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다큐멘터리
정지환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말>이라는 잡지를 읽으면서 정지환 기자를 알게 되었다. 그의 글은 언제나 날카로웠고, 글 전체에서 성실함이 묻어나왔다. 그런 기억 때문에 그가 책을 낼 때마다 망설임 없이 샀고, 대부분 만족했다. 그가 이전에 낸 책들에 비해 덜하기는 하지만, <대한민국 다큐멘터리> 역시 재미있게 읽었다.

책 날개에 있는 저자 사진을 보면서, 정지환 기자를 처음 볼 때 생각을 다시 떠올렸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글들을 읽으면서 떠올린 외모와 사진에 난 모습이 너무 달랐기 때문. 정재환이라는 개그맨을 닮지 않았을까 제멋대로 생각했건만, 사진의 인물은 아무리 봐도 날카롭다고는 할 수 없었고, 얼굴엔 큰 점도 하나 있다. 역시 글과 외모는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법, 글로 감동을 받았다면 사진은 안보는 게 좋은가보다. 이번에 낸 책에 내 사진이 전혀 없는 이유도, 그전에 낸 책이 망한 건 표지에 내 사진을 큼지막하게 실었기 때문이라는 출판사의 판단 때문이 아니겠는가^^

다른 얘기도 다 재미있지만, <한국논단>이 주최한 '대선후보 사상검증 토론회' 대목은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아니, 서글프다고 말해야 하나. 남의 사상을 검증한다는 토론회가 방송3사에 의해 생중계되는 와중에 개최될 수 있었던 것도 어이가 없지만, 거기서 나온 말들이라는 게 코미디를 방불케 한다.
-<모래시계> 등 TV 드라마가 군의 사기를 떨어뜨렸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의도광장을 공원으로 바꿔 전시에 비행장으로 쓸 수 없게 됐다
-경실련, 참여연대, 민변 등의 시민단체가...무슨 돈을 가지고 활동합니까? 일설에 의하면 재벌이나 기업의 약점을 미끼로 돈을 긁어 쓴다고 합니다.

이 토론회가 개최된 것은 97년 대선 때, 그러니까 불과 7년 전이다. 지금은 좀 나을까? 오늘 신문을 보니 이런 기사가 눈에 띈다.
"투표장이 낙동강 전선이다. 어른들이 다시 일어나 나라를 구하자...국회마저 좌익의 손에 넘어가면 공산화를 막을 수 없다(서정갑)"
"여당의 승리가 확실시되고 있다...합법적으로 국회를 통해 적화통일을 할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인가(김동길)"
얼마 전 TV에 나온 자민련 모 대변인도 비슷한 말을 했다. "촛불시위에서 외치는 민주가 자유대한의 민주냐, 북한의 민주냐"
그러니까 극우의 정신수준은 지난 7년간 전혀 나아진 게 없다. 나이든 세대가 물러나면 극우 없는 세상이 올까 싶었지만, 신혜식같은 젊은 극우를 보니 우리는 평생을 극우와 더불어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겠다. 하지만 제발 공부 좀 하시라. 최소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호소력이 있지 않겠는가.

맘이 불편했던 한가지. 화가 오지호를 얘기하던 정지환은 갑자기 딴길로 빠진다. "그런데 나는...예상치 않게 더 많은 자료를 발견했다(225쪽)"며, 5.16 혁명재판 때 이회창이 판사로서 많은 사건을 처리한 얘기를 한다. 우리가 아는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의 처형도 그때 이루어졌다. 이회창이 그때 저항하지 못한 것은 맞고, 그로 인해 승승장구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서슬푸른 혁명세력에 저항하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게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시대에 저항할 용기를 갖기 힘들며, 우리가 민주화 투쟁에 나선 인사들을 높이 평가하는 것도 그래서가 아니겠는가. 더구나 이회창 씨는 이제 정계에서 은퇴를 한 판국인데, 40여년 전 일을 다시 끄집어내는 건 그를 두 번 죽이는 게 아닐까? 이 대목만 뺀다면 좀더 유쾌하게 책장을 덮을 수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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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4-08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로 인해 제 마이리뷰가 100개가 되었습니다. 짝짝짝!! 몇백개씩 있는 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100이라는 숫자는 당사자에게 의미가 큰 법이죠.
-지금 심정은?
=매우 기쁘구요, 이 기쁨을 알라딘 분들과 나누고 싶어요.
-리뷰의 질이 떨어진다는 평이 있던데...
=그건 저를 음해하는 세력들이 조직적으로 퍼뜨린 루머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저질 리뷰'를 추구하긴 하지만, 저질이라고 반드시 질이 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리뷰가 있나요?
=<섬데이 서울>이요. 그거 쓰고나서 14분인가가 추천을 했지요. 음하하하.
-가장 안좋았던 리뷰는?
=<환상의 책>, 폴 오스터 작품인데, "총 8분 중 1분이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라고 되어 있어서 얼마나 슬펐는데요. 리뷰 시스템이 바뀌어서 다행입니다.
-리뷰를 쓰는 원칙 같은 게 있나요?
=없지요. 원칙이 있으면 지금처럼 리뷰를 못쓸 수가 있나요? 굳이 말하자면 책에 나오는 주변적인 것만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거죠^^
-존경하는 리뷰어가 있다면?
=아무래도 카이레님이죠. 자몽상자님의 리뷰도 좋아하구요. 마냐님도 참 리뷰를 잘 쓰시고, 그러면서도 많이 쓰십니다. 부럽긴 하지만, 저와 그분들은 길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전 계속 저질 리뷰로...하핫.

