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미지 설명: '간사'로 찾으니 저런 책밖에 없더군요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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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인 조건에 구애받지 말고 내가 느끼는대로 그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 그런 마음을 먹은 건 벌써 오래전 일이건만, 그게 잘 안된다. 하기사, 오랜 기간 뿌리박은 전통이 하루아침에 달라지겠는가.
고등학교 때, 나만 보면 오락실에 가자고 하는 친구가 있었다. 같이 갤러그를 해주면서 생각했다. '넌 커서 뭣이 되려고 그렇게 공부를 안하니' 게다가 말하면 갤러그도 내가 훨씬 잘했다. 근데 어느날 내 친구가 걔를 가리키며 이런다. "쟤가 광성에서 1등이래. 쟤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더라"
갑자기 걔가 다시 보였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멋져 보였고, 오락을 하는 것도 더 이상 공부할 게 없어서 그러는 것으로 느껴졌다. 독서실에서 풍류를 즐기다 만난 사이니 서로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던 탓이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보는 시각이 확 바뀌다니, 너무 간사하지 않는가?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풍류란 이런 것이었다. 남자방과 여자방 사이의 벽에 틈이 있는데, 난 가끔 그 틈 사이로 여자방을 엿보았다. 물론 여자의 등밖에 안보였지만 말이다. 난 아닌데, 다른 친구는 틈으로 보다가 같은 일을 하는 여학생과 정통으로 눈이 마주쳤단다.
작년 시즌, 메이져리그에서 뛰는 최희섭의 성적은 참으로 한심했다. 타율은 2할을 간신히 넘겼으며, 맨날 삼진만 당했다. 195센티의 커다란 체구에 삼진을 당하고 멋쩍게 웃는 모습이 어찌나 바보같이 보이던지. 그런 그가 올시즌 펄펄 날고 있다. 4경기 연속 홈런을 비롯해서 벌써 9개의 홈런을 치고 있으며, 타율도 2할7푼이다. 요즘도 물론 삼진을 당하고, 그럴 때마다 멋쩍게 웃지만, 그 웃음이 더 이상 바보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음에 더 잘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이는 건 내가 너무 간사하기 때문이겠지.
예전에 내가 즐겨본 프로 중 하나가 <순풍산부인과>였다. 거기서 맨날 송혜교를 따라 다니는, 하지만 송혜교는 무지하게 싫어하는 남자애가 김래원이었다. 어찌나 한심해 보이던지, 왜 저런 애가 TV에 나오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나: 쟤 뭐냐? 왜 저기 나와?
친구: 그래도 쟤 <학교>에서 인기가 좀 있었어.
나: 개뿔! 쟤가 뜨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하지만 그는 <옥탑방 고양이>로 화려하게 떠버렸고, 주위 여자들은 그가 멋지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최근에는 <어린신부>에 나왔던 문근영과 KFC 선전을 하는데, 도시락을 안싸와 안타까워하는 문근영에게 닭을 갖다주는, 그리고 맛있게 먹는 김래원은 아무리 봐도 멋지다. 도대체 그 둘이 같은 사람인지가 믿어지지 않을 지경. 뜨고 나니 멋있어 보이는 현상은, 역시나 내가 간사하기 때문이리라.
"뜨면 장을 지진다"는 말을 들었던 친구가 그걸 따질까 두렵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변명하리라. "내가 말한 건 공중부양이었어^^" 좀 썰렁하긴 해도, 정말 장을 지질 수는 없잖는가.