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나가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총선에 대한 소감을 써달란다. 알았다고 했다. 난 TV를 보면서 맥주를 마셨는데, 처음 맥주를 마실 때는 맥주맛이 좋았지만, 갈수록 맥주가 쓰더니만, 막판에는 한약을 먹는 기분이었다.... 그래도..1당이 어디냐. 딴지에 보낼 원고를 여기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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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과
선거가 종료되기 13분 전, 난 방송국에서 근무하는 심복으로부터 출구조사 결과를 남보다 미리 들을 수 있었다. 열린우리당 172석, 한나라당 101석, 민노당 11석. 그걸 듣자마자 길길이 뛰었지만,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동안 경합지역 대부분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열린우리당의 예상의석은 151석, 겨우 과반수를 넘는 수준으로 떨어져 버렸다. 하지만 출구조사 결과에 고무되어서 그렇지, 내가 바란 것은 원내 제1당, 그 꿈은 이루었으니 충분히 행복해 해야할 거다. 더구나 민노당의 국회 진출은 그 자체로 흥분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원래 난 우리 국민을 믿었다. 우리 국민의 기억의 빈혈을. 우리 정치가 후진적인 이유는, 정치인들이 무슨 짓을 하든 선거에서 심판을 제대로 못한 우리 유권자의 탓이 아니던가. 탄핵 직후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크게 올랐지만, 그래서 난 그게 오래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 한마디면 한나라당의 지지층이 결집되고, 영남지역의 많은 의석수를 바탕으로 한나라당이 1당이 될 것이니까. 한나라당이 영남을 휩쓺으로써 내 우려는 어느 정도 적중했지만, 그게 수도권에까지 전달되지는 못했나보다. 미흡하긴 하지만, 한.민.자가 연합한 의회쿠테타는 이것으로 응징되었다.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를 외쳤던 우리 국민의 수준을 너무 낮게 봤던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사과드린다.

2. 총선, 화제의 인물들
당선, 혹은 낙선된 사람들 중 흥미로웠던 사람들을 조명해 본다.
-홍사덕; 촛불시위는 실업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했던 그는 이번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스스로 실업자가 되었다. 이제 광화문에 가면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하는 홍사덕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송영선: 이라크에 파병을 해서 "미국을 감동시켜야 한다"고 말했던 송영선이 신용불량자들의 조직적인 반대에도고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국회의원이 된 그녀가 어떻게 미국을 감동시킬지 기대만빵이다.
-김희정: 이 사람의 당선은 외모지상주의가 급기야 국회에까지 상륙했다는 신호탄이 될 듯 싶다. 그녀가 우리 지역구에 나왔다면 나도 찍지 않았을까 싶다.
-노회찬: 숱한 유행어를 만들었던 그,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함에 따라 더 풍성한 활약이 기대된다. "한나라당, 민주당,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야당은 민노당에 맡기십시오"라던 그의 말이 생각나는 밤이다.
-한선교: 아나운서 출신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국회에 들어갔다. TV에 나오던 사람은 2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둔 뒤 출마를 허용하도록 하면 어떨까? 전용학의 경우를 보면, 이미지 정치는 한번이 한계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김종필; 뻔뻔스럽게 비례대표 1번 자리를 꿰찼던 그는 자민련의 정당득표가 3%에 미달되는 바람에 10선에 실패했다. 자민련 지지자들은 "원래 표현을 잘 안한다"가 아니라, "투표도 안한다"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정형근: 부산의 명예에 먹칠을 하곤 했던 정형근은 이번에는 다소 어렵게 국회에 진출했다. 부산 시민들이여, 조금만 더 애써주시라.
-이만기: 처음에는 왜 이런 사람을 공천했나 싶었지만, 탄핵 가결을 보면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낙선한 걸 보니, 더 이상 힘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추미애; 괜찮은 여성 정치인이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정치생명이 위협받게 되는 광경은 영 마음이 아프다. 광주 지역주의에 호소하느라 자신의 지역구를 관리 못한 게 탈락의 원인?
-전여옥: 안그래도 기세등등한 테러분자였던 그녀, 국회의원 배지까지 달았으니 얼마나 기고만장일까? 대변인인 그녀가 어떤 언어폭력을 행할지, 지켜볼 일이다.