마립간 2004-04-08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른쪽에 있는 사람에 대하여
다리에서 20명이 사진을 찍기 위해 일열횡대로 줄을 서 있습니다. 오른쪽 끝에 있는 사람이 다리에서 떨어질까 위험스러워 끝에 있는 사람을 빼고 19명만 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19명에서 오른쪽 끝에 있는 사람은 여전히 다리 끝에 서 있으니 말입니다.

마태우스 2004-04-08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 법칙은 다른 곳에도 적용되더라구요. 예컨대 반에서 가장 떠드는 사람을 내보내면, 가장 떠드는 누군가가 또 나오게 되지요

마냐 2004-04-08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는 오른쪽에 서겠지만, 건강한 보수란게 어떤건지 구경 좀 해봤음 좋겠슴다....글구, 딴 얘기지만...호홍. 마태우스님, 그 와중에 제 이름 넣어주셔서 감사함다....불치병인 글쓰기 컴플렉스가 있는 저로서는 링겔 맞는 효과가...ㅋㅋㅋ
 

 

 

 

 

 

누구와?: 지도학생들과
마신 양: 1차 소주--> 2차 양주-->3차 맥주
양주는 어디서?: 학생들이 사왔다. 녀석들, 그러지 말라니까^^
나빴던 점:
-술에 취한 채 기차에서 책을 꺼냈다가, 잃어버렸다. <제인에어 납치사건>인데, 오늘 기차역 분실물센터에 가봤더니 그런 건 없단다. 흐흑.
-술마시러 가는 도중 택시기사가 날더러 이봉주 친척이 아니냔다. 그래서 어릴 적 별명이 최양락이었다고 했더니, "아니죠. 최양락은 잘생긴 얼굴이에요!"란다. 애들만 없었으면....

나도 학생 때 지도교수가 있었다. 본과에 진입했을 때 딱 한번 식사를 같이 한 그 선생님은 그 뒤 한번도 우리를 불러주지 않았는데, 그 선생님을 보면서 난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에 내가 교수가 되어 지도학생이 생긴다면, 정말 잘해줄거야!"

지금 난 애들한테 잘해준다. 그냥 하는 소리겠지만, 자기들이 내 지도인 걸 다른 학생들은 엄청 부러워한단다. 지도학생 모임을 학교 식당에서 하는 사람도 있다니, 산해진미를 사주는 내가 부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내가 그럴 여건이 되고, 선생님 각자의 철학이 달라서 그런 것이니, 내가 옳은 것만은 아니다. 공부에 관한 걸 일체 묻지 않고, 같이 놀아주기만 하니, 학생들 입장에서야 나같은 사람이 좋을 수밖에.

올해, 분담지도 학생이 바뀌었다. 두명이 졸업한 거야 그렇다 쳐도, 나머지 네명 중 두명이 다른 교수 밑으로 가버렸다. 잘려나간 두명은 큰일났다고 징징거렸고, 정이 제법 들어서인지 나도 서운했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다시 내 지도로 돌렸는데, 새 신입생까지 해서 다섯명이 어제 모인 거다.

나도 바라는 바지만, 애들은 나를 편하게 생각한다. 날 부를 때 가끔 "형!" 이래놓고는 죄송하다고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난 그 호칭이 훨씬 더 맘에 들지만, 애들은 그렇게 부르긴 어려운가보다. 날 만날 때마다 애들은 엄청 잘 먹을 걸 기대하는데, 어제 역시 그 기대는 충족시켜 준 것 같다. 1차로 회를 먹었고, 2차는 감자탕집엘 갔다. 3차로 맥주집에 가서 맥주마시기 게임을 했다. 그 게임은 내가 고안한 건데, 이름하여 '이름대기 게임'이다. 어떤 종류든 이름대기를 시작하는데, 최소한 한바퀴는 돌 만큼 개수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한반도에 있는 나라이름대기"같은 건 안된다. 메이져리그 팀 이름대기, 네글자로 된 가수/그룹 이름, 세글자로 된 나라이름... 남이 한 걸 또 하면 무조건 걸리며, 그 다음 종목은 걸린 사람이 정한다. 그러니 연예계에 약하다고 해서 불리할 건 없다. 정말 좋은 게임 아닌가?

