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빨래
-난 빨래를 한번도 해보지 않고 살았다. 처음으로 빨래를 한 것이 군대에 갔을 때 양말을 빨았을 때다. 어떻게 빠는줄 몰라 옆의 애가 하는 걸 따라했다. 아주 대충 빨고 난 뒤 내무반에 있는 빨래줄에 걸었더니, 당연한 얘기지만 물이 주르르 떨어진다. 그의 말이다.
그: 너 이거 안짰냐?
나: 짜야...되니?
어이없어 하는 그, "너 무슨 왕자였니?"
-아버님 간병 때문에 어머님이 병원에서 숙식을 하셨을 때, 난 다시금 빨래를 해야 했다. 세탁기를 쓸 줄 몰라서 잠시 고민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스타트'만 누르면 된단다. 그래서...어렵지 않게 빨래를 했다. 문제는 다림질이었다. 하면 못할 것도 없지만 너무 귀찮았다. 고민하고 있는데, 내 처지를 불쌍히 여긴 어머님이 파출부 아주머니를 구해 주셨다. 그 뒤부터 난 한번도 빨래를 한 적이 없다. 양말 두짝을 한데 합쳐서 빨래통에 던져주고, 옷을 뒤집어 벗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일을 한다는 느낌.
2) 밥
-평생 밥을 잘 얻어먹었지만, 어머님이 병원에 가셨을 때는 할수없이 내가 밥을 해야 했다. 밥은 물만 잘 맞추면 별 문제가 없다. 초등학교 실과 시간에 쌀의 1.2배만큼 물을 넣는다는 게 기억이 나, 대충 부었더니 밥이 아주 잘 된다. 문제는 반찬. 아는 여자애한테 전화를 해서 김치찌개 만드는 법을 배웠다. 돼지고기를 사다가 썰고, 볶고, 김치를 넣고...이렇게 했더니 너무 맛있어서 기절할 뻔했다. 맨날 찌개만 먹기 뭐해서 슈퍼에 갔더니, 나같은 놈을 위해 일회용 음식이 엄청나게 많은거다. 3분카레, 된장국, 쏘세지...잔뜩 사가지고 집에 왔는데, 어머님 요청으로 온 파출부 아주머니가 일주에 한번씩 반찬을 해주신 뒤부터는 손에 물 안묻히고 살았다. 물론 지금은 어머님이 아주 잘 차려 주시며, 도시락까지 싸주셔서 잘 먹고 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난 라면을 잘 끓인다. 어머님이 안계실 때마다 난 라면을 끓여서 찬밥을 말아먹는다. 그런데 플라시보님이 올려주신 김치볶음밥 매뉴얼을 보니 예상외로 쉽다. 다음에는 라면 대신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내가 좋아하는 햄을 잔뜩 넣어서.
3) 청소
-내가 가장 하기 싫은 것은 이불 개는 거다. 어려서부터 그랬고, 지금도 난 이불을 그래도 펴놓고 나간 뒤 잘 때 쏙 들어가서 잔다. 도대체 이불을 개야 할 필요가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청소는 더더욱 싫다. 빗자루로 쓰는 거나, 걸레질하는 거, 둘다 싫어한다. 내가 원래 더러운 환경에서 잘 버티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 깨끗하기 그지없는데 왜 청소를 하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 매달 1일날은 청소하는 날이었다. 그때 동원되어 청소를 하는 게 얼마나 싫었는지 모른다. 교실 청소가 하기 싫어 반장, 혹은 부반장이 되고 싶었지만, 한번도 되지 못했다.
4) 간병
-아버님은 3년간 병원에 계시다 돌아가셨다. 그 기간 동안 어머님은 병원에서 숙식을 하시면서 그 힘든 간병을 해내셨다. 한번은 어머님이 허리가 너무 아프셔서, 내가 밤을 새운 적이 있다. 난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한 채 아버님의 시중을 들었다. 어머님이 이렇게 힘든 일을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그 뒤로도 내가 아버님 병실에서 잔 적은 거의 없다. 작년에 검사 때문에 잠깐 입원했을 때, 아들이 어머님을 가라고 한 뒤 간병을 하는 걸 봤다. 부끄러웠다.
-아프다고 하시는 아버님의 다리를 몇시간째 주무르는 와중에, 어머님이 깜빡 졸다가 침대 아래로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그때 아버님이 "그렇게 졸 거면 주무르질 말던가!"라고 하셨다는 말을 듣고 아버님을 미워했다.
-석고로 온몸을 감싼 아버님, 답답하셨는지 몸부림을 치다가 침대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 엄마와 간호사 둘이서 올리기가 너무 힘들어 인턴을 불렀다. 자다 일어난 인턴은 이렇게 말했다. "이런 걸 왜 날 시켜! 수위나 부르지..." 그때 의사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때가 참 힘든 시기였구나, 할 때가 많다. 그때마다 내 삶은 왜이리 괴로운 걸까, 김일성은 뭐하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때만 넘기면, 대개의 일들은 추억 속에서 미화되어, "그때 안죽기 잘했어!"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삶이란, 그러면서 사는 거다. 그걸 알아서 그런지, 지금의 삶은 너무 즐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