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단대신문에서 시사 문제로 칼럼을 하나 써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한 사흘간 시사, 시사, 시사 하면서 살았습니다만, 뭘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이라크 얘기를 썼는데, 왜 이렇게 글이 맘에 안드는지. 원고료가 탐나서 보내긴 하지만, 잘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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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가 불안하다. 부시의 종전선언 이후 오히려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 이라크 상황은 급기야 한국인들이 테러의 표적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작년에 한국인 한명이 피살된 바 있고, 최근 한국인 두명이 14시간 동안 억류된 데 이어 목사를 비롯한 7명이 피랍되었다 풀려났다. 이라크에 파견된 연합통신 기자는 이라크 사람들로부터 "한국인 행세를 하지 말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추가파병이 이루어지면 한국인이 집중적인 테러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미 내려진 파병결정이라 할지라도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라디오에 나온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그의 말이다. "추가파병에 대해서는 지금 현재 아무런 다른 새로운 검토를 한 것이 없다" 이미 파병이 결정된 마당이니, "국제적 신뢰가 중요"하단다. 신뢰보다는 자국민 보호가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한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라크 현지에서는 전화마저 끊겨 교민들의 안전 여부를 이메일로 체크하고 있다는데, 뭘 어떻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일까? 그는 말한다. "국제 사회에서 우리의 국력에 걸맞는 여러 가지 마땅한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고. 3천여명의 병력이 더 간다면, 우리는 미국, 영국에 이어 3번째로 병력을 많이 보낸 나라가 된다. 내가 모르는 새 우리의 국력이 세계 3위로 점프하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 우리가 병력을 많이 보낸다고 우리의 신장된 국력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일까? 소설가 방현석이 쓴 <랍스터를 먹는 시간>에는 베트남의 식당에서 TV로 한국의 이라크 파병 소식을 듣는 한국인의 얘기가 나온다.
[사람들은 더 이상 TV를 쳐다보지 않았다. 건석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갑작스러운 시선에 당황했다. "왜 한국은 이라크에 가나?"... "한국은 미국이 부르기만 하면 어디나 달려가는 강아지냐?"]
비록 소설이지만, 다른 나라들 역시 같은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미국의 성실한 추종자인 영국이 국력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유를 한번 생각해보자. 영국이야 같은 앵글로 색슨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쳐도, 우리나라는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이라크 파병은 애초부터 잘못된 결정이었다. 이라크의 석유를 노린 침략전쟁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미국과 이라크의 전력이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예컨대 미국이 망하기 전의 소련과 한판 붙는다고 해보자. 전쟁의 이유야 어떻든 난 파병에 찬성하겠다. 중국과 싸운다면? 물론 찬성이다. 독일? 당연히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련다. 하지만 이라크는 너무 심하다. 아무리 우리와 비겼다고 해도, FIFA 랭킹 140위권인 몰디브를 격파하기 위해 세계올스타 팀을 내보낼 필요는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파병론자들은 이런저런 정황에는 애써 눈을 감고, 오직 "파병!"만을 소리높여 외칠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파병의 이유들이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6.25 때 은혜를 갚자고 하다가, 전후 이라크 재건시 우리 지분을 확보하는, 즉 국익을 위해 보내야 한다고도 한다. 초창기에는 "이라크는 안전하다"를 앵무새처럼 외치며 한국인이 테러의 표적이 될 가능성에 눈을 감더니, 한국인 한명이 피살되니까 이렇게 말을 바꾼다. "위험한 곳이니 더더욱 전투병을 보내야 한다"고. 한국인들이 떼로 납치되는 작금의 상황에선 "병력을 더 늘려야 한다"고 떼를 쓰지 않을까? 파병을 해야 할 이유가 시시각각 달라지는 이유는, 애시당초 파병을 결정해 놓고 상황에 따라 이유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과 생산적인 토론을 하는 게 불가능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신용불량자를 이라크에 보내자는 망언을 했던 송영선은 어느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한다. "미국을 감동시켜야 한다"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이경재의 말이다. "이왕 미국을 돕는 거, 화끈하게 도와주자" 이쯤되면 그들이 파병을 하자는 취지가 궁금해진다. 파병론자들이 바라는 것은 우리의 국익일까, 아니면 미국의 국익일까?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구는, 타워팰리스 여러 채를 가진 부자가 아파트 한 채를 더 갖기 위해 전셋집에 사는 사람에게 전세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과 같은 행위다. 정 거절하기 어렵다면 돈이나 주고, 탱크나 몇 대 보내고 말 일이지, 우리 국민의 생명을 위험하게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돈은 또 벌면 되지만, 국민의 생명은 그렇지가 못하잖는가?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가 미국과 진정한 친구가 되려면 무리한 요구는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데, 우리나라는 지렁이만도 못한 나라인가?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쉽다. 이번 사태는 우리가 계속 미국의 종으로 남느냐, 아니면 자주 국가로 거듭나느냐를 결정할 좋은 기회다. 파병결정은 철회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