 일었다. 성행위 혹은 여성의 몸을 그린 그림들같이 유치했고, 이웃집 누나가 등장하는 야한 얘기들은 역겹기만 했다. 대학에 간 뒤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난 생각했다. 좀 유익하고 즐거운 낙서가 화장실에 있으면 안되는 걸까? 그 낙서를 보러 먼 곳에 있는 화장실을 찾게 만드는 건 불가능한 걸까? 그런 낙서가 존재한다면, 낙서를 통한 사람들간의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테고, 즐거운 맘으로 큰일을 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저질 낙서가 난무하는 것은 누가 썼는지 모르기 때문, 난 낙서 실명제를 실천에 옮겼다. 네임펜을 갖고 다니며 고뇌의 흔적이 엿보이는 낙서를 했고, 그 밑엔 꼭 내 닉네임인 '마태우스'를 적어넣었다. 지금도 쓰고 있는 '마태우스'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아쉽게도 그때 내가 한 낙서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별로 기억에 없다. 대충 이런 식이다. 문 맨 위쪽에다 말 그림을 그려놓고, "여기다 낙서한 사람은 뭐가 길까요? 1) 다리 2) 허리 3) 왕십리 4) 기타" 이게 뭐가 웃기냐 싶을게다. 적고나니 하나도 안웃긴 것 같아, 다른 걸 적는다. 낙서가 붐을 이루어 더 쓸 공간이 없어지자 어떤 사람이 하얀 종이를 붙여 놓고 마음껏 낙서를 하라고 했다. 난 오른쪽 밑 귀퉁이의 종이를 쥐꼬리만큼 찢은 뒤 이렇게 썼다.
"죄송합니다. 휴지가 없어서..."
음.. 이것도 안웃긴 듯. 유지하긴 하지만 그런 낙서들이 누나 얘기가 주종을 이루던 낙서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내 낙서 뒤에 이런 댓글을 단 사람도 있었다.
"마태우스, 더 이상 우리 가문을 욕되게 하지 말라. -일레우스-"
"마태우스, 잡히면 죽는다! -청소 아줌마-"
난 들은 적이 없지만, 어떤 이는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마태우스란 놈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조교로 근무하게 되면서, 난 더 이상 낙서를 하지 못했다. 낙서가로서의 명성이 있었기에, 누가 낙서를 하면 무조건 내가 의심받는 상황이었으니까. 심지어 내가 하지도 않은 낙서가 우리 층에 되어 있을 때, 행여 오해를 살까 두려워 빡빡 지우기까지 했다. 대학에 둥지를 튼 지금도 난 여전히 낙서를 못하고 있다. 나 말고 낙서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청소하는 아주머니들과 제법 친해져, 그분들께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다른 청소 아주머니들도 그러리라는 생각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다른 곳-예컨대 기차역이랄지-에서의 낙서도 주저하게 만들어, 요즘의 난 낙서를 거의 하지 않는다. 좋은 낙서는 화장실에서의 무료함을 덜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는 법이니, 그런 낙서들은 그냥 남겨두면 안될까. 지금의 난 훨씬 멋진 낙서를 남길 수 있는데 말이다.

* 이전에 쓴 글에서 제가 일부 분들의 기분을 불쾌하게 했습니다. 어느 분의 지적을 받고 다시금 읽어보니 정말 그렇더군요. 그래서 지웠습니다. 그분께 감사드립니다. 근데 누구신지 까먹어서, 이렇게 글 밑에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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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29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장실에선 한곳에만 집중을 해야합니다.낙서할 내공까지 겸비하시다니....답2번 허리가 길어야 낙서를 할수 있지 않을까요. 다리는 쫌...설명안해도 아실줄 믿습니다.

마태우스 2004-03-29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스바겐님, 설명해 주세요!!

연우주 2004-03-30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걸 다 쓰셨군요...ㅠ.ㅠ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 낙서하나 하는 생각 했었는데, 바로 마태우스님이었다니...--;
제가 어떤 면에서는 결벽주의자이거든요.
전 공중도덕 어지럽히는 건 못 참아요!!! (아, 썰렁한 농담입니다..ㅠ.ㅠ.)