그렇게 유쾌하게 술을 마시다 기차를 타고 갔는데, 내 옆자리가 하필 미녀다. 잘보이려고 책을 꺼낸 게 나빴다. 깨보니 영등포를 이미 지나 서울역이었고, 서둘러 나오다가 책이 바닥에 떨어진 걸 못본 것이다. 아, 속상해!!!! 그것만 없었다면 괜찮은 하루였을텐데.

* 사족: 지도학생이 다 남자라,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여자였으면 하는 게 내 지도학생, 그리고 나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새로 온 신입생은 남자다. 얼굴은 잘생겼지만, 그게 나랑 무슨 소용이겠나?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교 옆에 상명대가 있는데, 그곳은 아직도 여학생이 많다. 그러니...거기 있는 여자교수랑 조인트를 해서 지도학생 모임을 하면....음하하하하. 난 어쩜 하는 생각마다 이리도 깜찍할까? 당장 인터넷에 들어가 접선을 취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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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4-07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이 왜 혼자를 추구하시는지 알것 같습니다. 으흠...

2004-04-07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aire 2004-04-07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잃어버리면 정말 난감해요. 특히 내 돈 주고 사놓고 아직 읽지 못했을 경우 잃어버리면... 다시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꽤 고민하게 되더라구요. 저는 결국... 돈이 아까워 포기했드랬지요... 그런 책 중 하나가 그 유명한 한나 아렌트 책이었는데.. 그 핑계로 그 아줌마 책은 접근하지도 않고 있다는..

2004-04-07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 2004-04-07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인에어 납치사건'... 저 책을 주운 사람이 저였으면 딱 좋겠습니다. 누군지 몰라도 횡재한 그 사람이 부럽네요. 저런 경험 있는데 내게 소중한 물건의 가치가 누군가에겐 공짜라는 이유로 더욱 빛나기를 바랬죠.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LAYLA 2004-04-08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주인장님 참 재미있게 사시는 분 같아요 저도 마태우스 님같은 지도 교수님 만나고 싶어용 ㅎㅎ

마태우스 2004-04-08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몽상님/그러고보니 님이 의심스럽군요. 빨리 책 돌려주세요!!!^^
LAYLA님/부끄럽사옵니다.
카이레님/책 잃어버리면 지갑만큼 속상하죠....어제 오후에 난데없이 도서상품권을 선물받았어요. 그걸로 ...사려구요.
폭스바겐님/역시 님은 예리하시다니깐요.^^

가을산 2004-04-08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제가 학생 때 지도교수님은 대학생, 고등학생인 딸만 넷이었는데요, 저희 조 6명을 야외에서 만나자고 한 것 까지는 참 좋았는데, 거기에 교수님의 딸이 같이 온거에요!
한술 더 떠서 학생들의 생활환경을 파악하시느라 부모님은 모하시나, 고향은 어디냐, 세세하게 물어보시면서 수첩에 적으시는데... ㅋㅋ 마치 단체 선을 보는 분위기였습니다.
전 여학생이라 관찰 대상에서 벗어나 있어서 그나마 덜 거북했는데, 남학생들은 뻣뻣하게 굳어서 어쩔 줄을 모르더라구요
지금 생각하면 동기들이 간택 되고싶어 긴장한건지(딸이 미인이었어요), 아니면 상황이 황당해서 굳어버린건지... 어느쪽이었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궁금합니다.

연우주 2004-04-08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위에 이봉주 & 최양락 얘기보고 박장대소 하며 다시 웃었습니다~~~ 음하하하하하.

다이죠-브 2004-04-10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던 그녀는 어디로..죄송 제가 '마태우스'를 기억하는 건 당시
내일이라도 바로 국수를 먹여 줄듯한 그런 분위기에서 필름의 기억이 절단된 상태라서..
아마도 제 글이 한참 뒷북 치는 글이 되겠네요. 그리고 잘 보이기위해서 책을 펼쳐들었다는
대목에서는..좀 뒤쳐지는 발상이 아닐까 조심스런 제안을 --; 보통의 여자들은 그런남자들
(책만 파고드는 남자)딱딱하거나 재미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딱 내 타입이긴 한데,
방법을 바꿔 보시는 게 어떨까요? 첫눈에 인연을 만날 수 있다고 믿으시나요? 그렇담, 용감하게 대시를 하는겁니다. 당신 너무 이쁜데 나랑 사귈까? 좀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머..
만에 일 정도는 먹혀들수도..돌아오는 반응은 거의가 부정적일 게 분명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손해보는 건 없잖습니까!! 조금 쪽팔리는 걸 감수한다면야..(긍정적인 효과는
얼굴에 철판이 점점 두꺼워 질 것이고..그렇게 된다면 나중에는 쪽팔리는 것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그런경지에 오른다면야! 와우~ 한번 해 볼만 하지 않습니까? 물론 오케이를 한 여자라고 쳤을 때, 님을 좀 가볍게 봤을수도 있겠지만, 그런건 만나가면서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일일테고, 아또...그리고 그 이외의 방법들은...사실 잘 모르겠는데...아! 분위기 있는 남자 좋아하거든요. 여자들의 대부분은..그러니까..분위기를 풍기는 그런 스타일을 연구해 보신다던지..
(사실 이런건 연구해서 될 문제자체가 아닌데..)
에휴~ 시작은 좀 위로를 할까해서 시작한거였는데...ㅠ.ㅠ
최악의 경우는 자기혐오의 경지로 떨어지지 않을까 좀 두려운 맘을 가지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 그리 객관적이지 못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안그런척해도 이 글에는 정치적 편향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점 양해해 주십시오. 제 편향보다는 글의 주를 이루고 있는 안타까움에 주목해 주시길. 매우 조심스럽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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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정치 이야기를 하면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다. "난 절대 안싸울 자신 있어!"라고 자부하던 나였지만, 작년에 한시간 반동안 피터지게 쌈질을 하고나서부터 정치적 지향이 다른 친구가 과연 가능한가에 대해 회의적이 되었다.