3. 향후 전망
1)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강체제, 제3당으로 우뚝 솟은 민주노동당, 그 틈바구니 속에서 나머지 당들은 생존의 길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쉽게 예상되는 것이 민주-자민련-국민통합21의 합당. 합당을 하면 다음과 같은 점이 좋다.
-충남의 자민련, 호남의 민주당, 영남의 국민통합21, 새 당은 그러니까 전국정당이 된다.
-새 당은 민노당을 제끼고 제 3당이 되어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다. 무소속을 영입하고 커트라인을 내려달라고 우기다 보면 원내교섭단체도 꿈은 아니다.
-마땅한 대선후보가 없는 상태에서, 정몽준이라는 강력한 대선후보를 보유하게 된다.

2) 개표를 다시 할 것이다
제1당을 빼앗긴 한나라당은 십중팔구 이번 총선이 개표조작이라고 우길 것이다. "우리가 질 리가 없는데 졌다. 그러니 조작이다!"라는 단순명쾌한 논리는 건수에 목마른 수구보수세력을 감동시켜, 개표를 다시 하게 만들 것이다.

3) 노무현은 더 이상 핑계가 없다
늘 소수정권의 한계를 탓하며 개혁을 미루어왔던 노무현,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점하게 됨에 따라 더 이상 핑계댈 것이 없어졌다. 잘 못하기만 해봐...주거! 민노당도 지켜보고 있다!

어찌되었건 탄핵은 응징되었다. 이 땅에도 드디어 정의가 살아 숨쉬기 시작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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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스 2004-04-15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코멘트로 넘쳐나는 마태우스님의 페이퍼에 1등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서재에서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 들어왔는데, 역시 발빠른 마태우스님이시군요. 화제의 인물 읽고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마냐 2004-04-16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레벌레 허겁지겁 초판 마감하구...최종판 준비중임다....(하~품) 화제의 인물...음, 이철 꺽고 3선한 정형근 정말 대단하구...언제 한나라 갔는지도 몰랐는데 이겨버린 박계동, TV나오면 다 된다는 신화에 한줄 더한 자민련 류근찬, 조리없이 마구잡이로 떠들어도 승리한 김영선...도 끼워주세요....... 한석도 넘겨주지 않고 수성에 성공한 대구, 끝내 한석을 내주고 만 부산의 단결력..도 대단하죠.....암튼. 민노당의 국회 진출은 정말 짜릿함다. ㅋㅋㅋ

비로그인 2004-04-16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사덕 추미애...고소합니다. 민주노동당 노동계에 너무 치우친거에 불안을 느낀다는 기사를 봤드랬습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 통쾌하면서도 우울합니다.

파란여우 2004-04-16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누구보다 전여옥이 가장 갸련합니다. 이제 그녀가 침착하고 겸허한 인간이 되는 것으로부터 더 멀어졌잖습니까?

비로그인 2004-04-16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어제 총선은 여러모로 의미있는 총선이 될거 같네요. 이제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잘 치뤄나갈지, 다시금 무척 기대가 됩니다. ^^

가을산 2004-04-16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멘트 짱! ^^
그리고 전 추미애는 좀 아까워요.
그리고 '1. 사과'에서 '원래 난 우리 국민을 믿었다'는 '원래 난 우리 국민을 믿지 않았다'의 오기 아닌가요? 문맥으로 보아서는 그런 것 같은데...

sooninara 2004-04-16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초반 개표에서 자민련이 3.2%인가해서..우리남편하고 종필씨가 또 하겠구나 싶었는데..
결국엔 안됐네요..정말 다행입니다..^^
한나라당이 강남,잠실,송파를 꽉잡더군요..역시 기득권층이란 생각이 들고..
영호남 대결이 아니라 동서의 대결로 정착된거 같아서..씁쓸하지만..
앞으로 두눈 크게 뜨고 국회에서 딴짓 못하게 감시 잘해야겠습니다..

진/우맘 2004-04-16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난 아직.... 안에서는 다른 표 찍고 부끄러운 마음에 출구조사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그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질 못하겠습니다. 자신의 선택에 왜 당당하질 못하는 걸까요? 부끄럽다 여기면서도 찍을만큼, 국회가 그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는 걸까요?

갈대 2004-04-16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싸덕이 얼굴 안 보게 된 것만 해도 후련합니다

호랑녀 2004-04-16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 저도 한몫 했습니다. 홍모씨 얼굴 안 보게 된 데...ㅋㅋ 우리 지역구였거든요.
 

 

 

 

 

 

일시: 4월 14일(수)
누구와?: 테니스 멤버들과
마신 양: 1차는 소주에 갈비살, 2차는 비싼 술....

