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4월 17일(토)
누구와: 알라딘 서재모임을 했다. 그것도 내 홈그라운드에서
마신 양: 1차에서 생맥주 약간, 2차에서 소주 조금, 그래도 기본은 한 것 같다.
부제: 엘리트 코스였어요...
1. 봉쥬르
장소가 홍대앞이라 내가 코스를 정해야 했다. 장소를 정하는 건 항상 부담스러운 일이다. 가장 어려운 것이, 두시간이 넘도록 사람들을 기다리며 수다를 떨만한 카페를 구하는 거였다. 보통 카페를 가보라. 한시간만 지나면 눈치를 주고, 심지어 "잔 치워드리겠습니다"라며 노골적으로 내쫓는 곳도 있다. 나름대로 여기저기 다녀 봤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민들레 영토> 생각이 났다. 4천원만 내면 음료는 얼마든지 리필이 되고, 3시간까지 있을 수 있는 곳. 하지만 난 음료수보다는, 마음놓고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을 원했다. 그때 내 눈에 띈 게 바로 <봉쥬르>, 선거날 카페 섭외를 다니다가 이곳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며 맥주를 마셨었는데, 값도 싸고, 뭣보다 조용하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화장실이 남녀 공용이긴 하지만, 남자 소변기가 따로 있는 것도 좋았다. 혹시나 싶어 예약까지 했지만, 그날 나갈 때까지 우리가 유일한 손님이었던 것 같다. 길만 건너면 먹자골목이 이어지니,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장소로서 이만한 곳이 없는 듯 (웬 자화자찬?)
2. 기찻길옆 왕갈비
이집은 정말 기찻길 옆에 있다. 그 기찻길에는 아직도 기차가 다닌다는 설이 있는데, 난 어릴 때 이후 본적이 없다 (하루에 두 번 다닌단다). 그 근처에는 원조를 내세우는 고기집이 많은데, 다 맛있지만 이집이 가장 유명하다. 드넓은 실내에는 옛날 스타일의 둥그런 식탁이 있고, 거기다 숯불을 올려놓고 고기를 구워 먹는다. 얼마나 잘되는지 나갈 때 보면 줄을 지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 갈비살이 7천원으로, 맛에 비해서는 그리 비싼 게 아니고, 찌개를 얼마든지 서비스로 주는데, 찌개맛이 정말 기가 막힌다. 참고로 물은 셀프니, 앉아서 "왜 물도 한잔 안주냐"고 해봤자 아무도 신경 안쓴다.
이집의 또다른 좋은 점은 화장실이 비교적 좋다는 것과, 환기가 잘되어 화장실 앞에 앉아도 냄새가 안난다는 것. 그러니 문을 안닫고 나오는 사람이 있어도 고기맛이 떨어진다든지 하는 일은 없다. 고기를 먹다가 밥을 시키면 뚝배기에 담아 주는데, 하나 시키면 서너명이 먹을 수 있다. 발견한 지는 얼마 안되지만, 보석같은 집이다.
참고로 <벽돌집>은 고기 1인분이 1만원 정도 하고, 양은 더 적다. 그대신 고깃국물이 아주 맛있으며, 무엇보다도 비빔밥의 맛이 대단하다. 인테리어가 깔끔해서 물이 좋다는 점도 장점에 속한다.
3. 노래방
노래방들이 다들 한물 갔다. 불황을 만회해 보고자 돈을 내면 여자를 불러주는 변태스러운 곳도 있지만, 노래방 그 자체에 충실하면서 성공을 거둔 곳도 있다. 홍대앞이 자랑하는 '수' 노래방이 바로 그곳이다. 세련된 내장과 우아한 분위기를 살린 본점은 '화이트 수(秀)'로 불리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무슨 파티장에 가는 기분이 들게 한다. 사람이 워낙 미어터지고, 30분 이상 기다리는 게 지겨워 딱 한번 가봤을 뿐이지만, 일반 노래방과 차원이 틀리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방에 설치된 카메라가 우리를 비춰주는데, 원하면 다른 방의 모습도 실시간으로 비춰준다.
여기서 탈피한 곳이 '럭서리 수'로, 어제 우리가 간 곳이다. 이곳은 본점보다 훨씬 더 우아하게 지었고, 사람도 더 많다. 노래방의 혁명이라고나 할까, 한시간에 18,000원(6시 이전은 만원)으로 조금 비싸긴 하지만, 호텔 서비스를 받는 듯한 느낌을 주며, 노래방 안이 호화롭게 꾸며져 일단 들어오면 나가기가 싫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아이스크림-딸기, 바닐라, 쵸콜렛이 겸비된-까지 제공을 하니, 사람이 많을 수밖에. 본점의 성공에 힘입어 '럭서리' '노블레스'가 만들어졌고, 강남점, 압구정점까지 생겼으니, '노래방 재벌'이라 할 만하다.
4. 떡볶이집
'수 노래방'과 더불어 홍대앞의 자랑이다. '럭서리 수'에서 도로 쪽으로 가면 3면이 매장인 포장마차가 하나 나오는데, 그곳이 그 유명한 떡볶이집이다. 이곳은 술을 마시고 집에 가기 전에 들르는 곳으로, 밤이 깊을수록 사람이 더 많아 새벽 두세시에도 발 디딜 틈이 없다. 원래 배가 부를 때 먹어야 진짜 맛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법이니까. 종업원도 두명이나 둘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데, 혹시 그 포장마차가 코스닥에 등록이라도 되면 무조건 주식을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리 친구들이 굳이 홍대앞으로 약속을 정하는 이유는 사실 그 떡볶이집 때문이다. 내가 살이 안빠지는 이유도 집에 갈 때 꼭 거기를 들려서 가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음. 그러니까 내가 어제 선택한 코스는, 홍대앞의 자랑이라고 할만한 곳들만 선택된 엘리트 코스인 셈이다.(자화자찬 끝)
5. 기타
-매너리스트님이 알려주신 <숨어있는 책방>은 헌책방의 고정관념을 깨는 멋진 곳이었다. 앞으로도 자주 가야겠다는 생각이...
-서재 모임에 갈 때 가슴이 뛴 이유는, 참석자가 다들 여자분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오후 4시가 되도록 남자 셋에 여자 한분, 기대가 빗나갔나 했는데 조선남자님을 만나서 참 좋았다. 음하하하하. 숨어있던 본성을 일깨워준 조선남자님께 감사!
-맥주와 소주를 먹고 헬렐레할 때, 우주님이 한판 붙자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지만 떡볶이집을 나온 우주님 왈, "다음에 하죠!" 휴, 다행이다...
-대전에서 와주신 가을산님께 특별히 감사드린다. 저번에 검은비님의 면티를 입고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옷만 보세요! 옷만!"이라고 하셨을 때, 이런 말씀 드리면 실례인 줄은 알지만..."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직접 뵈도 귀여우셨다.
* 다음 번개는 대전 쯤에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