내 주위를 보면, 보수-노무현과 이회창 둘다 보수지만, 편의상 진보와 보수로 부르겠다-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개 공세적이다. 내가 노빠인 걸 알면서도 말도 안되는 걸로 노무현을 욕하고, 그가 대통령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거품을 문다. 참다못해 한마디 하면 싸움이 될 게 뻔해, 대개의 경우 그냥 들어주고 만다. 우리 어머니도 모임에 가면 명계남이 빨갱이라느니, 노무현 탄핵은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식의 얘기만 듣고 오신단다. 물론 그건 보수 지지세력이 특별히 공세적이라 그런 게 아니라 수적으로 우세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즐겨가는 사이트에서는 탄핵반대가 주종을 이루어, 탄핵에 찬성하는 것으로 예상되는 한명은 그 이후부터 출입을 안하고 있는 상태니까. 어떤 경우든 정치 얘기를 안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확실하다.

사실 정치적 지향이 다르다는 게 싸울 이유는 못된다. 특정 정파를 지지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고, 상대의 지지를 존중하는 태도만 있다면, 싸움으로 연결될 리는 없다. 문제는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는 거다.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풍토 탓인지, 우리는 자신의 입장을 상대에게 강요한다. 상대가 특정정파를 존중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로 돌린다. 무시당하고 기분좋을 사람은 없는 법, 한쪽이 반발하고, 결과는 싸움으로 이어진다.

노빠들은 지역감정 극복에 대한 노무현의 일관된 도전을 높이 평가한다. 민주당의 분당도 그런 선의로 해석한다. 그들로서는 이회창을 좋아하는 사람-창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좋게 봐도 이회창은 군사독재의 후신인 정당의 후보고, 양지에서만 산 기회주의자다. 귀족이면서 서민을 자처하고, 친미를 표방하다 갑자기 촛불시위에 참여하려 하는 등 최소한의 일관성도 찾아볼 수 없다. 노빠들에게 있어서 창빠는 왜곡언론의 표상인 조선일보에 세뇌된 결과물에 불과하고, 창빠를 "무식하다"고 비난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창빠가 이회창을 좋아하는 까닭은,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가문과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그의 이력을 높이 산다. 우리나라를 이만큼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주류들로서는 상고 출신의 대통령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조선일보의 영향 탓이지만, 노무현의 사상도 그리 건전한 것이 못되어 보이고, 그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째 광신도같은 인상을 받게된다. 창빠들이 노빠를 천박하게 보는 이유는 바로 그런 데 있다.

평행선을 달리는 이 두 그룹이 화해할 수는 없는 노릇, 대선은 노무현의 승리로 끝났지만, 5년간 절치부심했던 창빠의 가슴엔 깊은 상처만 남게 되었다. 질 수 없는 선거를 진 그들로서는 노무현을 인정할 수 없었고, 술자리에서 노무현을 씹어대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그런 그들에게 노무현의 탄핵은 그야말로 복음이며, 기립박수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해법은 없을까? 그건 아니다. 일단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일단 공부를 좀 할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의 말을 몽땅 사실로 믿으면서 제대로 된 토론이 가능할 리는 없다. 그 신문을 끊고 세상을 본다면, 그간 자신들이 노무현을 너무 부정했음을 알 수 있을게다. 언론 관련 책자들을 보라. 김영삼에 대한 언론의 태도와 노무현을 보는 태도가 얼마나 다른지. 문민정부 때 우리 언론들이 노무현에게 하는 것처럼 말 한마디 한마디를 보도했다면, 집권 5년을 다 채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남녀간에 차별은 있어도 차이는 없어야 한다'는 말이나, '아름다운 지하자원과 풍부한 금수강산'이란 말을 버젓이 하고, 원고 순서가 바뀌어도 태연히 읽던 대통령을 모셨던 우리가, "깽판"이란 말을 쓰는 대통령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는 없다. 노무현의 열린우리당 지지가 선거법 위반이라면,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하던 과거 정권들은 모조리 선거법 위반이어야 형평성에 맞다는 것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진보 쪽 사람들은 지적 우월감, 그러니까 독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정치란 선택의 문제고, 어느 것을 더 우선시하는가는 순전히 선택하는 사람 마음이다. 예컨대 우리나라 같은 학벌사회에서 학력이 대통령을 고르는 데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진보는 보수를 무식하고 편향된 정보만 받아들인다고 무시하지만, 자신들 역시 한겨레나 오마이처럼 한쪽에 치우친 언론들만 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선일보 같은 매체도 본다고 하겠지만, 비판을 하기 위해서 보는 것과 그냥 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노무현에겐 비판할 만한 구석이 아주 많이 있고, 그런 비판에 대해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보여선 안된다. 노무현이 자기 부모도 아닌데, 왜 모든 것을 감싸려고 하는 것일까? 노무현보다야 앞에 있는 친구가 자신에겐 더 중요한 게 아니겠는가?