부제: 운동의 허와 실

운동을 하려면 같이 해야 된다. 혼자서 한다고 우기다가는 며칠 못가서 그만두기 십상이니까. 운동 동호회가 많이 생기는 것은 여럿의 강제에 의해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기 위함이리라. 그렇게 좋은 취지와는 달리, 대부분의 운동 모임은 술이 끼어든다. 내가 아는 등산모임은 산에 갔다오면 꼭 술을 마신다. 그것도 장난이 아니게 마시는데, 산은 핑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산에 올라가서 얻는 건강과, 술로 인해 잃는 건강, 어느 게 더 많은 것일까.

골프를 치는 모 씨도 꼭 진탕 술을 마시고 집에 온다고 하고, 조기축구회에서 활동하는 모 인사도 수시로 만나 술을 먹는다. 물론 술을 마시면서 친목을 다지는 게 필요한 측면은 있다. 밋밋하게 축구만 하고 헤어진다면, 재미가 없잖아? 중요한 것은 균형일 터, 그런 의미에서 우리 테니스 모임은 아주 건전....하지 않은 모임이다. 테니스 도중 부상으로 은퇴한 선수가 많은 것도 그렇지만, 문제는 술이다.

물론 횟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테니스는 매주 일요일마다 치는데 비해, 술은 기껏해야 한달에 한번 정도 마시니, 등산 모임보다야 훨씬 낫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이것들은 꼭 1차를 마치고 나면 2차를 음란한 곳으로 간다. 건전하게 맥주를 마시자는 내 주장은-맥주가 건전하긴 한가?-"우리끼리 더 할 얘기가 뭐가 있냐?"는 친구의 말에 의해 묵살되고, 2차는 대부분 단란한 곳으로 간다. 어제도 그랬다. 8시 반, 무지하게 이른 시각에 요즘 테니스를 치는 4명과, 부상으로 은퇴한 2명, 모두 6명이 우르르 단란한 곳에 몰려가 2시간을 놀았다. 집에 오니까 밤 11시, 그때부터 맞고를 20판쯤 치다 잤는데, 분담금을 낼 생각을 하니 돈이 좀 아깝다.

30대는 그런 나이인가보다. 20대라면 우리끼리 조국통일과 세계평화를 이야기하느라 밤새는 줄 모르지만, 30대에 접어들면 남자들끼리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게 되버린다. 불황, 불황 하지만 단란한 곳은 언제나 미어터지고.... 가끔 무섭긴 하다. 어느날 갑자기 단속이 들이닥쳐 우리를 잡아가고, 카메라는 소파 뒤에 이쁘게 숨은 내 얼굴을 비춘다. "이 중에는 놀랍게도 대학교수도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과연 뭘 가르칠지 궁금합니다. 이상 카메라출동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추태교수 물러나라'고 항의를 하고, 교수들은-자기도 간 경험이 많으면서-짐짓 놀라는 척한다. "아니 서교수가 그런 데를 간단 말이야? 너무하네!"라며. 학장이 날 부른다. "음...서교수가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판정이 나왔네. 내가 징계 정도로 막아보려 했는데, 잘 안됐어. 미안하네. 내가 사식 넣어줌세"
이런 일이 닥치기 전에, 회개를 하고 바르게 살아야 할지어다.

* 물론 어제의 술자리가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벽돌집>만 고기집인 줄 알았던 저에게, <기찻길옆...>이란 이름을 가진 고기집은 그야말로 혁명이었습니다. 맛도 훨씬 좋았고, 값도 쌌습니다. 무엇보다 물이 좋았으며, 물은 셀프였습니다! 그 집을 알자마자 전 17일의 서재모임 장소를 잽싸게 바꿨습니다. 위치는 홍대 정문에서 신촌으로 가는 길목에 산울림소극장이 있는데, 그 맞은편 건널목을 건너면 먹자골목이 나오고, 거기서 가장 큰 간판을 가진 곳입니다. 6시부터 거기 있을테니, 잘 모르면 전화 하세요. 017-760-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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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4-15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마태우스님 저렇게 전화번호를 막 공개해도 괜찮으실라나? 누군가가 전화를 해서 '실은 니마를 오래전부터..으흑' 하고 울어버림 어쩌려구요.^^
그나저나 단란한 그곳. 여자들은 그 곳에서 일하지 않는한, 그리고 집구석 안들어오고 저기서 퍼 자빠져 있다는 남편의 소식을 듣고 잡으러 찾아가지 않는한 정상적으로 이쁘게 들어가서 술마시고 즐길일은 없지요. 사실 말입니다. 저는 단란한 저곳이나 룸이 많은 곳에 한번 정도는 가 보고 싶었습니다. 가서 어떻게들 노는지 정말 그게 재밌는지 진짜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때 남자친구들과 갈뻔도 했는데 그중 한 녀석이 '야. 일하는 그녀들에게 미안하지 않냐?'며 말해서 깊이 반성하고 안갔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가보고 싶어요. 대체 어떻길래 남자들이 그 무시무시한 술값과 팁과 기타등등을 내면서도 끊임없이 가는지를. 여자들이 모르는 그 세계는 어떤 것인지...근데 남자 분장하면 그녀들이 속아줄까요?