2004-03-30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시: 3월 27일 (토)
누구와?: 같이 광화문에 나갔던 사람들과. 그날 집회가 마지막 집회인지라 쫑파티였던 셈이다.
마신 양: 소주 한병 플러스 알파
좋았던 점: 시키는 안주마다 너무너무 맛있었다
나빴던 점
-밥을 안먹고 바로 술을 마셨더니 다들 안주발을 엄청 세웠다.
-요즘 계속되는 술로 심신이 피곤하다. 어젠 영화보다 졸기까지...

부제: 광화문에서 느낀 세가지

1. 김어준
광화문에 간 김에 내책을 몇권 사재기를 했다. 사재기를 담당했던 브로커가 내게 김어준을 봤단다. "그 친구, 뚱뚱하지?"
그렇다고 했다. "안에서 책 읽고 있던데?"
그와 술을 두 번 같이 마셔본 경험밖에 없지만, 그런 유명인과 친분을 과시함으로써 자신을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고자 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난 서둘러 교보 안으로 들어가서 그를 찾았는데, 그는 이미 자리를 뜬 뒤였다.

광화문에 나갔다. 서두른 탓에 무대가 보이는 앞쪽에 자리를 잡았는데, 브로커가 날 친다. "김어준 저기 있다!" 보니까 정말 김어준이었다. 우리 뒤에 앉은 여자들도 이렇게 말한다.
"얘, 저기 김어준이야!"
너무나도 반가웠던 난 그의 어깨를 퍽 하고 쳤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왜그러냐고 묻는 그는, 김어준이 아니었다! 죄송하다고 한 뒤 이분간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생각을 해보니 김어준의 머리는 노랗게 염색된 게 아니었고, 조금 살이 찌긴 했어도 그정도까진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그가 광화문에 있다면 취재를 하러 왔지, 우리처럼 아스팔트에 자리를 잡고 있지는 않았을 터였다. 난 날 이렇게 만든 브로커에게 원망의 화살을 쐈지만, 브로커는 "내가 언제 김어준이랬어? 비슷하다고 했지!"라며 되레 소리를 친다. 촛불집회에 나왔다고 다 성숙한 민주시민은 아닌가보다.

2. 황상익
연단에 황상익 서울의대 교수가 올라왔다. 그가 한겨레에 쓰는 글만큼 연설도 잘해주길 바랐지만, 그건 너무 무리한 바램이었던 것 같다. 그 전에 발언했던, 스스로를 무식하다고 말한 농부 아저씨의 말이 훨씬 더 큰 울림을 우리에게 준 걸 보면, 지식이 많다고 대중연설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난 황상익 교수를 존경한다. 87년 시국선언이 잇따를 때, 의대 내에서 서명에 동참한 몇 안되는 사람이었던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인, 그래서 노무현을 인간으로도 취급하지 않는 서울의대 교수들 중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다. 탄핵 이후 축제분위기로 변한 서울의대에서, 광화문에 나가 탄핵반대를 외친 그가 없었다면 후배들이 얼마나 자괴감을 느꼈을까?

이젠 기회가 없어졌지만, 나도 무대 위에 오르고 싶은 충동을 잠깐 느꼈었다. 그랬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겠지.
나: 여러분, 물은 어떻게 먹죠?
사람들: 셀프요!

3. 누나
집회 중간에 누나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냥 심심해서 전화했다며, 나더러 뭐하냔다.
"응, 여기 광화문이야!"
누나의 말이다. "아니 너 거기서 뭐해? 또 술마시냐?"
윽, 우리 누나는 지금 광화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몰랐던 거다. 그렇긴 해도, 탄핵에 열광하고, 광화문에 있다는 나에게 "거기서 뭐해? 빨리 집에 가!"라고 말한 여동생보다는 세상사에 무관심한 우리 누나가 더 낫지 않을까? 아니다. 우리 누나의 평소 언행으로 보건대, 광화문에서 탄핵반대 집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야, 너 미쳤니? 탄핵 되서 더 잘된 거 아냐?"

형제자매는 같은 가정환경에서 자라고 배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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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29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정이 인간 찍어내는 인간공장은 아니니까요....ㅎㅎㅎ

2004-03-29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3-29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4-03-29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탄핵이후로 주위에서도 찬반의견이 분분했는데..아마 다들 총선때, 가슴에 갈고 있는 칼하나씩 보여주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