이렇게 서로를 존중한다면, 그래서 부드럽게 자신의 정치적 소신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 유감스럽게도 나역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노력 중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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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04-04-06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대구경북 분인가요? 아니면 서울에도 탄핵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은가요? 저는 대구경북 사람이라 어르신들 앞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무섭기 때문입니다. 포교당 법사님과 우연히 정치 이야기를 했다가 젊은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안 된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조화롭게 사는 것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정치 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느낍니다.

▶◀소굼 2004-04-06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안에서 조차도 식구들끼리 성향이 달라서 티비에서 정치이야기가 나오면 조용히 있으려 노력한답니다. 탄핵가결 됐을 땐 정말 밥상에서 시끄러웠다는;

가을산 2004-04-06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얼마 전에 환자 한분과 정치 이야기를 해버렸습니다.
노인들 점심 식사에서 요즘 젊은 것들의 정치 성향 이야기를 하다가 혈압이 올라서 오신 분이었는데, 제가 혈압약과 진정제를 처방하면서 그만 참지 못하고 '저... 조손일보같은 것만 보지 마시고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좀 찬찬히 해보세요..' 라고 말을 시작한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결국은 그분 혈압이 더 올라서 가버렸습니다. ㅜㅡ ;;

비로그인 2004-04-06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습니다.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각자의 의견이 천차만별인데...그사람들이 정치인이 된들 말이 없을수 있겠습니까??헌데 누가 얼마만큼 알고 있느냐가 중요하나 봅니다. 한가지 알고서 무조건 지 멋대로 꾸며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까 혹은 저눔은 그랬으니 그런 사고를 가졌을끼야 그런식으로 진정 몰 알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소굼 2004-04-06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은 정치 이야기를 할 땐 저혈압이신 분들과;;;

마립간 2004-04-07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항상 아웃사이더입니다. 진보적 성향을 갖은 사람과 이야기할때 보수적인 입장을 대변하다가 혼자만 외톨이가 되고 보수적인 사람과 이야기할때 진보적인 사람과 이야기를 할때 보수적인 사람을 대변하다가 역시 외톨이가 되고. 어쩌면 저 처럼 양비론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또는 유행하는 말로 회색인이 되는 것)이 더 문제일 수 있겠지요. 제가 어느 입자을 취하든 어떤 모임, 대중매체, 인터넷 사이트에 가면 정치적 성향이 갖은 사람들끼리 모이니 동지를 구하기는 쉬울 것입니다. 한 때는 평행선을 달리는 두 그룹의 절충점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런 기대도 안하고 삽니다.

책읽는나무 2004-04-08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웃사이더군요.....ㅡ.ㅡ
마립간님과 비슷해요.....일단 가깝게 우리집안만 보아도....
시댁은 진보...내가 입을 열면 보수쪽편같아 보이고....
친정은 보수...내가 입을 열면 진보쪽편같아 보이고....
그러면서 투표는 하지 않고........ㅡ.ㅡ

조선인 2004-04-09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말에 일견 동감합니다. 전 어제 새파란 것들이 나서서 이 나라를 망치고있다고 기염을 토하시는 택시기사아저씨를 만나버렸지요. 설득은 불가능하다고 판단, 대신 노년권익당이라는게 새로 생겼다고 적극 권해드렸지요. 캬햐햐
 

 

 

 

 

 

어릴 적부터 그러셨지만 어머님은 내가 밥먹는 걸 좋아하신다. 삼십년이 넘도록 밥상을 차리셨으면 이제 지겨울 법도 한데, 요즘도 어머니는 내가 집에서 밥을 먹겠다고 하면 춤을 추신다.