다이죠-브 2004-04-15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이 건전한 모임같은 거 하나 만드세요. 술안먹는 등산모임 같은 걸루요..오늘 산책하다 그 생각나던데, 저 참가할게요. ^^

sooninara 2004-04-15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저는 '호스트바'를 한번 가보고 싶답니다..이나이에 꽃미남하고 연애하려고 하는건 아니고..그냥 영계들이 누님하면서 술따라 준다면..얼마나 귀여울까요???(나=변태?)
남자들도 여자들이 술따라 주면 따라주는 술 재미있게 마시고 놀고만 오면 누가 술집 간다고 뭐라고 하겠어요..그런데 이차다 뭐다하면서 지저분해지니까..욕먹지...
호스트바는 불법이고 미풍양속을 헤진다고 뉴~스에 나오고..호스테스들은 넘쳐나는 이상한 나라 아닌가요? 호스트바 간다고 다 이차 갈것도 아니고..그냥 술마시면서 놀다 오면 안될까요?..제 친구중에 한명이 호스트바 가보고 싶다고해서..(남편하고 사이좋고 아이들도 셋이나 되는 요조숙녀랍니다) 저도 껴달라고 했는데...워낙 순진 아줌마들이라서 진짜 갈수있을지 미지수네요^^

sooninara 2004-04-15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등산회 좋네요..저는 뒷동산밖에 못가지만...한달에 한번 등산가는 동호회 만드는것도..
(매주는 힘들잖아요^^)

비로그인 2004-04-15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는 제목만 보고 학생운동의 그늘- 뭐 이런건줄 알았더니...그런데 단란한데 가면 정말 재미있나봐요~ 남자분들 회식하다보면, 단란한데가 안빠지는 경우가 많은걸 보면. 마태우스님 뜻대로, 단란한 곳 빼고 아름답게 회식이 끝나면 좋을텐데. ^^
 
행복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박정애 옮김 / 큰나(시와시학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은 다른 분의 추천으로 책을 고르는 빈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올해 그렇게 건진 보석 중에는 <범죄신호>가 있고, <거짓의 사람들>과 <제인에어 납치사건>도 그 하나다. 독서에 처음 취미를 붙였을 때는 강준만이 읽으라는 책만 읽었고, 그 뒤부터는 광고와 신문서평에 의존했다. 그러던 것이 서점에 나가서 직접 고르는 것으로 바뀌었고, 결국에는 인터넷 검색으로 읽고픈 책을 선택하고 있다. 지금은 다른 분의 추천이 10% 정도에 불과하지만, 사고픈 책이 생겼을 때 우선적으로 보는 게 그 책에 달린 독자서평이니, 상당부분을 추천에 의존하는 셈이다.

벨 훅스의 <행복한 페미니즘>은 복돌이님이 추천해주신 책이다. 페미니즘 책은 거의 무조건 읽곤 했는데 이 책을 왜 몰랐을까 싶다. 저자는 페미니즘을 이렇게 정의한다.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이다"
벨 훅스가 말하는 성차별주의에는 여성에 의한 남성의 억압도 포함되는데, 그래서인지 저자는 페미니즘의 주류에 대해 비판적이다.
[페미니스트 사상가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그들 내부의 군중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을 창출하는 엘리트 그룹으로 변해 가는 것 같았다(60쪽)]

