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근길에 생각이 나서 쓴 글입니다. 물론 이걸 매제에게 보여줄 마음은 없습니다. 그저 옆에서 보기 답답해서 쓴 거구요, 다 써놓고 올리려고 보니 겁나게 유치하네요. 눈 딱 감고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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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러 가지로 걱정이 많지? 집도 절도 다 빼앗길까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고 들었어. 지난 대선 직후 "이제 어떻게 사냐"고 통곡하더니, 세상은 너에게 또다시 시련을 주는구나. 학생 때부터 널 봐온, 그래서 너처럼 착한 애는 세상에 없다는 걸 잘 아는 나로서는 너의 거듭된 불행에 마음이 아프다. 나 또한 너의 시련에 일조를 했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그렇다.
니가 너희 집안과 의절하면서까지 내 여동생과 결혼을 했을 때, 난 정말 마음이 아팠다. 도봉구에 있는 어느 성당에서 우리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치뤄진 쓸쓸한 결혼식 풍경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성격이 그다지 좋지 않은 여동생과 평생을 살아가야 할 네 모습이 떠올려졌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넌 여러 가지로 마음고생이 심한 모양이더구나. 너를 만날 때마다 우리 가족 모두는 미안함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런 너에게 정치 상황마저 시련을 안겨주니, 삶이 무슨 재미가 있겠니.
선거날 넌 이삿짐을 일부 맡기러 우리집에 왔었지. 캔맥주를 마시면서 개표를 보겠다는 너에게 난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지향점은 다르지만, 우리 각자의 승리를 기원하자꾸나"라고.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했다는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서, 난 네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 니가 얼마나 속이 상할까 하는 생각.
이런 가정을 해본다. 탄핵이 없었다면 과연 열린우리당이 1당이 되었을까? 만일 그랬다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신나게 표를 갈라먹는 사이, 한나라당이 니가 바라는대로 압승을 거두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탄핵은 자멸에 이르는 악수였다.
넌 탄핵에 열광했다. 너처럼 착한 얘가 왜 그처럼 말도 안되는 다수의 폭력에 열광하는지 그때의 난 이해할 수 없었다. 너의 환희는, 겨우 한달짜리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물론 그 당시 너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30% 가까운 사람들이 탄핵가결에 지지를 보냈었지. 그게 자신들의 족쇄가 될 줄도 모른채. 이렇게 생각해보자. 탄핵 반대여론이 99%였다면, 불과 1%만 탄핵을 지지했다면 과연 한나라당이 탄핵을 시도했을까. 아마도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30% 가량이 탄핵에 찬성을 한다는 여론은 그들에게 자신감을 주었음이 틀림없다.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든, 유권자들은 자신을 지지할 것이라는 오만을.
결론적으로 그것은 오판이었다.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건전한 상식을 가진 유권자가 조금 더 많았던 거였다. 한나라당은 1당을 빼앗겼고, 다수의 횡포를 '국민의 뜻'으로 참칭하는 일은 앞으로 4년간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생각해본다. 무엇이 착한 너로 하여금 탄핵에 열광하게 했을까? 무엇 때문에 한나라당은 그렇게 뼈아픈 오판을 했을까? 답은 한가지, 조선일보였다. 탄핵안이 발의된 시점에서 조선일보는 연일 탄핵을 부추기는 사설을 썼다. "선진국에서는 마땅히 탄핵절차가 집행되었을 거다"는 대목이나, "사과도 표결도 거부한 대통령...이제는 표결로 가는 수밖에 없게 됐다"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한나라당과 그의 지지자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내 여동생은 경품이 탐나서 조선일보를 본다지만, 매일같이 계속되는 조선일보의 세뇌는 너의 건전한 판단을 좀먹고, 결국 경품으로 얻는 이익보다 수백, 수천배 더 큰 손해를 너에게 끼치고 있는 중이다.
열린우리당의 압승에 충격을 받은 걸 보면, 조선일보에서는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나보다. 나같은 비관론자만 몰랐을 뿐, 열린우리당의 1당이 유력하다는 것은 세간의 상식이었으니까. 지난 대선 때도, 조선일보만 보는 너로서는 노무현의 당선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었지. 조선일보의 예측이 번번히 틀리는 것처럼, 그들이 하는 말-예컨대 노무현이 빨갱이라는-도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은 혹시 해본 적이 없니?
아무리 조선일보가 좋다해도, 한 1년만 다른 신문을 같이 봐보면 어떨까. 경향신문도 좋고, 한겨레면 더욱 좋겠다. 1년치 신문값은 내가 얼마든지 내줄 수 있다. 새로운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면 미처 보지 못하던 진실이 보일 수도 있지 않겠니? 그렇게 하면, 왜 사람들이 조선일보를 그렇게 비난하는지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될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한번 해보지 않겠니? 너처럼 착한 애가 불의한 일에 열광하고, 선거 때마다 충격에 빠져 울먹이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나로서도 마음 아픈 일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