오늘 저녁을 먹을 수 있냐고 물으셨다. "오늘 안되는데... 내일, 모레, 그러고보니 이번주엔 집에서 한끼도 못먹겠어요" 원래 아침을 안먹으니, 내가 집에서 밥을 먹는 건 토요일 아침이나 가능할 것 같다. 어머님의 표정이 울상이 되신다.
"어쩌냐. 내가 흑돼지 사 놨는데... 놔두면 변하는데..."
그래서 난 "도시락으로 싸주세요"라고 말씀을 드렸고, 어머님은 너무 신나하시면서 도시락을 싸셨다.

오늘 점심은 그래서 어머님이 싸주신 도시락을 먹었다. 어머님은 "렌지에 데워 먹어라"고 하셨지만, 난 찬밥을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그랬는데, 그건 밥을 빨리 먹어야 하는 슬픈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테이블에 도시락을 놓고, 흑돼지에 김치를 싸서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그러고나니 시간도 절약되고 몸도 편하다.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과 밥을 먹는 게 싫다. 같이 먹는 사람과 무언가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게 영 부담스러워서다. 앞으로도 계속 싸달라고 할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매일 그러는 건 어머님이 귀찮으실 것 같아 안그러기로 했다.

되돌아보면 나의 역사는 도시락의 역사고, 오늘의 나를 만든 건 팔할이 도시락이다. 대부분이 고교 때까지만 도시락을 싸가지만, 난 대학에 다닐 때도 줄기차게 도시락을 쌌고, 조교 시절에도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다. 엥겔계수 60을 넘기는 게 목표셨던 어머님은 도시락 하나만은 근사하게 차려 주셨고, 그래서 친구들은 나와 밥을 먹기를 좋아했다. 친구들 셋이서 라면집에 가서 라면을 먹고, 내 도시락을 말아 먹으면 저녁 늦게까지 배가 불렀다. 그렇다 하더라도 서른을 훨씬 넘긴 이 나이까지 도시락을 싸달라고 하면 되겠는가?

어머님께 가끔 여쭤본다. "엄마는 제 밥 차리는 게 귀찮지 않아요?" 엄마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하시며 이렇게 반문하신다. "넌 벤지밥 주는 게 귀찮니?" 생각해보니 그렇다. 난 벤지밥을 언제나 기쁜 맘으로 주고, 벤지가 밥을 그 자리에서 다 먹으면 무지하게 대견해하니까. 생각해보면 내가 혼자 살면서도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 것은 그렇게 날 사랑해주시는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엄마가 산더미처럼 쌓인 그릇들을 씻으실 때는 죄송스러운 생각이 든다. 어머님도 이제 육십대 중반에 다다르셨는데, 언제까지 어머니를 혹사시킨담? 놀지만 말고 나도 요리학원이나 다녀볼까 싶다. 나를 위해 수없이 밥상을 차리신 어머님께 근사한 저녁이라도 한번 차려드려야지. 요리학원이 물도 좋다지 않는가?^^  그게 안되면..요리책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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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4-06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도 먹어~" "아니, 난 늬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어느 집에서나 한 두 번 쯤은 오고갔을 법한 대화. 자식을 낳아보고 새삼 실감한 것 중 하나입니다. 세상에,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정경처럼 뿌듯한 게 없더군요. 밥상 차려드릴 궁리보다, 머리 맞대고 맛있게 밥 먹는 모습 한 번 더 보여드릴 궁리를 해 보세요.^^

비로그인 2004-04-0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님의 글 '좋은생각'을 읽는것 같네요. 아름다워라~

플라시보 2004-04-06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어머니가 요리를 잘 하시나 봅니다. 우리 엄만 솔직하게 말 하자면 나보다 한 3배 정도는 못 하십니다. 그래서 엄마가 이혼해서 집을 나가기 전 까지는 도시락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 이후로는 내가 싸 가기도 하고 아버지의 그녀 (음식솜씨 와방이었습니다.)가 싸주기도 해서 잘 먹고 다녔습니다. 한동안 도시락을 잊고 살다가 이 회사로 옮기면서 부터 도시락을 싸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별 이변이 없는한 저녁에 밥해 먹으면서 낼 도시락 반찬을 만들어 놓고 아침에는 밥만 쌱 퍼서 가져갑니다. (간혹 아침에 후닥닥 거리며 하기도) 도시락의 좋은점은 우선 싸게 먹힌다. 둘째 메뉴 고민을 머리터지게 하지 않아도 된다. 셋째 혹 다이어트 하려는 자들이 있다면 사 먹을때 보다 같은 양을 먹어도 살이 현저히 빠짐을 느낀다 입니다. 어머니가 많이 귀찮아 하시지 않는다면 일주일에 이 삼일이라도 도시락을 싸 보세요. 살이 쭉쭉 빠질겝니다.(제 주변에 그렇게 해서 살뺀사람 많습니다. 흐흐.)

쎈연필 2004-04-06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의 도가니탕입니다.....

마냐 2004-04-06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 멘트가 죽이는군요....'넌 벤지 밥 주는게...' 모전자전...그 상황에서 저런 코멘트가 나오다니...