어떤 운동이든 이론화 과정이 필요한 법인데, 그걸 이런 식으로 표현해야 할까? 이 구절을 읽으니 얼마 전 만났던 선배가 생각난다.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여성들이 자기 위상을 높이기 위한 권력욕 때문에 그런 운동을 하는 거라고. 그런 말을 들으면 참 슬퍼진다. 여성운동에 무슨 덕볼 게 그리 많다는 걸까? 대선 때 한나라당에 입당한 이계경 같은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도 여성의 정치세력화라는 나름의 이유 때문에 비난을 무릅쓰고 그런 짓을 한 것일게다. 또한 모든 운동은 권력을 창출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권력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지, 권력 그 자체가 아닐 것이다. 책을 잘 읽다가, 그때부터 마음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저자는 페미니즘이 '반남성'은 아니며, 성차별에 반대하는 남성과의 연대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쎄다. 누가 페미니즘을 '반남성'이라고 했담? 페미니스트들이 못생기고 레즈비언이라는 편견과 마찬가지로, 그것 역시 주류 매체들이 페미니즘을 훼손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던가? 저자는 심지어 폭력에 대해서도 너무 나간다. "남자들은 가해자이고 여자들은 희생자이다라는 믿음은....상당수 여성들이 타인에 대하여 강압적 권위를 행사하며 폭력을 사용한다는 사실 또한 무시하게 만든다]
여성의 폭력이 없지는 않을게다. 그리고 모든 폭력을 근절시키려는 노력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폭력의 대부분이 남성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 않는가? 그걸 먼저 보지 않고 "여성도 폭력을 저지른다"라는 도덕적 설교를 늘어놓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한가해 보인다. 페미니즘의 주류가 백인에 계급적 상층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비판도 손석춘과 김규항 같은 소위 좌파들이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논리와 어쩜 그리 똑같은지. 어느 운동이나 좀 배운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기 마련인데, 왜 여성운동에만 그런 걸 요구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은 페미니즘을 못잡아먹어서 안달인 사람들에게나 '행복한' 책인 것 같다. 복돌님은 "당신의 남자친구에게, 아버지에게, 형제에게 그리고 억압을 정당화하는 우리의 여성들에게 적극 권해 주자!"고 쓰셨지만, 난 별로 그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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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4-15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스트 사상가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그들 내부의 군중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을 창출하는 엘리트 그룹으로 변해 가는 것 같았다(60쪽)] 물론, 여기에 이의를 달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벨 훅스가 전체를 확대시켜 페미니즘 운동의 주류들을 비판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문맥을 떼어놓고 보면 마치 저자가 주류 페미니즘에 대해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 책의 근저를 흐르는 것은 그것이 아닐 겁니다. 지금 제게 책이 없어 그 부분을 확신할 순 없다하더라도 일단 제가 책을 읽으면서(혹은 그 부분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주류 페미니스트라 하더라도 같이 싸워나가다 일단 자신들의 기득권이 주어지면 곧바로 다른 여성들의 착취를 정당화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벨 훅스가 흑인이어서 그런지 기회주의적인 면에선 아무래도 흑인들보다는 백인들에게서 그런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쟁취하지마자 다른 흑인여성들을 착취하는 주류페미니즘을 인종차별적인 면에서 비판했다고 생각하거던요. 그리고 아동을 학대하는 남성들 뿐만 아니라 여성들 또한 약자에 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라는 의미에서 폭력이 용인될 수 없다는 점을 벨 훅스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솔직히 제 개인적인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한 건 사실입니다.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 페미니스트가 아니며 반남성주의에 근거할수록 그것은 또 다른 성차별주의적인 면모를 띄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남성중심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전혀 없었다면 마태우스님 말씀대로 마초들에게 얼씨구나, 하는 내용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또 아니쟎습니까? 그것이 전체적인 페미니즘 운동을 무력화시킨다거나 아니면 반페미를 주장하는 마초들에게 반페미니즘 옹호에 대한 동기를 부여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전 생활의 아주 작은 부분에도 권력이 남용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끊임없는 증오는 증오를 낳는다는 것, 남성중심의 사회를 지속적인 운동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연대가 가능한 페미니스트 남성들과 힘을 합해야 한다는 점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거 같습니다. 죄송하네요. 제가 아무런 비판없이 책을 받아들인 거 같아서요.

마태우스 2004-04-15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삐졌구나??? 전 복돌님이 좋은데, 왜 복돌님은 저를 싫어하는 거야? 피.... 하여간.... 님 덕분에 책 잘 읽었어요. 벨 훅스의 책은 흑백갈등이 엄존하는 미국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처럼 페미니즘이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 나라에서는 별로 권할 만하지 않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모든 폭력에 대한 저항, 참 좋은 얘기지만, 일단 시급한 것은 일상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남성들의 폭력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삐지지 마세요! 지금 속보에 의하면 민노당이 9석 얻었답니다.