책읽는나무 2004-04-06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의 정성스런 밥의 비유를 벤지밥으로......ㅋㅋ....저도 어머님의 멘트에 두번 웃었습니다...^^
님도 도시락과의 질긴 인생이었군요....하지만...사먹는 밥보다는 도시락이 훨 영양만점아니겠습니까??....시간,돈,머리를 덜써도 되고(오늘 뭘 먹을까?? 고민).....갑자기...저도 대학다닐때 용돈 좀 아껴볼 요량으로 도시락을 싸다녔습죠!!...그땐 이모가 싸주시긴 하셨지만...친구들과 식당에 앉으면 항상 내도시락 먼저 까먹고...나는 친구들 돈주고 산 밥을 대신 먹었던것 같네요...^^...
님의 어머님 님을 사랑하시는 마음이 전해집니다...내친구하나는 팅까팅까 놀다가 요즘 공무원 시험친다고 도시락 싸가지고 도서관에 다니는데....친구어머님...가라는 시집은 안가고 나이 서른이 다되었는데 내가 도시락 싸준다고 막 구박하신다는군요....ㅋㅋ....님은 참 행복하십니다...^^

갈대 2004-04-06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시절 도시락 2개씩 싸가지고 다녔는데 점심은 그럭저럭 먹을만 했지만 저녁은 완전히 찬밥이 되어 있었죠^^

panda78 2004-04-10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이 너무 좋으세요-- 벤지도 귀엽고-- 마태우스님은 행복하시죠? ^^
 

 

 

 

 

 

대학 동창회를 했다. 압구정동에 있는, 오킴스라는 비싼 곳에서 모였는데, 삼겹살에 소주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런 화려한 곳에서 만나는 게 그다지 마땅치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서른명이 넘는 인원이 오붓하게 모일 곳이 거기밖에 없고, 6시에 만나서 밤 12시가 넘도록 놀았으니, 본전은 충분히 뺀 듯하다. 분위기도 좋고, 오킴스가 만든 맥주의 맛도 뛰어나, 앞으로는 오킴스 예찬론자가 될 것 같다. 

난 우리학번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한다. 학생 때부터 일년에 몇차례 씩 MT를 갔고, 수업을 제껴가며 2박3일간 설악산 여행도 갈 정도로 단합이 잘되는 학년이었는데, 졸업 후에도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에서 잘 나가고 있다. 대부분의 온라인 카페들이 글 기근으로 하나씩 쓰러져가는 이때, 하루에 열 개 이상의 새글이 반짝반짝 빛나는 곳은 우리밖에 없다. 학생 때는 그다지 맘에 안든 애도 있었지만, 지금은 동창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친구들이 다 소중하고 반갑다. 그들을 만나니 모여서 그랜다이져-초록빛 자연과 푸른하늘과 하나뿐인 인간에게 지구를 위해서!-를 부르던 그 시절 생각이 난다.

엊그제 모임은 폐암으로 투병중인 친구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4년 전인가 폐암이 발견되었고, 가슴을 열었다가 암이 너무 퍼져 그냥 닫아야 했던 그 친구는 6개월밖에 못산다는 의학적 선고를 이겨내고 3년 반째 투병 중이다. 방사선 치료도 하고, 화학요법도 쓰는 등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동창회에 나와 줬고, "술 좀 적당히 먹어라"라는, 만날 때마다 하는 조언을 내게 했다. 언젠가 "이번 추석이 제 마지막 명절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더더욱 소중하게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글로 우리를 울렸던 그 친구가 부디 회복되기를 빌어본다.

동창회는 나이트의 부킹과 비슷한 면이 있다. 얘기를 좀 하다가 재미가 없다 싶으면 "나 쟤랑 얘기좀 할게" 혹은 "화장실에 좀..."이러면서 저쪽으로 휭 하고 간다. 거기서도 재미가 없으면 또다른 곳으로 가고... 주 관심사가 공부였던 학생 때는 나와 얘기하고픈 얘가 거의 없었지만, 졸업을 하니 상황이 달라져, 내 옆자리가 비면 잽싸게 사람들이 앉는다. 심지어 소변을 참아가며 내 옆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있다는 자백을 받아내기도 했다. 인기가 많다는 건 어찌되었건 즐거운 일, 이게 다 오랜 기간 연습한 유머감각 덕이 아니겠는가? 이런 내가 나이트에서는 왜 인기가 없는 걸까? 내 좋은 점 중 하나는 누군가가 심심하게 있는 걸 못본다는 것. 내 맞은편에 앉은 얘는 공부밖에 몰랐고, 지금도 유명외국잡지에 많은 논문을 싣는 애였는데, 보니까 왕따다. 그래서 걔에게 몇마디 말을 걸었다.
-너 별명이 '외국잡지'라며?
=편수만 많지 뭐. 참, 이번에 JBC-아주 좋은 잡지다-에 논문 하나 실었어.
-그, 그래? 비결이 뭐니?
=열심히 하는거지 뭐.
그와 얘기하다가 상처만 받았다....