비로그인 2004-04-15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삐지다니요. 이렇게 고마운 철퇴를 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할 뿐인걸요. 사실 극단적인 결론까지 이끌어가는 남성과 여성의 대립이 별로 탐탁치 않아 어쩌면 책을 통해 좀 더 긍정적으로 적용을 시킨 모냥입니다. 그리고 추천까지 한 걸 보면 전 아무래도 안일하고 낭만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이번 기회에 좀 더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을 찾아 읽어봐야 할 듯 싶습니다. 제가 지금 집에 있지 않고 오늘 하루 선배 알바를 대신하러 콜사무실에 나왔는데 저도 지금 텔레비전 보고 있어요. 전북은 우리당 싹쓸이네요. 훗..

쎈연필 2004-04-15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틀 전 페미니즘 시간에 훅스의 이론을 쬐끔 공부했었지요. 그땐 그 사람의 논문에 대해서만 공부했는데... 물론 이 책의 이야기도 들었지만요. 반갑네요! 관심이 가는 건 이상하게도 빠른 시일 내에 겹치기 된다니까요. 방가방가~!

바람구두 2004-04-2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다. 페미니즘... 흐흐.

마태우스 2004-04-2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어렵다면 어렵지만, 쉽다면 또 쉬운 게 페미니즘 아니겠습니까? 성적 억압에 반대하는 게 바로 페미니즘이래요...

바람구두 2004-04-22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그야 그렇지요.
하지만 성적 억압에 반대하는 것과 자신과 다른 성기에 반대하는 것과 구분 못하는 이들이 종종 있어서요. 게다가 성적 억압에도 계급은 있는 거니까요.
전 이 둘이 결합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반감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마태우스 2004-04-22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 그러고보니까 바람구두님은 저보다 훨씬 페미니즘에 대해 잘 아시잖습니까? 제가 누구한테 일장 설교를 한겁니까. 아, 이 쑥스러움..... 그런데, 성적억압과 계급이 잘 결합될 수 있는지요? 밥.꽃.양을 보니까 전혀 아니던데요...
 
한국은 시민혁명중
조기숙 지음 / 여성신문사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독서습관에 관한 책을 보니 한번에 두가지 책을 보지 말란다. 장정일은 지하철을 탔을 때처럼 짜투리 시간에 하는 독서는 눈만 나빠질 뿐, 과히 좋은 습관이 아니란다. 난 좋지 않다는 그 두가지를 모두 하는 편이다. <한국은 시민혁명중>이라는 책도 벨 훅스의 <행복한 페미니즘>을 읽는 틈틈이 펼치다보니, 먼저 다 읽어 버렸다. 내 생각에도 책은 가부좌를 틀고앉아 단숨에 읽는 게 더 좋아 보이지만, 여건이 그리 안되는데 어쩐단 말인가. 읽던 책을 바꾸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 읽을 책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을산님의 말씀이다. "옷을 입을 때도 때와 장소에 따라 옷을 입으라 하는데, 책에도 분명 이런 것이 있을거라 생각된다...혹시 잠을 자고싶은데 잠이 안올 경우를 위한 책도 필요하다. 그런 경우 필요한 것이 들뢰즈 등의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의 책이나 의학 저널집이다! 5분도 안되어 졸음이 오기 시작하니, 수면제보다도 효과 직방이다"
하루에 여러 권의 책을 들쳐봐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래서다.

이 책의 저자인 조기숙은 매우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지식인이다. 메이져 언론의 만행에 모두 침묵할 때, 조기숙은 그들이 자행하는 왜곡을 질타했고, 조선일보에 기고를 거절하기도 했다. 또한 예측력도 뛰어나, 정말 조 교수의 말대로 상황이 진행되는 경우가 꽤 많이 있다. 그렇긴 해도 이런 말을 스스로 할 필요가 있을까?
[...전개과정을 미리 예견하기도 했다. 노풍이 불 것이라는 점...단일화가 성공할 것이라는 점...이회창이 당선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점을 주장했었다. 그래서 족집게 교수라는 별명을 얻었다(154쪽)]
"뭐야, 잘난체를 하다니"라는 반응을 감수하고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 조기숙의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난 대선에 관한 나의 설명에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조 교수의 말은, 자신은 정확히 앞날을 내다봤는데, 언론과 다른 학자들은 지난 대선을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는 것이다. 부연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되긴 하지만, 자화자찬이 환영받는 경우는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 예컨대 강준만 같은 사람은 노풍을 불러일으킨 숨은 실력자지만,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하지는 않잖아? 그리고 '족집게 교수'라는 별명을 얻었으면 최소한 주위에서는 인정받은 터, 책에서까지 그런 얘기를 듣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모르겠다. 내가 워낙 삐딱해서, 실제로 잘난 사람이 잘난 체를 하는 것조차 용납을 못하는 건지.

조 교수는 아직도 많은 사람-특히 수구 애들-이 헷갈려하는 진보와 보수의 개념에 관해 명료하게 해설을 한 뒤, 이런 말을 한다.
[그러면 노무현은 좌파정권인가?....내 눈에 노대통령은 투명한 시장을 추구하는 보수주의자일 따름이다. 젊은 시절의 노무현은 분명히 진보적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노무현은 보수주의자다. 그럼 노대통령이 변절했냐고? 이런 말도 못들어 봤나. "20대에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것이고, 40대에도 사회주의자면 머리가 없는 것이다"(104쪽)]
젊은 시절 노무현이 진보적이었던 것은 우리나라는 극우가 보수를 자처했기 때문이라고 한참 설명을 해 놓고선, 사회주의자 운운하는 마지막 문장은 도대체 왜 집어넣은 걸까? 그때나 지금이나 노무현은 보수인데 말이다.

책 말미에서 조 교수는 남성 중심 언론의 문제점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한 뒤 이렇게 주장한다. "용감한 한국 여성들이 언론을 주도해야 비로소 언론개혁이 시작될 것이다. 언론개혁을 위해서도 여성이 나서야 한다"(260쪽))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구절을 읽고나니 갑자기 전여옥 여사가 생각난다. 여성한테 테러리스트가 되라고 했던, 그러다 자신이 테러분자로 돌변해 노무현에게 무지막지한 테러를 일삼았던 그 여자. 치마만 둘렀다고 다 여자는 아닌 것같다. 이 책을 한마디로 평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정치에 관해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이 담긴 귀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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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권이 생긴 뒤 내 첫 투표는, 으로 글을 시작하려 했지만, 그랬다간 내 나이가 들통날 것 같고, 그랬다간 나랑 안놀겠다는 분들이 속출할 것 같아, 그냥 덮는다. 참고로 내 나이는 아주 많다. "저, 정말?" 하고 놀랄만큼. 하여간 투표권이 생긴 뒤부터 난 한번도 투표를 안한 적이 없다. 꼭 국가적 대사가 아니더라도, '투표는 권리이자 의무'라는 사실을 초등학교 때 배운 이래부터, 난 언제나 신성한 마음으로 투표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난스러운 투표지가 발견될 때마다 사람들은 꼭 날 의심하곤 했다. 의심하거나 말거나.

내가 했던 투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92년 대선이었다. 투표 전날, 난 너무 몸이 아팠다. 조교 때라 들어가 쉬지도 못하고, 퇴근 후엔 교수님과 술자리에까지 참석을 했다. 그때는 술을 마시면 아픈 게 나을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던 시절이라, 이기지도 못할 술을 마구 들이켰다. 다음날 깨보니 온몸이 열로 들떴고, 눈도 떠지지 않았다. "투표해야 하는데.."라고 뇌까리며 계속 잠만 잤다. 그러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반, 더 이상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떨치고 일어났다. 걷는 것도 힘들어 택시를 타고 얼마 안되는 거리의 투표장까지 갔던 기억, 돌아오는데 너무 추워서 부들부들 떨던 기억도 생생히 남아있다. 내 예측대로, 내가 뽑은 후보는 당선되지 않았지만, 한표를 행사했기에 별 후회는 없다.

나랑 같이 놀고있는 조교에게 투표를 할거냐고 물었다.
"아뇨. 투표하려면 당진까지 가야 하는데, 귀찮아서 안갈래요. 전 정치에 관심도 없고, 지금까지 한번도 투표해본 적이 없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그녀가 한마디 덧붙였다.
"혹시 아버지가 가자고 하면, 그냥 아버지가 찍으라는 사람 찍죠 뭐"
투표를 신성한 권리행사로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런 사람에게도 똑같이 한표가 주어지는 게 못내 안타깝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주위에도 많다. 투표를 마치신 할머니가 누나에게 투표하라고 닦달을 했다. 누나의 대답이다. "싫어! 귀찮아!"
우리 정치를 후진적으로 만드는 사람은 한나라당에 표를 던진 여동생이 아니라, 투표를 안하겠다는 누나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지만 오늘 같이 테니스를 친 내 친구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다. "여러 생각을 하기가 귀찮아" 늘 1번만 찍었다는 친구의 부인은 탄핵 이후 거듭된 친구의 설득에 힘입어 이번 총선에서 투표를 안하기로 했단다. "한나라당 찍느니 기권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게 친구의 말이다.