동창회 전에, 내 동창 중 몇 명에게 내 책을 보내줬었다. 그 중에는 탤런트와 결혼한 성형외과 의사도 있었는데, 말 싸인을 그리고 나서 이렇게 썼었다. "쌍거플 공짜로 해줄 거지?"
그랬더니 엊그제 만났을 때 그가 진지하게 날 설득한다. 내가 쌍거플을 하면 드라마틱하게 이뻐질 수 있으며, 병원 홍보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말이다. 내가 쌍거플 운운한 건 순전 농담이었지만, 십여분간 집요한 설득을 받고나니 마음이 흔들렸다. 하마터면 "그래, 스케줄 잡자!"고 얘기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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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4-05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돼요~ 마태우스님이 쌍꺼풀이 진한 부리부리한 눈이면 너무 이상할꺼 같다니까요~ 동양적인 선이 아름다우셔요 마태우스님은. ^^ 나중에 서재 벙개해도, 다들 화장실참으며 마태우스님한테서 떨어지지 않으려하는게 아닐런지요. ㅎㅎ

nrim 2004-04-05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쌍꺼풀 수술한 마태우스님의 눈은 상상이 안되옵니다;;

연우주 2004-04-06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갑자기 박명수가 생각나는군요! (이러다 미움 사겠다^^;;)

2004-04-06 0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우맘 2004-04-06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우주님, 우리 같이 미움 사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이겨내자구요...-.-;;;;


비로그인 2004-04-06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악~ 너무 심해요 두번째 사진!! >.<

마태우스 2004-04-06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들부들..... 다주겄어요!!!! 술로!!

마태우스 2004-04-06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분간 생각을 해보니, 진우맘님 덕분에 얼굴에 칼을 안대기로 마음을 잡았으니 오히려 감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렇게 엄청난 생각을 했다는 걸 깨우쳐 주신 님께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17일날 꼭 제 앞에 앉으세요!!! 참, 몸 만들어 오는 거 잊지 마세요!

갈대 2004-04-06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최고!!ㅋㅋ

2004-04-06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4-04-06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꼬리 안쪽부터 시작하는 작은 쌍꺼풀에 , 옵션으로 보톡스 좀 맞으시고

  음... 피부 필링 몇번하시면....음..... 어때요 ? ㅎㅎㅎㅎ 


비로그인 2004-04-06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일이니??ㅋㅋㅋㅋㅋ 진우맘님 웃겨서 혼났습니다. 지금 회사에 투쟁하고 있는중이라 인상 팍팍 갈기고 있는데 아니 사진보고 표정관리 안되어 혼났습니다. 어찌 저걸보고 웃음을 그냥 삼키오리까...고문이예요...ㅎㅎㅎㅎ

비로그인 2004-04-06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헤헤헤~저장해놔야지~~룰루랄라~~

연우주 2004-04-06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방장대소하고 있었어요! 진/우맘님 최고!!!! ^^

진/우맘 2004-04-06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침이라 컨디션이 안 좋아서, 손이 좀 부들부들....그랬더니 불법시술 쌍꺼풀이 되어서리...
그런데 마태우스님, 스위트매직님 사진을 보니....필링 정도는 고려를 해 봐도 괜찮을 듯.(그런데, 필링의 경우 낫기 전까지 사회생활+술이 불가능해지는 관계로, 어렵겠죠?)^^;;;;;;

마냐 2004-04-06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미치겠당....진/우맘님, sweetmagic님. 필링은 정말 괜찮네요. ^^ 불법시술 쌍꺼풀도 음....나중에 사진 찍어서 진/우맘님께 보내 견적 함 뽑아봐야겠다 싶기두 하구요...전 쌍꺼풀 말구...필링이나, 코, 주름제거...쪽에 관심있는데 괜찮겠죠? ^^;;;

다연엉가 2004-04-06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오늘부터 컴터할 시간도 없이 바빠서 못들어 왔는데...
눈치보고 살짝 들어왔는데... 이게 뭔 일이랑께..
나또한 표정관리가 안되네요. 웃어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정말 미치겠다.

sooninara 2004-04-06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엔 두사진의 차이를 몰랐다가..나중에 칼댄거 보고는 넘어갔습니다..
진우맘님...이쁜이~~~~~~~
마태우스님..진우맘님이 알라딘 주당으로 뽑혔는데..옆자리에서 대적하실려면..몸좀 만드셔야겠군요

비로그인 2004-04-06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 다시봐도 웃기고 저리봐도 웃기고....몬살겠다. 적은 따로 있었습니다.

다이죠-브 2004-04-09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글 여전하시네요. 뒤집어 지는 줄 알았는데..
사진보곤 기절하는 줄 알았다는 ㅋㅋ사실은 실물은 더 나은거죠? 그런거죠?
모두가 글케 알고 있음 되는거죠?

이럼 맘이 좀 편하실려나...푸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