라디오를 들으니 지요하라는 분이 <한번도 지지않은 사람>이라는 소설을 썼다고 한다. 본인이 직접 만난 사람의 얘기를 소설로 쓴 거라는데, 소설의 결말은 "한번도 사표가 된 적이 없다"고 자랑하던 그 노인이 어떤 계기를 통해 자신이 했던 투표들은 헛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얘기란다. 투표는 자신의 의사표현이고, 찍은 후보가 당선이 안되더라도 그만큼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 "민노당 후보를 찍으면 사표가 된다"는 유시민의 말은, 상황이 급해진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적으로 잘못된 협박이다. 좌우지간 오늘은 투표일, 아직 투표를 하지 않은 난 어머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어머니와 같이 가서 신성한 내 권리를 행사해야지. 나이를 제법 먹은-사람으로 따지면 80살을 훨씬 넘은 것 같은-우리 벤지에게 투표권이 없는 게 아쉽다. "귀찮아서" 기권하는 사람들 대신 벤지에게 투표권을 주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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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15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냐 2004-04-15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유시민의 이번 발언은...그동안의 애정어린 시선을 거두게 하고 실망만 남겼슴다...처지가 이해는 되지만....그의 그릇은 좀 더 여유가 있을줄 착각했슴다.

다이죠-브 2004-04-15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투표하고 오시면서 벤지 산책도 시켜주세요. 햇살이 너무 좋아요!

메시지 2004-04-15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까지 제가 찍은 사람이 당선된 적이 없습니다. 사표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제가 원하는 사람에게 기표를 했죠. 제 생각에 투표에서 사표란 없습니다. 저의 지지의사를 분명히 했다는 것, 그 자체가 의미라고 여깁니다. 선택되지 못한 소수의 의견도 분명한 의견입니다. 그리고 그 의견이 진실될 때 점점 커져서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는 행복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지지해온 정당이 드디어 국회에 입성하는.... 어제 몇몇 친구들과 모여 미리 파티를 벌였죠....

마태우스 2004-04-15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흐흐흑. 다시 제 서재에 와주시다니, 님의 아량에 다시한번 깊은 감사를...
토끼똥님/아침에 테니스치고 와서 산책을 시켜줬습니다. 벤지가 아주 좋아하더군요.
메시지님/저도 오늘 님의 파티에 조금 기여를 했지요^^

연우주 2004-04-15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표하고 왔습니다. 날 너무 덥군요.

책읽는나무 2004-04-15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을 기다려 투표를 할꺼라구요??...어?? 울민이는 벌써 엄마랑 투표하고 왔는디~~~ㅋㅋ

마태우스 2004-04-15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는나무님/ㅎㅎ
연보라빛우주님/저는 검은비님의 그림이 담긴 티를 입고 투표를 했습니다. 그래서 별로 더운 줄 몰랐죠. 참고로 제 티엔 바다와 개, 소년이 담겨 있습니다.

다연엉가 2004-04-15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그 티 입고.... 멋있었겠네요....

sooninara 2004-04-15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사진 올리세요..검은비님 티 입고서 한장 찍어서..
저도 투표했습니다..아마 오늘 저와같은 선택을 하신분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유시민씨는 저를 미워라하겠군요^^참 지지정당하고 국회의원하고 다른당을 찍었답니다..

마냐 2004-04-15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마태우스님의 말씀은...제가 엄청난 도발(!)에도 불구, 아무 생각 없이 룰루랄라하는 단순한 사람이란 사실을 드러냈거나...속좁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 발버둥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는 뜻인가요? ㅋㅋㅋ

2004-04-15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4-04-15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표 날렸습니다. 아침에 퇴근함시롱요.무쉰놈의 그렇게 당이 많은지.....헷갈려습니다.

마태우스 2004-04-15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무슨 말씀을 그리 섭하게... 너그러이 양해해 주셔서 감사하단 뜻이죠.
수니나라님/제가요...디카가 없구요, 컴맹이어요.
폭스바겐님/그쵸? 당이 정말 많구, 첨 보는 당에도 후보가 줄을 선다는 게 신기합니다.
책울타리님/전 원래 멋있습니다. 음하하하.

▶◀소굼 2004-04-15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그 옷입고 번개나가시면 되겠네요^^; 그럼 다른 분이 찍어주실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